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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37년 3월 6일 | |'''출생''' || 1637년 3월 6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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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 ||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 ||
| − |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 + |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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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3일 (월) 23:27 기준 최신판
|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
| 작가 | 김만중 |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
| 배경 | 불교, 도교 사상 |
장르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옥루몽>, <옥련몽>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몽자류 소설은 글자 그대로 ‘몽(夢)’자가 붙은 소설[1]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구조는 환몽구조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을 거쳐 꿈 속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에 다시 꿈에서 깨는 과정을 거쳐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조이다.
주인공 성진이 입몽 이후 지상계에서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등 구운몽은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웅소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구운몽을 분석할 때 주로 환몽구조, 천상계에 주목하지만 실제로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성진이 보내는 영웅적 삶이 큰 분량을 차지한다. 영웅소설, 영웅적 일대기는 당시 향유층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서사인 만큼 구운몽의 대중성, 통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작품의 환상성, 비현실성이 그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구운몽은 지상계에서 그 전기적 특징이 드러난다.
작가
| 출생 | 1637년 3월 6일 |
| 사망 | 1692년 6월 14일 |
| 호 | 서포(西浦) |
| 저서 | 구운몽, 사씨남정기 |
| 직업 | 소설가, 문신 |
김만중 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로 유배되었다. 1692년 결국 노도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시기에 또다른 유명 작품인 <사씨남정기>[2]를 집필하였다.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로부터 형 김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중은 형 김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부인 윤씨는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김만중은 유배 생활을 전전하며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설 창작을 하였다고 한다. 구운몽 역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창작한 작품이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소설변증설(小說辨證說)」에 의하면,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김만중이 중국 소설을 사오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잊어버려 돌아오는 길에 부랴부랴 이 작품을 지어 드렸다는 이야기가 그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다.
배경
삼국유사의 실려있는 조신의 꿈[3]와 상당히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신의 꿈은 불도를 닦던 20살 남짓의 젊은 승려 조신이 절에 찾아온 미녀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불공을 드리던 가운데 미녀와 도망가지만 세속에서 미녀와 함께 살며 온갖 고난을 겪고, 조신이 다 늙어 불도를 버리고 환속한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 깨어보니 이것 모두가 꿈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조신의 꿈에 등장하는 세속으로의 일탈, 환몽구조 등의 화소를 구운몽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몸 담고 있는 세계가 천상계, 즉 불교의 세계인 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한편, 작품의 말미에는 장자의 호접몽을 인용하여 도교적 사상 역시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 이본에 따라 한글로 집필된 것과 한문으로 집필된 것이 각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김만중의 원작은 한글로 집필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만중이 당대 조선 사대부였음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이게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는 등 한글소설에 우호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4]
김만중이 『구운몽』을 언제 어디서 지었는지에 의해 김무조 수가 1974년 「서포소설의 연구」에서 구운몽은 서포가 이 세상에 나서 목적했던 모든 것이 이제는 소생할 길이 없다는 결정적 시기에 제작됐다며 남해 용문사 등 남해의 지명과 서포의 사상적 측면을 연계해 남해설을 처음 주장했다. 하지만 1988년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서 서포의 일대기를 담은 『서포연보』가 발견됨으로써 『구운몽』의 저작 시기는 선천의 귀양지로 확실해졌다.
내용
구운몽은 큰 틀에서 천상계->입몽->지상계->각몽->천상계-> 육관대사의 설파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와 눈이 맞아 세속적 욕망을 탐하게 되고 이를 알게된 육관대사는 성진을 지상계로 보낸다. 지상계에서 성진은 천상계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양소유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살게 되고[5] 양소유는 지상계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며 모든 세속적 욕망을 이루지만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엔 꿈에서 깨어 천상계로 돌아온다. 꿈에서 깬 성진은 육관대사에게 세속적 삶이 전부 쓸모없음을 깨달았다고 자부하지만 육관대사는 성진이 여전히 꿈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며 참·거짓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불가와 속세 두 세계 모두를 긍정하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설파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6] 구운몽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설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난 불교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타파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교적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소설은 그 특성상 이본이 매우 다양하기에 이본에 따라 그 주제를 다르게 정의함이 마땅하다. 구운몽의 이본 중에는 마지막 육관대사의 설파가 빠진 채 성진이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천상계로 복귀한 후 곧바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인생무상’이라는 주제가 강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다른 이본은 성진이 천상계로 복귀하는 서사가 아예 삭제되고 지상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후 그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웅적, 통속적 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이본, 환몽구조에 따라 작품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한편, 구운몽의 지상계(꿈)는 고전소설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지상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운몽의 지상계는 분명 천상계와는 구분되지만, 성진은 그 지상계에서도 비현실적 공간을 넘나들고 환상적 체험을 하는 등 그곳은 완전히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구운몽은 비단 환몽구조 뿐 아니라 서사전개 그 자체를 통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논문 - <연정 구운몽>의 서사 전개 및 주제 구현 양상과 그 의미, 엄태웅, 고려대학교, 동양고전학회
네이버 지식백과 <몽자류 소설>
논문 - <구운몽>의 의미 구조 연구, 김병국, 건국대학겨, 어문연구학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