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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한국 바둑의 발전사와 주요 인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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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개요 === | ||
| + | 한국 바둑은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근현대에 이르러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기사와 인물들이 등장해 바둑의 대중화와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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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한국 바둑의 발전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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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고대와 전통 바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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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바둑은 중국에서 유래해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전해졌으며, 오랜 기간 상류층과 학자, 선비들 사이에서 교양과 수양의 도구로 자리 잡았다.<ref></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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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근대 바둑의 태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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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일본식 룰과 기전이 도입되며 바둑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다.<ref></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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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45년, 조남철이 '한성기원'(이후 조선기원, 대한기원, 한국기원으로 개명)을 창립, 전문 기사 제도와 공식 대회 체계를 도입했다.<ref></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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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54년 사단법인 한국기원이 공식 출범하며, 바둑의 제도적 기반이 확립되었다.<ref></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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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960~80년대: 대중화와 경쟁의 시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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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문사와 방송사의 기전 창설, 전국 규모의 대회 개최로 바둑이 대중 스포츠로 성장했다.<ref></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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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인, 조훈현 등 걸출한 기사의 등장으로 바둑의 수준과 인기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ref></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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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990년대 이후: 국제화와 세계 정상 도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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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창호, 이세돌 등 신세대 기사의 활약으로 세계대회에서 한국이 다수 우승, 세계 바둑의 중심에 섰다.<ref></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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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6년에는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ref></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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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 주요 한국 바둑 기사와 인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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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름 || 주요 업적 및 특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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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조남철'''(1923~2006) || '한국 바둑의 아버지'. 한국기원 창립, 전문 기사 제도 도입, 바둑 보급과 제도화의 주역. 초대 국수전 우승, 9연패 등 기록.<ref></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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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김인'''(1943~2021) || '김 국수'로 불림. 1960~70년대 최강자, 국수전·패왕전·왕위전 등 다수 우승. 연승기록 세계 2위(40연승).<ref></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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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조훈현'''(1953~ ) || '바둑의 황제'. 세계 최초 전관왕, 최다 타이틀(158회),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한국 바둑의 국제화 선도.<ref></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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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창호'''(1975~ ) || '돌부처'. 최연소 입단, 세계대회 최다 우승(21회), 41연승 기록. 냉철한 끝내기와 전략으로 세계 정상 유지.<ref></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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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세돌'''(1983~ ) || 세계대회 18회 우승,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인류 최초이자 유일하게 1승.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바둑으로 유명.<ref></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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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 한국 바둑 발전의 의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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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국 바둑은 제도적 정비, 대중화, 세계화 과정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위치에 올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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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각 시대를 대표하는 기사의 활약과 함께, 바둑은 한국 문화와 스포츠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매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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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references/> | ||
==약력== | ==약력== | ||
인천신송초등학교 | 인천신송초등학교 | ||
2025년 4월 29일 (화) 20:57 판
한국의 바둑
목차
개요
1970년 한국바둑기원 창설부터 2016년 알파고 등장 전후까지 한국의 바둑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문서.
바둑의 정의와 규칙, 기본 용어
바둑의 정의
바둑은 두 사람이 흑과 백의 바둑돌을 바둑판의 교차점에 교대로 착수하여, 쌍방이 차지한 집의 많고 적음으로 승패를 가리는 전략 보드게임이다.[1] 바둑은 중국에서 유래하여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발전해왔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즐겨진다.[2] 영어로는 'Go', 중국어로는 '웨이치(圍棋)', 일본어로는 '이고(囲碁)'라고 한다.[3]
바둑의 규칙
바둑판은 가로·세로 19줄의 평행선이 그려진 361개의 교차점으로 구성된다.
두 명의 대국자가 흑과 백의 돌을 번갈아가며 교차점에 한 수씩 놓는다. 흑이 먼저 시작한다. 돌은 한 번 놓으면 움직일 수 없다.
자신의 돌이나 돌 무리가 상대 돌에 의해 네 방향(상하좌우)이 모두 막히면, 해당 돌은 잡혀서 판에서 제거된다(따냄).
집: 자신의 돌로 완전히 둘러싼 빈 교차점의 수가 자신의 집이 된다.
게임이 끝난 뒤, 각자 차지한 집 수와 잡은 돌의 수를 합산하여 더 많은 쪽이 승리한다.
착수금지: 착수 시 활로(돌이 숨 쉴 수 있는 빈 칸)가 없는 곳에는 돌을 둘 수 없다. 단, 상대 돌을 따낼 수 있는 경우에는 예외.
