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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h_edu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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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동반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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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https://namu.wiki/w/%EC%9A%94%EB%8F%99%EB%B0%98%EB%8F%84 요동반도]&amp;lt;/br&amp;gt;&lt;br /&gt;
러일전쟁과 관련된 지역인 요동반도이다. 정확한 지도로 파악을 하기 위해 외부 링크를 연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의 발생 장소에 대해 작성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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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https://namu.wiki/w/%EC%9A%94%EB%8F%99%EB%B0%98%EB%8F%84 요동반도]&lt;br /&gt;
러일전쟁과 관련된 지역인 요동반도이다. 정확한 지도로 파악을 하기 위해 외부 링크를 연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의 발생 장소에 대해 작성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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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 대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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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 진행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시민 대회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보안회가 주도하여 한어학교에서 개최된 대회로, 일본에 대한 반항심을 드러내고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운동에 격렬히 성토하였다. &lt;br /&gt;
&lt;br /&gt;
[[파일: 시민대회.jpeg|400px|center|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사진이다.]]&lt;br /&gt;
&lt;br /&gt;
===진행===&lt;br /&gt;
&lt;br /&gt;
* 1904.07.16&lt;br /&gt;
 - 7월 16일 집회에서는 회장에 신기선(申箕善), 부회장에 송인섭(宋寅燮)을 천거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대변회장(代辯會長)에 송수만을 선출했다. 이날 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 일본 경찰이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무릅쓰고 송수만과 송인섭을 붙잡아 갔다.&amp;lt;/br&amp;gt; 대한 제국 외부에서는 일본공사에게 송수만과 송인섭을 붙잡아 간 것에 대해 항의하고, 두 사람의 신병을 한국 관아로 인도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공사는 한국정부에서 제대로 단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송수만]] 등의 인도를 거부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17&lt;br /&gt;
 - '''한어학교로 개최 장소를 이전'''했다.&amp;lt;/br&amp;gt;&lt;br /&gt;
 - 보안회는 7월 17일부터 전동(典洞)의 한어학교(漢語學校)로 회의 개최 장소를 이전하고 일본공사관에 구속된 송수만 대신 원세성을 대변회장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와 송수만·송인섭 등의 체포에 대해 격렬히 성토하는 운동을 계속해 나갔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20&lt;br /&gt;
 - 7월 20일, 보안회는 한어학교에서 또다시 대규모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회원뿐만 아니라 수천 명의 서울 시민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amp;lt;/br&amp;gt; 시민대회의 연단에 오른 연사들은 '''일본의 대한 제국 산림·천택·원야·진황지 개간 이권 요구를 격렬하게 성토'''하고, 송수만과 송인섭을 '''일본 측에서 부당하게 체포 구금하고 있는 것을 강력하게 규탄'''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21&lt;br /&gt;
 - 7월 21일 시민대회에서 획기적이었던 일은 '''보안회가 서울에 있는 각국 공사관들과 외교 활동을 전개'''한 것이다.&amp;lt;/br&amp;gt;&lt;br /&gt;
 -  보안회는 시민대회의 결의를 대한 제국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을 비롯한 각국 공사관에도 알리고 협조를 요청했다. '''국제 외교활동을 통한 투쟁'''은 일본 공사관이 가장 두려워하던 활동이었다. 일본 공사관은 이날 무장한 일본군 약 100여 명을 대회장에 투입하여 모인 군중들을 위협했다. 보안회의 민족운동이 격화되고 비판과 공격의 화살이 대한 제국 정부로 날아들자 외부는 7월 20일자로 일본공사에게 보낸 회답문을 공개했다. 외부는 이 회답문에서 일본 공사에게 한국 정부는 어떠한 외국인에게도 한국의 황무지 개간권을 허여(許與)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1904.07.22&lt;br /&gt;
 - 7월 22일 열린 한어학교의 '''시민대회 도중 일본 경찰이 들어와 보안회원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원세성, 심상진 등 회원들을 체포'''했다. 일본군이 무력을 이용하여 한어학교를 완전히 폐쇄하였으나, 보안회원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종로로 나와 시민들과 함께 가두 투쟁을 시작'''했다.&amp;lt;/br&amp;gt;&lt;br /&gt;
 -  '''일본 기마헌병대들이 권총과 일본도를 휘두르며 위협'''하였으나 보안회 회원들과 시위 군중들은 전혀 해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욱 분노하여 격렬한 가두 투쟁을 계속했다. 날이 어두워져도 가두 투쟁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황제가 칙령을 내려 밤이 늦었으니 해산하도록 설득했으나 군중은 듣지 않고 투쟁을 계속했다. &amp;lt;/br&amp;gt;&lt;br /&gt;
 - 결국 이날 밤 11시가 되자 일본 헌병대는 수백 명의 무장한 헌병들을 추가로 출동시켰고, 보안회는 어둠 속에서 무장한 일본 헌병대와 충돌하면 살상자가 발생할 것을 염려하여 일단 해산을 결정했다. 7월 22일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진 집회와 시위, 가두 투쟁은 보안회의 민족 운동이 절정을 이룬 것이었으며, 또 일본군 정면으로 가장 격렬하게 대치한 운동이었다.&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 제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국토는 조금도 외국에 빌려주거나 양도하지 않겠다는 고시문을 7월 23일 서울 시내 도처에 게시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 7월 13일부터 7월 22일까지 10일간 전개된 보안회의 격렬한 민족운동, 즉 시민대회는 일본 공사관과 대한 제국 정부에 큰 충격을 주었음은 물론, 서울에 주재한 외국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amp;lt;/br&amp;gt;&lt;br /&gt;
* 보안회의 민족 운동이 절정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으며, 보안회의 운동이 승리를 거두는 핵심 과정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러일전 쟁전후일본의 한국침략』(역사학회, 일조각, 1986)&lt;br /&gt;
*『日露戰爭史の 硏究』(信夫淸三郞·中山治一, 河出書房新社, 1972)&lt;br /&gt;
*『日本外交史硏究』-日淸·日露戰爭-(日本國際政治學會, 1962)&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 보안회와 이와 관련된 인물들의 활동들을 파악하기 쉽게 페이지를 구상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시민 대회의 전개를 날짜순으로 정리하여 흐름이 단번에 보이도록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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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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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시민 대회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보안회가 주도하여 한어학교에서 개최된 대회로, 일본에 대한 반항심을 드러내고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운동에 격렬히 성토하였다. &lt;br /&gt;
&lt;br /&gt;
[[파일: 시민대회.jpeg|400px|center|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사진이다.]]&lt;br /&gt;
&lt;br /&gt;
===진행===&lt;br /&gt;
&lt;br /&gt;
* 1904.07.16&lt;br /&gt;
 - 7월 16일 집회에서는 회장에 신기선(申箕善), 부회장에 송인섭(宋寅燮)을 천거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대변회장(代辯會長)에 송수만을 선출했다. 이날 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 일본 경찰이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무릅쓰고 송수만과 송인섭을 붙잡아 갔다.&amp;lt;/br&amp;gt; 대한 제국 외부에서는 일본공사에게 송수만과 송인섭을 붙잡아 간 것에 대해 항의하고, 두 사람의 신병을 한국 관아로 인도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공사는 한국정부에서 제대로 단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송수만]] 등의 인도를 거부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17&lt;br /&gt;
 - '''한어학교로 개최 장소를 이전'''했다.&amp;lt;/br&amp;gt;&lt;br /&gt;
 - 보안회는 7월 17일부터 전동(典洞)의 한어학교(漢語學校)로 회의 개최 장소를 이전하고 일본공사관에 구속된 송수만 대신 원세성을 대변회장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와 송수만·송인섭 등의 체포에 대해 격렬히 성토하는 운동을 계속해 나갔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20&lt;br /&gt;
 - 7월 20일, 보안회는 한어학교에서 또다시 대규모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회원뿐만 아니라 수천 명의 서울 시민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amp;lt;/br&amp;gt; 시민대회의 연단에 오른 연사들은 '''일본의 대한 제국 산림·천택·원야·진황지 개간 이권 요구를 격렬하게 성토'''하고, 송수만과 송인섭을 '''일본 측에서 부당하게 체포 구금하고 있는 것을 강력하게 규탄'''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21&lt;br /&gt;
 - 7월 21일 시민대회에서 획기적이었던 일은 '''보안회가 서울에 있는 각국 공사관들과 외교 활동을 전개'''한 것이다.&amp;lt;/br&amp;gt;&lt;br /&gt;
 -  보안회는 시민대회의 결의를 대한 제국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을 비롯한 각국 공사관에도 알리고 협조를 요청했다. '''국제 외교활동을 통한 투쟁'''은 일본 공사관이 가장 두려워하던 활동이었다. 일본 공사관은 이날 무장한 일본군 약 100여 명을 대회장에 투입하여 모인 군중들을 위협했다. 보안회의 민족운동이 격화되고 비판과 공격의 화살이 대한 제국 정부로 날아들자 외부는 7월 20일자로 일본공사에게 보낸 회답문을 공개했다. 외부는 이 회답문에서 일본 공사에게 한국 정부는 어떠한 외국인에게도 한국의 황무지 개간권을 허여(許與)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1904.07.22&lt;br /&gt;
 - 7월 22일 열린 한어학교의 '''시민대회 도중 일본 경찰이 들어와 보안회원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원세성, 심상진 등 회원들을 체포'''했다. 일본군이 무력을 이용하여 한어학교를 완전히 폐쇄하였으나, 보안회원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종로로 나와 시민들과 함께 가두 투쟁을 시작'''했다.&amp;lt;/br&amp;gt;&lt;br /&gt;
 -  '''일본 기마헌병대들이 권총과 일본도를 휘두르며 위협'''하였으나 보안회 회원들과 시위 군중들은 전혀 해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욱 분노하여 격렬한 가두 투쟁을 계속했다. 날이 어두워져도 가두 투쟁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황제가 칙령을 내려 밤이 늦었으니 해산하도록 설득했으나 군중은 듣지 않고 투쟁을 계속했다. &amp;lt;/br&amp;gt;&lt;br /&gt;
 - 결국 이날 밤 11시가 되자 일본 헌병대는 수백 명의 무장한 헌병들을 추가로 출동시켰고, 보안회는 어둠 속에서 무장한 일본 헌병대와 충돌하면 살상자가 발생할 것을 염려하여 일단 해산을 결정했다. 7월 22일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진 집회와 시위, 가두 투쟁은 보안회의 민족 운동이 절정을 이룬 것이었으며, 또 일본군 정면으로 가장 격렬하게 대치한 운동이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 제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국토는 조금도 외국에 빌려주거나 양도하지 않겠다는 고시문을 7월 23일 서울 시내 도처에 게시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 7월 13일부터 7월 22일까지 10일간 전개된 보안회의 격렬한 민족운동, 즉 시민대회는 일본 공사관과 대한 제국 정부에 큰 충격을 주었음은 물론, 서울에 주재한 외국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amp;lt;/br&amp;gt;&lt;br /&gt;
* 보안회의 민족 운동이 절정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으며, 보안회의 운동이 승리를 거두는 핵심 과정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러일전 쟁전후일본의 한국침략』(역사학회, 일조각, 1986)&lt;br /&gt;
*『日露戰爭史の 硏究』(信夫淸三郞·中山治一, 河出書房新社, 1972)&lt;br /&gt;
*『日本外交史硏究』-日淸·日露戰爭-(日本國際政治學會, 1962)&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 보안회와 이와 관련된 인물들의 활동들을 파악하기 쉽게 페이지를 구상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시민 대회의 전개를 날짜순으로 정리하여 흐름이 단번에 보이도록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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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심상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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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12:26: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 평가 */&lt;/p&gt;
&lt;hr /&gt;
&lt;div&gt;==심상진 (沈相震)==&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lt;br /&gt;
대한제국기 보안회를 조직해 배일민중운동을 전개한 사회운동가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성별 : 남성&lt;br /&gt;
* 출생 : 미상&lt;br /&gt;
* 사망 : 미상&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심상진.jpg|height:&amp;quot;100&amp;quot;|center|송수만]]&lt;br /&gt;
&lt;br /&gt;
&lt;br /&gt;
===보안회 주도===&lt;br /&gt;
&lt;br /&gt;
1904년 6월 일본이 대장성(大藏省) 관방장(官房長)을 역임한 나가모리[長森藤吉郞]를 내세워 대한제국정부에 전국토의 3분의 1에 달하는 황무지 개척권을 요구하자, 당시 유생을 비롯한 전국민의 반대여론이 비등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특히, 그 반대운동이 서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7월 13일 종로 백목전도가(白木廛都家)에 조신(朝臣)과 유생들이 회집하여 공개적으로 일본의 요구를 물리쳐야 한다고 연설하고, 관련대신을 성토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아울러 보국안민(輔國安民)을 뜻하는 [[보안회]](輔安會, 保安會)라는 이름의 단체를 결성하고, 전국에 통문을 발하였다. 이 때 전 의관(議官) '''송수만(宋秀晩)과 함께 보안회를 주도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lt;br /&gt;
&lt;br /&gt;
&lt;br /&gt;
심상진은 당시 참정(參政) 심상훈(沈相薰)의 인척으로, 그와 가까운 관계였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은 보안회의 활동을 봉쇄하기 위하여 7월 17일에 [[송수만]]과 손인섭(孫寅燮)을 체포하였고, 정부에서는 군중의 효유해산(曉諭解散)을 지시하였다.&lt;br /&gt;
&lt;br /&gt;
보안회에서는 치안문제를 고려하여 7월 18일 전동(典洞)의 한어학교(漢語學校)로 회의소를 옮겼으나, 7월 22일 무장한 일본군이 보안회에 돌입하여 군중을 강제로 해산하고, 관련문서를 강탈하였다. 이 때 원세성(元世性) 등과 함께 붙잡혔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평가===&lt;br /&gt;
&lt;br /&gt;
&lt;br /&gt;
* 보안회를 주도해 [[시민 대회]]를 열고, [[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에 여념한 사회운동가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활동에 비해 심상진 사회운동가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amp;lt;ref&amp;gt;출생, 사망 연도가 미상인 점에서 판단하였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주한일본공사관기록』 20(국사편찬위원회, 1991)&lt;br /&gt;
*「일본인의 황무지개척권 요구에 대하여」(윤병석, 『역사학보』 22, 1964)&lt;br /&gt;
*『황성신문(皇城新聞)』(1906. 6·7)&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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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심상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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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12:25:3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새 문서: ==심상진 (沈相震)==  ===인물===  대한제국기 보안회를 조직해 배일민중운동을 전개한 사회운동가이다.&amp;lt;/br&amp;gt;  * 성별 : 남성 * 출생 : 미상 * 사...&lt;/p&gt;
&lt;hr /&gt;
&lt;div&gt;==심상진 (沈相震)==&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lt;br /&gt;
대한제국기 보안회를 조직해 배일민중운동을 전개한 사회운동가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성별 : 남성&lt;br /&gt;
* 출생 : 미상&lt;br /&gt;
* 사망 : 미상&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심상진.jpg|height:&amp;quot;100&amp;quot;|center|송수만]]&lt;br /&gt;
&lt;br /&gt;
&lt;br /&gt;
===보안회 주도===&lt;br /&gt;
&lt;br /&gt;
1904년 6월 일본이 대장성(大藏省) 관방장(官房長)을 역임한 나가모리[長森藤吉郞]를 내세워 대한제국정부에 전국토의 3분의 1에 달하는 황무지 개척권을 요구하자, 당시 유생을 비롯한 전국민의 반대여론이 비등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특히, 그 반대운동이 서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7월 13일 종로 백목전도가(白木廛都家)에 조신(朝臣)과 유생들이 회집하여 공개적으로 일본의 요구를 물리쳐야 한다고 연설하고, 관련대신을 성토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아울러 보국안민(輔國安民)을 뜻하는 [[보안회]](輔安會, 保安會)라는 이름의 단체를 결성하고, 전국에 통문을 발하였다. 이 때 전 의관(議官) '''송수만(宋秀晩)과 함께 보안회를 주도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lt;br /&gt;
&lt;br /&gt;
&lt;br /&gt;
심상진은 당시 참정(參政) 심상훈(沈相薰)의 인척으로, 그와 가까운 관계였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은 보안회의 활동을 봉쇄하기 위하여 7월 17일에 [[송수만]]과 손인섭(孫寅燮)을 체포하였고, 정부에서는 군중의 효유해산(曉諭解散)을 지시하였다.&lt;br /&gt;
&lt;br /&gt;
보안회에서는 치안문제를 고려하여 7월 18일 전동(典洞)의 한어학교(漢語學校)로 회의소를 옮겼으나, 7월 22일 무장한 일본군이 보안회에 돌입하여 군중을 강제로 해산하고, 관련문서를 강탈하였다. 이 때 원세성(元世性) 등과 함께 붙잡혔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평가===&lt;br /&gt;
&lt;br /&gt;
&lt;br /&gt;
* 보안회를 주도해 [[시민대회]]를 열고, [[황무지 개간 반대운동]]에 여념한 사회운동가이다.&lt;br /&gt;
&lt;br /&gt;
* 활동에 비해 심상진 사회운동가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amp;lt;ref&amp;gt;출생, 사망 연도가 미상인 점에서 판단하였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주한일본공사관기록』 20(국사편찬위원회, 1991)&lt;br /&gt;
*「일본인의 황무지개척권 요구에 대하여」(윤병석, 『역사학보』 22, 1964)&lt;br /&gt;
*『황성신문(皇城新聞)』(1906. 6·7)&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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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6%A1%EC%88%98%EB%A7%8C&amp;diff=35427</id>
		<title>송수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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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12:20:0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송수만 (宋秀萬)==&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lt;br /&gt;
대한제국기 보안회의 조직과 을사조약 반대운동 등을 전개한 항일운동가이다. &lt;br /&gt;
&lt;br /&gt;
* 성별 : 남성&lt;br /&gt;
* 출생 : 1857년&lt;br /&gt;
* 사망 : 미상&lt;br /&gt;
* 본관 : 여산(礪山)&lt;br /&gt;
&lt;br /&gt;
[[파일:송수만.jpg|height:&amp;quot;100&amp;quot;|center|송수만]]&lt;br /&gt;
&lt;br /&gt;
&lt;br /&gt;
===천도교 창건 및 정비===&lt;br /&gt;
&lt;br /&gt;
'''*천도교 창건 배경'''&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도교 창건 및 조직 정비'''&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손병희는 동학의 교주가 된 초기에는 정치와 종교 간의 불가분적 관계를 강조하면서&amp;lt;ref&amp;gt;교정일치론.&amp;lt;/ref&amp;gt; 동학에서의 여러 가지 개혁적인 시도를 감행했으나 실패했고, 도리어 일제에 의해 역이용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걸고 1905년 교명을 '천도교'로 개칭하면서 새로운 교리와 체제를 확립하기 시작하였다.'''&amp;lt;/big&amp;gt;&lt;br /&gt;
&lt;br /&gt;
최시형의 순교가 있고 난 뒤, 손병희는 사태를 수습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 힘썼다. 그러나 관헌의 추적이 심하자 1901년 3월 일본으로 피신했고, 그 해 9월 일시 귀국했다가 ‘세계의 대세’를 깨닫기 위해 1902년 3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려 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일본에 머물게 되었다.&lt;br /&gt;
&lt;br /&gt;
그곳에서 망명중이던 개화파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인식을 갖추게 된 한편, 국내와도 꾸준히 연락하면서 교인들을 규합하고 동학을 재정비하려 노력하였다.&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그런데 손병희의 일본 체류는 그의 사상적 폭이 넓어지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탄력성을 증대시킨 반면,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동학교도들의 민족적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1904년 8월 말부터 전국에 걸쳐 조직되기 시작한 '진보회'는 원래 동학교도들이 기존 정치체제의 개혁 세력으로서 참여하기 위한 기구였으나, 이용구의 주도하에 송병준의 일진회와 합하고 친일단체화하였다.&lt;br /&gt;
&lt;br /&gt;
이에 손병희는 교정일치론을 철회하고 정치적 관심은 아예 포기하였으며, 종교로서의 동학을 고수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따라서 1905년 12월 1일 '동학'을 '천도교'로 바꾸어 세상에 널리 알렸고, 이듬해 1월에는 귀국하여 교회를 재조직하는 데 착수했으며, ＜천도교대헌＞을 반포하고 새로운 교단조직을 만들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천도교리의 체계화'''&lt;br /&gt;
&lt;br /&gt;
이후 손병희는 천도교단의 중앙과 지방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천도교리의 체계화에도 노력하였다. &lt;br /&gt;
&lt;br /&gt;
각종 교리서들이 천도교중앙총부 명의로 편찬되었다. 특히 1907년 출간된 『대종정의』에서는 '인내천'&amp;lt;ref&amp;gt;천도교의 기본 사상으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amp;lt;/ref&amp;gt;을 천도교의 교의로 공식화하였다. &lt;br /&gt;
&lt;br /&gt;
이후 손병희와 천도교단에서는 서양의 근대사상을 수용하여 인내천 교리에 대한 체계화 작업을 계속했다.&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인내천은 한편에서 천도교 종교의식의 원천이 되어 온갖 도법과 교화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천도교 정치사상의 근저가 되어 온갖 이론과 행동을 규정짓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즉 천도교에서는 '보국안민'&amp;lt;ref&amp;gt;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amp;lt;/ref&amp;gt;, '포덕천하'&amp;lt;ref&amp;gt;덕을 천하에 편다는 뜻으로, 세상에 천도교를 널리 보급함을 이르는 말.&amp;lt;/ref&amp;gt;, '광제창생'&amp;lt;ref&amp;gt;널리 백성을 구제함&amp;lt;/ref&amp;gt;을 통한 지상천국 건설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보성전문학교 인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3.1운동===&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평가===&lt;br /&gt;
&lt;br /&gt;
&lt;br /&gt;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국가 수립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자나 국가의 기초를 다지는 데 뚜렷한 공적이 있다고 평가되는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lt;br /&gt;
&lt;br /&gt;
*일제강점기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손병희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민족의 영웅', '조선 독립의 거인' 등으로 굉장히 높았다. 해방을 맞아 귀국한 김구를 비롯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간부들은 손병희 선생을 '독립운동의 근원지'라고 평가하였다.&lt;br /&gt;
&lt;br /&gt;
*1992년 3월 및 2019년 3월에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amp;lt;ref&amp;gt;국가보훈처가 선정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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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칼보다 강한 펜의 힘 애국계몽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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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12:19: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글색&lt;br /&gt;
|color=#F5F5F5&lt;br /&gt;
|text='''독립운동 계열 중 애국계몽운동을 5개의 관련 단체를 기준으로 살펴보았다.'''&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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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p align=&amp;quot;middle&amp;quot;&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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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LightBlue&amp;quot;&amp;gt;'''애국계몽운동'''&amp;lt;/span&amp;gt;에 해당하는 '''단체나 학교, 신문''' 등을 시작으로 그들과 관련된 '''사건, 활동, 인물, 단체, 장소''' 등을 &amp;lt;font color=SteelBlue&amp;gt;'''역사적 흐름'''&amp;lt;/font&amp;gt;에 따라 설명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애국계몽운동.jpg|400px|center|우리 조의 주제를 한 눈에 나타내는 사진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획의도 및 목적'''&lt;br /&gt;
&lt;br /&gt;
&lt;br /&gt;
35년의 식민 통치 기간동안 한국의 주권 회복을 위해 투쟁한 독립 운동은 끊이지 않았다. 독립운동은 시대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지만 공통된 특성을 가진 독립운동을 함께 분석해 그 배경과 특징 의의를 분석하고 각각의 운동, 단체, 인물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애국계몽운동'이라는 주제로 독립운동을 탐구하고자 한다. 애국계몽운동은 한국인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국민 모두의 지적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노력으로 식민 통치 시기에 꼭 필요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계몽단체의 활동은 애국계몽운동이 전국적 규모의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신민회와 같은 전국 규모의 단체가 지회운영을 통하여 계몽운동을 광범한 운동으로 전개시켜 나갔고 학회와 같은 지역 단위의 단체가 설립, 운영되면서 운동이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애국계몽운동은 교육운동과 대중계몽운동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어 이후의 민족해방운동의 밑거름이 되게 하였다. 단순한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실력양성운동에서 애국계몽운동을 벗어날 수 있게 했던 강력한 단체의 출현에 대해서도 알아보고자 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대효과'''&lt;br /&gt;
&lt;br /&gt;
애국계몽운동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으며, 활동했던 여러 단체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또한, 복잡할 수 있는 역사의 흐름을 온톨로지와 타임라인 등을 통해서, 그리고 분류된 노드를 통해 단체와 사건 등을 명확히 구분해 더욱 효과적으로 학습 가능할 것이다. 인과관계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흐름을 통해 파악하고, 어떠한 사건이 어떤 사건의 영향을 받아서 발생했는 지에 대한 논리적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릴레이션을 통해 관련이 있는 사건 및 단체들에 대해 학습하고, 지금의 한국의 기반을 갖추어준 애국계몽운동에 대해 알아보자.&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lt;br /&gt;
&lt;br /&gt;
{{NetworkGraph | title=애국계몽운동.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23%&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Actor||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애국계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거나 큰 영향을 끼친 단체를 정리했다. || [[신민회]], [[대한매일신보]], [[청년학우회]], [[대성학교]], [[오산학교]], [[신흥무관학교]], [[신간회]], [[근우회]], [[보성전문학교]], [[통감부]], [[보안회]]&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Agen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했거나 영향을 받은 인물을 정리했다. || [[안창호]], [[양기탁]], [[신채호]], [[이용익(李容翊)]], [[안재홍]], [[손병희(孫秉熙)]], [[베델]], [[심상진]], [[송수만]]&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Even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애국계몽운동 단체의 활동 및 중요한 사건을 정리했다. || [[105인 사건]], [[청년운동]], [[교육구국운동]], [[민족산업진흥운동]], [[원산총파업]], [[광주학생항일운동]], [[3.1 운동]], [[조선교육령]], [[근대학교 설립운동]], [[국채보상운동]], [[러일전쟁]], [[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시민 대회]]&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Place||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단체가 설립되거나 사건이 발생한 장소를 정리하였다. || [[평양]], [[만주]], [[원산]], [[광주]], [[한성]], [[요동반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성(Relation)===&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MemberOf(~의 일원이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애국계몽운동에서 대표적인 사건의 일원임을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안재홍 → 신간회&lt;br /&gt;
***신채호 → 신간회&lt;br /&gt;
***신채호 → 신민회&lt;br /&gt;
***양기탁 → 신민회&lt;br /&gt;
***안창호 → 신민회&lt;br /&gt;
***손병희 → 보성전문학교&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leads(사건~을 주도하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역사적인 사건 주도를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안재홍 → 3.1운동&lt;br /&gt;
***신채호 → 대한매일신보&lt;br /&gt;
***베델 → 대한매일신보&lt;br /&gt;
***양기탁 → 대한매일신보&lt;br /&gt;
***신민회 → 청년운동&lt;br /&gt;
***신민회 → 교육구국운동&lt;br /&gt;
***신민회 → 민족산업진흥운동&lt;br /&gt;
***이용익 → 교육구국운동&lt;br /&gt;
***손병희 → 3.1운동&lt;br /&gt;
***보안회 → 시민대회&lt;br /&gt;
***보안회 → 황무지개간운동&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happenedAt(장소 ~에서 일어나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애국계몽 운동 속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원산총파업 → 원산&lt;br /&gt;
***러일전쟁 → 요동 반도&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 광주&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InfluencedBy(~에 의해 영향을 받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 어떠한 사건 혹은 단체가 영향을 받은 원인을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보안회 → 러일전쟁&lt;br /&gt;
***대한매일신보 → 러일전쟁&lt;br /&gt;
***보성전문학교 → 조선교육령&lt;br /&gt;
***보성전문학교 → 근대학교 설립운동&lt;br /&gt;
***대성학교 → 교육구국운동&lt;br /&gt;
***오산학교 → 교육구국운동&lt;br /&gt;
***청년운동 → 청년 학우회&lt;br /&gt;
***신민회 → 105인 사건&lt;br /&gt;
***대한매일신보 → 신민회&lt;br /&gt;
***국채보상운동 → 대한매일신보&lt;br /&gt;
***통감부 → 대한매일신보&lt;br /&gt;
***근우회 → 신간회&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SupportedBy (~에게 지원을 받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어떤 활동 및 사건 등이 특정 단체 등의 지원을 받았음을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 근우회&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 신간회&lt;br /&gt;
***원산 총파업 → 신간회&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FounderOf (~은 ~의 설립 주체이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각 단체 및 기관을 설립한 주체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송수만 → 보안회&lt;br /&gt;
***원세성 → 보안회&lt;br /&gt;
***이용익 → 보성전문학교&lt;br /&gt;
***신민회 → 신흥무관학교&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PartOf (~의 일부이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해당 노드의 하위 분류에 속하는 노드들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보안회 → 애국계몽운동&lt;br /&gt;
***신간회 → 애국계몽운동&lt;br /&gt;
***대한매일신보 → 애국계몽운동&lt;br /&gt;
***신민회 → 애국계몽운동&lt;br /&gt;
***보성전문학교 → 애국계몽운동&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LocatedIn (~은 ~에 위치해 있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각 단체 및 기관이 위치해 있는 장소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보성전문학교 → 한성&lt;br /&gt;
***신흥무관학교 → 만주&lt;br /&gt;
***대성학교 → 평양&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5%&amp;quot; | 팀원 !! style=&amp;quot;width:23%&amp;quot; | 기여 내용&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김효원]]||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대한매일신보 관련 자료 조사 및 관련 개별 wiki문서 작성, 타임라인 구상 및 연표 생성, lst 문서 작성 참여, 마인드맵 구상 및 작성 참여, 클래스와 릴레이션 구상 참여&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페퍼민트🌿]]||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보성전문학교 관련 자료 조사 및 관련 개별 문서 작성, 연표 구상 참여 및 연표 생성, lst 문서 작성 참여, 마인드맵 구상 및 작성 참여, 클래스와 릴레이션 구상 참여&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까마귀]]||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신간회 관련 자료 조사 및 관련 개별 기사 작성, 팀페이지 주제 부분 작성, 타임라인 시작 부분 구상 및 연표 생성, lst 문서 작성 참여, 릴레이션 구상 참여, 마인드맵 참여, 지도 &amp;amp; 타임라인 작성(개별문서)&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오연수]]||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보안회 관련 자료 조사 및 개별 문서 작성, 연표 구상 참여 및 연표 생성, Ist 문서 작성, 기획 의도 및 기대 효과 작성, 발표 영상 수합 및 제출, 클래스와 릴레이션, 마인드맵 구상 참여&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바밤🌰]]||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신민회 관련 자료 조사, 개별 문서 작성, 연표 작성, 디지털 지도 생성(개별문서), lst 파일 작성, 기획 의도 구상 (+릴레이션, 연표, 마인드맵 구상에 참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파일:독립운동가.jpeg|300px|center|백범 김구 중심]]&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파일:애국_마인드맵.png|600px|center|애국계몽운동 기준 마인드맵]]&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타임라인==&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33koILa2WQu31NLYfQ5YRr6wZvbqPHVhw9UHWxU5hSk&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1900년대의 애국계몽운동연구』(조항래 외, 아세아문화사, 1993)&lt;br /&gt;
*『만주한인 민족운동사연구』(박환, 일조각, 1991)&lt;br /&gt;
