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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는 이육사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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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가 <청포도>를 발표한 장소는 바로 종암동 62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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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는 1939년부터 성북구 종암동에 거주하며 <청포도>를 포함한 여러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성북구는 종암로21가일 36-1에 복합문화공간 '문화공간 이육사'를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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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주제는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독립된 조국에서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자 하는 소망으로 볼 수 있다. 시에서 '청포도'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순수하고 깨끗한 이상향을 상징한다. 그리고 '손님'은 조국의 해방,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 두 시어를 통해 이육사는 저항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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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3일 (화) 21:20 판

청포도, 이육사

이육사청포도.png

전문

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의의

<청포도>는 이육사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알려져있다.

이육사가 <청포도>를 발표한 장소는 바로 종암동 62번지이다.

이육사는 1939년부터 성북구 종암동에 거주하며 <청포도>를 포함한 여러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성북구는 종암로21가일 36-1에 복합문화공간 '문화공간 이육사'를 조성했다.

시의 주제는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독립된 조국에서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자 하는 소망으로 볼 수 있다. 시에서 '청포도'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순수하고 깨끗한 이상향을 상징한다. 그리고 '손님'은 조국의 해방,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 두 시어를 통해 이육사는 저항정신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