패: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따내는 무한 루프를 방지하기 위해, 바로 직전에 잡힌 돌을 즉시 다시 잡을 수 없도록 한 규칙.
사활: 돌 무리가 완전히 살아남으려면 독립된 두 집(두 개의 눈)이 필요하다.
바둑의 기본 용어
| 용어 | 설명 |
|---|---|
| 바둑판(반상) | 19x19 줄의 격자판, 돌을 놓는 공간 |
| 바둑돌 | 흑과 백의 둥근 돌, 각각 181개(흑)와 180개(백)가 표준 |
| 착수 | 돌을 바둑판 위에 놓는 행위 |
| 집 | 자신의 돌로 완전히 둘러싼 빈 공간(교차점) |
| 따냄 | 상대 돌의 활로를 모두 막아 잡아내는 것 |
| 활로 | 돌이 숨 쉴 수 있는 빈 교차점(상하좌우) |
| 단수 | 돌이나 돌 무리가 활로가 한 곳만 남은 상태 |
| 사석 | 판에서 잡혀나간 돌 |
| 패 |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따내는 것을 제한하는 규칙 |
| 사활 | 돌 무리의 생사(살았는지 죽었는지) |
| 공배 | 흑과 백 모두의 집이 될 수 없는 빈 자리 |
| 빅 | 흑과 백이 서로 따낼 수 없는 형태로 남은 상태 |
| 계가 | 대국이 끝난 뒤 집과 잡은 돌을 합산해 승패를 결정하는 절차 |
| 덤 | 흑이 먼저 두는 이점을 보상하기 위해 백에게 주는 추가 집(일반적으로 6.5집) |
한국 바둑의 발전사와 주요 인물
개요
한국 바둑은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근현대에 이르러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기사와 인물들이 등장해 바둑의 대중화와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1. 한국 바둑의 발전사
고대와 전통 바둑
바둑은 중국에서 유래해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전해졌으며, 오랜 기간 상류층과 학자, 선비들 사이에서 교양과 수양의 도구로 자리 잡았다.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근대 바둑의 태동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일본식 룰과 기전이 도입되며 바둑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다.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1945년, 조남철이 '한성기원'(이후 조선기원, 대한기원, 한국기원으로 개명)을 창립, 전문 기사 제도와 공식 대회 체계를 도입했다.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1954년 사단법인 한국기원이 공식 출범하며, 바둑의 제도적 기반이 확립되었다.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1960~80년대: 대중화와 경쟁의 시대
신문사와 방송사의 기전 창설, 전국 규모의 대회 개최로 바둑이 대중 스포츠로 성장했다.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김인, 조훈현 등 걸출한 기사의 등장으로 바둑의 수준과 인기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1990년대 이후: 국제화와 세계 정상 도약
이창호, 이세돌 등 신세대 기사의 활약으로 세계대회에서 한국이 다수 우승, 세계 바둑의 중심에 섰다.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2016년에는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2. 주요 한국 바둑 기사와 인물
| 이름 | 주요 업적 및 특징 |
|---|---|
| 조남철(1923~2006) | '한국 바둑의 아버지'. 한국기원 창립, 전문 기사 제도 도입, 바둑 보급과 제도화의 주역. 초대 국수전 우승, 9연패 등 기록.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
| 김인(1943~2021) | '김 국수'로 불림. 1960~70년대 최강자, 국수전·패왕전·왕위전 등 다수 우승. 연승기록 세계 2위(40연승).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
| 조훈현(1953~ ) | '바둑의 황제'. 세계 최초 전관왕, 최다 타이틀(158회),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한국 바둑의 국제화 선도.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
| 이창호(1975~ ) | '돌부처'. 최연소 입단, 세계대회 최다 우승(21회), 41연승 기록. 냉철한 끝내기와 전략으로 세계 정상 유지.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
| 이세돌(1983~ ) | 세계대회 18회 우승,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인류 최초이자 유일하게 1승.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바둑으로 유명.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
3. 한국 바둑 발전의 의의
한국 바둑은 제도적 정비, 대중화, 세계화 과정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위치에 올랐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기사의 활약과 함께, 바둑은 한국 문화와 스포츠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매김했다.
약력
인천신송초등학교
인천신송중학교
송도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일생
| 나이 | 특징 |
|---|---|
| 1~6세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출생. 5세에 |
| 7세 |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동으로 이사. |
비판 및 논란
대문자 T
소정희 생활한자 무시 논란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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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
- ↑ 지금은 없어진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