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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일 (월) 20:05 판
목차
소개
임화(본명: 임인식)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활동했던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이다.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문학인으로서, 대표적인 사회주의 좌파 문학인으로 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에는 월북을 하여 북한에서 활동을 하였다.
| 출생 | 1908년 10월 13일 |
| 사망 | 1953년 8월 6일 |
생애
임화는 대한제국 시절 동숭동에서 태어나게 된다. 그의 집안은 파산 직전까지 갈 정도로 가난하였고, 이 때문에 그는 유년기 시절 잠시 방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를 이겨내고,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이후,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이때부터 계급문학에 관심을 보이며, <우리 오빠와 화로>, <네거리의 순이> 등을 발표하였고, 카프(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가동맹)를 대표하는 문학인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에도 사회주의 노선을 따라가며, 월북을 하게 되고, 남로당과 함께 활동 하게 된다. 하지만 북한에서 간첩 행위 혐의로 인해 1953년 김일성에 의해 처형을 당하게 된다.
작품
| 작품 | 소개 |
|---|---|
| 현해탄 | 조선의 독립과 근대화 사이에서 청년들이 겪게 되는 모순을 보여주는 시이다. |
| 우리 오빠와 화로 | 노동자와 당시 민중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시이다. |
| 네거리의 순이 | 농민들의 투쟁 의지와 현실 개혁의 참여 의지를 보여주는 시이다. |
이태준과의 관계
두 사람의 관계는 문학적 이념과 활동 방향의 차이로 초반에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이 둘은 급격히 친해지게 되고,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에 주요 역할을 했다. 해방 전까지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이태준은 해방 이후, 좌익계열의 문학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임화와도 좌익 문학 활동을 같이 하게 된다. 이후 두 사람 모두 월북을 하게 되면서, 북한에서 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