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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경향파 문학을 넘어 계급 의식에 입각한 조직적인 프롤레타리아 예술 운동을 지향했으며, 문학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미술 등 예술 전반에 걸쳐 식민지 현실과 계급 모순을 타파하고자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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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20년대 초반 발생한 '신경향파' 문학 운동이 조직화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 ||
| + | * '''파스큘라(Paskyula)''': [[박영희]], [[김기진]] 등 백조 동인 출신들이 중심이 된 그룹. | ||
| + | * '''염군사(焰群社)''': [[송영]], [[이기영]] 등 노동 계급 출신의 문인들이 중심이 된 그룹. | ||
| + | 1925년 8월, 이 두 단체가 통합하여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이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명칭은 [[에스페란토]] 표기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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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전개 과정 == | ||
| + | 카프의 활동은 조직 노선의 변화에 따라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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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제1기 (1925년 ~ 1926년) === | ||
| + | 자연발생적인 반항을 다루던 초기 단계이다. '가난'과 '살인/방화' 같은 극단적 소재를 통해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고발했으나, 구체적인 실천 강령은 부족했다. (대표작: [[최서해]]의 《홍염》 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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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제2기 (1927년 ~ 1930년) === | ||
| + | 이른바 '''방향 전환''' 시기이다. [[박영희]]의 주도로 막연한 반항에서 벗어나 '목적의식'을 가진 조직적 계급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 시기부터 예술을 혁명의 도구(무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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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제3기 (1931년 ~ 1935년) === | ||
| + | '''볼셰비키화''' 논쟁이 일어난 시기이다. [[임화]], [[김남천]] 등 소장파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카프를 단순한 예술 단체가 아닌 정당 조직과 같은 체계적인 투쟁 조직으로 개편하려 했다. 창작 방법론으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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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주요 논쟁 == | ||
| + | * '''내용과 형식 논쟁''': [[김기진]]은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형식을 강조한 반면, [[박영희]]는 사상적 내용(계급성)의 우위를 강조하며 대립했다. | ||
| + | * '''아나키즘 논쟁''': 초기 카프 내에 혼재되어 있던 [[아나키즘]] 성향을 배격하고 마르크스주의로 노선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논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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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해산 == | ||
| + |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카프는 두 차례의 큰 검거 사건을 겪는다. | ||
| + | # '''제1차 카프 검거 사건 (1931)''': '신건설사 사건'으로도 불린다. 연극 운동을 핑계로 조직원을 대거 검거했다. | ||
| + | # '''제2차 카프 검거 사건 (1934)''': 전주 지역의 독서회 사건을 빌미로 [[신불출]], [[박영희]] 등 핵심 맹원 80여 명이 체포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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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결국 지도부가 와해되고 전향자가 속출하면서, 1935년 5월 [[박영희]]가 경기도 경찰부에 해산계를 제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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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의의 == | ||
| + | *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최초로 조직적인 강령과 체계를 갖춘 전국 규모의 문학 단체였다. | ||
| + | * 식민지 지식인들의 고뇌를 감상적인 차원에서 사회 구조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려 [[리얼리즘]] 문학을 정착시켰다. | ||
| + | * 이후 1930년대 후반 리얼리즘 소설과 해방 공간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
2025년 12월 2일 (화) 16:02 기준 최신판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 | |
|---|---|
| 성립 | 1925년 8월 |
| 해체 | 1935년 5월 |
| 선행조직 | 염군사(焰群社), 파스큘라(PASKYULA) |
| 후행조직 |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 약칭 카프(KAPF)는 1925년 결성되어 1935년까지 활동한 일제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문학·예술 단체이다.
신경향파 문학을 넘어 계급 의식에 입각한 조직적인 프롤레타리아 예술 운동을 지향했으며, 문학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미술 등 예술 전반에 걸쳐 식민지 현실과 계급 모순을 타파하고자 했다.
목차
결성
1920년대 초반 발생한 '신경향파' 문학 운동이 조직화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1925년 8월, 이 두 단체가 통합하여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이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명칭은 에스페란토 표기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전개 과정
카프의 활동은 조직 노선의 변화에 따라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제1기 (1925년 ~ 1926년)
자연발생적인 반항을 다루던 초기 단계이다. '가난'과 '살인/방화' 같은 극단적 소재를 통해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고발했으나, 구체적인 실천 강령은 부족했다. (대표작: 최서해의 《홍염》 등)
제2기 (1927년 ~ 1930년)
이른바 방향 전환 시기이다. 박영희의 주도로 막연한 반항에서 벗어나 '목적의식'을 가진 조직적 계급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 시기부터 예술을 혁명의 도구(무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제3기 (1931년 ~ 1935년)
볼셰비키화 논쟁이 일어난 시기이다. 임화, 김남천 등 소장파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카프를 단순한 예술 단체가 아닌 정당 조직과 같은 체계적인 투쟁 조직으로 개편하려 했다. 창작 방법론으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주요 논쟁
- 내용과 형식 논쟁: 김기진은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형식을 강조한 반면, 박영희는 사상적 내용(계급성)의 우위를 강조하며 대립했다.
- 아나키즘 논쟁: 초기 카프 내에 혼재되어 있던 아나키즘 성향을 배격하고 마르크스주의로 노선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논쟁이다.
해산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카프는 두 차례의 큰 검거 사건을 겪는다.
- 제1차 카프 검거 사건 (1931): '신건설사 사건'으로도 불린다. 연극 운동을 핑계로 조직원을 대거 검거했다.
- 제2차 카프 검거 사건 (1934): 전주 지역의 독서회 사건을 빌미로 신불출, 박영희 등 핵심 맹원 80여 명이 체포되었다.
결국 지도부가 와해되고 전향자가 속출하면서, 1935년 5월 박영희가 경기도 경찰부에 해산계를 제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의의
-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최초로 조직적인 강령과 체계를 갖춘 전국 규모의 문학 단체였다.
- 식민지 지식인들의 고뇌를 감상적인 차원에서 사회 구조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려 리얼리즘 문학을 정착시켰다.
- 이후 1930년대 후반 리얼리즘 소설과 해방 공간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