*『105인사건과 신민회연구』(윤경로, 일지사, 1990)&lt;br /&gt;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서중석, 역사비평사, 2001)&lt;br /&gt;
*『독립운동사자료집』10(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lt;br /&gt;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1965)&lt;br /&gt;
*『청년학우회의 활동과 참여 인물』(권두연, 한국문학연구학회, 2012)&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br /&gt;
[[분류:페퍼민트🌿]]&lt;br /&gt;
[[분류:바밤🌰]]&lt;br /&gt;
[[분류:까마귀]]&lt;br /&gt;
[[분류:김효원]]&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5%A0%EA%B5%AD%EA%B3%84%EB%AA%BD%EC%9A%B4%EB%8F%99.lst&amp;diff=35425</id>
		<title>애국계몽운동.ls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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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12:18: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pre&amp;gt;&lt;br /&gt;
#Project&lt;br /&gt;
h1 애국계몽운동&lt;br /&gt;
&lt;br /&gt;
#Class&lt;br /&gt;
주제 Red Circle&lt;br /&gt;
단체 Green box&lt;br /&gt;
인물 Yellow pentagon&lt;br /&gt;
활동/사건 Orange&lt;br /&gt;
장소 Pink box&lt;br /&gt;
&lt;br /&gt;
#Relation&lt;br /&gt;
isMemberOf	&lt;br /&gt;
leads&lt;br /&gt;
happenedAt&lt;br /&gt;
isInfluencedBy&lt;br /&gt;
isSupportedBy&lt;br /&gt;
isFounderOf &lt;br /&gt;
isPartOf&lt;br /&gt;
isLocatedIn&lt;br /&gt;
&lt;br /&gt;
#Nodes&lt;br /&gt;
애국계몽운동 주제 애국계몽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B9%BC%EB%B3%B4%EB%8B%A4_%EA%B0%95%ED%95%9C_%ED%8E%9C%EC%9D%98_%ED%9E%98_%EC%95%A0%EA%B5%AD%EA%B3%84%EB%AA%BD%EC%9A%B4%EB%8F%99#.ED.81.B4.EB.9E.98.EC.8A.A4.28Class.29&lt;br /&gt;
신민회 단체 신민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B%AF%BC%ED%9A%8C&lt;br /&gt;
안창호 인물 안창호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5%88%EC%B0%BD%ED%98%B8 https://i.namu.wiki/i/8ojIt44ibsfwG2FEsWKiYcaQ3eM3hLeqzy3qLUh1qfiQgk-58LX6lZ66TqlpObnSOkHjbtA8O6PZaLQx4SRqwA.webp&lt;br /&gt;
양기탁 인물 양기탁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6%91%EA%B8%B0%ED%83%81 https://i.namu.wiki/i/mt7gVSFxYfarOytTCxBplZ9ibyYgBSFUwYyNyAVHokUEFu7oVsWiz7R_aUbP4hm2VYtuU6flvEa_wN3E5dzb9g.webp&lt;br /&gt;
신채호 인물 신채호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C%B1%84%ED%98%B8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8/%EB%8B%A8%EC%9E%AC%EC%8B%A0%EC%B1%84%ED%98%B8.jpg&lt;br /&gt;
대한매일신보 단체 대한매일신보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C%80%ED%95%9C%EB%A7%A4%EC%9D%BC%EC%8B%A0%EB%B3%B4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ko/c/c9/%EB%8C%80%ED%95%9C%EB%A7%A4%EC%9D%BC%EC%8B%A0%EB%B3%B4.jpg&lt;br /&gt;
105인_사건 활동/사건 105인_사건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105%EC%9D%B8_%EC%82%AC%EA%B1%B4&lt;br /&gt;
청년운동 활동/사건 청년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B2%AD%EB%85%84%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청년_학우회 단체 청년_학우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B2%AD%EB%85%84%ED%95%99%EC%9A%B0%ED%9A%8C&lt;br /&gt;
교육구국운동 활동/사건 교육구국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5%90%EC%9C%A1%EA%B5%AC%EA%B5%AD%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이용익 인물 이용익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D%B4%EC%9A%A9%EC%9D%B5(%E6%9D%8E%E5%AE%B9%E7%BF%8A)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a/Lee_Yong-ik_Portrait.jpg&lt;br /&gt;
대성학교 단체 대성학교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C%80%EC%84%B1%ED%95%99%EA%B5%90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1080/1080985.png&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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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장소 평양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D%8F%89%EC%96%91&lt;br /&gt;
만주 장소 만주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A7%8C%EC%A3%BC&lt;br /&gt;
민족산업진흥운동 활동/사건 민족산업진흥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AF%BC%EC%A1%B1%EC%82%B0%EC%97%85%EC%A7%84%ED%9D%A5%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신흥무관학교 단체 신흥무관학교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D%9D%A5%EB%AC%B4%EA%B4%80%ED%95%99%EA%B5%90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1080/1080985.png&lt;br /&gt;
신간회 단체 신간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A%B0%84%ED%9A%8C&lt;br /&gt;
근우회 단체 근우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7%BC%EC%9A%B0%ED%9A%8C&lt;br /&gt;
안재홍 인물 안재홍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5%88%EC%9E%AC%ED%99%8D https://scsgozneamae10236445.cdn.ntruss.com/data2/content/image/2019/05/02/.cache/512/201905020886923.jpg&lt;br /&gt;
원산_총파업 활동/사건 원산_총파업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B%90%EC%82%B0%EC%B4%9D%ED%8C%8C%EC%97%85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활동/사건 광주학생항일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4%91%EC%A3%BC%ED%95%99%EC%83%9D%ED%95%AD%EC%9D%BC%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원산 장소 원산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B%90%EC%82%B0&lt;br /&gt;
광주 장소 광주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4%91%EC%A3%BC&lt;br /&gt;
3.1_운동 활동/사건 3.1_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3.1_%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보성전문학교 단체 보성전문학교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B3%B4%EC%84%B1%EC%A0%84%EB%AC%B8%ED%95%99%EA%B5%90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1080/1080985.png&lt;br /&gt;
한성 장소 한성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D%95%9C%EC%84%B1&lt;br /&gt;
손병희 인물 손병희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6%90%EB%B3%91%ED%9D%AC(%E5%AD%AB%E7%A7%89%E7%86%99) https://cdn.labortoday.co.kr/news/photo/201902/156851_71011_1715.jpg&lt;br /&gt;
조선교육령 활동/사건 조선교육령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A1%B0%EC%84%A0%EA%B5%90%EC%9C%A1%EB%A0%B9&lt;br /&gt;
근대학교_설립운동 활동/사건 근대학교_설립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7%BC%EB%8C%80%ED%95%99%EA%B5%90_%EC%84%A4%EB%A6%BD%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베델 인물 베델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B2%A0%EB%8D%B8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8/88/Ernest_Bethell.png&lt;br /&gt;
통감부 단체 통감부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D%86%B5%EA%B0%90%EB%B6%80&lt;br /&gt;
국채보상운동 활동/사건 국채보상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5%AD%EC%B1%84%EB%B3%B4%EC%83%81%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보안회 단체 보안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B3%B4%EC%95%88%ED%9A%8C&lt;br /&gt;
러일전쟁 활동/사건 러일전쟁 null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3522/3522092.png&lt;br /&gt;
황무지_개간_반대운동 활동/사건 황무지_개간_반대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D%99%A9%EB%AC%B4%EC%A7%80_%EA%B0%9C%EA%B0%84_%EB%B0%98%EB%8C%80_%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시민_대회 활동/사건 시민_대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9C%EB%AF%BC_%EB%8C%80%ED%9A%8C&lt;br /&gt;
심상진 인물 심상진 &lt;br /&gt;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B%90%EC%84%B8%EC%84%B1  http://dh.aks.ac.kr/~dh_edu/wiki/images/d/d0/%EC%8B%AC%EC%83%81%EC%A7%84.jpg&lt;br /&gt;
송수만 인물 송수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6%A1%EC%88%98%EB%A7%8C&amp;amp;action=edit&amp;amp;redlink=1 http://dh.aks.ac.kr/~dh_edu/wiki/images/f/f5/%EC%86%A1%EC%88%98%EB%A7%8C.jpg&lt;br /&gt;
요동_반도 장소 요동_반도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A%94%EB%8F%99%EB%B0%98%EB%8F%84&amp;amp;action=edit&amp;amp;redlink=1&lt;br /&gt;
&lt;br /&gt;
#Links&lt;br /&gt;
신민회 애국계몽운동 isPartOf&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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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회 애국계몽운동 isPartOf&lt;br /&gt;
안창호 신민회 isFounderOf &lt;br /&gt;
양기탁 신민회 isFounderOf &lt;br /&gt;
신채호 신민회 isFounderOf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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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회 105인_사건 isInfluencedBy&lt;br /&gt;
신민회 청년운동 leads &lt;br /&gt;
청년운동 청년_학우회 isInfluencedBy&lt;br /&gt;
신민회 교육구국운동 leads&lt;br /&gt;
이용익 교육구국운동 leads&lt;br /&gt;
대성학교 교육구국운동 isInfluencedBy&lt;br /&gt;
오산학교 교육구국운동 isInfluencedBy&lt;br /&gt;
대성학교 평양 isLocatedIn&lt;br /&gt;
신민회 민족산업진흥운동 leads&lt;br /&gt;
신민회 신흥무관학교 isFounderOf &lt;br /&gt;
신흥무관학교 만주 isLocatedIn&lt;br /&gt;
신간회 애국계몽운동 isPartOf&lt;br /&gt;
신채호 신간회 isMemberOf&lt;br /&gt;
안재홍 신간회 isMemberOf&lt;br /&gt;
근우회 신간회 isInfluencedBy&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신간회 isSupportedBy&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근우회 isSupportedBy&lt;br /&gt;
원산_총파업 신간회 isSupportedBy&lt;br /&gt;
원산_총파업 원산 happenedAt&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광주 happenedAt&lt;br /&gt;
안재홍 3.1_운동 leads&lt;br /&gt;
보성전문학교 애국계몽운동 isPartOf&lt;br /&gt;
보성전문학교 한성 isLocatedIn&lt;br /&gt;
손병희 보성전문학교 isMemberOf&lt;br /&gt;
이용익 보성전문학교 isFounderOf&lt;br /&gt;
손병희 3.1_운동 leads&lt;br /&gt;
보성전문학교 조선교육령 isInfluencedBy&lt;br /&gt;
보성전문학교 근대학교_설립운동 isInfluencedBy&lt;br /&gt;
국채보상운동 대한매일신보 isInfluencedBy&lt;br /&gt;
통감부 대한매일신보 isInfluencedBy&lt;br /&gt;
양기탁 대한매일신보 leads&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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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대한매일신보 leads&lt;br /&gt;
보안회 시민_대회 leads&lt;br /&gt;
보안회 황무지_개간_반대운동 leads&lt;br /&gt;
송수만 보안회 isMemberOf &lt;br /&gt;
심상진 보안회 isMemberOf &lt;br /&gt;
보안회 러일전쟁 isInfluencedBy&lt;br /&gt;
시민_대회 한성 happenedA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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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 러일전쟁 isInfluencedBy&lt;br /&gt;
&lt;br /&gt;
#End&lt;br /&gt;
&amp;lt;/pre&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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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12:16:3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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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amp;lt;pre&amp;gt;&lt;br /&gt;
#Project&lt;br /&gt;
h1 애국계몽운동&lt;br /&gt;
&lt;br /&gt;
#Class&lt;br /&gt;
주제 Red Circle&lt;br /&gt;
단체 Green box&lt;br /&gt;
인물 Yellow pentagon&lt;br /&gt;
활동/사건 Orange&lt;br /&gt;
장소 Pink box&lt;br /&gt;
&lt;br /&gt;
#Relation&lt;br /&gt;
isMemberOf	&lt;br /&gt;
leads&lt;br /&gt;
happenedAt&lt;br /&gt;
isInfluencedBy&lt;br /&gt;
isSupportedBy&lt;br /&gt;
isFounderOf &lt;br /&gt;
isPartOf&lt;br /&gt;
isLocatedIn&lt;br /&gt;
&lt;br /&gt;
#Nodes&lt;br /&gt;
애국계몽운동 주제 애국계몽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B9%BC%EB%B3%B4%EB%8B%A4_%EA%B0%95%ED%95%9C_%ED%8E%9C%EC%9D%98_%ED%9E%98_%EC%95%A0%EA%B5%AD%EA%B3%84%EB%AA%BD%EC%9A%B4%EB%8F%99#.ED.81.B4.EB.9E.98.EC.8A.A4.28Class.29&lt;br /&gt;
신민회 단체 신민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B%AF%BC%ED%9A%8C&lt;br /&gt;
안창호 인물 안창호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5%88%EC%B0%BD%ED%98%B8 https://i.namu.wiki/i/8ojIt44ibsfwG2FEsWKiYcaQ3eM3hLeqzy3qLUh1qfiQgk-58LX6lZ66TqlpObnSOkHjbtA8O6PZaLQx4SRqwA.webp&lt;br /&gt;
양기탁 인물 양기탁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6%91%EA%B8%B0%ED%83%81 https://i.namu.wiki/i/mt7gVSFxYfarOytTCxBplZ9ibyYgBSFUwYyNyAVHokUEFu7oVsWiz7R_aUbP4hm2VYtuU6flvEa_wN3E5dzb9g.webp&lt;br /&gt;
신채호 인물 신채호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C%B1%84%ED%98%B8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8/%EB%8B%A8%EC%9E%AC%EC%8B%A0%EC%B1%84%ED%98%B8.jpg&lt;br /&gt;
대한매일신보 단체 대한매일신보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C%80%ED%95%9C%EB%A7%A4%EC%9D%BC%EC%8B%A0%EB%B3%B4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ko/c/c9/%EB%8C%80%ED%95%9C%EB%A7%A4%EC%9D%BC%EC%8B%A0%EB%B3%B4.jpg&lt;br /&gt;
105인_사건 활동/사건 105인_사건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105%EC%9D%B8_%EC%82%AC%EA%B1%B4&lt;br /&gt;
청년운동 활동/사건 청년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B2%AD%EB%85%84%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청년_학우회 단체 청년_학우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B2%AD%EB%85%84%ED%95%99%EC%9A%B0%ED%9A%8C&lt;br /&gt;
교육구국운동 활동/사건 교육구국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5%90%EC%9C%A1%EA%B5%AC%EA%B5%AD%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이용익 인물 이용익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D%B4%EC%9A%A9%EC%9D%B5(%E6%9D%8E%E5%AE%B9%E7%BF%8A)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a/Lee_Yong-ik_Portrait.jpg&lt;br /&gt;
대성학교 단체 대성학교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8C%80%EC%84%B1%ED%95%99%EA%B5%90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1080/1080985.png&lt;br /&gt;
오산학교 단체 오산학교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8%A4%EC%82%B0%ED%95%99%EA%B5%90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1080/1080985.png&lt;br /&gt;
평양 장소 평양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D%8F%89%EC%96%91&lt;br /&gt;
만주 장소 만주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A7%8C%EC%A3%BC&lt;br /&gt;
민족산업진흥운동 활동/사건 민족산업진흥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AF%BC%EC%A1%B1%EC%82%B0%EC%97%85%EC%A7%84%ED%9D%A5%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신흥무관학교 단체 신흥무관학교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D%9D%A5%EB%AC%B4%EA%B4%80%ED%95%99%EA%B5%90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1080/1080985.png&lt;br /&gt;
신간회 단체 신간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A%B0%84%ED%9A%8C&lt;br /&gt;
근우회 단체 근우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7%BC%EC%9A%B0%ED%9A%8C&lt;br /&gt;
안재홍 인물 안재홍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5%88%EC%9E%AC%ED%99%8D https://scsgozneamae10236445.cdn.ntruss.com/data2/content/image/2019/05/02/.cache/512/201905020886923.jpg&lt;br /&gt;
원산_총파업 활동/사건 원산_총파업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B%90%EC%82%B0%EC%B4%9D%ED%8C%8C%EC%97%85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활동/사건 광주학생항일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4%91%EC%A3%BC%ED%95%99%EC%83%9D%ED%95%AD%EC%9D%BC%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원산 장소 원산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B%90%EC%82%B0&lt;br /&gt;
광주 장소 광주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4%91%EC%A3%BC&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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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전문학교 단체 보성전문학교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B3%B4%EC%84%B1%EC%A0%84%EB%AC%B8%ED%95%99%EA%B5%90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1080/1080985.png&lt;br /&gt;
한성 장소 한성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D%95%9C%EC%84%B1&lt;br /&gt;
손병희 인물 손병희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6%90%EB%B3%91%ED%9D%AC(%E5%AD%AB%E7%A7%89%E7%86%99) https://cdn.labortoday.co.kr/news/photo/201902/156851_71011_1715.jpg&lt;br /&gt;
조선교육령 활동/사건 조선교육령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A1%B0%EC%84%A0%EA%B5%90%EC%9C%A1%EB%A0%B9&lt;br /&gt;
근대학교_설립운동 활동/사건 근대학교_설립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7%BC%EB%8C%80%ED%95%99%EA%B5%90_%EC%84%A4%EB%A6%BD%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베델 인물 베델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B2%A0%EB%8D%B8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8/88/Ernest_Bethell.png&lt;br /&gt;
통감부 단체 통감부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D%86%B5%EA%B0%90%EB%B6%80&lt;br /&gt;
국채보상운동 활동/사건 국채보상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5%AD%EC%B1%84%EB%B3%B4%EC%83%81%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보안회 단체 보안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B3%B4%EC%95%88%ED%9A%8C&lt;br /&gt;
러일전쟁 활동/사건 러일전쟁 null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3522/3522092.png&lt;br /&gt;
황무지_개간_반대운동 활동/사건 황무지_개간_반대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D%99%A9%EB%AC%B4%EC%A7%80_%EA%B0%9C%EA%B0%84_%EB%B0%98%EB%8C%80_%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시민_대회 활동/사건 시민_대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9C%EB%AF%BC_%EB%8C%80%ED%9A%8C&lt;br /&gt;
심상진 인물 심상진 &lt;br /&gt;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B%90%EC%84%B8%EC%84%B1 http://dh.aks.ac.kr/~dh_edu/wiki/images/d/d0/%EC%8B%AC%EC%83%81%EC%A7%84.jpg&lt;br /&gt;
송수만 인물 송수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6%A1%EC%88%98%EB%A7%8C&amp;amp;action=edit&amp;amp;redlink=1 http://dh.aks.ac.kr/~dh_edu/wiki/images/f/f5/%EC%86%A1%EC%88%98%EB%A7%8C.jpg&lt;br /&gt;
요동_반도 장소 요동_반도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A%94%EB%8F%99%EB%B0%98%EB%8F%84&amp;amp;action=edit&amp;amp;redlink=1&lt;br /&gt;
&lt;br /&gt;
#Links&lt;br /&gt;
신민회 애국계몽운동 isPartOf&lt;br /&gt;
대한매일신보 애국계몽운동 isPartOf&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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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전문학교 조선교육령 isInfluencedBy&lt;br /&gt;
보성전문학교 근대학교_설립운동 isInfluencedBy&lt;br /&gt;
국채보상운동 대한매일신보 isInfluencedBy&lt;br /&gt;
통감부 대한매일신보 isInfluencedBy&lt;br /&gt;
양기탁 대한매일신보 leads&lt;br /&gt;
베델 대한매일신보 leads&lt;br /&gt;
신채호 대한매일신보 leads&lt;br /&gt;
보안회 시민_대회 leads&lt;br /&gt;
보안회 황무지_개간_반대운동 leads&lt;br /&gt;
송수만 보안회 isMemberOf &lt;br /&gt;
심상진 보안회 isMemberOf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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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_대회 한성 happenedA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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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 러일전쟁 isInfluencedBy&lt;br /&gt;
&lt;br /&gt;
#End&lt;br /&gt;
&amp;lt;/pre&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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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12:16:00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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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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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 대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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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12:14: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7월 20일과 7월 21일에도 보안회는 한어학교에서 또다시 대규모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회원뿐만 아니라 수천 명의 서울 시민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시민대회의 연단에 오른 연사들은 일본의 대한 제국 산림·천택·원야·진황지 개간 이권 요구를 격렬하게 성토하고, 송수만과 송인섭을 일본 측에서 부당하게 체포 구금하고 있는 것을 강력하게 규탄했다.&lt;br /&gt;
7월 21일 시민대회에서 획기적이었던 일은 보안회가 서울에 있는 각국 공사관들과 외교 활동을 전개한 것이다. 보안회는 시민대회의 결의를 대한 제국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을 비롯한 각국 공사관에도 알리고 협조를 요청했다. 국제 외교활동을 통한 투쟁은 일본 공사관이 가장 두려워하던 활동이었다. 일본 공사관은 이날 무장한 일본군 약 100여 명을 대회장에 투입하여 모인 군중들을 위협했다. 보안회의 민족운동이 격화되고 비판과 공격의 화살이 대한 제국 정부로 날아들자 외부는 7월 20일자로 일본공사에게 보낸 회답문을 공개했다. 외부는 이 회답문에서 일본 공사에게 한국 정부는 어떠한 외국인에게도 한국의 황무지 개간권을 허여(許與)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lt;br /&gt;
7월 22일 열린 한어학교의 시민대회 도중 일본 경찰이 들어와 보안회원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원세성, 심상진 등 회원들을 체포했다. 일본군이 무력을 이용하여 한어학교를 완전히 폐쇄하였으나, 보안회원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종로로 나와 시민들과 함께 가두 투쟁을 시작했다. 일본 기마헌병대들이 권총과 일본도를 휘두르며 위협하였으나 보안회 회원들과 시위 군중들은 전혀 해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욱 분노하여 격렬한 가두 투쟁을 계속했다. 날이 어두워져도 가두 투쟁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황제가 칙령을 내려 밤이 늦었으니 해산하도록 설득했으나 군중은 듣지 않고 투쟁을 계속했다. 결국 이날 밤 11시가 되자 일본 헌병대는 수백 명의 무장한 헌병들을 추가로 출동시켰고, 보안회는 어둠 속에서 무장한 일본 헌병대와 충돌하면 살상자가 발생할 것을 염려하여 일단 해산을 결정했다. 7월 22일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진 집회와 시위, 가두 투쟁은 보안회의 민족 운동이 절정을 이룬 것이었으며, 또 일본군 정면으로 가장 격렬하게 대치한 운동이었다.&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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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애국계몽운동.ls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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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12:14: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pre&amp;gt;&lt;br /&gt;
#Project&lt;br /&gt;
h1 애국계몽운동&lt;br /&gt;
&lt;br /&gt;
#Class&lt;br /&gt;
주제 Red Circle&lt;br /&gt;
단체 Green box&lt;br /&gt;
인물 Yellow pentagon&lt;br /&gt;
활동/사건 Orange&lt;br /&gt;
장소 Pink box&lt;br /&gt;
&lt;br /&gt;
#Relation&lt;br /&gt;
isMemberOf	&lt;br /&gt;
leads&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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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InfluencedBy&lt;br /&gt;
isSupportedBy&lt;br /&gt;
isFounderOf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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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계몽운동 주제 애국계몽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B9%BC%EB%B3%B4%EB%8B%A4_%EA%B0%95%ED%95%9C_%ED%8E%9C%EC%9D%98_%ED%9E%98_%EC%95%A0%EA%B5%AD%EA%B3%84%EB%AA%BD%EC%9A%B4%EB%8F%99#.ED.81.B4.EB.9E.98.EC.8A.A4.28Class.29&lt;br /&gt;
신민회 단체 신민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A0%EB%AF%BC%ED%9A%8C&lt;br /&gt;
안창호 인물 안창호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95%88%EC%B0%BD%ED%98%B8 https://i.namu.wiki/i/8ojIt44ibsfwG2FEsWKiYcaQ3eM3hLeqzy3qLUh1qfiQgk-58LX6lZ66TqlpObnSOkHjbtA8O6PZaLQx4SRqwA.webp&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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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장소 평양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D%8F%89%EC%96%91&lt;br /&gt;
만주 장소 만주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A7%8C%EC%A3%BC&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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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교육령 활동/사건 조선교육령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A1%B0%EC%84%A0%EA%B5%90%EC%9C%A1%EB%A0%B9&lt;br /&gt;
근대학교_설립운동 활동/사건 근대학교_설립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7%BC%EB%8C%80%ED%95%99%EA%B5%90_%EC%84%A4%EB%A6%BD%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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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부 단체 통감부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D%86%B5%EA%B0%90%EB%B6%80&lt;br /&gt;
국채보상운동 활동/사건 국채보상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A%B5%AD%EC%B1%84%EB%B3%B4%EC%83%81%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보안회 단체 보안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B%B3%B4%EC%95%88%ED%9A%8C&lt;br /&gt;
