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소개) |
(→참고문헌) |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6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소개== | ==소개== | ||
| − | + | [[파일:임화.jpg|150픽셀]] | |
| + | |||
| + | 임화(본명: 임인식)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활동했던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이다.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문학인으로서, 대표적인 사회주의 좌파 문학인으로 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에는 월북을 하여 북한에서 활동을 하였다. | ||
| + | {| class="wikitable" | ||
| + | |- | ||
| + | | 출생 || 1908년 10월 13일 | ||
| + | |- | ||
| + | | 사망 || 1953년 8월 6일 | ||
| + | |} | ||
==생애== | ==생애== | ||
| + | 임화는 대한제국 시절 동숭동에서 태어나게 된다. 그의 집안은 파산 직전까지 갈 정도로 가난하였고, 이 때문에 그는 유년기 시절 잠시 방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를 이겨내고,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이후,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이때부터 계급문학에 관심을 보이며, <우리 오빠와 화로>, <네거리의 순이> 등을 발표하였고, 카프(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가동맹)를 대표하는 문학인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에도 사회주의 노선을 따라가며, 월북을 하게 되고, 남로당과 함께 활동 하게 된다. 하지만 북한에서 간첩 행위 혐의로 인해 1953년 김일성에 의해 처형을 당하게 된다. | ||
| + | |||
==작품== | ==작품== | ||
| + | {| class="wikitable" | ||
| + | |- | ||
| + | ! 작품 !! 소개 | ||
| + | |- | ||
| + | | 현해탄 || 조선의 독립과 근대화 사이에서 청년들이 겪게 되는 모순을 보여주는 시이다. | ||
| + | |- | ||
| + | | 우리 오빠와 화로 || 노동자와 당시 민중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시이다. | ||
| + | |- | ||
| + | | 네거리의 순이 || 농민들의 투쟁 의지와 현실 개혁의 참여 의지를 보여주는 시이다. | ||
| + | |} | ||
| + | |||
==이태준과의 관계== | ==이태준과의 관계== | ||
| + | 두 사람의 관계는 문학적 이념과 활동 방향의 차이로 초반에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이 둘은 급격히 친해지게 되고,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에 주요 역할을 했다. 해방 전까지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이태준은 해방 이후, 좌익계열의 문학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임화와도 좌익 문학 활동을 같이 하게 된다. 이후 두 사람 모두 월북을 하게 되면서, 북한에서 활동을 하였다. | ||
| + | |||
==평가== | ==평가== | ||
| + | 임화는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좌익 문학운동의 이론적·실천적 선구자로서 문학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물론 임화의 작품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많이 치우쳐있다는 비판들도 있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 그가 보여준 계급문학의 맥락은 현재까지도 긍정적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문학 작품들과 비평들을 통해 사회 변화와 민족 계몽에 헌신한 인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념적 한계, 그리고 북한에서는 비극적 말년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문학인이다. | ||
| + | |||
| + | ==참고문헌== | ||
| + | 임화-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7762 | ||
| + | |||
| + | 임화-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임화 | ||
| + | [[분류:연상]] | ||
2025년 6월 20일 (금) 16:00 기준 최신판
소개
임화(본명: 임인식)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활동했던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이다.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문학인으로서, 대표적인 사회주의 좌파 문학인으로 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에는 월북을 하여 북한에서 활동을 하였다.
| 출생 | 1908년 10월 13일 |
| 사망 | 1953년 8월 6일 |
생애
임화는 대한제국 시절 동숭동에서 태어나게 된다. 그의 집안은 파산 직전까지 갈 정도로 가난하였고, 이 때문에 그는 유년기 시절 잠시 방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를 이겨내고,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이후,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이때부터 계급문학에 관심을 보이며, <우리 오빠와 화로>, <네거리의 순이> 등을 발표하였고, 카프(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가동맹)를 대표하는 문학인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에도 사회주의 노선을 따라가며, 월북을 하게 되고, 남로당과 함께 활동 하게 된다. 하지만 북한에서 간첩 행위 혐의로 인해 1953년 김일성에 의해 처형을 당하게 된다.
작품
| 작품 | 소개 |
|---|---|
| 현해탄 | 조선의 독립과 근대화 사이에서 청년들이 겪게 되는 모순을 보여주는 시이다. |
| 우리 오빠와 화로 | 노동자와 당시 민중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시이다. |
| 네거리의 순이 | 농민들의 투쟁 의지와 현실 개혁의 참여 의지를 보여주는 시이다. |
이태준과의 관계
두 사람의 관계는 문학적 이념과 활동 방향의 차이로 초반에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이 둘은 급격히 친해지게 되고,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에 주요 역할을 했다. 해방 전까지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이태준은 해방 이후, 좌익계열의 문학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임화와도 좌익 문학 활동을 같이 하게 된다. 이후 두 사람 모두 월북을 하게 되면서, 북한에서 활동을 하였다.
평가
임화는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좌익 문학운동의 이론적·실천적 선구자로서 문학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물론 임화의 작품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많이 치우쳐있다는 비판들도 있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 그가 보여준 계급문학의 맥락은 현재까지도 긍정적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문학 작품들과 비평들을 통해 사회 변화와 민족 계몽에 헌신한 인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념적 한계, 그리고 북한에서는 비극적 말년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문학인이다.
참고문헌
임화-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7762
임화-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