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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정숙은 만해 한용운의 첫 번째 배우자(초혼)로 알려져 있으며, 1904년 아들 한보국(韓輔國)을 출산한 인물이다. 한용운이 출가하기 전의 가정사와 관련된 핵심 인물이지만,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생애의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 + | 전정숙은 만해 한용운의 첫 번째 배우자(초혼)로 알려져 있으며, 1904년 아들 한보국(韓輔國)을 출산한 인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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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들어 지역 언론과 연구자들이 남아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한용운 가족사 복원을 시도하면서 전정숙과 한보국의 존재 역시 재조명되고 있다. | 현대에 들어 지역 언론과 연구자들이 남아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한용운 가족사 복원을 시도하면서 전정숙과 한보국의 존재 역시 재조명되고 있다. | ||
== 생애 == | == 생애 == | ||
| − | 전정숙의 초기 생애와 가계 정보는 매우 제한적으로 전한다. 다만 그녀가 한용운과 혼인한 시기는 한용운이 속세 생활을 정리하기 이전, 10대 후반~2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 출생한 아들 한보국은 문헌과 구술 전승에서만 간략하게 등장할 뿐, 자세한 생애사 문서가 남아 있지 않다. | + | 전정숙의 초기 생애와 가계 정보는 매우 제한적으로 전한다. 다만 그녀가 한용운과 혼인한 시기는 한용운이 속세 생활을 정리하기 이전, 10대 후반~2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
| + | 이 시기에 출생한 아들 한보국은 문헌과 구술 전승에서만 간략하게 등장할 뿐, 자세한 생애사 문서가 남아 있지 않다. | ||
== 한보국 출생(1904) == | == 한보국 출생(1904) == | ||
1904년 전정숙은 아들 한보국을 낳았다. | 1904년 전정숙은 아들 한보국을 낳았다. | ||
| − | 그러나 한용운은 출가 이후 아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공식 기록에서도 한보국의 존재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홍주 지역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보국은 “남 모르는 아들”로 전해지며, 가족사적 배경과 당시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된 공문서·가계 기록이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 그러나 한용운은 출가 이후 아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공식 기록에서도 한보국의 존재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
| + | 홍주 지역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보국은 “남 모르는 아들”로 전해지며, 가족사적 배경과 당시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된 공문서·가계 기록이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한보국은 홍성공립보통학교 졸업 이후 지역사회에서 활동한 기록이 일부 존재하나, 상세한 족보·가계 정보는 확인되지 않는다. | 한보국은 홍성공립보통학교 졸업 이후 지역사회에서 활동한 기록이 일부 존재하나, 상세한 족보·가계 정보는 확인되지 않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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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조명 == | == 연구·조명 == | ||
| − | 지역 언론인 | + | 지역 언론인 홍주일보(HJN24)는 ‘한용운의 숨겨진 가계사’ 자료를 통해 전정숙과 한보국의 존재를 재조명하였다. |
이 보도는 생존한 후손 증언, 지역 사료, 주민 구술 등을 토대로 하여 가족사의 단편들을 복원하고자 한 시도이다. | 이 보도는 생존한 후손 증언, 지역 사료, 주민 구술 등을 토대로 하여 가족사의 단편들을 복원하고자 한 시도이다. | ||
현재까지도 학계에서는 전정숙의 생애 전모를 밝혀줄 문헌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전정숙은 여전히 ‘기록이 부족한 인물’로 남아 있다. | 현재까지도 학계에서는 전정숙의 생애 전모를 밝혀줄 문헌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전정숙은 여전히 ‘기록이 부족한 인물’로 남아 있다. | ||
2025년 11월 26일 (수) 17:48 판
전정숙(全貞淑)
개요
전정숙은 만해 한용운의 첫 번째 배우자(초혼)로 알려져 있으며, 1904년 아들 한보국(韓輔國)을 출산한 인물이다. 한용운이 출가하기 전의 가정사와 관련된 핵심 인물이지만,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생애의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대에 들어 지역 언론과 연구자들이 남아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한용운 가족사 복원을 시도하면서 전정숙과 한보국의 존재 역시 재조명되고 있다.
생애
전정숙의 초기 생애와 가계 정보는 매우 제한적으로 전한다. 다만 그녀가 한용운과 혼인한 시기는 한용운이 속세 생활을 정리하기 이전, 10대 후반~2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 출생한 아들 한보국은 문헌과 구술 전승에서만 간략하게 등장할 뿐, 자세한 생애사 문서가 남아 있지 않다.
한보국 출생(1904)
1904년 전정숙은 아들 한보국을 낳았다. 그러나 한용운은 출가 이후 아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공식 기록에서도 한보국의 존재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홍주 지역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보국은 “남 모르는 아들”로 전해지며, 가족사적 배경과 당시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된 공문서·가계 기록이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보국은 홍성공립보통학교 졸업 이후 지역사회에서 활동한 기록이 일부 존재하나, 상세한 족보·가계 정보는 확인되지 않는다.
한용운과의 관계
전정숙과 한용운의 혼인 생활은 짧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용운이 수행과 사상 활동을 위해 출가하면서 부부 관계는 실질적으로 단절되었고, 전정숙과 아들의 삶은 기록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지역 사회의 기록 체계 미비, 한용운 본인의 침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평가된다.
연구·조명
지역 언론인 홍주일보(HJN24)는 ‘한용운의 숨겨진 가계사’ 자료를 통해 전정숙과 한보국의 존재를 재조명하였다. 이 보도는 생존한 후손 증언, 지역 사료, 주민 구술 등을 토대로 하여 가족사의 단편들을 복원하고자 한 시도이다. 현재까지도 학계에서는 전정숙의 생애 전모를 밝혀줄 문헌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전정숙은 여전히 ‘기록이 부족한 인물’로 남아 있다.
참고
- 출처: 홍주일보(HJN24) 관련 보도 - 저작권자 © 홍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취재 / 글 = 한관우 / 사진·자료 = 김경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