러일전쟁 활동/사건 러일전쟁 null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3522/3522092.png&lt;br /&gt;
황무지_개간_반대운동 활동/사건 황무지_개간_반대운동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D%99%A9%EB%AC%B4%EC%A7%80_%EA%B0%9C%EA%B0%84_%EB%B0%98%EB%8C%80_%EC%9A%B4%EB%8F%99 https://cdn-icons-png.flaticon.com/512/2388/2388939.png&lt;br /&gt;
시민_대회 활동/사건 시민_대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EC%8B%9C%EB%AF%BC_%EB%8C%80%ED%9A%8C&lt;br /&gt;
심상진 인물 심상진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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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만 인물 송수만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6%A1%EC%88%98%EB%A7%8C&amp;amp;action=edit&amp;amp;redlink=1 http://dh.aks.ac.kr/~dh_edu/wiki/images/f/f5/%EC%86%A1%EC%88%98%EB%A7%8C.jpg&lt;br /&gt;
요동_반도 장소 요동_반도 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A%94%EB%8F%99%EB%B0%98%EB%8F%84&amp;amp;action=edit&amp;amp;redlink=1&lt;br /&gt;
&lt;br /&gt;
#Links&lt;br /&gt;
신민회 애국계몽운동 isPartOf&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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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lt;br /&gt;
&amp;lt;/pre&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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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안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3%B4%EC%95%88%ED%9A%8C&amp;diff=35409"/>
		<updated>2023-12-11T12:11: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보안회 (保安會)&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1904년 7월 13일, 서울 종로 백목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로, 일본의 황무지 침탈을 저지하기 위해 창립된 단체이다.&amp;lt;/br&amp;gt; 회(會)의 명칭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뜻한다. &amp;lt;ref&amp;gt;“나라 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으로 최제우(崔濟愚, 1824~1864)가 동학을 창도할 때에 외세로부터 국권을 지킬 것을 강조한 계책이다.&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설립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6&amp;quot; height=&amp;quot;392&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PND4yswjA7U&amp;quot; title=&amp;quot;영상한국사 I 098 러일전쟁 발발과 한일의정서 체결&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일어난 뒤 전세가 일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자 일본은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체결을 강요하고, 이어서 각종 이권을 탈취하는 등 경제적 침탈을 강화하였다.&lt;br /&gt;
&lt;br /&gt;
6월에 나가모리(長森藤吉郎)가 어공원(御供院) 소관의 산림, 천택(川澤)과 황무지 개간권을 이양 받고자 일본공사를 통해 대한제국 정부에 압력을 가해왔다. 이에 유학(幼學)과 품관(品官)들은 반대 상소운동을 벌였고, 각 언론기관도 반대 사설을 실어 여론 형성을 주도하였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일제가 이 계획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보다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반대운동을 벌여야 할 필요성을 느낀 [[송수만]](宋秀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3815 심상진(沈相震)]등이 1904년 7월 13일서울 종로 백목전(白木廛)에서 중민회의(衆民會議)를 열어 보안회를 발기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lt;br /&gt;
&lt;br /&gt;
* 1904.07.13 &lt;br /&gt;
 1. 종로 백목전에 모인 100여 명의 시민들 앞에서 송수만은 황무지를 일본에게 차여(借與)함은 불가하며 황무지 차여에 중개 역할을 한 국내 인사들을 성토하자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amp;lt;/br&amp;gt;&lt;br /&gt;
 2. 대한 제국 경위원(警衛院)과 경무청에서 '''경찰관을 파견'''하고, 일본 헌병사령부에서는 '''헌병을 파견'''하여 '''집회를 감시하고 참석자들을 해산시켰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7.14&lt;br /&gt;
 - 100여 명이 백목전에 모여, 일본의 요구를 철폐시킬 때까지 매일 집회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송수만, 심상진 등은 전국에 '''통문을 발하고''' 정부의 각 부서와 대관들의 집에 '''공함(公函)을 보내어''', 보안회 임시회의소에서 회동할 것을 요구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16&lt;br /&gt;
 - 집회에서는 회장에 신기선(申箕善), 부회장에 송인섭(宋寅燮)을 천거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대변회장(代辯會長)에 송수만을 선출했다. 이날 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 일본 경찰이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무릅쓰고 '''송수만과 송인섭을 붙잡아 갔다'''. 대한 제국 외부에서는 일본공사에게 송수만과 송인섭을 붙잡아 간 것에 대해 항의하고, 두 사람의 신병을 '''한국 관아로 인도할 것을 요청'''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17 &lt;br /&gt;
 - 고종은 경무청에 칙령을 내려 '''보안회의 집회를 금지&amp;amp;해산하게 했다'''. 이에 보안회는 7월 17일부터 전동(典洞)의 한어학교(漢語學校)로 '''회의 개최 장소를 이전'''하고 일본공사관에 구속된 송수만 대신 원세성을 대변회장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와 송수만·송인섭 등의 '''체포에 대해 격렬히 성토하는 운동을 계속'''해 나갔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20~21&lt;br /&gt;
 - 한어학교에서 또다시 대규모 [[시민 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회원뿐만 아니라 수천 명의 서울 시민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시민 대회]]의 연단에 오른 연사들은 일본의 '''대한 제국 산림·천택·원야·진황지 개간 이권 요구를 격렬하게 성토'''하고, '''송수만과 송인섭을 일본 측에서 부당하게 체포 구금하고 있는 것을 강력하게 규탄'''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22&lt;br /&gt;
 - 한어학교의 [[시민 대회]] 도중 일본 경찰이 들어와 보안회원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원세성, 심상진 등 회원들을 체포했다. '''일본군이 무력을 이용하여 한어학교를 완전히 폐쇄'''하였으나, 보안회원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종로로 나와 '''시민들과 함께 가두 투쟁을 시작'''했다. 일본 기마헌병대들이 권총과 일본도를 휘두르며 위협하였으나 보안회 회원들과 시위 군중들은 전혀 해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욱 분노하여 격렬한 가두 투쟁을 계속했다.&amp;lt;/br&amp;gt;&lt;br /&gt;
 - 결국 이날 밤 11시가 되자 일본 헌병대는 수백 명의 무장한 헌병들을 추가로 출동시켰고, 보안회는 어둠 속에서 무장한 일본 헌병대와 충돌하면 '''살상자가 발생할 것을 염려하여 일단 해산을 결정'''했다. 7월 22일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진 집회와 시위, 가두 투쟁은 '''보안회의 민족 운동이 절정을 이룬 것'''이었으며, 또 일본군 정면으로 가장 격렬하게 대치한 운동이었다.&lt;br /&gt;
&lt;br /&gt;
===해산===&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의 황무지 점탈 계획이 저지당한 뒤, 일본군은 '''회장 원세성과 회원 신형균·이범석 등을 다시 체포'''하는 등 보안회에 대한 보복을 자행했다. 또한 한국 국민들을 위협할 목적으로 8월 1일 저녁 서울 시내 중요한 거리에 '''일본군 병참사령부 표목을 박았다'''. 이는 서울이 일본군 지배하에 있음을 한국 국민들에게 상기시키고, 한일의정서에 따라 일본군이 군사상 필요한 토지를 수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기 위한 행위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보안회 회원들은 일제의 황무지 침탈을 저지하는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창립 당시 강령에 따라 보안회를 사실상 해체하여 종결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이 원세성 등을 체포하고 석방하지 않는 것을 보고, 보안회의 속개를 준비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8월 29일 전동의 입전 도가(立廛 都家)에서 약 70여 명의 속개 준비 회원들이 모여 이건석(李建奭)을 회장을 선출하며 '''보안회를 다시 열었다'''. 그러자 곧바로 일본 헌병대와 경관들이 와서 '''회장 이건석을 체포'''하였다. 일본군 헌병사령관은 새로운 회명을 짓고 사전허락을 받을 것을 요구했고, 회원들은 새로운 출발의 의미로 9윌 11일에 회의 명칭을 ‘협동회(協同會)’로 개칭하여 운동을 계속하기로 결의했다. 협동회의 활동은 '''일제의 견제를 받아 점차 위축'''되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amp;lt;/br&amp;gt;&lt;br /&gt;
*보안회에서 벌인 '''황무지개척 반대운동'''은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를 방불하게 하는 민중 구국운동이었다. 이로 인해 일제는 1908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6671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설치될 때까지 황무지개척권에 관한 거론을 유보하게 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황무지개간반대운동.png|400px|center|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사진이다.]]&lt;br /&gt;
[[파일: 보안회 기사.png|400px|center|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을 주도한 보안회의 신문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창립 이후 단 1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활동했음에도 민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며 일제의 무력 위협에 대항했다.&amp;lt;/br&amp;gt;보안회의 민족 운동은 대한 제국 정부를 움직여 결국 '''일제의 황무지 침탈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amp;lt;/br&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보안회가 대한 제국 정부의 금령과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함으로써, 그 뒤를 이어 애국계몽운동 단체들이 연달아 창립되고 '''구국 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보안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보안회 창설과 관련된 사건들, 그리고 보안회의 활동들에 대해 작성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보안회의 설립과 활동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언급하여 연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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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A%94%EB%8F%99%EB%B0%98%EB%8F%84&amp;diff=35403</id>
		<title>요동반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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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12:09:5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기여==&lt;br /&gt;
*러일전쟁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의 발생 장소에 대해 작성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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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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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8:43: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시키기 위해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일본군은 대한 제국 황제의 궁궐을 둘러싸고 무력 위협의 분위기 속에서 소위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729394&amp;amp;cid=42140&amp;amp;categoryId=42140 '''제1차 한일의정서''']는 한국의 ‘시정(施政)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간섭, 군사전략상 필요한 토지 수용권, 내란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배제 및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협력할 것 등을 규정한 침략적인 협정이었다.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현지 정세 조사를 위해 '''3월 10일''' 내한했는데,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勸助)는 이때 이토에게 한국에서 획득해야 할 이권으로서 철도·해운·어업권·토지·우편·전신·광업 등을 건의했다. 이토는 귀국 즉시 이 건의안을 참작하여 「대한정책(對韓政策)」과 「대한시설강령(對韓施設綱領)」을 작성하고, 1904년 5월 31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가결시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의 골자&lt;br /&gt;
&lt;br /&gt;
① 정치적으로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예속시켜 일본이 실권을 장악한다.&amp;lt;/br&amp;gt;&lt;br /&gt;
② 경제적으로 이권을 획득하여 확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 〈대한시설강령〉에서 국방·외교·재정·교통·통신·척식(拓殖) 등에서 대한정책을 실천할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제6항인 척식 부문에서 '''농업과 황무지 개간권 장악에 대해 규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서 일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사업은 농사라고 단정'''했다. 한국에 일본인이 진출함으로써 일본의 과잉 인구를 이식시킬 수 있는 땅을 얻고, 부족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amp;lt;/br&amp;gt; 또한 일본 농가를 위해 한국을 개방시키는 수단으로 두 가지 대책을 설정하였다. 하나는 '''일본인 개인 명의로 한국 정부로부터 관유(官有) 황무지를 경작 및 목축할 수 있는 특허나 위탁을 받고, 그것을 일본 정부의 관리 하에 일본인이 경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 다른 하나는 일본인 거류지에서 1리(里) 밖일지라도 '''민유지를 경작 또는 목축 등의 목적으로 일본인이 매매·임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정책에 따라 주한일본공사는 대한 제국 궁내부에 '''어공원(御供院)을 신설'''하여, 전국의 황무지를 궁내부 소유로 하여 어공원이 관장케 하고 일본 측은 어공원과 계약하여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획득하는 방법'''을 취하도록 했다.&amp;lt;/br&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계약서안 발송====&lt;br /&gt;
&lt;br /&gt;
- 사전조치를 마친 일본공사 하야시는 '''1904년 6월 6'''일자 외교 공문으로 대한 제국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일본인 나가모리에게 특허해 줄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계약서안’을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에게 발송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1) 대한 제국 전국의 미간지를 개간·정리·개량·척식하여 경영할 수 있는 모든 권리&amp;lt;/br&amp;gt;&lt;br /&gt;
2) 쌀·보리·콩 기타 모든 농산물 및 수목(樹木)·과실 등을 재배·수확·처분할 권리&amp;lt;/br&amp;gt;&lt;br /&gt;
3) 목축·어획할 권리 등 이익을 위한 '''토지 사용의 모든 권리를 일본인 나가모리가 갖도록''' 한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권의 소유 기간은 50년으로 하며, 나가모리가 점유한 이 이권의 토지는 만 5년간 완전 면세의 특권을 갖게 하였다. 나가모리의 이권은 그 상속인 또는 권리계승자에게 상속 또는 양도할 수 있으며, 50년 기한이 만료되면 협의에 의해 기한을 연장 또는 재행할 수 있었다.&amp;lt;/br&amp;gt;&lt;br /&gt;
만일 한국정부가 연장 또는 재행을 허가하지 않는 경우 나가모리가 그간 이 토지에 투자한 자본금의 원금 총액과 연 5%의 이자 누적계산분 총액 전부를 한국정부가 일시에 지불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한국정부의 재정으로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한국의 황무지를 사실상 영구히 점탈하겠다는 안'''이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반대운동을 조직적이고도 더욱 강력하게 전개하고자 전 의관 송수만(宋秀萬), 심상진(沈相震) 등은 [[보안회]](保安會)를 조직하고, 구국민중운동(救國民衆運動)으로 더욱 확대, 발전시켜나갔다.&lt;br /&gt;
&lt;br /&gt;
보안회는 종로에다 소청(疏廳)을 두고 공개성토대회를 열어 일본의 요구에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전국에 통문을 발하였다. 한편, 정부요로에도 공함을 보내어 일제에 단호하게 대처해나갈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일본공사관, 나아가 각국 공사에게도 서한을 보내어 국제여론에 호소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이처럼 보안회의 활동이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자, 당황한 일본은 보안회의 해산과 집회금지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그러나 비등하는 국론을 등에 업은 보안회에 대하여 정부로서는 미온적인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lt;br /&gt;
&lt;br /&gt;
이에 일본은 7월 16일부터 헌병과 경찰을 동원하여 해산을 강요하는 한편, 송인섭(宋寅燮)·송수만·원세성(元世性) 등의 보안회 주요간부들을 일본공사관이나 일본군영으로 납치·억류하는 등 강경책으로 맞섰다. 이때 언론에서는 연일 일본의 불법행위를 폭로, 규탄하였고, 정부에서는 피랍자의 반환교섭에 전력을 기울였다.&lt;br /&gt;
&lt;br /&gt;
한편, 보안회의 활동과 함께 유생·대신들의 상소운동도 더욱 강경, 격렬해졌다. 봉상사부제조(奉常司副提調) 이순범(李淳範) 등은 상소하여 일본공사의 불법행위를 통렬히 논박한 뒤, 그를 추방시켜 본국에서 징죄하도록 하라는 주장까지 펴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 일제는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거족적인 반일운동을 강경한 방법으로 진압하였다. 일제는 1904년 7월 20일 서울 내외에 군사경찰제를 실시하고, 헌병대장에게 ‘군사경찰시행에 관한 실시사항’이란 훈령을 내려, 소위 치안에 방해가 되는 집회를 금지시키고, 황무지개간권에 반대하는 신문의 발행을 정지했으며, 반대운동을 주도한 보안회 간부들을 체포 구금하는 등 군사경찰에 의한 '''탄압을 강화'''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결국 보안회 중심의 거족적인 황무지개간권 반대운동에 직면하여, 정부는 “전국의 국토를 尺寸이라도 절대로 외국인에게 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3천여 명의 군중이 운집한 항의집회의 해산을 종용하자, 보안회는 집회투쟁을 보류하였다.&lt;br /&gt;
&lt;br /&gt;
* 보안회는 일본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철회의 약속을 받고 해산하였지만, 보안회 都總務였던 李儁을 중심으로 大韓協同會(1904. 9)가 결성되어 일본의 황무지에 대한 야욕을 확실하게 분쇄하고자 하였다. 그 후 대한협동회는 이준을 회장으로 선출하고,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협조적이었던 궁내부대신 閔丙奭과 외부대신 李夏榮의 탄핵을 계획했으며, '''일제의 토지침탈 획책 등을 성토하며 반일운동을 전개'''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이들의 격렬한 반일투쟁의 결과 대한제국 정부가 마침내 ‘長森荒蕪付許可文券’을 돌려받고 일제의 황무지 침탈야욕을 저지할 수 있게 되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amp;lt;/br&amp;gt;&lt;br /&gt;
*보안회의 이와 같은 반대운동은 1898년독립협회가 벌인 만민공동회 이후 최대의 민중구국운동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C%B4%EC%A7%80_%EA%B0%9C%EA%B0%84_%EB%B0%98%EB%8C%80_%EC%9A%B4%EB%8F%99&amp;diff=35051</id>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C%B4%EC%A7%80_%EA%B0%9C%EA%B0%84_%EB%B0%98%EB%8C%80_%EC%9A%B4%EB%8F%99&amp;diff=35051"/>
		<updated>2023-12-11T08:42: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 결과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시키기 위해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일본군은 대한 제국 황제의 궁궐을 둘러싸고 무력 위협의 분위기 속에서 소위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 '''제1차 한일의정서'''는 한국의 ‘시정(施政)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간섭, 군사전략상 필요한 토지 수용권, 내란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배제 및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협력할 것 등을 규정한 침략적인 협정이었다.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현지 정세 조사를 위해 '''3월 10일''' 내한했는데,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勸助)는 이때 이토에게 한국에서 획득해야 할 이권으로서 철도·해운·어업권·토지·우편·전신·광업 등을 건의했다. 이토는 귀국 즉시 이 건의안을 참작하여 「대한정책(對韓政策)」과 「대한시설강령(對韓施設綱領)」을 작성하고, 1904년 5월 31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가결시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의 골자&lt;br /&gt;
&lt;br /&gt;
① 정치적으로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예속시켜 일본이 실권을 장악한다.&amp;lt;/br&amp;gt;&lt;br /&gt;
② 경제적으로 이권을 획득하여 확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 〈대한시설강령〉에서 국방·외교·재정·교통·통신·척식(拓殖) 등에서 대한정책을 실천할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제6항인 척식 부문에서 '''농업과 황무지 개간권 장악에 대해 규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서 일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사업은 농사라고 단정'''했다. 한국에 일본인이 진출함으로써 일본의 과잉 인구를 이식시킬 수 있는 땅을 얻고, 부족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amp;lt;/br&amp;gt; 또한 일본 농가를 위해 한국을 개방시키는 수단으로 두 가지 대책을 설정하였다. 하나는 '''일본인 개인 명의로 한국 정부로부터 관유(官有) 황무지를 경작 및 목축할 수 있는 특허나 위탁을 받고, 그것을 일본 정부의 관리 하에 일본인이 경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 다른 하나는 일본인 거류지에서 1리(里) 밖일지라도 '''민유지를 경작 또는 목축 등의 목적으로 일본인이 매매·임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정책에 따라 주한일본공사는 대한 제국 궁내부에 '''어공원(御供院)을 신설'''하여, 전국의 황무지를 궁내부 소유로 하여 어공원이 관장케 하고 일본 측은 어공원과 계약하여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획득하는 방법'''을 취하도록 했다.&amp;lt;/br&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계약서안 발송====&lt;br /&gt;
&lt;br /&gt;
- 사전조치를 마친 일본공사 하야시는 '''1904년 6월 6'''일자 외교 공문으로 대한 제국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일본인 나가모리에게 특허해 줄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계약서안’을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에게 발송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1) 대한 제국 전국의 미간지를 개간·정리·개량·척식하여 경영할 수 있는 모든 권리&amp;lt;/br&amp;gt;&lt;br /&gt;
2) 쌀·보리·콩 기타 모든 농산물 및 수목(樹木)·과실 등을 재배·수확·처분할 권리&amp;lt;/br&amp;gt;&lt;br /&gt;
3) 목축·어획할 권리 등 이익을 위한 '''토지 사용의 모든 권리를 일본인 나가모리가 갖도록''' 한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권의 소유 기간은 50년으로 하며, 나가모리가 점유한 이 이권의 토지는 만 5년간 완전 면세의 특권을 갖게 하였다. 나가모리의 이권은 그 상속인 또는 권리계승자에게 상속 또는 양도할 수 있으며, 50년 기한이 만료되면 협의에 의해 기한을 연장 또는 재행할 수 있었다.&amp;lt;/br&amp;gt;&lt;br /&gt;
만일 한국정부가 연장 또는 재행을 허가하지 않는 경우 나가모리가 그간 이 토지에 투자한 자본금의 원금 총액과 연 5%의 이자 누적계산분 총액 전부를 한국정부가 일시에 지불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한국정부의 재정으로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한국의 황무지를 사실상 영구히 점탈하겠다는 안'''이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반대운동을 조직적이고도 더욱 강력하게 전개하고자 전 의관 송수만(宋秀萬), 심상진(沈相震) 등은 [[보안회]](保安會)를 조직하고, 구국민중운동(救國民衆運動)으로 더욱 확대, 발전시켜나갔다.&lt;br /&gt;
&lt;br /&gt;
보안회는 종로에다 소청(疏廳)을 두고 공개성토대회를 열어 일본의 요구에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전국에 통문을 발하였다. 한편, 정부요로에도 공함을 보내어 일제에 단호하게 대처해나갈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일본공사관, 나아가 각국 공사에게도 서한을 보내어 국제여론에 호소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이처럼 보안회의 활동이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자, 당황한 일본은 보안회의 해산과 집회금지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그러나 비등하는 국론을 등에 업은 보안회에 대하여 정부로서는 미온적인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lt;br /&gt;
&lt;br /&gt;
이에 일본은 7월 16일부터 헌병과 경찰을 동원하여 해산을 강요하는 한편, 송인섭(宋寅燮)·송수만·원세성(元世性) 등의 보안회 주요간부들을 일본공사관이나 일본군영으로 납치·억류하는 등 강경책으로 맞섰다. 이때 언론에서는 연일 일본의 불법행위를 폭로, 규탄하였고, 정부에서는 피랍자의 반환교섭에 전력을 기울였다.&lt;br /&gt;
&lt;br /&gt;
한편, 보안회의 활동과 함께 유생·대신들의 상소운동도 더욱 강경, 격렬해졌다. 봉상사부제조(奉常司副提調) 이순범(李淳範) 등은 상소하여 일본공사의 불법행위를 통렬히 논박한 뒤, 그를 추방시켜 본국에서 징죄하도록 하라는 주장까지 펴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 일제는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거족적인 반일운동을 강경한 방법으로 진압하였다. 일제는 1904년 7월 20일 서울 내외에 군사경찰제를 실시하고, 헌병대장에게 ‘군사경찰시행에 관한 실시사항’이란 훈령을 내려, 소위 치안에 방해가 되는 집회를 금지시키고, 황무지개간권에 반대하는 신문의 발행을 정지했으며, 반대운동을 주도한 보안회 간부들을 체포 구금하는 등 군사경찰에 의한 '''탄압을 강화'''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결국 보안회 중심의 거족적인 황무지개간권 반대운동에 직면하여, 정부는 “전국의 국토를 尺寸이라도 절대로 외국인에게 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3천여 명의 군중이 운집한 항의집회의 해산을 종용하자, 보안회는 집회투쟁을 보류하였다.&lt;br /&gt;
&lt;br /&gt;
* 보안회는 일본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철회의 약속을 받고 해산하였지만, 보안회 都總務였던 李儁을 중심으로 大韓協同會(1904. 9)가 결성되어 일본의 황무지에 대한 야욕을 확실하게 분쇄하고자 하였다. 그 후 대한협동회는 이준을 회장으로 선출하고,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협조적이었던 궁내부대신 閔丙奭과 외부대신 李夏榮의 탄핵을 계획했으며, '''일제의 토지침탈 획책 등을 성토하며 반일운동을 전개'''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이들의 격렬한 반일투쟁의 결과 대한제국 정부가 마침내 ‘長森荒蕪付許可文券’을 돌려받고 일제의 황무지 침탈야욕을 저지할 수 있게 되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amp;lt;/br&amp;gt;&lt;br /&gt;
*보안회의 이와 같은 반대운동은 1898년독립협회가 벌인 만민공동회 이후 최대의 민중구국운동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C%B4%EC%A7%80_%EA%B0%9C%EA%B0%84_%EB%B0%98%EB%8C%80_%EC%9A%B4%EB%8F%99&amp;diff=35047</id>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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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8:39: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 반대운동 시작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시키기 위해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일본군은 대한 제국 황제의 궁궐을 둘러싸고 무력 위협의 분위기 속에서 소위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 '''제1차 한일의정서'''는 한국의 ‘시정(施政)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간섭, 군사전략상 필요한 토지 수용권, 내란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배제 및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협력할 것 등을 규정한 침략적인 협정이었다.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현지 정세 조사를 위해 '''3월 10일''' 내한했는데,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勸助)는 이때 이토에게 한국에서 획득해야 할 이권으로서 철도·해운·어업권·토지·우편·전신·광업 등을 건의했다. 이토는 귀국 즉시 이 건의안을 참작하여 「대한정책(對韓政策)」과 「대한시설강령(對韓施設綱領)」을 작성하고, 1904년 5월 31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가결시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의 골자&lt;br /&gt;
&lt;br /&gt;
① 정치적으로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예속시켜 일본이 실권을 장악한다.&amp;lt;/br&amp;gt;&lt;br /&gt;
② 경제적으로 이권을 획득하여 확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 〈대한시설강령〉에서 국방·외교·재정·교통·통신·척식(拓殖) 등에서 대한정책을 실천할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제6항인 척식 부문에서 '''농업과 황무지 개간권 장악에 대해 규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서 일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사업은 농사라고 단정'''했다. 한국에 일본인이 진출함으로써 일본의 과잉 인구를 이식시킬 수 있는 땅을 얻고, 부족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amp;lt;/br&amp;gt; 또한 일본 농가를 위해 한국을 개방시키는 수단으로 두 가지 대책을 설정하였다. 하나는 '''일본인 개인 명의로 한국 정부로부터 관유(官有) 황무지를 경작 및 목축할 수 있는 특허나 위탁을 받고, 그것을 일본 정부의 관리 하에 일본인이 경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 다른 하나는 일본인 거류지에서 1리(里) 밖일지라도 '''민유지를 경작 또는 목축 등의 목적으로 일본인이 매매·임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정책에 따라 주한일본공사는 대한 제국 궁내부에 '''어공원(御供院)을 신설'''하여, 전국의 황무지를 궁내부 소유로 하여 어공원이 관장케 하고 일본 측은 어공원과 계약하여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획득하는 방법'''을 취하도록 했다.&amp;lt;/br&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계약서안 발송====&lt;br /&gt;
&lt;br /&gt;
- 사전조치를 마친 일본공사 하야시는 '''1904년 6월 6'''일자 외교 공문으로 대한 제국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일본인 나가모리에게 특허해 줄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계약서안’을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에게 발송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1) 대한 제국 전국의 미간지를 개간·정리·개량·척식하여 경영할 수 있는 모든 권리&amp;lt;/br&amp;gt;&lt;br /&gt;
2) 쌀·보리·콩 기타 모든 농산물 및 수목(樹木)·과실 등을 재배·수확·처분할 권리&amp;lt;/br&amp;gt;&lt;br /&gt;
3) 목축·어획할 권리 등 이익을 위한 '''토지 사용의 모든 권리를 일본인 나가모리가 갖도록''' 한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권의 소유 기간은 50년으로 하며, 나가모리가 점유한 이 이권의 토지는 만 5년간 완전 면세의 특권을 갖게 하였다. 나가모리의 이권은 그 상속인 또는 권리계승자에게 상속 또는 양도할 수 있으며, 50년 기한이 만료되면 협의에 의해 기한을 연장 또는 재행할 수 있었다.&amp;lt;/br&amp;gt;&lt;br /&gt;
만일 한국정부가 연장 또는 재행을 허가하지 않는 경우 나가모리가 그간 이 토지에 투자한 자본금의 원금 총액과 연 5%의 이자 누적계산분 총액 전부를 한국정부가 일시에 지불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한국정부의 재정으로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한국의 황무지를 사실상 영구히 점탈하겠다는 안'''이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반대운동을 조직적이고도 더욱 강력하게 전개하고자 전 의관 송수만(宋秀萬), 심상진(沈相震) 등은 [[보안회]](保安會)를 조직하고, 구국민중운동(救國民衆運動)으로 더욱 확대, 발전시켜나갔다.&lt;br /&gt;
&lt;br /&gt;
보안회는 종로에다 소청(疏廳)을 두고 공개성토대회를 열어 일본의 요구에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전국에 통문을 발하였다. 한편, 정부요로에도 공함을 보내어 일제에 단호하게 대처해나갈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일본공사관, 나아가 각국 공사에게도 서한을 보내어 국제여론에 호소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이처럼 보안회의 활동이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자, 당황한 일본은 보안회의 해산과 집회금지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그러나 비등하는 국론을 등에 업은 보안회에 대하여 정부로서는 미온적인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lt;br /&gt;
&lt;br /&gt;
이에 일본은 7월 16일부터 헌병과 경찰을 동원하여 해산을 강요하는 한편, 송인섭(宋寅燮)·송수만·원세성(元世性) 등의 보안회 주요간부들을 일본공사관이나 일본군영으로 납치·억류하는 등 강경책으로 맞섰다. 이때 언론에서는 연일 일본의 불법행위를 폭로, 규탄하였고, 정부에서는 피랍자의 반환교섭에 전력을 기울였다.&lt;br /&gt;
&lt;br /&gt;
한편, 보안회의 활동과 함께 유생·대신들의 상소운동도 더욱 강경, 격렬해졌다. 봉상사부제조(奉常司副提調) 이순범(李淳範) 등은 상소하여 일본공사의 불법행위를 통렬히 논박한 뒤, 그를 추방시켜 본국에서 징죄하도록 하라는 주장까지 펴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amp;lt;/br&amp;gt;&lt;br /&gt;
*보안회의 이와 같은 반대운동은 1898년독립협회가 벌인 만민공동회 이후 최대의 민중구국운동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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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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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8:39:4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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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시키기 위해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일본군은 대한 제국 황제의 궁궐을 둘러싸고 무력 위협의 분위기 속에서 소위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 '''제1차 한일의정서'''는 한국의 ‘시정(施政)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간섭, 군사전략상 필요한 토지 수용권, 내란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배제 및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협력할 것 등을 규정한 침략적인 협정이었다.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현지 정세 조사를 위해 '''3월 10일''' 내한했는데,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勸助)는 이때 이토에게 한국에서 획득해야 할 이권으로서 철도·해운·어업권·토지·우편·전신·광업 등을 건의했다. 이토는 귀국 즉시 이 건의안을 참작하여 「대한정책(對韓政策)」과 「대한시설강령(對韓施設綱領)」을 작성하고, 1904년 5월 31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가결시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의 골자&lt;br /&gt;
