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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비둘기] 김광섭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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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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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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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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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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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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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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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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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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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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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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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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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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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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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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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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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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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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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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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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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2025년 11월 26일 (수) 17:57 기준 최신판

[성북동비둘기] 김광섭 1968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 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