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비둘기
개요
「성북동 비둘기」는 김광섭이 1960년대에 발표한 대표적인 후기 서정시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소외되고 상처 입은 존재들을 통해 인간의 상실감과 연민의 정서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파괴된 자연과 공동체, 그리고 그 속에서 방향을 잃은 인간 존재의 모습을 ‘성북동’과 ‘비둘기’라는 구체적인 공간과 상징을 통해 드러낸다. 김광섭 특유의 절제된 언어와 담담한 시선은 비판이나 고발보다는 깊은 애정과 연민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게 만든다.
「성북동 비둘기」는 도시 문명 속에서 밀려난 존재들의 쓸쓸한 생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 삶의 터전 상실, 그리고 현대인의 고독을 성찰하게 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시 전문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직한 마당은커녕 가능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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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배경
「성북동 비둘기」는 1960년대 한국 사회의 급격한 도시 개발과 산업화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창작된 작품이다. 서울 성북동 일대 역시 이 시기 재개발과 행정구역 정비로 인해 기존의 생활 공간이 급격히 변모하였고, 그 과정에서 자연과 기존 주민들은 점차 배제되었다.
김광섭은 이러한 변화를 직접적인 사회 비판이나 고발의 언어로 드러내기보다는, 소외된 존재인 ‘비둘기’를 통해 간접적이면서도 깊은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번지가 새로 생기며 오히려 ‘본래 살던 존재’가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역설적 상황은 개발 논리의 비인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는 발전과 번영의 이면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조용히 질문을 던지며, 현대 문명에 대한 시인의 비판적 성찰과 인간적 연민을 함께 담아낸다.
생애의 투영
1. 성북동
「성북동 비둘기」에서 ‘성북동’은 단순한 지역명이 아니라, 급격한 변화로 인해 본래의 질서를 상실한 현실 사회의 축소된 상징 공간이다. 시인이 바라본 성북동은 자연과 생명이 조화롭게 공존하던 장소였으나,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행정적·개발적 논리에 의해 재편된다. 이 과정은 김광섭이 생애 후반기에 체감한 사회적 변화와 깊이 연결된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쳐 산업화 시기를 겪으며, 인간의 삶이 점점 효율과 물질 중심으로 재단되는 현실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갖게 되었다. 성북동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인간성과 자연성이 함께 밀려난 공간으로, 시인의 현실 인식과 상실감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2. 비둘기
비둘기는 개발 이전부터 성북동에 살고 있었던 존재로, 사회 구조 변화 속에서 아무런 발언권 없이 밀려나는 약자를 상징한다. 특히 비둘기는 저항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서서히 떠나가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이는 시인이 직접적인 사회 비판보다는 연민과 관조의 태도로 현실을 바라보았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비둘기의 모습은 투병 이후 사회의 중심에서 멀어졌던 김광섭 자신의 삶의 위치와도 겹쳐진다. 그는 더 이상 활동적 발언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세계를 침묵 속에서 바라보는 관찰자가 되었고, 그 시선이 비둘기에 투영되어 나타난다.
3. 떠남
비둘기의 떠남은 선택이 아닌 구조적 결과이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 반복되는 배제의 양상을 상징한다. 중요한 점은 시 속에서 이 떠남이 비극적으로 과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인은 비둘기가 어디로 갔는지조차 단정하지 않고, ‘아마도’라는 추측의 형식을 사용한다. 이는 확신 대신 체념, 단언 대신 침묵을 선택한 시인의 후기 태도를 잘 보여준다. 김광섭은 사회의 폭력성을 고발하기보다, 그로 인해 사라져 가는 존재들의 슬픔을 조용히 기록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시대 인식을 드러낸다.
핵심 상징어
1. 성북동
성북동은 시 전체의 현실적 배경이자, 근대화로 인해 변질된 삶의 공간을 상징한다. 본래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던 장소였으나, 개발과 행정 질서의 개입으로 인해 숫자와 효율 중심의 공간으로 재편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공간의 변형이 아니라, 인간 삶의 방식 자체가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시인은 성북동의 변화를 통해 현대 사회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조용히 묻고 있다.
2. 번지
‘번지’는 근대 사회의 행정 체계와 관리 논리를 상징한다. 번지가 생긴다는 것은 질서가 세워진다는 의미이지만, 동시에 그 질서가 기존의 생명과 관계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비둘기가 ‘번지가 없어졌다’고 표현된 것은, 이들이 행정적·사회적 체계 안에서 더 이상 고려되지 않는 존재가 되었음을 뜻한다. 번지는 문명의 진보와 동시에 작동하는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핵심 요소이다.
3. 비둘기
비둘기는 이 시의 중심 상징으로, 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약자이자 자연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인간 사회가 효율과 이익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비둘기는 살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특히 비둘기가 폭력적으로 쫓겨나지 않고 ‘서서히 떠나간다’는 점은, 현대 사회의 배제가 얼마나 조용하고 구조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둘기는 말없는 피해자이자,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시인의 연민을 집약한 존재다.
4. 떠남
떠남은 이동이 아니라 배제이며, 생존이 불가능해진 결과로서의 퇴장이다. 이 떠남에는 분노도 항의도 없고, 남는 것은 적막과 공백뿐이다. 시인은 이 공백을 통해 개발 이후 세계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떠남은 곧 인간성과 자연성의 소멸을 상징한다.
5. 새 사람
‘새 사람’은 변화의 수혜자이자, 개발 논리 속에서 번듯한 삶을 누리는 존재를 상징한다. 이들은 비둘기가 떠난 자리를 대신 채우지만, 그 삶의 안정은 이전 존재들의 상실 위에 세워진 것이다. 시인은 새 사람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으나, 그 ‘훨씬 번듯하게’라는 표현 속에 아이러니와 거리감을 담아 현대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드러낸다.
6. 하늘
비둘기가 날아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하늘은 현실을 벗어난 공간으로, 더 이상 인간 중심 문명 속에 머물 수 없는 존재의 마지막 장소이다. 그러나 이 하늘은 적극적 해방이나 초월의 공간이라기보다는, 현실에서 선택지가 사라진 결과로서의 피난처에 가깝다. 이를 통해 시인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폭력이 얼마나 무력하고 조용한 형태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