&lt;br /&gt;
① 정치적으로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예속시켜 일본이 실권을 장악한다.&amp;lt;/br&amp;gt;&lt;br /&gt;
② 경제적으로 이권을 획득하여 확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 〈대한시설강령〉에서 국방·외교·재정·교통·통신·척식(拓殖) 등에서 대한정책을 실천할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제6항인 척식 부문에서 '''농업과 황무지 개간권 장악에 대해 규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서 일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사업은 농사라고 단정'''했다. 한국에 일본인이 진출함으로써 일본의 과잉 인구를 이식시킬 수 있는 땅을 얻고, 부족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amp;lt;/br&amp;gt; 또한 일본 농가를 위해 한국을 개방시키는 수단으로 두 가지 대책을 설정하였다. 하나는 '''일본인 개인 명의로 한국 정부로부터 관유(官有) 황무지를 경작 및 목축할 수 있는 특허나 위탁을 받고, 그것을 일본 정부의 관리 하에 일본인이 경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 다른 하나는 일본인 거류지에서 1리(里) 밖일지라도 '''민유지를 경작 또는 목축 등의 목적으로 일본인이 매매·임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정책에 따라 주한일본공사는 대한 제국 궁내부에 '''어공원(御供院)을 신설'''하여, 전국의 황무지를 궁내부 소유로 하여 어공원이 관장케 하고 일본 측은 어공원과 계약하여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획득하는 방법'''을 취하도록 했다.&amp;lt;/br&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계약서안 발송====&lt;br /&gt;
&lt;br /&gt;
- 사전조치를 마친 일본공사 하야시는 '''1904년 6월 6'''일자 외교 공문으로 대한 제국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일본인 나가모리에게 특허해 줄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계약서안’을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에게 발송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1) 대한 제국 전국의 미간지를 개간·정리·개량·척식하여 경영할 수 있는 모든 권리&amp;lt;/br&amp;gt;&lt;br /&gt;
2) 쌀·보리·콩 기타 모든 농산물 및 수목(樹木)·과실 등을 재배·수확·처분할 권리&amp;lt;/br&amp;gt;&lt;br /&gt;
3) 목축·어획할 권리 등 이익을 위한 '''토지 사용의 모든 권리를 일본인 나가모리가 갖도록''' 한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권의 소유 기간은 50년으로 하며, 나가모리가 점유한 이 이권의 토지는 만 5년간 완전 면세의 특권을 갖게 하였다. 나가모리의 이권은 그 상속인 또는 권리계승자에게 상속 또는 양도할 수 있으며, 50년 기한이 만료되면 협의에 의해 기한을 연장 또는 재행할 수 있었다.&amp;lt;/br&amp;gt;&lt;br /&gt;
만일 한국정부가 연장 또는 재행을 허가하지 않는 경우 나가모리가 그간 이 토지에 투자한 자본금의 원금 총액과 연 5%의 이자 누적계산분 총액 전부를 한국정부가 일시에 지불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한국정부의 재정으로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한국의 황무지를 사실상 영구히 점탈하겠다는 안'''이었다.&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반대운동을 조직적이고도 더욱 강력하게 전개하고자 전 의관 송수만(宋秀萬), 심상진(沈相震) 등은 [[보안회]](保安會)를 조직하고, 구국민중운동(救國民衆運動)으로 더욱 확대, 발전시켜나갔다.&lt;br /&gt;
&lt;br /&gt;
보안회는 종로에다 소청(疏廳)을 두고 공개성토대회를 열어 일본의 요구에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전국에 통문을 발하였다. 한편, 정부요로에도 공함을 보내어 일제에 단호하게 대처해나갈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일본공사관, 나아가 각국 공사에게도 서한을 보내어 국제여론에 호소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이처럼 보안회의 활동이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자, 당황한 일본은 보안회의 해산과 집회금지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그러나 비등하는 국론을 등에 업은 보안회에 대하여 정부로서는 미온적인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lt;br /&gt;
&lt;br /&gt;
이에 일본은 7월 16일부터 헌병과 경찰을 동원하여 해산을 강요하는 한편, 송인섭(宋寅燮)·송수만·원세성(元世性) 등의 보안회 주요간부들을 일본공사관이나 일본군영으로 납치·억류하는 등 강경책으로 맞섰다. 이때 언론에서는 연일 일본의 불법행위를 폭로, 규탄하였고, 정부에서는 피랍자의 반환교섭에 전력을 기울였다.&lt;br /&gt;
&lt;br /&gt;
한편, 보안회의 활동과 함께 유생·대신들의 상소운동도 더욱 강경, 격렬해졌다. 봉상사부제조(奉常司副提調) 이순범(李淳範) 등은 상소하여 일본공사의 불법행위를 통렬히 논박한 뒤, 그를 추방시켜 본국에서 징죄하도록 하라는 주장까지 펴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amp;lt;/br&amp;gt;&lt;br /&gt;
*보안회의 이와 같은 반대운동은 1898년독립협회가 벌인 만민공동회 이후 최대의 민중구국운동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C%B4%EC%A7%80_%EA%B0%9C%EA%B0%84_%EB%B0%98%EB%8C%80_%EC%9A%B4%EB%8F%99&amp;diff=35045</id>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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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8:39: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시키기 위해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일본군은 대한 제국 황제의 궁궐을 둘러싸고 무력 위협의 분위기 속에서 소위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 '''제1차 한일의정서'''는 한국의 ‘시정(施政)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간섭, 군사전략상 필요한 토지 수용권, 내란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배제 및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협력할 것 등을 규정한 침략적인 협정이었다.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현지 정세 조사를 위해 '''3월 10일''' 내한했는데,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勸助)는 이때 이토에게 한국에서 획득해야 할 이권으로서 철도·해운·어업권·토지·우편·전신·광업 등을 건의했다. 이토는 귀국 즉시 이 건의안을 참작하여 「대한정책(對韓政策)」과 「대한시설강령(對韓施設綱領)」을 작성하고, 1904년 5월 31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가결시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의 골자&lt;br /&gt;
&lt;br /&gt;
① 정치적으로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예속시켜 일본이 실권을 장악한다.&amp;lt;/br&amp;gt;&lt;br /&gt;
② 경제적으로 이권을 획득하여 확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 〈대한시설강령〉에서 국방·외교·재정·교통·통신·척식(拓殖) 등에서 대한정책을 실천할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제6항인 척식 부문에서 '''농업과 황무지 개간권 장악에 대해 규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서 일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사업은 농사라고 단정'''했다. 한국에 일본인이 진출함으로써 일본의 과잉 인구를 이식시킬 수 있는 땅을 얻고, 부족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amp;lt;/br&amp;gt; 또한 일본 농가를 위해 한국을 개방시키는 수단으로 두 가지 대책을 설정하였다. 하나는 '''일본인 개인 명의로 한국 정부로부터 관유(官有) 황무지를 경작 및 목축할 수 있는 특허나 위탁을 받고, 그것을 일본 정부의 관리 하에 일본인이 경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 다른 하나는 일본인 거류지에서 1리(里) 밖일지라도 '''민유지를 경작 또는 목축 등의 목적으로 일본인이 매매·임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정책에 따라 주한일본공사는 대한 제국 궁내부에 '''어공원(御供院)을 신설'''하여, 전국의 황무지를 궁내부 소유로 하여 어공원이 관장케 하고 일본 측은 어공원과 계약하여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획득하는 방법'''을 취하도록 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계약서안 발송====&lt;br /&gt;
&lt;br /&gt;
- 사전조치를 마친 일본공사 하야시는 '''1904년 6월 6'''일자 외교 공문으로 대한 제국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일본인 나가모리에게 특허해 줄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계약서안’을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에게 발송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1) 대한 제국 전국의 미간지를 개간·정리·개량·척식하여 경영할 수 있는 모든 권리&amp;lt;/br&amp;gt;&lt;br /&gt;
2) 쌀·보리·콩 기타 모든 농산물 및 수목(樹木)·과실 등을 재배·수확·처분할 권리&amp;lt;/br&amp;gt;&lt;br /&gt;
3) 목축·어획할 권리 등 이익을 위한 '''토지 사용의 모든 권리를 일본인 나가모리가 갖도록''' 한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권의 소유 기간은 50년으로 하며, 나가모리가 점유한 이 이권의 토지는 만 5년간 완전 면세의 특권을 갖게 하였다. 나가모리의 이권은 그 상속인 또는 권리계승자에게 상속 또는 양도할 수 있으며, 50년 기한이 만료되면 협의에 의해 기한을 연장 또는 재행할 수 있었다.&amp;lt;/br&amp;gt;&lt;br /&gt;
만일 한국정부가 연장 또는 재행을 허가하지 않는 경우 나가모리가 그간 이 토지에 투자한 자본금의 원금 총액과 연 5%의 이자 누적계산분 총액 전부를 한국정부가 일시에 지불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한국정부의 재정으로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한국의 황무지를 사실상 영구히 점탈하겠다는 안'''이었다.&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반대운동을 조직적이고도 더욱 강력하게 전개하고자 전 의관 송수만(宋秀萬), 심상진(沈相震) 등은 [[보안회]](保安會)를 조직하고, 구국민중운동(救國民衆運動)으로 더욱 확대, 발전시켜나갔다.&lt;br /&gt;
&lt;br /&gt;
보안회는 종로에다 소청(疏廳)을 두고 공개성토대회를 열어 일본의 요구에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전국에 통문을 발하였다. 한편, 정부요로에도 공함을 보내어 일제에 단호하게 대처해나갈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일본공사관, 나아가 각국 공사에게도 서한을 보내어 국제여론에 호소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이처럼 보안회의 활동이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자, 당황한 일본은 보안회의 해산과 집회금지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그러나 비등하는 국론을 등에 업은 보안회에 대하여 정부로서는 미온적인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lt;br /&gt;
&lt;br /&gt;
이에 일본은 7월 16일부터 헌병과 경찰을 동원하여 해산을 강요하는 한편, 송인섭(宋寅燮)·송수만·원세성(元世性) 등의 보안회 주요간부들을 일본공사관이나 일본군영으로 납치·억류하는 등 강경책으로 맞섰다. 이때 언론에서는 연일 일본의 불법행위를 폭로, 규탄하였고, 정부에서는 피랍자의 반환교섭에 전력을 기울였다.&lt;br /&gt;
&lt;br /&gt;
한편, 보안회의 활동과 함께 유생·대신들의 상소운동도 더욱 강경, 격렬해졌다. 봉상사부제조(奉常司副提調) 이순범(李淳範) 등은 상소하여 일본공사의 불법행위를 통렬히 논박한 뒤, 그를 추방시켜 본국에서 징죄하도록 하라는 주장까지 펴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amp;lt;/br&amp;gt;&lt;br /&gt;
*보안회의 이와 같은 반대운동은 1898년독립협회가 벌인 만민공동회 이후 최대의 민중구국운동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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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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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8:39: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시키기 위해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일본군은 대한 제국 황제의 궁궐을 둘러싸고 무력 위협의 분위기 속에서 소위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 '''제1차 한일의정서'''는 한국의 ‘시정(施政)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간섭, 군사전략상 필요한 토지 수용권, 내란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배제 및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협력할 것 등을 규정한 침략적인 협정이었다.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현지 정세 조사를 위해 '''3월 10일''' 내한했는데,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勸助)는 이때 이토에게 한국에서 획득해야 할 이권으로서 철도·해운·어업권·토지·우편·전신·광업 등을 건의했다. 이토는 귀국 즉시 이 건의안을 참작하여 「대한정책(對韓政策)」과 「대한시설강령(對韓施設綱領)」을 작성하고, 1904년 5월 31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가결시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의 골자&lt;br /&gt;
&lt;br /&gt;
① 정치적으로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예속시켜 일본이 실권을 장악한다.&amp;lt;/br&amp;gt;&lt;br /&gt;
② 경제적으로 이권을 획득하여 확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 〈대한시설강령〉에서 국방·외교·재정·교통·통신·척식(拓殖) 등에서 대한정책을 실천할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제6항인 척식 부문에서 '''농업과 황무지 개간권 장악에 대해 규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서 일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사업은 농사라고 단정'''했다. 한국에 일본인이 진출함으로써 일본의 과잉 인구를 이식시킬 수 있는 땅을 얻고, 부족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amp;lt;/br&amp;gt; 또한 일본 농가를 위해 한국을 개방시키는 수단으로 두 가지 대책을 설정하였다. 하나는 '''일본인 개인 명의로 한국 정부로부터 관유(官有) 황무지를 경작 및 목축할 수 있는 특허나 위탁을 받고, 그것을 일본 정부의 관리 하에 일본인이 경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 다른 하나는 일본인 거류지에서 1리(里) 밖일지라도 '''민유지를 경작 또는 목축 등의 목적으로 일본인이 매매·임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정책에 따라 주한일본공사는 대한 제국 궁내부에 '''어공원(御供院)을 신설'''하여, 전국의 황무지를 궁내부 소유로 하여 어공원이 관장케 하고 일본 측은 어공원과 계약하여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획득하는 방법'''을 취하도록 했다.&lt;br /&gt;
&lt;br /&gt;
====계약서안 발송====&lt;br /&gt;
&lt;br /&gt;
- 사전조치를 마친 일본공사 하야시는 '''1904년 6월 6'''일자 외교 공문으로 대한 제국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일본인 나가모리에게 특허해 줄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계약서안’을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에게 발송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1) 대한 제국 전국의 미간지를 개간·정리·개량·척식하여 경영할 수 있는 모든 권리&amp;lt;/br&amp;gt;&lt;br /&gt;
2) 쌀·보리·콩 기타 모든 농산물 및 수목(樹木)·과실 등을 재배·수확·처분할 권리&amp;lt;/br&amp;gt;&lt;br /&gt;
3) 목축·어획할 권리 등 이익을 위한 '''토지 사용의 모든 권리를 일본인 나가모리가 갖도록''' 한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권의 소유 기간은 50년으로 하며, 나가모리가 점유한 이 이권의 토지는 만 5년간 완전 면세의 특권을 갖게 하였다. 나가모리의 이권은 그 상속인 또는 권리계승자에게 상속 또는 양도할 수 있으며, 50년 기한이 만료되면 협의에 의해 기한을 연장 또는 재행할 수 있었다.&amp;lt;/br&amp;gt;&lt;br /&gt;
만일 한국정부가 연장 또는 재행을 허가하지 않는 경우 나가모리가 그간 이 토지에 투자한 자본금의 원금 총액과 연 5%의 이자 누적계산분 총액 전부를 한국정부가 일시에 지불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한국정부의 재정으로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한국의 황무지를 사실상 영구히 점탈하겠다는 안'''이었다.&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반대운동을 조직적이고도 더욱 강력하게 전개하고자 전 의관 송수만(宋秀萬), 심상진(沈相震) 등은 [[보안회]](保安會)를 조직하고, 구국민중운동(救國民衆運動)으로 더욱 확대, 발전시켜나갔다.&lt;br /&gt;
&lt;br /&gt;
보안회는 종로에다 소청(疏廳)을 두고 공개성토대회를 열어 일본의 요구에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전국에 통문을 발하였다. 한편, 정부요로에도 공함을 보내어 일제에 단호하게 대처해나갈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일본공사관, 나아가 각국 공사에게도 서한을 보내어 국제여론에 호소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이처럼 보안회의 활동이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자, 당황한 일본은 보안회의 해산과 집회금지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그러나 비등하는 국론을 등에 업은 보안회에 대하여 정부로서는 미온적인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lt;br /&gt;
&lt;br /&gt;
이에 일본은 7월 16일부터 헌병과 경찰을 동원하여 해산을 강요하는 한편, 송인섭(宋寅燮)·송수만·원세성(元世性) 등의 보안회 주요간부들을 일본공사관이나 일본군영으로 납치·억류하는 등 강경책으로 맞섰다. 이때 언론에서는 연일 일본의 불법행위를 폭로, 규탄하였고, 정부에서는 피랍자의 반환교섭에 전력을 기울였다.&lt;br /&gt;
&lt;br /&gt;
한편, 보안회의 활동과 함께 유생·대신들의 상소운동도 더욱 강경, 격렬해졌다. 봉상사부제조(奉常司副提調) 이순범(李淳範) 등은 상소하여 일본공사의 불법행위를 통렬히 논박한 뒤, 그를 추방시켜 본국에서 징죄하도록 하라는 주장까지 펴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amp;lt;/br&amp;gt;&lt;br /&gt;
*보안회의 이와 같은 반대운동은 1898년독립협회가 벌인 만민공동회 이후 최대의 민중구국운동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C%B4%EC%A7%80_%EA%B0%9C%EA%B0%84_%EB%B0%98%EB%8C%80_%EC%9A%B4%EB%8F%99&amp;diff=35040</id>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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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8:37:5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 역사적 의의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시키기 위해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일본군은 대한 제국 황제의 궁궐을 둘러싸고 무력 위협의 분위기 속에서 소위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 '''제1차 한일의정서'''는 한국의 ‘시정(施政)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간섭, 군사전략상 필요한 토지 수용권, 내란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배제 및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협력할 것 등을 규정한 침략적인 협정이었다.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현지 정세 조사를 위해 '''3월 10일''' 내한했는데,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勸助)는 이때 이토에게 한국에서 획득해야 할 이권으로서 철도·해운·어업권·토지·우편·전신·광업 등을 건의했다. 이토는 귀국 즉시 이 건의안을 참작하여 「대한정책(對韓政策)」과 「대한시설강령(對韓施設綱領)」을 작성하고, 1904년 5월 31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가결시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의 골자&lt;br /&gt;
&lt;br /&gt;
① 정치적으로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예속시켜 일본이 실권을 장악한다.&amp;lt;/br&amp;gt;&lt;br /&gt;
② 경제적으로 이권을 획득하여 확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 〈대한시설강령〉에서 국방·외교·재정·교통·통신·척식(拓殖) 등에서 대한정책을 실천할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제6항인 척식 부문에서 '''농업과 황무지 개간권 장악에 대해 규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서 일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사업은 농사라고 단정'''했다. 한국에 일본인이 진출함으로써 일본의 과잉 인구를 이식시킬 수 있는 땅을 얻고, 부족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amp;lt;/br&amp;gt; 또한 일본 농가를 위해 한국을 개방시키는 수단으로 두 가지 대책을 설정하였다. 하나는 '''일본인 개인 명의로 한국 정부로부터 관유(官有) 황무지를 경작 및 목축할 수 있는 특허나 위탁을 받고, 그것을 일본 정부의 관리 하에 일본인이 경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 다른 하나는 일본인 거류지에서 1리(里) 밖일지라도 '''민유지를 경작 또는 목축 등의 목적으로 일본인이 매매·임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정책에 따라 주한일본공사는 대한 제국 궁내부에 '''어공원(御供院)을 신설'''하여, 전국의 황무지를 궁내부 소유로 하여 어공원이 관장케 하고 일본 측은 어공원과 계약하여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획득하는 방법'''을 취하도록 했다.&lt;br /&gt;
&lt;br /&gt;
====계약서안 발송====&lt;br /&gt;
&lt;br /&gt;
- 사전조치를 마친 일본공사 하야시는 '''1904년 6월 6'''일자 외교 공문으로 대한 제국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일본인 나가모리에게 특허해 줄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계약서안’을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에게 발송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1) 대한 제국 전국의 미간지를 개간·정리·개량·척식하여 경영할 수 있는 모든 권리&amp;lt;/br&amp;gt;&lt;br /&gt;
2) 쌀·보리·콩 기타 모든 농산물 및 수목(樹木)·과실 등을 재배·수확·처분할 권리&amp;lt;/br&amp;gt;&lt;br /&gt;
3) 목축·어획할 권리 등 이익을 위한 '''토지 사용의 모든 권리를 일본인 나가모리가 갖도록''' 한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권의 소유 기간은 50년으로 하며, 나가모리가 점유한 이 이권의 토지는 만 5년간 완전 면세의 특권을 갖게 하였다. 나가모리의 이권은 그 상속인 또는 권리계승자에게 상속 또는 양도할 수 있으며, 50년 기한이 만료되면 협의에 의해 기한을 연장 또는 재행할 수 있었다.&amp;lt;/br&amp;gt;&lt;br /&gt;
만일 한국정부가 연장 또는 재행을 허가하지 않는 경우 나가모리가 그간 이 토지에 투자한 자본금의 원금 총액과 연 5%의 이자 누적계산분 총액 전부를 한국정부가 일시에 지불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한국정부의 재정으로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한국의 황무지를 사실상 영구히 점탈하겠다는 안'''이었다.&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반대운동을 조직적이고도 더욱 강력하게 전개하고자 전 의관 송수만(宋秀萬), 심상진(沈相震) 등은 [[보안회]](保安會)를 조직하고, 구국민중운동(救國民衆運動)으로 더욱 확대, 발전시켜나갔다.&lt;br /&gt;
&lt;br /&gt;
보안회는 종로에다 소청(疏廳)을 두고 공개성토대회를 열어 일본의 요구에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전국에 통문을 발하였다. 한편, 정부요로에도 공함을 보내어 일제에 단호하게 대처해나갈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일본공사관, 나아가 각국 공사에게도 서한을 보내어 국제여론에 호소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이처럼 보안회의 활동이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자, 당황한 일본은 보안회의 해산과 집회금지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그러나 비등하는 국론을 등에 업은 보안회에 대하여 정부로서는 미온적인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lt;br /&gt;
&lt;br /&gt;
이에 일본은 7월 16일부터 헌병과 경찰을 동원하여 해산을 강요하는 한편, 송인섭(宋寅燮)·송수만·원세성(元世性) 등의 보안회 주요간부들을 일본공사관이나 일본군영으로 납치·억류하는 등 강경책으로 맞섰다. 이때 언론에서는 연일 일본의 불법행위를 폭로, 규탄하였고, 정부에서는 피랍자의 반환교섭에 전력을 기울였다.&lt;br /&gt;
&lt;br /&gt;
한편, 보안회의 활동과 함께 유생·대신들의 상소운동도 더욱 강경, 격렬해졌다. 봉상사부제조(奉常司副提調) 이순범(李淳範) 등은 상소하여 일본공사의 불법행위를 통렬히 논박한 뒤, 그를 추방시켜 본국에서 징죄하도록 하라는 주장까지 펴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amp;lt;/br&amp;gt;&lt;br /&gt;
*보안회의 이와 같은 반대운동은 1898년독립협회가 벌인 만민공동회 이후 최대의 민중구국운동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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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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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7:31: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 반대운동 시작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시키기 위해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일본군은 대한 제국 황제의 궁궐을 둘러싸고 무력 위협의 분위기 속에서 소위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 '''제1차 한일의정서'''는 한국의 ‘시정(施政)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간섭, 군사전략상 필요한 토지 수용권, 내란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배제 및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협력할 것 등을 규정한 침략적인 협정이었다.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현지 정세 조사를 위해 '''3월 10일''' 내한했는데,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勸助)는 이때 이토에게 한국에서 획득해야 할 이권으로서 철도·해운·어업권·토지·우편·전신·광업 등을 건의했다. 이토는 귀국 즉시 이 건의안을 참작하여 「대한정책(對韓政策)」과 「대한시설강령(對韓施設綱領)」을 작성하고, 1904년 5월 31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가결시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의 골자&lt;br /&gt;
&lt;br /&gt;
① 정치적으로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예속시켜 일본이 실권을 장악한다.&amp;lt;/br&amp;gt;&lt;br /&gt;
② 경제적으로 이권을 획득하여 확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 〈대한시설강령〉에서 국방·외교·재정·교통·통신·척식(拓殖) 등에서 대한정책을 실천할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제6항인 척식 부문에서 '''농업과 황무지 개간권 장악에 대해 규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서 일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사업은 농사라고 단정'''했다. 한국에 일본인이 진출함으로써 일본의 과잉 인구를 이식시킬 수 있는 땅을 얻고, 부족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amp;lt;/br&amp;gt; 또한 일본 농가를 위해 한국을 개방시키는 수단으로 두 가지 대책을 설정하였다. 하나는 '''일본인 개인 명의로 한국 정부로부터 관유(官有) 황무지를 경작 및 목축할 수 있는 특허나 위탁을 받고, 그것을 일본 정부의 관리 하에 일본인이 경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 다른 하나는 일본인 거류지에서 1리(里) 밖일지라도 '''민유지를 경작 또는 목축 등의 목적으로 일본인이 매매·임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정책에 따라 주한일본공사는 대한 제국 궁내부에 '''어공원(御供院)을 신설'''하여, 전국의 황무지를 궁내부 소유로 하여 어공원이 관장케 하고 일본 측은 어공원과 계약하여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획득하는 방법'''을 취하도록 했다.&lt;br /&gt;
&lt;br /&gt;
====계약서안 발송====&lt;br /&gt;
&lt;br /&gt;
- 사전조치를 마친 일본공사 하야시는 '''1904년 6월 6'''일자 외교 공문으로 대한 제국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일본인 나가모리에게 특허해 줄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계약서안’을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에게 발송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1) 대한 제국 전국의 미간지를 개간·정리·개량·척식하여 경영할 수 있는 모든 권리&amp;lt;/br&amp;gt;&lt;br /&gt;
2) 쌀·보리·콩 기타 모든 농산물 및 수목(樹木)·과실 등을 재배·수확·처분할 권리&amp;lt;/br&amp;gt;&lt;br /&gt;
3) 목축·어획할 권리 등 이익을 위한 '''토지 사용의 모든 권리를 일본인 나가모리가 갖도록''' 한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권의 소유 기간은 50년으로 하며, 나가모리가 점유한 이 이권의 토지는 만 5년간 완전 면세의 특권을 갖게 하였다. 나가모리의 이권은 그 상속인 또는 권리계승자에게 상속 또는 양도할 수 있으며, 50년 기한이 만료되면 협의에 의해 기한을 연장 또는 재행할 수 있었다.&amp;lt;/br&amp;gt;&lt;br /&gt;
만일 한국정부가 연장 또는 재행을 허가하지 않는 경우 나가모리가 그간 이 토지에 투자한 자본금의 원금 총액과 연 5%의 이자 누적계산분 총액 전부를 한국정부가 일시에 지불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한국정부의 재정으로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한국의 황무지를 사실상 영구히 점탈하겠다는 안'''이었다.&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반대운동을 조직적이고도 더욱 강력하게 전개하고자 전 의관 송수만(宋秀萬), 심상진(沈相震) 등은 [[보안회]](保安會)를 조직하고, 구국민중운동(救國民衆運動)으로 더욱 확대, 발전시켜나갔다.&lt;br /&gt;
&lt;br /&gt;
보안회는 종로에다 소청(疏廳)을 두고 공개성토대회를 열어 일본의 요구에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전국에 통문을 발하였다. 한편, 정부요로에도 공함을 보내어 일제에 단호하게 대처해나갈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일본공사관, 나아가 각국 공사에게도 서한을 보내어 국제여론에 호소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이처럼 보안회의 활동이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자, 당황한 일본은 보안회의 해산과 집회금지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그러나 비등하는 국론을 등에 업은 보안회에 대하여 정부로서는 미온적인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lt;br /&gt;
&lt;br /&gt;
이에 일본은 7월 16일부터 헌병과 경찰을 동원하여 해산을 강요하는 한편, 송인섭(宋寅燮)·송수만·원세성(元世性) 등의 보안회 주요간부들을 일본공사관이나 일본군영으로 납치·억류하는 등 강경책으로 맞섰다. 이때 언론에서는 연일 일본의 불법행위를 폭로, 규탄하였고, 정부에서는 피랍자의 반환교섭에 전력을 기울였다.&lt;br /&gt;
&lt;br /&gt;
한편, 보안회의 활동과 함께 유생·대신들의 상소운동도 더욱 강경, 격렬해졌다. 봉상사부제조(奉常司副提調) 이순범(李淳範) 등은 상소하여 일본공사의 불법행위를 통렬히 논박한 뒤, 그를 추방시켜 본국에서 징죄하도록 하라는 주장까지 펴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C%B4%EC%A7%80_%EA%B0%9C%EA%B0%84_%EB%B0%98%EB%8C%80_%EC%9A%B4%EB%8F%99&amp;diff=34900</id>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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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7:30:1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 계약서안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시키기 위해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일본군은 대한 제국 황제의 궁궐을 둘러싸고 무력 위협의 분위기 속에서 소위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 '''제1차 한일의정서'''는 한국의 ‘시정(施政)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간섭, 군사전략상 필요한 토지 수용권, 내란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배제 및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협력할 것 등을 규정한 침략적인 협정이었다.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현지 정세 조사를 위해 '''3월 10일''' 내한했는데,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勸助)는 이때 이토에게 한국에서 획득해야 할 이권으로서 철도·해운·어업권·토지·우편·전신·광업 등을 건의했다. 이토는 귀국 즉시 이 건의안을 참작하여 「대한정책(對韓政策)」과 「대한시설강령(對韓施設綱領)」을 작성하고, 1904년 5월 31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가결시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의 골자&lt;br /&gt;
&lt;br /&gt;
① 정치적으로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예속시켜 일본이 실권을 장악한다.&amp;lt;/br&amp;gt;&lt;br /&gt;
② 경제적으로 이권을 획득하여 확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 〈대한시설강령〉에서 국방·외교·재정·교통·통신·척식(拓殖) 등에서 대한정책을 실천할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제6항인 척식 부문에서 '''농업과 황무지 개간권 장악에 대해 규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서 일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사업은 농사라고 단정'''했다. 한국에 일본인이 진출함으로써 일본의 과잉 인구를 이식시킬 수 있는 땅을 얻고, 부족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amp;lt;/br&amp;gt; 또한 일본 농가를 위해 한국을 개방시키는 수단으로 두 가지 대책을 설정하였다. 하나는 '''일본인 개인 명의로 한국 정부로부터 관유(官有) 황무지를 경작 및 목축할 수 있는 특허나 위탁을 받고, 그것을 일본 정부의 관리 하에 일본인이 경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 다른 하나는 일본인 거류지에서 1리(里) 밖일지라도 '''민유지를 경작 또는 목축 등의 목적으로 일본인이 매매·임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정책에 따라 주한일본공사는 대한 제국 궁내부에 '''어공원(御供院)을 신설'''하여, 전국의 황무지를 궁내부 소유로 하여 어공원이 관장케 하고 일본 측은 어공원과 계약하여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획득하는 방법'''을 취하도록 했다.&lt;br /&gt;
&lt;br /&gt;
====계약서안 발송====&lt;br /&gt;
&lt;br /&gt;
- 사전조치를 마친 일본공사 하야시는 '''1904년 6월 6'''일자 외교 공문으로 대한 제국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일본인 나가모리에게 특허해 줄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계약서안’을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에게 발송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1) 대한 제국 전국의 미간지를 개간·정리·개량·척식하여 경영할 수 있는 모든 권리&amp;lt;/br&amp;gt;&lt;br /&gt;
2) 쌀·보리·콩 기타 모든 농산물 및 수목(樹木)·과실 등을 재배·수확·처분할 권리&amp;lt;/br&amp;gt;&lt;br /&gt;
3) 목축·어획할 권리 등 이익을 위한 '''토지 사용의 모든 권리를 일본인 나가모리가 갖도록''' 한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권의 소유 기간은 50년으로 하며, 나가모리가 점유한 이 이권의 토지는 만 5년간 완전 면세의 특권을 갖게 하였다. 나가모리의 이권은 그 상속인 또는 권리계승자에게 상속 또는 양도할 수 있으며, 50년 기한이 만료되면 협의에 의해 기한을 연장 또는 재행할 수 있었다.&amp;lt;/br&amp;gt;&lt;br /&gt;
