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방어선 전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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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8일, 채병덕 총장은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김홍일 소장을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김홍일 소장은 곧바로 방어작전에 들어갔는데, 이때 참모 학교 고문으로 있던 해즐릿 중령이 미 지상군 참전이 정해지더라도 그들이 한반도에 상륙해 전투 전개를 갖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향후 3일 동안은 한강 방어선을 지탱해 주어야 미군이 들어올 발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조언하였다. 김홍일 장군 역시 한강 방어선을 지탱하는 3일이 나라의 운명을 판가름한다고 생각해 지휘관들에게 3일의 시간 동안 방어선을 지탱할 것을 강조하였다. 김홍일 장군은 낙오병을 수습하며 재정비하는 데에 전력을 쏟으며 부서진 군대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재정비한 병사들을 임시 편제해 방어선에 투입시켰다. 또한 그는 남하하는 장병들을 친절하게 취사장으로 안내하고,헌병들이  퇴각하는 장병들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1950년 6월 28일, 채병덕 총장은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김홍일 소장을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김홍일 소장은 곧바로 방어작전에 들어갔는데, 이때 참모 학교 고문으로 있던 해즐릿 중령이 미 지상군 참전이 정해지더라도 그들이 한반도에 상륙해 전투 전개를 갖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향후 3일 동안은 한강 방어선을 지탱해 주어야 미군이 들어올 발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조언하였다. 김홍일 장군 역시 한강 방어선을 지탱하는 3일이 나라의 운명을 판가름한다고 생각해 지휘관들에게 3일의 시간 동안 방어선을 지탱할 것을 강조하였다. 김홍일 장군은 낙오병을 수습하며 재정비하는 데에 전력을 쏟으며 부서진 군대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재정비한 병사들을 임시 편제해 방어선에 투입시켰다. 또한 그는 남하하는 장병들을 친절하게 취사장으로 안내하고,헌병들이  퇴각하는 장병들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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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장군은 이런 식으로 장병들의 사기를 돋우는 한편 3일이란 시간을 버티기 위해 방어 전략에도 힘을 썼다. 북한군이 파괴되어 있던 한강 철교를 복구해 탱크가 다리를 건너게 하는 순간 국군이 위험해지기에, 그는 다리가 있는 노량진 쪽에 화력을 집중시켰다. 또 여의도는 북한에게 점령당할 경우, 북한군이 곧바로 한강을 건너 영등포 쪽으로 쉽게 진입할 수 있었기에 여의도에도 화력을 집중시켰다. 그렇기에 여의도 쪽에서는 하루에도 수차례 주인이 바뀔 정도로 치열한 격전이 이어졌다.
  
 
== 결과 ==
 
== 결과 ==

2025년 12월 12일 (금) 00:52 판

한강 방어선 전투

한강 방어선 전투
전투 기간 1950년 6월 28일~7월 4일(총 7일)

개요

전개 과정

1950년 6월 28일, 채병덕 총장은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김홍일 소장을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김홍일 소장은 곧바로 방어작전에 들어갔는데, 이때 참모 학교 고문으로 있던 해즐릿 중령이 미 지상군 참전이 정해지더라도 그들이 한반도에 상륙해 전투 전개를 갖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향후 3일 동안은 한강 방어선을 지탱해 주어야 미군이 들어올 발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조언하였다. 김홍일 장군 역시 한강 방어선을 지탱하는 3일이 나라의 운명을 판가름한다고 생각해 지휘관들에게 3일의 시간 동안 방어선을 지탱할 것을 강조하였다. 김홍일 장군은 낙오병을 수습하며 재정비하는 데에 전력을 쏟으며 부서진 군대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재정비한 병사들을 임시 편제해 방어선에 투입시켰다. 또한 그는 남하하는 장병들을 친절하게 취사장으로 안내하고,헌병들이 퇴각하는 장병들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김홍일 장군은 이런 식으로 장병들의 사기를 돋우는 한편 3일이란 시간을 버티기 위해 방어 전략에도 힘을 썼다. 북한군이 파괴되어 있던 한강 철교를 복구해 탱크가 다리를 건너게 하는 순간 국군이 위험해지기에, 그는 다리가 있는 노량진 쪽에 화력을 집중시켰다. 또 여의도는 북한에게 점령당할 경우, 북한군이 곧바로 한강을 건너 영등포 쪽으로 쉽게 진입할 수 있었기에 여의도에도 화력을 집중시켰다. 그렇기에 여의도 쪽에서는 하루에도 수차례 주인이 바뀔 정도로 치열한 격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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