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팔관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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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계=== | ===팔계=== | ||
| − | + | 팔계재는 불교에 유입되어 재가신도들이 팔계를 되새기며 지키는 팔관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팔계는 오계와 삼계가 합쳐진 것으로, 오계는 살생하지 말 것, 도둑질하지 말 것, 간음하지 말 것, 헛된 말을 하지 말 것, 음주하지 말 것 등이고, 삼계는 가무를 즐기지 말 것, 사치스러운 침상을 쓰지 말 것, 때가 아니면 먹지 말 것 등의 내용이다. | |
| − | 근본 5계인 불살생(不殺生) · 불투도(不偸盜) · 불사음(不邪淫) · 불망어(不妄語) · 불음주(不飮酒)에다 부좌 고대광상(不坐高大廣床) · 부착화만영락 · 불습가무희악(不習歌舞戱樂)을 지켜 행하려는 종 교적인 의식이며, 윤리적 덕목으로 삼아야 할 것을 매월 7일 · 15일에 포살(布薩) · 설경(說經) 하는 것이다. | + | 근본 5계인 불살생(不殺生) · 불투도(不偸盜) · 불사음(不邪淫) · 불망어(不妄語) · 불음주(不飮酒)에다 부좌 고대광상(不坐高大廣床) · 부착화만영락 · 불습가무희악(不習歌舞戱樂)을 지켜 행하려는 종 교적인 의식이며, 윤리적 덕목으로 삼아야 할 것을 매월 7일 · 15일에 포살(布薩) · 설경(說經) 하는 것이다. <ref> 구미래, 팔관회,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topic/detail/1427 </ref> |
==연혁== | ==연혁== | ||
2025년 6월 9일 (월) 11:12 판
유래
팔계재
팔관회는 고대 인도의 수행의식인 팔계재에서 유래하였다. 인도에서는 육재일(8일, 14일, 15일, 23일, 29일, 30일)은 악귀가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목숨을 빼앗고 병에 걸리게 하는 불길한 날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이 날에 팔관재계를 행하여 선행을 닦아 그 공덕ㅇ르ㅗ 흉사를 피하려 하였다. 다시 말해, 액막이 풍속이었던 것이다. [1]
팔계
팔계재는 불교에 유입되어 재가신도들이 팔계를 되새기며 지키는 팔관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팔계는 오계와 삼계가 합쳐진 것으로, 오계는 살생하지 말 것, 도둑질하지 말 것, 간음하지 말 것, 헛된 말을 하지 말 것, 음주하지 말 것 등이고, 삼계는 가무를 즐기지 말 것, 사치스러운 침상을 쓰지 말 것, 때가 아니면 먹지 말 것 등의 내용이다.
근본 5계인 불살생(不殺生) · 불투도(不偸盜) · 불사음(不邪淫) · 불망어(不妄語) · 불음주(不飮酒)에다 부좌 고대광상(不坐高大廣床) · 부착화만영락 · 불습가무희악(不習歌舞戱樂)을 지켜 행하려는 종 교적인 의식이며, 윤리적 덕목으로 삼아야 할 것을 매월 7일 · 15일에 포살(布薩) · 설경(說經) 하는 것이다. [2]
연혁
| 시기 | 내용 |
|---|---|
| 진흥왕 12년 | 고구려 승려 혜량이 신라에 귀화한 이후 팔괸회를 개설함. |
| 진흥왕 33년 | 팔관연회, 전쟁에서 죽은 군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제례 행사의 성격이었다. 팔관법회를 외사에 베풀어 7일 동안이나 행하였다는 기사가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제4 진흥왕조에 보인다. |
| 선덕왕 12년 | 승려 자장이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의 감응을 받았는데, 이후 신라에 귀국하여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운 뒤 팔관회를 베풀고 죄인을 놓아주면 외적이 침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기를 간청하였는데, 그 탑은 국방적이고 호국을 상징하는 탑이었다. 이 탑이 이룩된 이후 팔관법회를 황룡사에서 개설하여 이웃 9개국이 신라에 조공을 바칠 것을 널리 알렸으며, 이 탑으로 말미암아 신라는 영원히 안위할 것을 선포하였다. |
행사
10월에 개최 및 실시되었다.
소회는 대회와 달리 내국인만 참석한 가운데 '산대'라 불리는 봉래산 형태의 무대 구조 위에서 화랑 '사선' 등에 의해 행해지던 백희가무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연희[3]
- 곡예: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이 당시 연희들을 보고 지은 한시 <향악잡영(鄕樂雜詠)>를 보면, 그중 '금환'은 곡예의 종류로 “몸을 돌리고 팔을흔들며 금환을 희롱하니…(廻身掉臂弄金丸…)라고 하여 바퀴던져받기, 공던져받기, 방울던져받기와 같은 놀이로 풀이된다.
- 우희: <향악잡영(鄕樂雜詠)>에 나타난 '월전'에 해당하는데 “어깨를 높이고 목을 움츠리고 머리털은 빳빳하며 팔소매를 걷은 군유(群儒)가 술잔을 다툰다(肩高項縮髮崔嵬 攘臂群儒鬪酒盃)”고 하여 우스꽝스러운 난쟁이나 이를 흉내내는 배우를 묘사하고 있다.
각주
- ↑ 구미래, 팔관회,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topic/detail/1427
- ↑ 구미래, 팔관회,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topic/detail/1427
- ↑ 임린, 고려시대 팔관회에 나타난 연희복식, 전남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