만일 한국정부가 연장 또는 재행을 허가하지 않는 경우 나가모리가 그간 이 토지에 투자한 자본금의 원금 총액과 연 5%의 이자 누적계산분 총액 전부를 한국정부가 일시에 지불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한국정부의 재정으로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한국의 황무지를 사실상 영구히 점탈하겠다는 안'''이었다.&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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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7:23:26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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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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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시키기 위해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일본군은 대한 제국 황제의 궁궐을 둘러싸고 무력 위협의 분위기 속에서 소위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 '''제1차 한일의정서'''는 한국의 ‘시정(施政)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간섭, 군사전략상 필요한 토지 수용권, 내란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배제 및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협력할 것 등을 규정한 침략적인 협정이었다.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현지 정세 조사를 위해 '''3월 10일''' 내한했는데,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勸助)는 이때 이토에게 한국에서 획득해야 할 이권으로서 철도·해운·어업권·토지·우편·전신·광업 등을 건의했다. 이토는 귀국 즉시 이 건의안을 참작하여 「대한정책(對韓政策)」과 「대한시설강령(對韓施設綱領)」을 작성하고, 1904년 5월 31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가결시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의 골자&lt;br /&gt;
&lt;br /&gt;
① 정치적으로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예속시켜 일본이 실권을 장악한다.&amp;lt;/br&amp;gt;&lt;br /&gt;
② 경제적으로 이권을 획득하여 확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 〈대한시설강령〉에서 국방·외교·재정·교통·통신·척식(拓殖) 등에서 대한정책을 실천할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제6항인 척식 부문에서 '''농업과 황무지 개간권 장악에 대해 규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서 일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사업은 농사라고 단정'''했다. 한국에 일본인이 진출함으로써 일본의 과잉 인구를 이식시킬 수 있는 땅을 얻고, 부족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amp;lt;/br&amp;gt; 또한 일본 농가를 위해 한국을 개방시키는 수단으로 두 가지 대책을 설정하였다. 하나는 '''일본인 개인 명의로 한국 정부로부터 관유(官有) 황무지를 경작 및 목축할 수 있는 특허나 위탁을 받고, 그것을 일본 정부의 관리 하에 일본인이 경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 다른 하나는 일본인 거류지에서 1리(里) 밖일지라도 '''민유지를 경작 또는 목축 등의 목적으로 일본인이 매매·임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정책에 따라 주한일본공사는 대한 제국 궁내부에 '''어공원(御供院)을 신설'''하여, 전국의 황무지를 궁내부 소유로 하여 어공원이 관장케 하고 일본 측은 어공원과 계약하여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획득하는 방법'''을 취하도록 했다.&lt;br /&gt;
&lt;br /&gt;
====계약서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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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C%B4%EC%A7%80_%EA%B0%9C%EA%B0%84_%EB%B0%98%EB%8C%80_%EC%9A%B4%EB%8F%99&amp;diff=34892</id>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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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7:22: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 「대한정책」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시키기 위해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일본군은 대한 제국 황제의 궁궐을 둘러싸고 무력 위협의 분위기 속에서 소위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 '''제1차 한일의정서'''는 한국의 ‘시정(施政)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간섭, 군사전략상 필요한 토지 수용권, 내란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배제 및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협력할 것 등을 규정한 침략적인 협정이었다.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현지 정세 조사를 위해 '''3월 10일''' 내한했는데,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勸助)는 이때 이토에게 한국에서 획득해야 할 이권으로서 철도·해운·어업권·토지·우편·전신·광업 등을 건의했다. 이토는 귀국 즉시 이 건의안을 참작하여 「대한정책(對韓政策)」과 「대한시설강령(對韓施設綱領)」을 작성하고, 1904년 5월 31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가결시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대한정책」의 골자&lt;br /&gt;
&lt;br /&gt;
① 정치적으로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예속시켜 일본이 실권을 장악한다.&amp;lt;/br&amp;gt;&lt;br /&gt;
② 경제적으로 이권을 획득하여 확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 〈대한시설강령〉에서 국방·외교·재정·교통·통신·척식(拓殖) 등에서 대한정책을 실천할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제6항인 척식 부문에서 '''농업과 황무지 개간권 장악에 대해 규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서 일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사업은 농사라고 단정'''했다. 한국에 일본인이 진출함으로써 일본의 과잉 인구를 이식시킬 수 있는 땅을 얻고, 부족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amp;lt;/br&amp;gt; 또한 일본 농가를 위해 한국을 개방시키는 수단으로 두 가지 대책을 설정하였다. 하나는 일본인 개인 명의로 한국 정부로부터 관유(官有) 황무지를 경작 및 목축할 수 있는 특허나 위탁을 받고, 그것을 일본 정부의 관리 하에 일본인이 경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amp;lt;/br&amp;gt; 다른 하나는 일본인 거류지에서 1리(里) 밖일지라도 '''민유지를 경작 또는 목축 등의 목적으로 일본인이 매매·임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lt;br /&gt;
&lt;br /&gt;
이 정책에 따라 주한일본공사는 대한 제국 궁내부에 어공원(御供院)을 신설하여, 전국의 황무지를 궁내부 소유로 하여 어공원이 관장케 하고 일본 측은 어공원과 계약하여 전국 황무지 개간권을 획득하는 방법을 취하도록 했다.&lt;br /&gt;
&lt;br /&gt;
====계약서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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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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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7:21: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 「대한정책」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시키기 위해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일본군은 대한 제국 황제의 궁궐을 둘러싸고 무력 위협의 분위기 속에서 소위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 '''제1차 한일의정서'''는 한국의 ‘시정(施政)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간섭, 군사전략상 필요한 토지 수용권, 내란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배제 및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협력할 것 등을 규정한 침략적인 협정이었다.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현지 정세 조사를 위해 '''3월 10일''' 내한했는데,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勸助)는 이때 이토에게 한국에서 획득해야 할 이권으로서 철도·해운·어업권·토지·우편·전신·광업 등을 건의했다. 이토는 귀국 즉시 이 건의안을 참작하여 「대한정책(對韓政策)」과 「대한시설강령(對韓施設綱領)」을 작성하고, 1904년 5월 31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가결시켰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대한정책」의 골자&lt;br /&gt;
&lt;br /&gt;
① 정치적으로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예속시켜 일본이 실권을 장악한다.&amp;lt;/br&amp;gt;&lt;br /&gt;
② 경제적으로 이권을 획득하여 확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lt;br /&gt;
&lt;br /&gt;
- 〈대한시설강령〉에서 국방·외교·재정·교통·통신·척식(拓殖) 등에서 대한정책을 실천할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제6항인 척식 부문에서 '''농업과 황무지 개간권 장악에 대해 규정'''하였다.&lt;br /&gt;
&lt;br /&gt;
====계약서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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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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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7:18: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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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일제는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시키기 위해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3일, 일본군은 대한 제국 황제의 궁궐을 둘러싸고 무력 위협의 분위기 속에서 소위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amp;lt;/br&amp;gt;&lt;br /&gt;
- '''제1차 한일의정서'''는 한국의 ‘시정(施政)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간섭, 군사전략상 필요한 토지 수용권, 내란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시행, 러시아와의 협정 체결 배제 및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협력할 것 등을 규정한 침략적인 협정이었다.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이를 좌절시키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러·청비밀동맹을 체결함과 아울러 동청철도부설권(東淸鐵道敷設權)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조차를 계기로 1898년 여순(旅順)과 대련(大連)을 25년간 조차, 만주를 세력권화하려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만주를 사실상 점령해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등 일본을 견제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계약서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C%B4%EC%A7%80_%EA%B0%9C%EA%B0%84_%EB%B0%98%EB%8C%80_%EC%9A%B4%EB%8F%99&amp;diff=34844</id>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9%A9%EB%AC%B4%EC%A7%80_%EA%B0%9C%EA%B0%84_%EB%B0%98%EB%8C%80_%EC%9A%B4%EB%8F%99&amp;diff=34844"/>
		<updated>2023-12-11T06:55:3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조선 말 일본이 한국주권침탈의 일환으로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항일운동을 일컫는 총칭이다.&amp;lt;/br&amp;gt; 1904년에 발생했으며, 사회운동 성격을 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일본에서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되었고, 그와 함께 산업화와 군대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일본은 징병제를 도입하여 군사를 육성하고, 육군 장비와 훈련에는 독일제도를, 해군장비와 훈련에는 영국제도를 채택하여 강력한 군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화와 군 현대화를 통해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품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었다.&lt;br /&gt;
&lt;br /&gt;
1894년부터 1895년에 일어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610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해,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이를 좌절시키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러·청비밀동맹을 체결함과 아울러 동청철도부설권(東淸鐵道敷設權)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조차를 계기로 1898년 여순(旅順)과 대련(大連)을 25년간 조차, 만주를 세력권화하려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만주를 사실상 점령해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등 일본을 견제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계약서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amp;lt;/br&amp;gt;&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위 사진은 1904년 6월 20일에 작성된 황성신문으로,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대한 기사 사진이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보안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제의 황무지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운동은 정부 대신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구국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좌절시켰다.&amp;lt;/br&amp;gt;&lt;br /&gt;
*이는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과 비견되는 전민족적 반침략운동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柳子厚,≪李儁先生傳≫(東方文化社, 1947), 103∼107쪽.&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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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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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6:51: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1904년부터 1905년 사이에 일어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양국의 쟁탈전이다. &lt;br /&gt;
&lt;br /&gt;
[[파일: |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일본에서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되었고, 그와 함께 산업화와 군대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일본은 징병제를 도입하여 군사를 육성하고, 육군 장비와 훈련에는 독일제도를, 해군장비와 훈련에는 영국제도를 채택하여 강력한 군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화와 군 현대화를 통해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품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었다.&lt;br /&gt;
&lt;br /&gt;
1894년부터 1895년에 일어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610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해,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이를 좌절시키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러·청비밀동맹을 체결함과 아울러 동청철도부설권(東淸鐵道敷設權)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조차를 계기로 1898년 여순(旅順)과 대련(大連)을 25년간 조차, 만주를 세력권화하려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만주를 사실상 점령해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등 일본을 견제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계약서안====&lt;br /&gt;
&lt;br /&gt;
- 이에 대해 일본은 1904년 2월 4일 대(對)러시아 개전 및 국교단절을 결정하고, 2월 8일에는 육군 선발대가 한국의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향하는 한편 중국 뤼순(旅順)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2월 9일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러시아 함대와 격돌하였으며, 10일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1905년 9월 5일, 결국 러시아는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하에 일본과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체결한 후 휴전한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조약을 계기로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였고 러시아는 일본에게 여순·대련의 조차권(租借權)과 남만주의 철도(東淸鐵道)를 양도했다. 또 사할린 남부를 할양, 북위 50도 이남을 일본령으로 하였으며, 연해주와 캄차카의 어업권을 인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는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남만주에서 '''일본이 지배권을 확립'''하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한 뒤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얻지 못한 것을 청나라로부터 보상받으려고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른 일본과 달리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혁명의 불씨로 작용하게 된다.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1.jp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러일전쟁은 표면상으로는 한반도와 만주의 분할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 싸움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 동맹, 미국의 일본 지원, 러시아-프랑스 동맹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제국주의 전쟁의 전초전이었다.&amp;lt;/br&amp;gt;&lt;br /&gt;
*고종이 러시아에 접근하여 러시아를 조선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였고, 조선을 러시아의 속국 상태로 만들었다.&amp;lt;/br&amp;gt;&lt;br /&gt;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한국에 대한 지배권 확립을 꾀했다.이 과정에서 '''황무지 개간권 요구'''로 이어졌으며, 이는 [[보안회]] 설립의 시초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8C%8C%EC%9D%BC:%ED%99%A9%EC%84%B1%EC%8B%A0%EB%AC%B8.png&amp;diff=34838</id>
		<title>파일:황성신문.pn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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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6:49: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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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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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6:49:3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1904년부터 1905년 사이에 일어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양국의 쟁탈전이다. &lt;br /&gt;
&lt;br /&gt;
[[파일: |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일본에서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되었고, 그와 함께 산업화와 군대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일본은 징병제를 도입하여 군사를 육성하고, 육군 장비와 훈련에는 독일제도를, 해군장비와 훈련에는 영국제도를 채택하여 강력한 군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화와 군 현대화를 통해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품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었다.&lt;br /&gt;
&lt;br /&gt;
1894년부터 1895년에 일어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610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해,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이를 좌절시키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러·청비밀동맹을 체결함과 아울러 동청철도부설권(東淸鐵道敷設權)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조차를 계기로 1898년 여순(旅順)과 대련(大連)을 25년간 조차, 만주를 세력권화하려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만주를 사실상 점령해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등 일본을 견제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계약서안====&lt;br /&gt;
&lt;br /&gt;
- 이에 대해 일본은 1904년 2월 4일 대(對)러시아 개전 및 국교단절을 결정하고, 2월 8일에는 육군 선발대가 한국의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향하는 한편 중국 뤼순(旅順)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2월 9일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러시아 함대와 격돌하였으며, 10일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황성신문.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1905년 9월 5일, 결국 러시아는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하에 일본과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체결한 후 휴전한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조약을 계기로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였고 러시아는 일본에게 여순·대련의 조차권(租借權)과 남만주의 철도(東淸鐵道)를 양도했다. 또 사할린 남부를 할양, 북위 50도 이남을 일본령으로 하였으며, 연해주와 캄차카의 어업권을 인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는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남만주에서 '''일본이 지배권을 확립'''하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한 뒤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얻지 못한 것을 청나라로부터 보상받으려고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른 일본과 달리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혁명의 불씨로 작용하게 된다.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1.jp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러일전쟁은 표면상으로는 한반도와 만주의 분할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 싸움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 동맹, 미국의 일본 지원, 러시아-프랑스 동맹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제국주의 전쟁의 전초전이었다.&amp;lt;/br&amp;gt;&lt;br /&gt;
*고종이 러시아에 접근하여 러시아를 조선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였고, 조선을 러시아의 속국 상태로 만들었다.&amp;lt;/br&amp;gt;&lt;br /&gt;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한국에 대한 지배권 확립을 꾀했다.이 과정에서 '''황무지 개간권 요구'''로 이어졌으며, 이는 [[보안회]] 설립의 시초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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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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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6:45: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1904년부터 1905년 사이에 일어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양국의 쟁탈전이다. &lt;br /&gt;
&lt;br /&gt;
[[파일: |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8&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dd7zcGWTblU&amp;quot; title=&amp;quot;(분노 유발♨) 한일 의정서 ☞ 점령하려는 일본의 꼼수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lt;br /&gt;
&lt;br /&gt;
-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일본에서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되었고, 그와 함께 산업화와 군대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일본은 징병제를 도입하여 군사를 육성하고, 육군 장비와 훈련에는 독일제도를, 해군장비와 훈련에는 영국제도를 채택하여 강력한 군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화와 군 현대화를 통해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품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었다.&lt;br /&gt;
&lt;br /&gt;
1894년부터 1895년에 일어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610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해,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한정책」====&lt;br /&gt;
&lt;br /&gt;
- 이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이를 좌절시키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러·청비밀동맹을 체결함과 아울러 동청철도부설권(東淸鐵道敷設權)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조차를 계기로 1898년 여순(旅順)과 대련(大連)을 25년간 조차, 만주를 세력권화하려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만주를 사실상 점령해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등 일본을 견제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계약서안====&lt;br /&gt;
&lt;br /&gt;
- 이에 대해 일본은 1904년 2월 4일 대(對)러시아 개전 및 국교단절을 결정하고, 2월 8일에는 육군 선발대가 한국의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향하는 한편 중국 뤼순(旅順)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2월 9일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러시아 함대와 격돌하였으며, 10일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반대운동 시작===&lt;br /&gt;
&lt;br /&gt;
* 1902 &lt;br /&gt;
 - 영국과 '''영일 조약'''을 맺어&amp;lt;ref&amp;gt;러시아와의 대결에 있어 일본을 적극 지원한 세력은 영국과 미국이었다.&amp;lt;/ref&amp;gt; 영국의 지원을 약속받으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amp;lt;/br&amp;gt; 당시 러시아 측은 러일전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amp;lt;/br&amp;gt;왜냐하면 전장으로 향하는 길을 시베리아가 가로막고 있어 병력과 물자 보급이 느릴 뿐더러,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짜르인 니콜라스 2세의 무능함으로 정권이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일본은 전쟁 즉시 투입할 수 있는 25만 명의 상비군과 그 두 배의 예비군까지 갖춘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1904.02.08&lt;br /&gt;
 - 저녁에 일본은 먼저 바다를 장악하기 위해 '''여순항을 기습'''해, 항구에 있던 러시아 전함을 격침시켰다. 이어 일본군은 항구를 봉쇄하고 육지부터 점령을 시작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2.09~10 &lt;br /&gt;
 - 일본은 9일 인천 앞바다에 있던 두 척의 러시아군함을 격침시킨 다음날인 10일에야 선전을 포고하였다. 여순 봉쇄에 성공한 도고(東鄕平八郞)함대는 5월 5일 요동반도에 상륙하고, 4월 말 한국을 거쳐 북진한 제1부대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진입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5.01~05&lt;br /&gt;
 - 일본은 1905년 1월 1일에 여순항을 점령할 수 있었다. 또 요양, 사하, 봉천 등 만주벌판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가운데 일본의 육군은 한반도를 거쳐 남만주로 진격하여, 봉천을 점령하였다. &amp;lt;/br&amp;gt; 반면 러시아의 발틱 함대는 여순항 함락 이후에나 극동에 도착하였고 그나마도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일본의 도고 함대에 격침당했다. 그러나 일본의 당초 예상과 달리 전쟁이 길어지고 막대한 전쟁비용 등으로 전력이 부족하게 되었으며, 러시아 역시 자국의 혁명운동 발발로 민심 수습이 필요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1905년 9월 5일, 결국 러시아는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하에 일본과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체결한 후 휴전한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조약을 계기로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였고 러시아는 일본에게 여순·대련의 조차권(租借權)과 남만주의 철도(東淸鐵道)를 양도했다. 또 사할린 남부를 할양, 북위 50도 이남을 일본령으로 하였으며, 연해주와 캄차카의 어업권을 인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는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남만주에서 '''일본이 지배권을 확립'''하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한 뒤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얻지 못한 것을 청나라로부터 보상받으려고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른 일본과 달리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혁명의 불씨로 작용하게 된다.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1.jp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러일전쟁은 표면상으로는 한반도와 만주의 분할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 싸움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 동맹, 미국의 일본 지원, 러시아-프랑스 동맹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제국주의 전쟁의 전초전이었다.&amp;lt;/br&amp;gt;&lt;br /&gt;
*고종이 러시아에 접근하여 러시아를 조선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였고, 조선을 러시아의 속국 상태로 만들었다.&amp;lt;/br&amp;gt;&lt;br /&gt;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한국에 대한 지배권 확립을 꾀했다.이 과정에서 '''황무지 개간권 요구'''로 이어졌으며, 이는 [[보안회]] 설립의 시초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과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사횢거 사건들과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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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러일전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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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6:37:5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러일전쟁 (露ㆍ日戰爭)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1904년부터 1905년 사이에 일어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양국의 쟁탈전이다.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2.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발발===&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9&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CCFfYMt16w0&amp;quot; title=&amp;quot;러일전쟁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비밀무기는 과연 무엇일까?(ENG SUB)&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시모노세키조약 체결====&lt;br /&gt;
&lt;br /&gt;
-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일본에서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되었고, 그와 함께 산업화와 군대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일본은 징병제를 도입하여 군사를 육성하고, 육군 장비와 훈련에는 독일제도를, 해군장비와 훈련에는 영국제도를 채택하여 강력한 군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화와 군 현대화를 통해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품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었다.&lt;br /&gt;
&lt;br /&gt;
1894년부터 1895년에 일어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610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해,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삼국간섭====&lt;br /&gt;
&lt;br /&gt;
- 이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이를 좌절시키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러·청비밀동맹을 체결함과 아울러 동청철도부설권(東淸鐵道敷設權)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조차를 계기로 1898년 여순(旅順)과 대련(大連)을 25년간 조차, 만주를 세력권화하려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만주를 사실상 점령해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등 일본을 견제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선전포고====&lt;br /&gt;
&lt;br /&gt;
- 이에 대해 일본은 1904년 2월 4일 대(對)러시아 개전 및 국교단절을 결정하고, 2월 8일에는 육군 선발대가 한국의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향하는 한편 중국 뤼순(旅順)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2월 9일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러시아 함대와 격돌하였으며, 10일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진행 및 경과===&lt;br /&gt;
