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작품) |
(→이태준과의 관계) |
||
| 24번째 줄: | 24번째 줄: | ||
==이태준과의 관계== | ==이태준과의 관계== | ||
| + | 정지용과 이태준은 일제강점기 3,40년대 시절 깊은 교류와 협력 관계를 맺었다. 특히 두 사람은 문학 종합지인 '문장'을 함께 발간하면서, 다양한 문인들을 발굴하고, 많은 작품들을 대중들에게 소개 하였다. 또한 둘은 순수문학 단체인 '구인회'의 창립 멤버이었다. 이처럼 둘은 각종 협력을 통해, 한국 현대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 ||
| + | |||
==평가== | ==평가== | ||
2025년 6월 3일 (화) 20:44 판
목차
소개
정지용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활동했던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한국의 모더니즘 시에서 큰 족적을 남겼으며, 한국 운문 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6.25전쟁 도중 납북되어 북한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 출생 | 1902년 6월 20일 |
| 사망 | 1950년 9월 25일 |
생애
정지용은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4대 독자로 태어나게 된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세례명까지 받을 정도로 충실한 천주교 신자이었다.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정지용은 본격적으로 문학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시절 순수 문학 단체인 구인회를 창립하는 데 큰 도움 주면서도, 모더니즘 시에 큰 기여를 하면서, 청록파 그리고 윤동주 등 다양한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에 <향수>, <유리창1> 등 아직까지도 화자되고 있는 시들을 많이 작성하였다. 광복 후 6.25전쟁이 터지자, 그의 행적은 불분명해졌지만, 북한으로 납북되어 북한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작품
| 작품 | 소개 |
|---|---|
| 향수 |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의 정서를 담고 있는 시이다. |
| 유리창 | 어린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감정을 절제된 언어와 선명한 이미지로 표현한 시이다. |
| 바다 | 정지용이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본 바다를 소재로 쓴 시이다. |
이태준과의 관계
정지용과 이태준은 일제강점기 3,40년대 시절 깊은 교류와 협력 관계를 맺었다. 특히 두 사람은 문학 종합지인 '문장'을 함께 발간하면서, 다양한 문인들을 발굴하고, 많은 작품들을 대중들에게 소개 하였다. 또한 둘은 순수문학 단체인 '구인회'의 창립 멤버이었다. 이처럼 둘은 각종 협력을 통해, 한국 현대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