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중윤과 박지원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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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옥전현은 돌을 심어 옥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다.
1620년 5월 24일, 황중윤은 풍윤 다음의 역참인 옥전(玉田)에서 아침을 맞았다. 옥전 지현(玉田知縣) 이춘영(李春英)은 하남(河南) 장갈(長葛) 출신이다.
옥전이라는 지명은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유래를 갖고 있다. 예전에 어떤 선인(仙人)이 이 현에 들렀다가 지독하게 가난한 한 객점의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선인은 안타까워하며 돌 한 말을 주고 심으라고 하였다. 돌을 주면서 심으라고 하는 일이 의아하긴 했지만, 객점의 주인은 선인의 말대로 그 돌 한 말을 심었다. 그런데, 과연 심었던 돌에서 흰 구슬이 무수히 열려 객점의 주인은 드디어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밭의 이름을 ‘종옥전(種玉田)’이라고 하고, 현의 이름으로도 삼았다고 한다. 지금도 옥을 심은 자리가 있다고 한다.
옥전을 지나 별산점(別山店)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 무렵 방균점(邦均店)에 도착했다.

사건

-박지원의 <호질>과 옥전현
황중윤이 남긴 서정일록엔 옥전현에 대한 서술이 마을의 유래 뿐이다. 그러나 그 이후 옥전을 거쳐간 연행사들의 연행록에는 이런 내용은 눈에 띠지 않는다. 박지원은 유명한 문학작품인 〈호질〉을 남겼다.
호질[虎叱]은 ≪연암집 燕巖集≫ 권12 별집(別集) ≪열하일기 熱河日記≫의 「관내정사(關內程史)」에 실려 있다. 「관내정사」에 의하면, 이 글은 연암이 북경으로 가는 도중 하룻밤 묵었던 옥전현(玉田縣)의 심유붕(沈由朋)의 점포 벽상에 걸려 있는 격자(格子)의 기문을 동행한 정진사와 함께 베껴온 글로서, 그 베낀 동기는 국내에 돌아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읽혀 배를 웅켜잡고 한바탕 웃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이 작품에는 원래 작자 성명과 제목이 없었으나, 근세 중국인이 비분하여 지은 작품인 것 같고, 글 중의 ‘虎叱’ 두 글자를 뽑아 제목으로 삼았다고 했다.

참고문헌

1)스토리테마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