&lt;br /&gt;
* 1902 &lt;br /&gt;
 - 영국과 '''영일 조약'''을 맺어&amp;lt;ref&amp;gt;러시아와의 대결에 있어 일본을 적극 지원한 세력은 영국과 미국이었다.&amp;lt;/ref&amp;gt; 영국의 지원을 약속받으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amp;lt;/br&amp;gt; 당시 러시아 측은 러일전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amp;lt;/br&amp;gt;왜냐하면 전장으로 향하는 길을 시베리아가 가로막고 있어 병력과 물자 보급이 느릴 뿐더러,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짜르인 니콜라스 2세의 무능함으로 정권이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일본은 전쟁 즉시 투입할 수 있는 25만 명의 상비군과 그 두 배의 예비군까지 갖춘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1904.02.08&lt;br /&gt;
 - 저녁에 일본은 먼저 바다를 장악하기 위해 '''여순항을 기습'''해, 항구에 있던 러시아 전함을 격침시켰다. 이어 일본군은 항구를 봉쇄하고 육지부터 점령을 시작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2.09~10 &lt;br /&gt;
 - 일본은 9일 인천 앞바다에 있던 두 척의 러시아군함을 격침시킨 다음날인 10일에야 선전을 포고하였다. 여순 봉쇄에 성공한 도고(東鄕平八郞)함대는 5월 5일 요동반도에 상륙하고, 4월 말 한국을 거쳐 북진한 제1부대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진입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5.01~05&lt;br /&gt;
 - 일본은 1905년 1월 1일에 여순항을 점령할 수 있었다. 또 요양, 사하, 봉천 등 만주벌판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가운데 일본의 육군은 한반도를 거쳐 남만주로 진격하여, 봉천을 점령하였다. &amp;lt;/br&amp;gt; 반면 러시아의 발틱 함대는 여순항 함락 이후에나 극동에 도착하였고 그나마도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일본의 도고 함대에 격침당했다. 그러나 일본의 당초 예상과 달리 전쟁이 길어지고 막대한 전쟁비용 등으로 전력이 부족하게 되었으며, 러시아 역시 자국의 혁명운동 발발로 민심 수습이 필요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휴전 및 결과===&lt;br /&gt;
&lt;br /&gt;
1905년 9월 5일, 결국 러시아는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하에 일본과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체결한 후 휴전한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조약을 계기로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였고 러시아는 일본에게 여순·대련의 조차권(租借權)과 남만주의 철도(東淸鐵道)를 양도했다. 또 사할린 남부를 할양, 북위 50도 이남을 일본령으로 하였으며, 연해주와 캄차카의 어업권을 인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는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남만주에서 '''일본이 지배권을 확립'''하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한 뒤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얻지 못한 것을 청나라로부터 보상받으려고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른 일본과 달리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혁명의 불씨로 작용하게 된다.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1.jp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러일전쟁은 표면상으로는 한반도와 만주의 분할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 싸움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 동맹, 미국의 일본 지원, 러시아-프랑스 동맹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제국주의 전쟁의 전초전이었다.&amp;lt;/br&amp;gt;&lt;br /&gt;
*고종이 러시아에 접근하여 러시아를 조선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였고, 조선을 러시아의 속국 상태로 만들었다.&amp;lt;/br&amp;gt;&lt;br /&gt;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한국에 대한 지배권 확립을 꾀했다.이 과정에서 '''황무지 개간권 요구'''로 이어졌으며, 이는 [[보안회]] 설립의 시초가 되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러일전 쟁전후일본의 한국침략』(역사학회, 일조각, 1986)&lt;br /&gt;
*『日露戰爭史の 硏究』(信夫淸三郞·中山治一, 河出書房新社, 1972)&lt;br /&gt;
*『日本外交史硏究』-日淸·日露戰爭-(日本國際政治學會, 1962)&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의 발발부터 과정, 그리고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러일전쟁과 보안회 설립 사이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언급하여 연결하였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9F%AC%EC%9D%BC%EC%A0%84%EC%9F%81&amp;diff=34818</id>
		<title>러일전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9F%AC%EC%9D%BC%EC%A0%84%EC%9F%81&amp;diff=34818"/>
		<updated>2023-12-11T06:34: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러일전쟁 (露ㆍ日戰爭)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1904년부터 1905년 사이에 일어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양국의 쟁탈전이다.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2.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발발===&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9&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CCFfYMt16w0&amp;quot; title=&amp;quot;러일전쟁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비밀무기는 과연 무엇일까?(ENG SUB)&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시모노세키조약 체결====&lt;br /&gt;
&lt;br /&gt;
-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일본에서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되었고, 그와 함께 산업화와 군대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일본은 징병제를 도입하여 군사를 육성하고, 육군 장비와 훈련에는 독일제도를, 해군장비와 훈련에는 영국제도를 채택하여 강력한 군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화와 군 현대화를 통해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품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었다.&lt;br /&gt;
&lt;br /&gt;
1894년부터 1895년에 일어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610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해,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삼국간섭====&lt;br /&gt;
&lt;br /&gt;
- 이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이를 좌절시키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러·청비밀동맹을 체결함과 아울러 동청철도부설권(東淸鐵道敷設權)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조차를 계기로 1898년 여순(旅順)과 대련(大連)을 25년간 조차, 만주를 세력권화하려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만주를 사실상 점령해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등 일본을 견제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선전포고====&lt;br /&gt;
&lt;br /&gt;
- 이에 대해 일본은 1904년 2월 4일 대(對)러시아 개전 및 국교단절을 결정하고, 2월 8일에는 육군 선발대가 한국의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향하는 한편 중국 뤼순(旅順)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2월 9일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러시아 함대와 격돌하였으며, 10일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진행 및 경과===&lt;br /&gt;
&lt;br /&gt;
* 1902 &lt;br /&gt;
 - 영국과 '''영일 조약'''을 맺어&amp;lt;ref&amp;gt;러시아와의 대결에 있어 일본을 적극 지원한 세력은 영국과 미국이었다.&amp;lt;/ref&amp;gt; 영국의 지원을 약속받으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amp;lt;/br&amp;gt; 당시 러시아 측은 러일전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amp;lt;/br&amp;gt;왜냐하면 전장으로 향하는 길을 시베리아가 가로막고 있어 병력과 물자 보급이 느릴 뿐더러,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짜르인 니콜라스 2세의 무능함으로 정권이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일본은 전쟁 즉시 투입할 수 있는 25만 명의 상비군과 그 두 배의 예비군까지 갖춘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1904.02.08&lt;br /&gt;
 - 저녁에 일본은 먼저 바다를 장악하기 위해 '''여순항을 기습'''해, 항구에 있던 러시아 전함을 격침시켰다. 이어 일본군은 항구를 봉쇄하고 육지부터 점령을 시작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2.09~10 &lt;br /&gt;
 - 일본은 9일 인천 앞바다에 있던 두 척의 러시아군함을 격침시킨 다음날인 10일에야 선전을 포고하였다. 여순 봉쇄에 성공한 도고(東鄕平八郞)함대는 5월 5일 요동반도에 상륙하고, 4월 말 한국을 거쳐 북진한 제1부대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진입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5.01~05&lt;br /&gt;
 - 일본은 1905년 1월 1일에 여순항을 점령할 수 있었다. 또 요양, 사하, 봉천 등 만주벌판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가운데 일본의 육군은 한반도를 거쳐 남만주로 진격하여, 봉천을 점령하였다. &amp;lt;/br&amp;gt; 반면 러시아의 발틱 함대는 여순항 함락 이후에나 극동에 도착하였고 그나마도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일본의 도고 함대에 격침당했다. 그러나 일본의 당초 예상과 달리 전쟁이 길어지고 막대한 전쟁비용 등으로 전력이 부족하게 되었으며, 러시아 역시 자국의 혁명운동 발발로 민심 수습이 필요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휴전 및 결과===&lt;br /&gt;
&lt;br /&gt;
1905년 9월 5일, 결국 러시아는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하에 일본과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체결한 후 휴전한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조약을 계기로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였고 러시아는 일본에게 여순·대련의 조차권(租借權)과 남만주의 철도(東淸鐵道)를 양도했다. 또 사할린 남부를 할양, 북위 50도 이남을 일본령으로 하였으며, 연해주와 캄차카의 어업권을 인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는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남만주에서 '''일본이 지배권을 확립'''하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한 뒤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얻지 못한 것을 청나라로부터 보상받으려고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른 일본과 달리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혁명의 불씨로 작용하게 된다.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1.jp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러일전쟁은 표면상으로는 한반도와 만주의 분할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 싸움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 동맹, 미국의 일본 지원, 러시아-프랑스 동맹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제국주의 전쟁의 전초전이었다.&amp;lt;/br&amp;gt;&lt;br /&gt;
*고종이 러시아에 접근하여 러시아를 조선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였고, 조선을 러시아의 속국 상태로 만들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러일전 쟁전후일본의 한국침략』(역사학회, 일조각, 1986)&lt;br /&gt;
*『日露戰爭史の 硏究』(信夫淸三郞·中山治一, 河出書房新社, 1972)&lt;br /&gt;
*『日本外交史硏究』-日淸·日露戰爭-(日本國際政治學會, 1962)&amp;lt;/br&amp;gt;&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러일전쟁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의 발발부터 과정, 그리고 결과까지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lt;br /&gt;
*정보 수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고 중간에 외부 링크를 삽입해 전개 과정에서의 흥미를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9F%AC%EC%9D%BC%EC%A0%84%EC%9F%81&amp;diff=34817</id>
		<title>러일전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9F%AC%EC%9D%BC%EC%A0%84%EC%9F%81&amp;diff=34817"/>
		<updated>2023-12-11T06:32: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러일전쟁 (露ㆍ日戰爭)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1904년부터 1905년 사이에 일어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양국의 쟁탈전이다.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2.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발발===&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9&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CCFfYMt16w0&amp;quot; title=&amp;quot;러일전쟁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비밀무기는 과연 무엇일까?(ENG SUB)&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시모노세키조약 체결====&lt;br /&gt;
&lt;br /&gt;
-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일본에서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되었고, 그와 함께 산업화와 군대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일본은 징병제를 도입하여 군사를 육성하고, 육군 장비와 훈련에는 독일제도를, 해군장비와 훈련에는 영국제도를 채택하여 강력한 군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화와 군 현대화를 통해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품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었다.&lt;br /&gt;
&lt;br /&gt;
1894년부터 1895년에 일어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610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해,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삼국간섭====&lt;br /&gt;
&lt;br /&gt;
- 이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이를 좌절시키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러·청비밀동맹을 체결함과 아울러 동청철도부설권(東淸鐵道敷設權)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조차를 계기로 1898년 여순(旅順)과 대련(大連)을 25년간 조차, 만주를 세력권화하려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만주를 사실상 점령해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등 일본을 견제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선전포고====&lt;br /&gt;
&lt;br /&gt;
- 이에 대해 일본은 1904년 2월 4일 대(對)러시아 개전 및 국교단절을 결정하고, 2월 8일에는 육군 선발대가 한국의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향하는 한편 중국 뤼순(旅順)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2월 9일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러시아 함대와 격돌하였으며, 10일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진행 및 경과===&lt;br /&gt;
&lt;br /&gt;
* 1902 &lt;br /&gt;
 - 영국과 '''영일 조약'''을 맺어&amp;lt;ref&amp;gt;러시아와의 대결에 있어 일본을 적극 지원한 세력은 영국과 미국이었다.&amp;lt;/ref&amp;gt; 영국의 지원을 약속받으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amp;lt;/br&amp;gt; 당시 러시아 측은 러일전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amp;lt;/br&amp;gt;왜냐하면 전장으로 향하는 길을 시베리아가 가로막고 있어 병력과 물자 보급이 느릴 뿐더러,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짜르인 니콜라스 2세의 무능함으로 정권이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일본은 전쟁 즉시 투입할 수 있는 25만 명의 상비군과 그 두 배의 예비군까지 갖춘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1904.02.08&lt;br /&gt;
 - 저녁에 일본은 먼저 바다를 장악하기 위해 '''여순항을 기습'''해, 항구에 있던 러시아 전함을 격침시켰다. 이어 일본군은 항구를 봉쇄하고 육지부터 점령을 시작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2.09~10 &lt;br /&gt;
 - 일본은 9일 인천 앞바다에 있던 두 척의 러시아군함을 격침시킨 다음날인 10일에야 선전을 포고하였다. 여순 봉쇄에 성공한 도고(東鄕平八郞)함대는 5월 5일 요동반도에 상륙하고, 4월 말 한국을 거쳐 북진한 제1부대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진입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5.01~05&lt;br /&gt;
 - 일본은 1905년 1월 1일에 여순항을 점령할 수 있었다. 또 요양, 사하, 봉천 등 만주벌판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가운데 일본의 육군은 한반도를 거쳐 남만주로 진격하여, 봉천을 점령하였다. &amp;lt;/br&amp;gt; 반면 러시아의 발틱 함대는 여순항 함락 이후에나 극동에 도착하였고 그나마도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일본의 도고 함대에 격침당했다. 그러나 일본의 당초 예상과 달리 전쟁이 길어지고 막대한 전쟁비용 등으로 전력이 부족하게 되었으며, 러시아 역시 자국의 혁명운동 발발로 민심 수습이 필요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휴전 및 결과===&lt;br /&gt;
&lt;br /&gt;
1905년 9월 5일, 결국 러시아는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하에 일본과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체결한 후 휴전한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조약을 계기로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였고 러시아는 일본에게 여순·대련의 조차권(租借權)과 남만주의 철도(東淸鐵道)를 양도했다. 또 사할린 남부를 할양, 북위 50도 이남을 일본령으로 하였으며, 연해주와 캄차카의 어업권을 인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는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남만주에서 '''일본이 지배권을 확립'''하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한 뒤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얻지 못한 것을 청나라로부터 보상받으려고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른 일본과 달리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혁명의 불씨로 작용하게 된다.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1.jp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lt;br /&gt;
*러일전쟁은 표면상으로는 한반도와 만주의 분할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 싸움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 동맹, 미국의 일본 지원, 러시아-프랑스 동맹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제국주의 전쟁의 전초전이었다.&amp;lt;/br&amp;gt;&lt;br /&gt;
*고종이 러시아에 접근하여 러시아를 조선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였고, 조선을 러시아의 속국 상태로 만들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러일전 쟁전후일본의 한국침략』(역사학회, 일조각, 1986)&lt;br /&gt;
*『日露戰爭史の 硏究』(信夫淸三郞·中山治一, 河出書房新社, 1972)&lt;br /&gt;
*『日本外交史硏究』-日淸·日露戰爭-(日本國際政治學會, 1962)&amp;lt;/br&amp;gt;&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9F%AC%EC%9D%BC%EC%A0%84%EC%9F%81&amp;diff=34815</id>
		<title>러일전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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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6:31: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러일전쟁 (露ㆍ日戰爭)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1904년부터 1905년 사이에 일어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양국의 쟁탈전이다.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2.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발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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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9&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CCFfYMt16w0&amp;quot; title=&amp;quot;러일전쟁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비밀무기는 과연 무엇일까?(ENG SUB)&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시모노세키조약 체결====&lt;br /&gt;
&lt;br /&gt;
-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일본에서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되었고, 그와 함께 산업화와 군대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일본은 징병제를 도입하여 군사를 육성하고, 육군 장비와 훈련에는 독일제도를, 해군장비와 훈련에는 영국제도를 채택하여 강력한 군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화와 군 현대화를 통해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품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었다.&lt;br /&gt;
&lt;br /&gt;
1894년부터 1895년에 일어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610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해,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삼국간섭====&lt;br /&gt;
&lt;br /&gt;
- 이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이를 좌절시키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러·청비밀동맹을 체결함과 아울러 동청철도부설권(東淸鐵道敷設權)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조차를 계기로 1898년 여순(旅順)과 대련(大連)을 25년간 조차, 만주를 세력권화하려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만주를 사실상 점령해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등 일본을 견제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선전포고====&lt;br /&gt;
&lt;br /&gt;
- 이에 대해 일본은 1904년 2월 4일 대(對)러시아 개전 및 국교단절을 결정하고, 2월 8일에는 육군 선발대가 한국의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향하는 한편 중국 뤼순(旅順)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2월 9일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러시아 함대와 격돌하였으며, 10일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진행 및 경과===&lt;br /&gt;
&lt;br /&gt;
* 1902 &lt;br /&gt;
 - 영국과 '''영일 조약'''을 맺어&amp;lt;ref&amp;gt;러시아와의 대결에 있어 일본을 적극 지원한 세력은 영국과 미국이었다.&amp;lt;/ref&amp;gt; 영국의 지원을 약속받으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amp;lt;/br&amp;gt; 당시 러시아 측은 러일전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amp;lt;/br&amp;gt;왜냐하면 전장으로 향하는 길을 시베리아가 가로막고 있어 병력과 물자 보급이 느릴 뿐더러,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짜르인 니콜라스 2세의 무능함으로 정권이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일본은 전쟁 즉시 투입할 수 있는 25만 명의 상비군과 그 두 배의 예비군까지 갖춘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1904.02.08&lt;br /&gt;
 - 저녁에 일본은 먼저 바다를 장악하기 위해 '''여순항을 기습'''해, 항구에 있던 러시아 전함을 격침시켰다. 이어 일본군은 항구를 봉쇄하고 육지부터 점령을 시작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2.09~10 &lt;br /&gt;
 - 일본은 9일 인천 앞바다에 있던 두 척의 러시아군함을 격침시킨 다음날인 10일에야 선전을 포고하였다. 여순 봉쇄에 성공한 도고(東鄕平八郞)함대는 5월 5일 요동반도에 상륙하고, 4월 말 한국을 거쳐 북진한 제1부대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진입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5.01~05&lt;br /&gt;
 - 일본은 1905년 1월 1일에 여순항을 점령할 수 있었다. 또 요양, 사하, 봉천 등 만주벌판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가운데 일본의 육군은 한반도를 거쳐 남만주로 진격하여, 봉천을 점령하였다. &amp;lt;/br&amp;gt; 반면 러시아의 발틱 함대는 여순항 함락 이후에나 극동에 도착하였고 그나마도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일본의 도고 함대에 격침당했다. 그러나 일본의 당초 예상과 달리 전쟁이 길어지고 막대한 전쟁비용 등으로 전력이 부족하게 되었으며, 러시아 역시 자국의 혁명운동 발발로 민심 수습이 필요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휴전 및 결과===&lt;br /&gt;
&lt;br /&gt;
 1905년 9월 5일, 결국 러시아는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하에 일본과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체결한 후 휴전한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조약을 계기로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였고 러시아는 일본에게 여순·대련의 조차권(租借權)과 남만주의 철도(東淸鐵道)를 양도했다. 또 사할린 남부를 할양, 북위 50도 이남을 일본령으로 하였으며, 연해주와 캄차카의 어업권을 인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는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남만주에서 '''일본이 지배권을 확립'''하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한 뒤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얻지 못한 것을 청나라로부터 보상받으려고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른 일본과 달리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혁명의 불씨로 작용하게 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1.jp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amp;lt;/br&amp;gt;&lt;br /&gt;
*러일전쟁은 표면상으로는 한반도와 만주의 분할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 싸움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 동맹, 미국의 일본 지원, 러시아-프랑스 동맹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제국주의 전쟁의 전초전이었다.&amp;lt;/br&amp;gt;&lt;br /&gt;
*고종이 러시아에 접근하여 러시아를 조선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였고, 조선을 러시아의 속국 상태로 만들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러일전 쟁전후일본의 한국침략』(역사학회, 일조각, 1986)&lt;br /&gt;
*『日露戰爭史の 硏究』(信夫淸三郞·中山治一, 河出書房新社, 1972)&lt;br /&gt;
*『日本外交史硏究』-日淸·日露戰爭-(日本國際政治學會, 1962)&amp;lt;/br&amp;gt;&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9F%AC%EC%9D%BC%EC%A0%84%EC%9F%81&amp;diff=34814</id>
		<title>러일전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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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6:30: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러일전쟁 (露ㆍ日戰爭)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1904년부터 1905년 사이에 일어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양국의 쟁탈전이다.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2.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발발===&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9&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CCFfYMt16w0&amp;quot; title=&amp;quot;러일전쟁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비밀무기는 과연 무엇일까?(ENG SUB)&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시모노세키조약 체결====&lt;br /&gt;
&lt;br /&gt;
-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일본에서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되었고, 그와 함께 산업화와 군대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일본은 징병제를 도입하여 군사를 육성하고, 육군 장비와 훈련에는 독일제도를, 해군장비와 훈련에는 영국제도를 채택하여 강력한 군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화와 군 현대화를 통해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품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었다.&lt;br /&gt;
&lt;br /&gt;
1894년부터 1895년에 일어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610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해,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삼국간섭====&lt;br /&gt;
&lt;br /&gt;
- 이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이를 좌절시키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러·청비밀동맹을 체결함과 아울러 동청철도부설권(東淸鐵道敷設權)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조차를 계기로 1898년 여순(旅順)과 대련(大連)을 25년간 조차, 만주를 세력권화하려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만주를 사실상 점령해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등 일본을 견제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선전포고====&lt;br /&gt;
&lt;br /&gt;
- 이에 대해 일본은 1904년 2월 4일 대(對)러시아 개전 및 국교단절을 결정하고, 2월 8일에는 육군 선발대가 한국의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향하는 한편 중국 뤼순(旅順)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2월 9일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러시아 함대와 격돌하였으며, 10일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진행 및 경과===&lt;br /&gt;
&lt;br /&gt;
* 1902 &lt;br /&gt;
 - 영국과 '''영일 조약'''을 맺어&amp;lt;ref&amp;gt;러시아와의 대결에 있어 일본을 적극 지원한 세력은 영국과 미국이었다.&amp;lt;/ref&amp;gt; 영국의 지원을 약속받으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amp;lt;/br&amp;gt; 당시 러시아 측은 러일전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amp;lt;/br&amp;gt;왜냐하면 전장으로 향하는 길을 시베리아가 가로막고 있어 병력과 물자 보급이 느릴 뿐더러,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짜르인 니콜라스 2세의 무능함으로 정권이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일본은 전쟁 즉시 투입할 수 있는 25만 명의 상비군과 그 두 배의 예비군까지 갖춘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1904.02.08&lt;br /&gt;
 - 저녁에 일본은 먼저 바다를 장악하기 위해 '''여순항을 기습'''해, 항구에 있던 러시아 전함을 격침시켰다. 이어 일본군은 항구를 봉쇄하고 육지부터 점령을 시작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2.09~10 &lt;br /&gt;
 - 일본은 9일 인천 앞바다에 있던 두 척의 러시아군함을 격침시킨 다음날인 10일에야 선전을 포고하였다. 여순 봉쇄에 성공한 도고(東鄕平八郞)함대는 5월 5일 요동반도에 상륙하고, 4월 말 한국을 거쳐 북진한 제1부대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진입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5.01~05&lt;br /&gt;
 - 일본은 1905년 1월 1일에 여순항을 점령할 수 있었다. 또 요양, 사하, 봉천 등 만주벌판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가운데 일본의 육군은 한반도를 거쳐 남만주로 진격하여, 봉천을 점령하였다. &amp;lt;/br&amp;gt; 반면 러시아의 발틱 함대는 여순항 함락 이후에나 극동에 도착하였고 그나마도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일본의 도고 함대에 격침당했다. 그러나 일본의 당초 예상과 달리 전쟁이 길어지고 막대한 전쟁비용 등으로 전력이 부족하게 되었으며, 러시아 역시 자국의 혁명운동 발발로 민심 수습이 필요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휴전 및 결과===&lt;br /&gt;
&lt;br /&gt;
 1905년 9월 5일, 결국 러시아는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하에 일본과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체결한 후 휴전한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조약을 계기로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였고 러시아는 일본에게 여순·대련의 조차권(租借權)과 남만주의 철도(東淸鐵道)를 양도했다. 또 사할린 남부를 할양, 북위 50도 이남을 일본령으로 하였으며, 연해주와 캄차카의 어업권을 인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는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남만주에서 '''일본이 지배권을 확립'''하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한 뒤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얻지 못한 것을 청나라로부터 보상받으려고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른 일본과 달리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혁명의 불씨로 작용하게 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1.jp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amp;lt;/br&amp;gt;&lt;br /&gt;
*러일전쟁은 표면상으로는 한반도와 만주의 분할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 싸움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 동맹, 미국의 일본 지원, 러시아-프랑스 동맹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제국주의 전쟁의 전초전이었다.&amp;lt;/br&amp;gt;&lt;br /&gt;
