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앙'''(1887~1958)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로,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의 균등)를 제창한 인물이다. 경기도 파주 출신으로 성균관 수료 후 일본 메이지대 법학부에서 유학했으며, 공수학회·대한흥학회 등 유학생 단체를 조직하며 일찍부터 민족운동에 뛰어들었다.
'''조소앙'''(1887~1958)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로,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의 균등)를 제창한 인물이다. 경기도 파주 출신으로 성균관 수료 후 일본 메이지대 법학부에서 유학했으며, 공수학회·대한흥학회 등 유학생 단체를 조직하며 일찍부터 민족운동에 뛰어들었다.
−
귀국 후 경신학교·양정의숙 등에서 교육 활동을 하였고, 1913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뒤 동제사 활동을 통해 항일운동에 본격 참여했다. 그는 1917년 〈대동단결선언〉, 1919년 〈대한독립선언서〉를 기초해 임시정부 수립의 이념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같은 해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임시헌장」과 「임시의정원법」을 작성하는 등 제도적 기틀을 다졌다.
−
임시정부 외무총장으로 활동하며 파리강화회의, 국제사회당 대회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외교활동을 펼쳤고, 김규식과 함께 유럽 각지를 순방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베르그송·타고르 등 세계적 지식인들과도 교류했다.
+
=='''생애 및 활동'''==
−
−
1930년 김구·이동녕·안창호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한 뒤, 국민 생활의 균등과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삼균주의를 독립운동의 핵심 이념으로 정립했고, 이는 1941년 「대한민국건국강령」의 기본 사상이 되었다.
−
광복 후에는 임시정부 요인으로 환국하여 임정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신탁통치 반대운동, 비상국민회의 활동, 남북협상 등에 참여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되었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고, 1958년 평양에서 사망했다. 사후 남북한 모두에서 공훈을 인정받아 각각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89), 조국통일상(1990)을 추서받았다.
조소앙(1887~1958)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로,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의 균등)를 제창한 인물이다. 경기도 파주 출신으로 성균관 수료 후 일본 메이지대 법학부에서 유학했으며, 공수학회·대한흥학회 등 유학생 단체를 조직하며 일찍부터 민족운동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