*고종이 러시아에 접근하여 러시아를 조선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였고, 조선을 러시아의 속국 상태로 만들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러일전 쟁전후일본의 한국침략』(역사학회, 일조각, 1986)&lt;br /&gt;
*『日露戰爭史の 硏究』(信夫淸三郞·中山治一, 河出書房新社, 1972)&lt;br /&gt;
*『日本外交史硏究』-日淸·日露戰爭-(日本國際政治學會, 1962)&amp;lt;/br&amp;gt;&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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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6:27:2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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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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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러일전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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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6:26: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러일전쟁 (露ㆍ日戰爭)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1904년부터 1905년 사이에 일어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양국의 쟁탈전이다.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2.png|400px|center|출처: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발발===&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9&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CCFfYMt16w0&amp;quot; title=&amp;quot;러일전쟁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비밀무기는 과연 무엇일까?(ENG SUB)&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시모노세키조약 체결====&lt;br /&gt;
&lt;br /&gt;
-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일본에서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되었고, 그와 함께 산업화와 군대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일본은 징병제를 도입하여 군사를 육성하고, 육군 장비와 훈련에는 독일제도를, 해군장비와 훈련에는 영국제도를 채택하여 강력한 군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화와 군 현대화를 통해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품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었다.&lt;br /&gt;
&lt;br /&gt;
1894년부터 1895년에 일어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610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해,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삼국간섭====&lt;br /&gt;
&lt;br /&gt;
- 이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이를 좌절시키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러·청비밀동맹을 체결함과 아울러 동청철도부설권(東淸鐵道敷設權)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조차를 계기로 1898년 여순(旅順)과 대련(大連)을 25년간 조차, 만주를 세력권화하려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만주를 사실상 점령해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등 일본을 견제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선전포고====&lt;br /&gt;
&lt;br /&gt;
- 이에 대해 일본은 1904년 2월 4일 대(對)러시아 개전 및 국교단절을 결정하고, 2월 8일에는 육군 선발대가 한국의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향하는 한편 중국 뤼순(旅順)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2월 9일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러시아 함대와 격돌하였으며, 10일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진행 및 경과===&lt;br /&gt;
&lt;br /&gt;
* 1902 &lt;br /&gt;
- 영국과 영일 조약을 맺어&amp;lt;ref&amp;gt;러시아와의 대결에 있어 일본을 적극 지원한 세력은 영국과 미국이었다.&amp;lt;/ref&amp;gt; 영국의 지원을 약속받으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amp;lt;/br&amp;gt; 당시 러시아 측은 러일전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amp;lt;/br&amp;gt;왜냐하면 전장으로 향하는 길을 시베리아가 가로막고 있어 병력과 물자 보급이 느릴 뿐더러,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짜르인 니콜라스 2세의 무능함으로 정권이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일본은 전쟁 즉시 투입할 수 있는 25만 명의 상비군과 그 두 배의 예비군까지 갖춘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1904.02.08&lt;br /&gt;
- 저녁에 일본은 먼저 바다를 장악하기 위해 여순항을 기습해, 항구에 있던 러시아 전함을 격침시켰다. 이어 일본군은 항구를 봉쇄하고 육지부터 점령을 시작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2.09~10 &lt;br /&gt;
- 일본은 9일 인천 앞바다에 있던 두 척의 러시아군함을 격침시킨 다음날인 10일에야 선전을 포고하였다. 여순 봉쇄에 성공한 도고(東鄕平八郞)함대는 5월 5일 요동반도에 상륙하고, 4월 말 한국을 거쳐 북진한 제1부대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진입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5.01~05&lt;br /&gt;
- 일본은 1905년 1월 1일에 여순항을 점령할 수 있었다. 또 요양, 사하, 봉천 등 만주벌판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가운데 일본의 육군은 한반도를 거쳐 남만주로 진격하여, 봉천을 점령하였다. &amp;lt;/br&amp;gt; 반면 러시아의 발틱 함대는 여순항 함락 이후에나 극동에 도착하였고 그나마도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일본의 도고 함대에 격침당했다. 그러나 일본의 당초 예상과 달리 전쟁이 길어지고 막대한 전쟁비용 등으로 전력이 부족하게 되었으며, 러시아 역시 자국의 혁명운동 발발로 민심 수습이 필요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휴전 및 결===&lt;br /&gt;
&lt;br /&gt;
 1905년 9월 5일, 결국 러시아는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하에 일본과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체결한 후 휴전한다. &amp;lt;/br&amp;gt;&lt;br /&gt;
&lt;br /&gt;
이 조약을 계기로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였고 러시아는 일본에게 여순·대련의 조차권(租借權)과 남만주의 철도(東淸鐵道)를 양도했다. 또 사할린 남부를 할양, 북위 50도 이남을 일본령으로 하였으며, 연해주와 캄차카의 어업권을 인정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는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남만주에서 '''일본이 지배권을 확립'''하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한 뒤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얻지 못한 것을 청나라로부터 보상받으려고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른 일본과 달리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혁명의 불씨로 작용하게 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amp;lt;/br&amp;gt;&lt;br /&gt;
*러일전쟁은 표면상으로는 한반도와 만주의 분할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 싸움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 동맹, 미국의 일본 지원, 러시아-프랑스 동맹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제국주의 전쟁의 전초전이었다.&amp;lt;/br&amp;gt;&lt;br /&gt;
*고종이 러시아에 접근하여 러시아를 조선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였고, 조선을 러시아의 속국 상태로 만들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러일전 쟁전후일본의 한국침략』(역사학회, 일조각, 1986)&lt;br /&gt;
*『日露戰爭史の 硏究』(信夫淸三郞·中山治一, 河出書房新社, 1972)&lt;br /&gt;
*『日本外交史硏究』-日淸·日露戰爭-(日本國際政治學會, 1962)&amp;lt;/br&amp;gt;&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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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칼보다 강한 펜의 힘 애국계몽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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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6:03:1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글색&lt;br /&gt;
|color=#F5F5F5&lt;br /&gt;
|text='''독립운동 계열 중 애국계몽운동을 5개의 관련 단체를 기준으로 살펴보았다.'''&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p align=&amp;quot;middle&amp;quot;&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483&amp;quot; height=&amp;quot;300&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IZNU9qms3ck&amp;quot; title=&amp;quot;대한민국독립운동사 ep2. 애국계몽운동&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amp;lt;span style=&amp;quot;background:LightBlue&amp;quot;&amp;gt;'''애국계몽운동'''&amp;lt;/span&amp;gt;에 해당하는 '''단체나 학교, 신문''' 등을 시작으로 그들과 관련된 '''사건, 활동, 인물, 단체, 장소''' 등을 &amp;lt;font color=SteelBlue&amp;gt;'''역사적 흐름'''&amp;lt;/font&amp;gt;에 따라 설명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애국계몽운동.jpg|400px|center|우리 조의 주제를 한 눈에 나타내는 사진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획의도 및 목적'''&lt;br /&gt;
&lt;br /&gt;
&lt;br /&gt;
35년의 식민 통치 기간동안 한국의 주권 회복을 위해 투쟁한 독립 운동은 끊이지 않았다. 독립운동은 시대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지만 공통된 특성을 가진 독립운동을 함께 분석해 그 배경과 특징 의의를 분석하고 각각의 운동, 단체, 인물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애국계몽운동'이라는 주제로 독립운동을 탐구하고자 한다. 애국계몽운동은 한국인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국민 모두의 지적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노력으로 식민 통치 시기에 꼭 필요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계몽단체의 활동은 애국계몽운동이 전국적 규모의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신민회와 같은 전국 규모의 단체가 지회운영을 통하여 계몽운동을 광범한 운동으로 전개시켜 나갔고 학회와 같은 지역 단위의 단체가 설립, 운영되면서 운동이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애국계몽운동은 교육운동과 대중계몽운동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어 이후의 민족해방운동의 밑거름이 되게 하였다. 단순한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실력양성운동에서 애국계몽운동을 벗어날 수 있게 했던 강력한 단체의 출현에 대해서도 알아보고자 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대효과'''&lt;br /&gt;
&lt;br /&gt;
애국계몽운동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으며, 활동했던 여러 단체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또한, 복잡할 수 있는 역사의 흐름을 온톨로지와 타임라인 등을 통해서, 그리고 분류된 노드를 통해 단체와 사건 등을 명확히 구분해 더욱 효과적으로 학습 가능할 것이다. 인과관계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흐름을 통해 파악하고, 어떠한 사건이 어떤 사건의 영향을 받아서 발생했는 지에 대한 논리적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릴레이션을 통해 관련이 있는 사건 및 단체들에 대해 학습하고, 지금의 한국의 기반을 갖추어준 애국계몽운동에 대해 알아보자.&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lt;br /&gt;
&lt;br /&gt;
{{NetworkGraph | title=애국계몽운동.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23%&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Actor||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애국계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거나 큰 영향을 끼친 단체를 정리했다. || [[신민회]], [[대한매일신보]], [[청년학우회]], [[대성학교]], [[오산학교]], [[신흥무관학교]], [[신간회]], [[근우회]], [[보성전문학교]], [[통감부]], [[보안회]]&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Agen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했거나 영향을 받은 인물을 정리했다. || [[안창호]], [[양기탁]], [[신채호]], [[이용익(李容翊)]], [[안재홍]], [[손병희(孫秉熙)]], [[베델]], [[원세성]], [[송수만]]&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Even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애국계몽운동 단체의 활동 및 중요한 사건을 정리했다. || [[105인 사건]], [[청년운동]], [[교육구국운동]], [[민족산업진흥운동]], [[원산총파업]], [[광주학생항일운동]], [[3.1 운동]], [[조선교육령]], [[근대학교 설립운동]], [[국채보상운동]], [[러일전쟁]], [[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시민 대회]]&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Place||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단체가 설립되거나 사건이 발생한 장소를 정리하였다. || [[평양]], [[만주]], [[원산]], [[광주]], [[한성]], [[요동반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성(Relation)===&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MemberOf(~의 일원이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애국계몽운동에서 대표적인 사건의 일원임을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안재홍 → 신간회&lt;br /&gt;
***신채호 → 신간회&lt;br /&gt;
***신채호 → 신민회&lt;br /&gt;
***양기탁 → 신민회&lt;br /&gt;
***안창호 → 신민회&lt;br /&gt;
***손병희 → 보성전문학교&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leads(사건~을 주도하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역사적인 사건 주도를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안재홍 → 3.1운동&lt;br /&gt;
***신채호 → 대한매일신보&lt;br /&gt;
***베델 → 대한매일신보&lt;br /&gt;
***양기탁 → 대한매일신보&lt;br /&gt;
***신민회 → 청년운동&lt;br /&gt;
***신민회 → 교육구국운동&lt;br /&gt;
***신민회 → 민족산업진흥운동&lt;br /&gt;
***이용익 → 교육구국운동&lt;br /&gt;
***손병희 → 3.1운동&lt;br /&gt;
***보안회 → 시민대회&lt;br /&gt;
***보안회 → 황무지개간운동&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happenedAt(장소 ~에서 일어나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애국계몽 운동 속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원산총파업 → 원산&lt;br /&gt;
***러일전쟁 → 요동 반도&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 광주&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InfluencedBy(~에 의해 영향을 받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 어떠한 사건 혹은 단체가 영향을 받은 원인을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보안회 → 러일전쟁&lt;br /&gt;
***대한매일신보 → 러일전쟁&lt;br /&gt;
***보성전문학교 → 조선교육령&lt;br /&gt;
***보성전문학교 → 근대학교 설립운동&lt;br /&gt;
***대성학교 → 교육구국운동&lt;br /&gt;
***오산학교 → 교육구국운동&lt;br /&gt;
***청년운동 → 청년 학우회&lt;br /&gt;
***신민회 → 105인 사건&lt;br /&gt;
***대한매일신보 → 신민회&lt;br /&gt;
***국채보상운동 → 대한매일신보&lt;br /&gt;
***통감부 → 대한매일신보&lt;br /&gt;
***근우회 → 신간회&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SupportedBy (~에게 지원을 받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어떤 활동 및 사건 등이 특정 단체 등의 지원을 받았음을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 근우회&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 신간회&lt;br /&gt;
***원산 총파업 → 신간회&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FounderOf (~은 ~의 설립 주체이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각 단체 및 기관을 설립한 주체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송수만 → 보안회&lt;br /&gt;
***원세성 → 보안회&lt;br /&gt;
***이용익 → 보성전문학교&lt;br /&gt;
***신민회 → 신흥무관학교&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PartOf (~의 일부이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해당 노드의 하위 분류에 속하는 노드들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보안회 → 애국계몽운동&lt;br /&gt;
***신간회 → 애국계몽운동&lt;br /&gt;
***대한매일신보 → 애국계몽운동&lt;br /&gt;
***신민회 → 애국계몽운동&lt;br /&gt;
***보성전문학교 → 애국계몽운동&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LocatedIn (~은 ~에 위치해 있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각 단체 및 기관이 위치해 있는 장소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보성전문학교 → 한성&lt;br /&gt;
***신흥무관학교 → 만주&lt;br /&gt;
***대성학교 → 평양&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5%&amp;quot; | 팀원 !! style=&amp;quot;width:23%&amp;quot; | 기여 내용&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김효원]]||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대한매일신보 관련 자료 조사 및 관련 개별 wiki문서 작성, 타임라인 구상 및 연표 생성, lst 문서 작성 참여, 마인드맵 구상 및 작성 참여, 클래스와 릴레이션 구상 참여&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페퍼민트🌿]]||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보성전문학교 관련 자료 조사 및 관련 개별 문서 작성, 연표 구상 참여 및 연표 생성, lst 문서 작성 참여, 마인드맵 구상 및 작성 참여, 릴레이션 구상 참여&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까마귀]]||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신간회 관련 자료 조사 및 관련 개별 기사 작성, 팀페이지 주제 부분 작성, 타임라인 시작 부분 구상 및 연표 생성, lst 문서 작성 참여, 릴레이션 구상 참여, 마인드맵 참여, 지도 &amp;amp; 타임라인 작성(개별문서)&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오연수]]||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보안회 관련 자료 조사 및 개별 문서 작성, 연표 구상 참여 및 연표 생성, Ist 문서 작성, 기획 의도 및 기대 효과 작성, 발표 영상 수합 및 제출, 클래스와 릴레이션, 마인드맵 구상 참여&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바밤🌰]]||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신민회 관련 자료 조사, 개별 문서 작성, 연표 작성, 디지털 지도 생성(개별문서), lst 파일 작성, 기획 의도 구상 (+릴레이션, 연표, 마인드맵 구상에 참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파일:독립운동가.jpeg|300px|center|백범 김구 중심]]&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파일:애국_마인드맵.png|600px|center|애국계몽운동 기준 마인드맵]]&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타임라인==&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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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1900년대의 애국계몽운동연구』(조항래 외, 아세아문화사, 1993)&lt;br /&gt;
*『만주한인 민족운동사연구』(박환, 일조각, 1991)&lt;br /&gt;
*『105인사건과 신민회연구』(윤경로, 일지사, 1990)&lt;br /&gt;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서중석, 역사비평사, 2001)&lt;br /&gt;
*『독립운동사자료집』10(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lt;br /&gt;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1965)&lt;br /&gt;
*『청년학우회의 활동과 참여 인물』(권두연, 한국문학연구학회, 2012)&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br /&gt;
[[분류:페퍼민트🌿]]&lt;br /&gt;
[[분류:바밤🌰]]&lt;br /&gt;
[[분류:까마귀]]&lt;br /&gt;
[[분류:김효원]]&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9F%AC%EC%9D%BC%EC%A0%84%EC%9F%81&amp;diff=34783</id>
		<title>러일전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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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6:01: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font color=&amp;quot;#18304d&amp;quot;&amp;gt;러일전쟁 (露ㆍ日戰爭)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1904년부터 1905년 사이에 일어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양국의 쟁탈전이다. &lt;br /&gt;
&lt;br /&gt;
[[파일: 러일전쟁 2.png|400px|center|출처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lt;br /&gt;
&lt;br /&gt;
===발발===&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9&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CCFfYMt16w0&amp;quot; title=&amp;quot;러일전쟁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비밀무기는 과연 무엇일까?(ENG SUB)&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lt;br /&gt;
====시모노세키조약 체결===&lt;br /&gt;
&lt;br /&gt;
-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일본에서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되었고, 그와 함께 산업화와 군대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일본은 징병제를 도입하여 군사를 육성하고, 육군 장비와 훈련에는 독일제도를, 해군장비와 훈련에는 영국제도를 채택하여 강력한 군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화와 군 현대화를 통해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품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었다.&lt;br /&gt;
&lt;br /&gt;
1894년부터 1895년에 일어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610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해,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하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삼국간섭====&lt;br /&gt;
&lt;br /&gt;
- 이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이를 좌절시키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러·청비밀동맹을 체결함과 아울러 동청철도부설권(東淸鐵道敷設權)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조차를 계기로 1898년 여순(旅順)과 대련(大連)을 25년간 조차, 만주를 세력권화하려 하였다.&amp;lt;/br&amp;gt;&lt;br /&gt;
-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만주를 사실상 점령해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등 일본을 견제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선전포고====&lt;br /&gt;
&lt;br /&gt;
- 이에 대해 일본은 1904년 2월 4일 대(對)러시아 개전 및 국교단절을 결정하고, 2월 8일에는 육군 선발대가 한국의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향하는 한편 중국 뤼순(旅順)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2월 9일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러시아 함대와 격돌하였으며, 10일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진행 및 경과===&lt;br /&gt;
&lt;br /&gt;
* 1904.07.13 &lt;br /&gt;
 1. 종로 백목전에 모인 100여 명의 시민들 앞에서 송수만은 황무지를 일본에게 차여(借與)함은 불가하며 황무지 차여에 중개 역할을 한 국내 인사들을 성토하자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amp;lt;/br&amp;gt;&lt;br /&gt;
 2. 대한 제국 경위원(警衛院)과 경무청에서 '''경찰관을 파견'''하고, 일본 헌병사령부에서는 '''헌병을 파견'''하여 '''집회를 감시하고 참석자들을 해산시켰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7.14&lt;br /&gt;
 - 100여 명이 백목전에 모여, 일본의 요구를 철폐시킬 때까지 매일 집회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송수만, 심상진 등은 전국에 '''통문을 발하고''' 정부의 각 부서와 대관들의 집에 '''공함(公函)을 보내어''', 보안회 임시회의소에서 회동할 것을 요구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16&lt;br /&gt;
 - 집회에서는 회장에 신기선(申箕善), 부회장에 송인섭(宋寅燮)을 천거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대변회장(代辯會長)에 송수만을 선출했다. 이날 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 일본 경찰이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무릅쓰고 '''송수만과 송인섭을 붙잡아 갔다'''. 대한 제국 외부에서는 일본공사에게 송수만과 송인섭을 붙잡아 간 것에 대해 항의하고, 두 사람의 신병을 '''한국 관아로 인도할 것을 요청'''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17 &lt;br /&gt;
 - 고종은 경무청에 칙령을 내려 '''보안회의 집회를 금지&amp;amp;해산하게 했다'''. 이에 보안회는 7월 17일부터 전동(典洞)의 한어학교(漢語學校)로 '''회의 개최 장소를 이전'''하고 일본공사관에 구속된 송수만 대신 원세성을 대변회장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와 송수만·송인섭 등의 '''체포에 대해 격렬히 성토하는 운동을 계속'''해 나갔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20~21&lt;br /&gt;
 - 한어학교에서 또다시 대규모 [[시민 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회원뿐만 아니라 수천 명의 서울 시민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시민 대회]]의 연단에 오른 연사들은 일본의 '''대한 제국 산림·천택·원야·진황지 개간 이권 요구를 격렬하게 성토'''하고, '''송수만과 송인섭을 일본 측에서 부당하게 체포 구금하고 있는 것을 강력하게 규탄'''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 1904.07.22&lt;br /&gt;
 - 한어학교의 [[시민 대회]] 도중 일본 경찰이 들어와 보안회원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원세성, 심상진 등 회원들을 체포했다. '''일본군이 무력을 이용하여 한어학교를 완전히 폐쇄'''하였으나, 보안회원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종로로 나와 '''시민들과 함께 가두 투쟁을 시작'''했다. 일본 기마헌병대들이 권총과 일본도를 휘두르며 위협하였으나 보안회 회원들과 시위 군중들은 전혀 해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욱 분노하여 격렬한 가두 투쟁을 계속했다.&amp;lt;/br&amp;gt;&lt;br /&gt;
 - 결국 이날 밤 11시가 되자 일본 헌병대는 수백 명의 무장한 헌병들을 추가로 출동시켰고, 보안회는 어둠 속에서 무장한 일본 헌병대와 충돌하면 '''살상자가 발생할 것을 염려하여 일단 해산을 결정'''했다. 7월 22일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진 집회와 시위, 가두 투쟁은 '''보안회의 민족 운동이 절정을 이룬 것'''이었으며, 또 일본군 정면으로 가장 격렬하게 대치한 운동이었다.&lt;br /&gt;
&lt;br /&gt;
===결===&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의 황무지 점탈 계획이 저지당한 뒤, 일본군은 '''회장 원세성과 회원 신형균·이범석 등을 다시 체포'''하는 등 보안회에 대한 보복을 자행했다. 또한 한국 국민들을 위협할 목적으로 8월 1일 저녁 서울 시내 중요한 거리에 '''일본군 병참사령부 표목을 박았다'''. 이는 서울이 일본군 지배하에 있음을 한국 국민들에게 상기시키고, 한일의정서에 따라 일본군이 군사상 필요한 토지를 수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기 위한 행위였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보안회 회원들은 일제의 황무지 침탈을 저지하는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창립 당시 강령에 따라 보안회를 사실상 해체하여 종결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이 원세성 등을 체포하고 석방하지 않는 것을 보고, 보안회의 속개를 준비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8월 29일 전동의 입전 도가(立廛 都家)에서 약 70여 명의 속개 준비 회원들이 모여 이건석(李建奭)을 회장을 선출하며 '''보안회를 다시 열었다'''. 그러자 곧바로 일본 헌병대와 경관들이 와서 '''회장 이건석을 체포'''하였다. 일본군 헌병사령관은 새로운 회명을 짓고 사전허락을 받을 것을 요구했고, 회원들은 새로운 출발의 의미로 9윌 11일에 회의 명칭을 ‘협동회(協同會)’로 개칭하여 운동을 계속하기로 결의했다. 협동회의 활동은 '''일제의 견제를 받아 점차 위축'''되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역사적 의의===&lt;br /&gt;
&amp;lt;/br&amp;gt;&lt;br /&gt;
*보안회에서 벌인 '''황무지개척 반대운동'''은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를 방불하게 하는 민중 구국운동이었다. 이로 인해 일제는 1908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6671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설치될 때까지 황무지개척권에 관한 거론을 유보하게 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창립 이후 단 1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활동했음에도 민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며 일제의 무력 위협에 대항했다.&amp;lt;/br&amp;gt;보안회의 민족 운동은 대한 제국 정부를 움직여 결국 '''일제의 황무지 침탈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amp;lt;/br&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보안회가 대한 제국 정부의 금령과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함으로써, 그 뒤를 이어 애국계몽운동 단체들이 연달아 창립되고 '''구국 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러일전 쟁전후일본의 한국침략』(역사학회, 일조각, 1986)&lt;br /&gt;
*『日露戰爭史の 硏究』(信夫淸三郞·中山治一, 河出書房新社, 1972)&lt;br /&gt;
*『日本外交史硏究』-日淸·日露戰爭-(日本國際政治學會, 1962)&amp;lt;/br&amp;gt;&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B9%BC%EB%B3%B4%EB%8B%A4_%EA%B0%95%ED%95%9C_%ED%8E%9C%EC%9D%98_%ED%9E%98_%EC%95%A0%EA%B5%AD%EA%B3%84%EB%AA%BD%EC%9A%B4%EB%8F%99&amp;diff=34684</id>
		<title>칼보다 강한 펜의 힘 애국계몽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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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5:06: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독립운동 계열 중 '''애국계몽운동'''을 5개의 관련 단체를 기준으로 살펴보았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애국계몽운동.jpg|400px|center|우리 조의 주제를 한 눈에 나타내는 사진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획의도 및 목적'''&lt;br /&gt;
&lt;br /&gt;
&lt;br /&gt;
35년의 식민 통치 기간동안 한국의 주권 회복을 위해 투쟁한 독립 운동은 끊이지 않았다. 독립운동은 시대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지만 공통된 특성을 가진 독립운동을 함께 분석해 그 배경과 특징 의의를 분석하고 각각의 운동, 단체, 인물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애국계몽운동'이라는 주제로 독립운동을 탐구하고자 한다. 애국계몽운동은 한국인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국민 모두의 지적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노력으로 식민 통치 시기에 꼭 필요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계몽단체의 활동은 애국계몽운동이 전국적 규모의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신민회와 같은 전국 규모의 단체가 지회운영을 통하여 계몽운동을 광범한 운동으로 전개시켜 나갔고 학회와 같은 지역 단위의 단체가 설립, 운영되면서 운동이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애국계몽운동은 교육운동과 대중계몽운동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어 이후의 민족해방운동의 밑거름이 되게 하였다. 단순한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실력양성운동에서 애국계몽운동을 벗어날 수 있게 했던 강력한 단체의 출현에 대해서도 알아보고자 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대효과'''&lt;br /&gt;
&lt;br /&gt;
애국계몽운동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으며, 활동했던 여러 단체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또한, 복잡할 수 있는 역사의 흐름을 온톨로지와 타임라인 등을 통해서, 그리고 분류된 노드를 통해 단체와 사건 등을 명확히 구분해 더욱 효과적으로 학습 가능할 것이다. 인과관계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흐름을 통해 파악하고, 어떠한 사건이 어떤 사건의 영향을 받아서 발생했는 지에 대한 논리적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릴레이션을 통해 관련이 있는 사건 및 단체들에 대해 학습하고, 지금의 한국의 기반을 갖추어준 애국계몽운동에 대해 알아보자.&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lt;br /&gt;
&lt;br /&gt;
{{NetworkGraph | title=애국계몽운동.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23%&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Actor||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애국계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거나 큰 영향을 끼친 단체를 정리했다. || [[신민회]], [[대한매일신보]], [[청년학우회]], [[대성학교]], [[오산학교]], [[신흥무관학교]], [[신간회]], [[근우회]], [[보성전문학교]], [[통감부]], [[보안회]]&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Agen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했거나 영향을 받은 인물을 정리했다. || [[안창호]], [[양기탁]], [[신채호]], [[이용익(李容翊)]], [[안재홍]], [[손병희(孫秉熙)]], [[베델]], [[원세성]], [[송수만]]&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Even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애국계몽운동 단체의 활동 및 중요한 사건을 정리했다. || [[105인 사건]], [[청년운동]], [[교육구국운동]], [[민족산업진흥운동]], [[원산총파업]], [[광주학생항일운동]], [[3.1 운동]], [[조선교육령]], [[근대학교 설립운동]], [[국채보상운동]], [[러일전쟁]], [[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시민 대회]]&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Place||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단체가 설립되거나 사건이 발생한 장소를 정리하였다. || [[평양]], [[만주]], [[원산]], [[광주]], [[한성]], [[요동반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성(Relation)===&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MemberOf(~의 일원이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애국계몽운동에서 대표적인 사건의 일원임을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안재홍 → 신간회&lt;br /&gt;
***신채호 → 신간회&lt;br /&gt;
***신채호 → 신민회&lt;br /&gt;
***양기탁 → 신민회&lt;br /&gt;
***안창호 → 신민회&lt;br /&gt;
***손병희 → 보성전문학교&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leads(사건~을 주도하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역사적인 사건 주도를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안재홍 → 3.1운동&lt;br /&gt;
***신채호 → 대한매일신보&lt;br /&gt;
***베델 → 대한매일신보&lt;br /&gt;
***양기탁 → 대한매일신보&lt;br /&gt;
***신민회 → 청년운동&lt;br /&gt;
***신민회 → 교육구국운동&lt;br /&gt;
***신민회 → 민족산업진흥운동&lt;br /&gt;
***이용익 → 교육구국운동&lt;br /&gt;
***손병희 → 3.1운동&lt;br /&gt;
***보안회 → 시민대회&lt;br /&gt;
***보안회 → 황무지개간운동&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happenedAt(장소 ~에서 일어나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애국계몽 운동 속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원산총파업 → 원산&lt;br /&gt;
***러일전쟁 → 요동 반도&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 광주&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InfluencedBy(~에 의해 영향을 받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 어떠한 사건 혹은 단체가 영향을 받은 원인을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보안회 → 러일전쟁&lt;br /&gt;
***대한매일신보 → 러일전쟁&lt;br /&gt;
***보성전문학교 → 조선교육령&lt;br /&gt;
***보성전문학교 → 근대학교 설립운동&lt;br /&gt;
***대성학교 → 교육구국운동&lt;br /&gt;
***오산학교 → 교육구국운동&lt;br /&gt;
***청년운동 → 청년 학우회&lt;br /&gt;
***신민회 → 105인 사건&lt;br /&gt;
***대한매일신보 → 신민회&lt;br /&gt;
***국채보상운동 → 대한매일신보&lt;br /&gt;
***통감부 → 대한매일신보&lt;br /&gt;
***근우회 → 신간회&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SupportedBy (~에게 지원을 받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어떤 활동 및 사건 등이 특정 단체 등의 지원을 받았음을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 근우회&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 신간회&lt;br /&gt;
***원산 총파업 → 신간회&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FounderOf (~은 ~의 설립 주체이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각 단체 및 기관을 설립한 주체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송수만 → 보안회&lt;br /&gt;
***원세성 → 보안회&lt;br /&gt;
***이용익 → 보성전문학교&lt;br /&gt;
***신민회 → 신흥무관학교&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PartOf (~의 일부이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해당 노드의 하위 분류에 속하는 노드들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보안회 → 애국계몽운동&lt;br /&gt;
***신간회 → 애국계몽운동&lt;br /&gt;
***대한매일신보 → 애국계몽운동&lt;br /&gt;
***신민회 → 애국계몽운동&lt;br /&gt;
***보성전문학교 → 애국계몽운동&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LocatedIn (~은 ~에 위치해 있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각 단체 및 기관이 위치해 있는 장소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보성전문학교 → 한성&lt;br /&gt;
***신흥무관학교 → 만주&lt;br /&gt;
***대성학교 → 평양&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5%&amp;quot; | 팀원 !! style=&amp;quot;width:23%&amp;quot; | 기여 내용&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김효원]]||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대한매일신보 관련 자료 조사 및 관련 개별 wiki문서 작성, 타임라인 구상 및 연표 생성, lst 문서 작성 참여, 마인드맵 구상 및 작성 참여, 클래스와 릴레이션 구상 참여&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페퍼민트🌿]]||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보성전문학교 관련 자료 조사 및 관련 개별 문서 작성, 연표 구상 참여 및 연표 생성, lst 문서 작성 참여, 마인드맵 구상 및 작성 참여, 릴레이션 구상 참여&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까마귀]]||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오연수]]||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보안회 관련 자료 조사 및 개별 문서 작성, 연표 구상 참여 및 연표 생성, Ist 문서 작성 기획 의도 및 기대효과 작성, 발표영상 수합 및 제출, 클래스와 릴레이션 구상 참여&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바밤🌰]]||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신민회 관련 자료 조사, 개별 문서 작성, 연표 작성, 디지털 지도 생성(개별문서), lst 파일 작성, 기획 의도 구상 (+릴레이션, 연표, 마인드맵 구상에 참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파일:독립운동가.jpeg|300px|center|백범 김구 중심]]&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파일:애국_마인드맵.png|600px|center|애국계몽운동 기준 마인드맵]]&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타임라인==&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33koILa2WQu31NLYfQ5YRr6wZvbqPHVhw9UHWxU5hSk&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1900년대의 애국계몽운동연구』(조항래 외, 아세아문화사, 1993)&lt;br /&gt;
*『만주한인 민족운동사연구』(박환, 일조각, 1991)&lt;br /&gt;
*『105인사건과 신민회연구』(윤경로, 일지사, 1990)&lt;br /&gt;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서중석, 역사비평사, 2001)&lt;br /&gt;
*『독립운동사자료집』10(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lt;br /&gt;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1965)&lt;br /&gt;
*『청년학우회의 활동과 참여 인물』(권두연, 한국문학연구학회, 2012)&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br /&gt;
[[분류:페퍼민트🌿]]&lt;br /&gt;
[[분류:바밤🌰]]&lt;br /&gt;
[[분류:까마귀]]&lt;br /&gt;
[[분류:김효원]]&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B9%BC%EB%B3%B4%EB%8B%A4_%EA%B0%95%ED%95%9C_%ED%8E%9C%EC%9D%98_%ED%9E%98_%EC%95%A0%EA%B5%AD%EA%B3%84%EB%AA%BD%EC%9A%B4%EB%8F%99&amp;diff=34681</id>
		<title>칼보다 강한 펜의 힘 애국계몽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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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5:05: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주제==&lt;br /&gt;
독립운동 계열 중 '''애국계몽운동'''을 5개의 관련 단체를 기준으로 살펴보았다.&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기획의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 애국계몽운동.jpg|400px|center|우리 조의 주제를 한 눈에 나타내는 사진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획의도 및 목적'''&lt;br /&gt;
&lt;br /&gt;
&lt;br /&gt;
35년의 식민 통치 기간동안 한국의 주권 회복을 위해 투쟁한 독립 운동은 끊이지 않았다. 독립운동은 시대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지만 공통된 특성을 가진 독립운동을 함께 분석해 그 배경과 특징 의의를 분석하고 각각의 운동, 단체, 인물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애국계몽운동'이라는 주제로 독립운동을 탐구하고자 한다. 애국계몽운동은 한국인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국민 모두의 지적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노력으로 식민 통치 시기에 꼭 필요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계몽단체의 활동은 애국계몽운동이 전국적 규모의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신민회와 같은 전국 규모의 단체가 지회운영을 통하여 계몽운동을 광범한 운동으로 전개시켜 나갔고 학회와 같은 지역 단위의 단체가 설립, 운영되면서 운동이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애국계몽운동은 교육운동과 대중계몽운동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어 이후의 민족해방운동의 밑거름이 되게 하였다. 단순한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실력양성운동에서 애국계몽운동을 벗어날 수 있게 했던 강력한 단체의 출현에 대해서도 알아보고자 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대효과'''&lt;br /&gt;
&lt;br /&gt;
애국계몽운동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으며, 활동했던 여러 단체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또한, 복잡할 수 있는 역사의 흐름을 온톨로지와 타임라인 등을 통해서, 그리고 분류된 노드를 통해 단체와 사건 등을 명확히 구분해 더욱 효과적으로 학습 가능할 것이다. 인과관계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흐름을 통해 파악하고, 어떠한 사건이 어떤 사건의 영향을 받아서 발생했는 지에 대한 논리적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릴레이션을 통해 관련이 있는 사건 및 단체들에 대해 학습하고, 지금의 한국의 기반을 갖추어준 애국계몽운동에 대해 알아보자.&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온톨로지==&lt;br /&gt;
&lt;br /&gt;
&lt;br /&gt;
{{NetworkGraph | title=애국계몽운동.lst}}&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콘텐츠 구조==&lt;br /&gt;
&lt;br /&gt;
===클래스(Class)===&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23%&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Actor||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애국계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거나 큰 영향을 끼친 단체를 정리했다. || [[신민회]], [[대한매일신보]], [[청년학우회]], [[대성학교]], [[오산학교]], [[신흥무관학교]], [[신간회]], [[근우회]], [[보성전문학교]], [[통감부]], [[보안회]]&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Agen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했거나 영향을 받은 인물을 정리했다. || [[안창호]], [[양기탁]], [[신채호]], [[이용익(李容翊)]], [[안재홍]], [[손병희(孫秉熙)]], [[베델]], [[원세성]], [[송수만]]&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Even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애국계몽운동 단체의 활동 및 중요한 사건을 정리했다. || [[105인 사건]], [[청년운동]], [[교육구국운동]], [[민족산업진흥운동]], [[원산총파업]], [[광주학생항일운동]], [[3.1 운동]], [[조선교육령]], [[근대학교 설립운동]], [[국채보상운동]], [[러일전쟁]], [[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시민 대회]]&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Place||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단체가 설립되거나 사건이 발생한 장소를 정리하였다. || [[평양]], [[만주]], [[원산]], [[광주]], [[한성]], [[요동반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성(Relation)===&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MemberOf(~의 일원이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애국계몽운동에서 대표적인 사건의 일원임을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안재홍 → 신간회&lt;br /&gt;
***신채호 → 신간회&lt;br /&gt;
***신채호 → 신민회&lt;br /&gt;
***양기탁 → 신민회&lt;br /&gt;
***안창호 → 신민회&lt;br /&gt;
***손병희 → 보성전문학교&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leads(사건~을 주도하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역사적인 사건 주도를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안재홍 → 3.1운동&lt;br /&gt;
***신채호 → 대한매일신보&lt;br /&gt;
***베델 → 대한매일신보&lt;br /&gt;
***양기탁 → 대한매일신보&lt;br /&gt;
***신민회 → 청년운동&lt;br /&gt;
***신민회 → 교육구국운동&lt;br /&gt;
***신민회 → 민족산업진흥운동&lt;br /&gt;
***이용익 → 교육구국운동&lt;br /&gt;
***손병희 → 3.1운동&lt;br /&gt;
***보안회 → 시민대회&lt;br /&gt;
***보안회 → 황무지개간운동&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happenedAt(장소 ~에서 일어나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애국계몽 운동 속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원산총파업 → 원산&lt;br /&gt;
***러일전쟁 → 요동 반도&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 광주&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InfluencedBy(~에 의해 영향을 받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 어떠한 사건 혹은 단체가 영향을 받은 원인을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보안회 → 러일전쟁&lt;br /&gt;
***대한매일신보 → 러일전쟁&lt;br /&gt;
***보성전문학교 → 조선교육령&lt;br /&gt;
***보성전문학교 → 근대학교 설립운동&lt;br /&gt;
***대성학교 → 교육구국운동&lt;br /&gt;
***오산학교 → 교육구국운동&lt;br /&gt;
***청년운동 → 청년 학우회&lt;br /&gt;
***신민회 → 105인 사건&lt;br /&gt;
***대한매일신보 → 신민회&lt;br /&gt;
***국채보상운동 → 대한매일신보&lt;br /&gt;
***통감부 → 대한매일신보&lt;br /&gt;
***근우회 → 신간회&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SupportedBy (~에게 지원을 받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어떤 활동 및 사건 등이 특정 단체 등의 지원을 받았음을 나타낸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 근우회&lt;br /&gt;
***광주학생항일운동 → 신간회&lt;br /&gt;
***원산 총파업 → 신간회&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FounderOf (~은 ~의 설립 주체이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각 단체 및 기관을 설립한 주체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송수만 → 보안회&lt;br /&gt;
***원세성 → 보안회&lt;br /&gt;
***이용익 → 보성전문학교&lt;br /&gt;
***신민회 → 신흥무관학교&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PartOf (~의 일부이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해당 노드의 하위 분류에 속하는 노드들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보안회 → 애국계몽운동&lt;br /&gt;
***신간회 → 애국계몽운동&lt;br /&gt;
***대한매일신보 → 애국계몽운동&lt;br /&gt;
***신민회 → 애국계몽운동&lt;br /&gt;
***보성전문학교 → 애국계몽운동&lt;br /&gt;
&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orestGreen&amp;quot;&amp;gt;'''isLocatedIn (~은 ~에 위치해 있다)'''&amp;lt;/font&amp;gt;&lt;br /&gt;
**설명: 각 단체 및 기관이 위치해 있는 장소에 대해 설명한다.&lt;br /&gt;
**해당노드:&lt;br /&gt;
***보성전문학교 → 한성&lt;br /&gt;
***신흥무관학교 → 만주&lt;br /&gt;
***대성학교 → 평양&lt;br /&gt;
&lt;br /&gt;
==기여==&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5%&amp;quot; | 팀원 !! style=&amp;quot;width:23%&amp;quot; | 기여 내용&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김효원]]||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대한매일신보 관련 자료 조사 및 관련 개별 wiki문서 작성, 타임라인 구상 및 연표 생성, lst 문서 작성 참여, 마인드맵 구상 및 작성 참여, 클래스와 릴레이션 구상 참여&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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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까마귀]]||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오연수]]|| &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center;&amp;quot;&amp;gt; 보안회 관련 자료 조사 및 개별 문서 작성, 연표 구상 참여 및 연표 생성, 기획 의도 및 기대효과 작성, 발표영상 수합 및 제출, 클래스와 릴레이션 구상 참여&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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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마인드맵==&lt;br /&gt;
 주제 마인드맵&lt;br /&gt;
[[파일:독립운동가.jpeg|300px|center|백범 김구 중심]]&lt;br /&gt;
 노드 마인드맵&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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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div style=&amp;quot;background-color:lightblue; margin: 0; border: 3px solid ForestGreen;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amp;quot;&amp;gt;타임라인==&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133koILa2WQu31NLYfQ5YRr6wZvbqPHVhw9UHWxU5hSk&amp;amp;font=Default&amp;amp;lang=ko&amp;amp;initial_zoom=2&amp;amp;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1900년대의 애국계몽운동연구』(조항래 외, 아세아문화사, 1993)&lt;br /&gt;
*『만주한인 민족운동사연구』(박환, 일조각, 1991)&lt;br /&gt;
*『105인사건과 신민회연구』(윤경로, 일지사, 1990)&lt;br /&gt;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서중석, 역사비평사, 2001)&lt;br /&gt;
*『독립운동사자료집』10(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lt;br /&gt;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1965)&lt;br /&gt;
*『청년학우회의 활동과 참여 인물』(권두연, 한국문학연구학회, 2012)&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br /&gt;
[[분류:페퍼민트🌿]]&lt;br /&gt;
[[분류:바밤🌰]]&lt;br /&gt;
[[분류:까마귀]]&lt;br /&gt;
[[분류:김효원]]&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6%A1%EC%88%98%EB%A7%8C&amp;diff=34677</id>
		<title>송수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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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4:59:5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송수만 (宋秀萬)==&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lt;br /&gt;
대한제국기 보안회의 조직과 을사조약 반대운동 등을 전개한 항일운동가이다. &lt;br /&gt;
&lt;br /&gt;
* 성별 : 남성&lt;br /&gt;
* 출생 : 1857년&lt;br /&gt;
* 사망 : 미상&lt;br /&gt;
* 본관 : 여산(礪山)&lt;br /&gt;
&lt;br /&gt;
[[파일:송수만.jpg|height:&amp;quot;100&amp;quot;|center|송수만]]&lt;br /&gt;
&lt;br /&gt;
&lt;br /&gt;
===천도교 창건 및 정비===&lt;br /&gt;
&lt;br /&gt;
'''*천도교 창건 배경'''&lt;br /&gt;
&lt;br /&gt;
손병희는 22세였던 1882년 동학에 입도하였다. 그는 입도 3년만에 제2세 교주 최시형을 만나 착실한 신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 동학의 교세는 날로 확산되었다.&lt;br /&gt;
&lt;br /&gt;
그렇게 전국적으로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항하여 동학교도들과 함께 대대적인 항쟁을 전개하며 오랜 시간 최시형과 함께 해왔던 손병희였지만, 그들은 항쟁 중 충주 부근에서 개별적으로 행동하기로 하고 해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 후 최시형과 손병희 등 주요 간부들은 당연히 관군의 추격을 받게 되었지만, 다행히 생존한 북접 간부들의 노력으로 교세는 명맥을 유지하였다. 특히 그들은 탄압의 손길이 적게 미쳤던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으로 피신해 그곳에서의 교세 확장, 포교에 힘썼다.&lt;br /&gt;
&lt;br /&gt;
그렇게 손병희는 최시형에게 성실한 생활태도와 지략의 역량을 인정받아 '의암'이라는 도호를 받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1897년 12월 24일에는 실질적인 제3세 교주로서의 일을 맡게 되었으며, 동학농민운동이 외세에 의해 진압되고, 1898년 4월 5일 제2대 교주였던 최시형이 체포되어 6월 2일 서울 감옥에서 처형된 뒤 마침내 교주가 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천도교 창건 및 조직 정비'''&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손병희는 동학의 교주가 된 초기에는 정치와 종교 간의 불가분적 관계를 강조하면서&amp;lt;ref&amp;gt;교정일치론.&amp;lt;/ref&amp;gt; 동학에서의 여러 가지 개혁적인 시도를 감행했으나 실패했고, 도리어 일제에 의해 역이용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걸고 1905년 교명을 '천도교'로 개칭하면서 새로운 교리와 체제를 확립하기 시작하였다.'''&amp;lt;/big&amp;gt;&lt;br /&gt;
&lt;br /&gt;
최시형의 순교가 있고 난 뒤, 손병희는 사태를 수습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 힘썼다. 그러나 관헌의 추적이 심하자 1901년 3월 일본으로 피신했고, 그 해 9월 일시 귀국했다가 ‘세계의 대세’를 깨닫기 위해 1902년 3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려 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일본에 머물게 되었다.&lt;br /&gt;
&lt;br /&gt;
그곳에서 망명중이던 개화파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인식을 갖추게 된 한편, 국내와도 꾸준히 연락하면서 교인들을 규합하고 동학을 재정비하려 노력하였다.&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그런데 손병희의 일본 체류는 그의 사상적 폭이 넓어지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탄력성을 증대시킨 반면,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동학교도들의 민족적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1904년 8월 말부터 전국에 걸쳐 조직되기 시작한 '진보회'는 원래 동학교도들이 기존 정치체제의 개혁 세력으로서 참여하기 위한 기구였으나, 이용구의 주도하에 송병준의 일진회와 합하고 친일단체화하였다.&lt;br /&gt;
&lt;br /&gt;
이에 손병희는 교정일치론을 철회하고 정치적 관심은 아예 포기하였으며, 종교로서의 동학을 고수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따라서 1905년 12월 1일 '동학'을 '천도교'로 바꾸어 세상에 널리 알렸고, 이듬해 1월에는 귀국하여 교회를 재조직하는 데 착수했으며, ＜천도교대헌＞을 반포하고 새로운 교단조직을 만들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천도교리의 체계화'''&lt;br /&gt;
&lt;br /&gt;
이후 손병희는 천도교단의 중앙과 지방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천도교리의 체계화에도 노력하였다. &lt;br /&gt;
&lt;br /&gt;
각종 교리서들이 천도교중앙총부 명의로 편찬되었다. 특히 1907년 출간된 『대종정의』에서는 '인내천'&amp;lt;ref&amp;gt;천도교의 기본 사상으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amp;lt;/ref&amp;gt;을 천도교의 교의로 공식화하였다. &lt;br /&gt;
&lt;br /&gt;
이후 손병희와 천도교단에서는 서양의 근대사상을 수용하여 인내천 교리에 대한 체계화 작업을 계속했다.&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인내천은 한편에서 천도교 종교의식의 원천이 되어 온갖 도법과 교화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천도교 정치사상의 근저가 되어 온갖 이론과 행동을 규정짓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즉 천도교에서는 '보국안민'&amp;lt;ref&amp;gt;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amp;lt;/ref&amp;gt;, '포덕천하'&amp;lt;ref&amp;gt;덕을 천하에 편다는 뜻으로, 세상에 천도교를 널리 보급함을 이르는 말.&amp;lt;/ref&amp;gt;, '광제창생'&amp;lt;ref&amp;gt;널리 백성을 구제함&amp;lt;/ref&amp;gt;을 통한 지상천국 건설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보성전문학교 인수===&lt;br /&gt;
&lt;br /&gt;
보성전문학교의 설립자인 이용익의 서거 이후, 그의 손자 이종호가 잠시 학교의 경영을 맡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보성전문학교는 고종의 퇴위 이후 급속도로 경영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학교의 설립자는 이용익이었으나, 학교의 보호자는 그를 아끼던 고종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1906년 이상설ㆍ이준ㆍ이위종 등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퇴위시키면서 보성학원에 대한 지원 역시 끊긴 것이다. &lt;br /&gt;
&lt;br /&gt;
주인이 없는 보성전문학교를 이끌고 있던 윤익선&amp;lt;ref&amp;gt;보성전문학교 5대 교장.&amp;lt;/ref&amp;gt;은 손병희를 찾아가 지원을 간청했다. 손병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명문 보성전문학교의 문을 닫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고, 1907년 12월 21일 보성전문학교를 천도교에서 인수하였다. &lt;br /&gt;
&lt;br /&gt;
막대한 부채를 안고 인수한 것이었지만 보성전문학생 중에는 특정 종교재단에서 학교를 인수하는 것을 반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손병희는 학교에서 일체의 종교적 색채를 강요하지 말 것을 담당자들에게 각별히 당부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때 손병희가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고려대학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해방 후 고려대학교는 교정 한 구석에 손병희의 동상을 세웠다.&lt;br /&gt;
&lt;br /&gt;
[[파일:손병희_선생_흉상.jpg|height:&amp;quot;100&amp;quot;|center|손병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3.1운동===&lt;br /&gt;
&lt;br /&gt;
&lt;br /&gt;
손병희와 천도교단은 3·1운동을 준비하고 전국적인 조직을 이용해 시위를 조직하거나 운동자금을 제공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lt;br /&gt;
&lt;br /&gt;
각 기관이나 연원을 대표한 핵심지도자였던 손병희, 권병덕, 최린, 이종일, 권동진, 오세창, 양한묵, 임예환, 홍기조, 나용환, 나인협, 김완규, 박준승, 이종훈, 홍병기로 구성된 15명이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기도 하였다. 1919년 2월 27일 밤 천도교 직영의 보성사에서 독립선언문 2만 1000매를 인쇄, 이튿날 가회동 자신의 집에 민족대표 23명이 모여 다음날 거사를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파고다공원&amp;lt;ref&amp;gt;현 탑골공원.&amp;lt;/ref&amp;gt;에서 독립선언식을 할 경우의 불상사를 염려해 파고다공원 부근 '태화관'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기로 하였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손병희와 천도교단이 3․1운동의 준비와 확산에 조직적으로 관여한 것은 ‘교정일치’라는 천도교리와도 무관치 않은 것이었다. &lt;br /&gt;
&lt;br /&gt;
손병희는 3·1운동 관련 재판과정에서 “종교가 만족스럽게 행해지지 못하는 동안은 아무래도 종교가가 정치에 관계하게 된다. 국가가 종교를 도와주면 정치에 관계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는 한에는 종교는 정치에 붙어 가서 그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정치와 종교의 유기적인 관계를 분명하게 밝혔다. 그리고 강제병합 후 한국인을 항상 압박만 하고 관리로 채용하지 않는 등, 정치적 차별이 심각함을 문제 삼았다. &lt;br /&gt;
&lt;br /&gt;
한편 3월 1일 기념식 거행 후 일본경찰에 자진 검거되어 1920년 10월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손병희는, 1년 8개월만에 병보석으로 출옥 후 상춘원에서 요양하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22년 5월 19일 향년 6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평가===&lt;br /&gt;
&lt;br /&gt;
&lt;br /&gt;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국가 수립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자나 국가의 기초를 다지는 데 뚜렷한 공적이 있다고 평가되는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lt;br /&gt;
&lt;br /&gt;
*일제강점기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손병희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민족의 영웅', '조선 독립의 거인' 등으로 굉장히 높았다. 해방을 맞아 귀국한 김구를 비롯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간부들은 손병희 선생을 '독립운동의 근원지'라고 평가하였다.&lt;br /&gt;
&lt;br /&gt;
*1992년 3월 및 2019년 3월에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amp;lt;ref&amp;gt;국가보훈처가 선정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9A%94%EB%8F%99%EB%B0%98%EB%8F%84&amp;diff=34674</id>
		<title>요동반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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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4:59:3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새 문서: 분류:애국계몽운동 분류:오연수&lt;/p&gt;
&lt;hr /&gt;
&lt;div&gt;[[분류:애국계몽운동]]&lt;br /&gt;
[[분류:오연수]]&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9F%AC%EC%9D%BC%EC%A0%84%EC%9F%81&amp;diff=34671</id>
		<title>러일전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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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11T04:59: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새 문서: &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9&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CCFfYMt16w0&amp;quot; title=&amp;quot;러일전쟁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비밀무기는 과연 무엇일까?(ENG...&lt;/p&gt;
&lt;hr /&gt;
&lt;div&gt;&amp;lt;html&amp;gt;&amp;lt;iframe width=&amp;quot;699&amp;quot; height=&amp;quot;393&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CCFfYMt16w0&amp;quot; title=&amp;quot;러일전쟁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비밀무기는 과연 무엇일까?(ENG SUB)&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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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송수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6%A1%EC%88%98%EB%A7%8C&amp;diff=34662"/>
		<updated>2023-12-11T04:49:5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Younsu0506: &lt;/p&gt;
&lt;hr /&gt;
&lt;div&gt;==송수만 (宋秀萬)==&lt;br /&gt;
&lt;br /&gt;
===인물===&lt;br /&gt;
&lt;br /&gt;
대한제국기 보안회의 조직과 을사조약 반대운동 등을 전개한 항일운동가이다. &lt;br /&gt;
&lt;br /&gt;
* 성별 : 남성&lt;br /&gt;
* 출생 : 1857년&lt;br /&gt;
* 사망 : 미상&lt;br /&gt;
* 본관 : 여산(礪山)&lt;br /&gt;
&lt;br /&gt;
[[파일:송수만.jpg|height:&amp;quot;100&amp;quot;|center|송수만]]&lt;br /&gt;
&lt;br /&gt;
&lt;br /&gt;
===천도교 창건 및 정비===&lt;br /&gt;
&lt;br /&gt;
'''*천도교 창건 배경'''&lt;br /&gt;
&lt;br /&gt;
손병희는 22세였던 1882년 동학에 입도하였다. 그는 입도 3년만에 제2세 교주 최시형을 만나 착실한 신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 동학의 교세는 날로 확산되었다.&lt;br /&gt;
&lt;br /&gt;
그렇게 전국적으로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항하여 동학교도들과 함께 대대적인 항쟁을 전개하며 오랜 시간 최시형과 함께 해왔던 손병희였지만, 그들은 항쟁 중 충주 부근에서 개별적으로 행동하기로 하고 해산하였다. &lt;br /&gt;
&lt;br /&gt;
그 후 최시형과 손병희 등 주요 간부들은 당연히 관군의 추격을 받게 되었지만, 다행히 생존한 북접 간부들의 노력으로 교세는 명맥을 유지하였다. 특히 그들은 탄압의 손길이 적게 미쳤던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으로 피신해 그곳에서의 교세 확장, 포교에 힘썼다.&lt;br /&gt;
&lt;br /&gt;
그렇게 손병희는 최시형에게 성실한 생활태도와 지략의 역량을 인정받아 '의암'이라는 도호를 받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1897년 12월 24일에는 실질적인 제3세 교주로서의 일을 맡게 되었으며, 동학농민운동이 외세에 의해 진압되고, 1898년 4월 5일 제2대 교주였던 최시형이 체포되어 6월 2일 서울 감옥에서 처형된 뒤 마침내 교주가 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천도교 창건 및 조직 정비'''&lt;br /&gt;
&lt;br /&gt;
&amp;lt;big&amp;gt;'''손병희는 동학의 교주가 된 초기에는 정치와 종교 간의 불가분적 관계를 강조하면서&amp;lt;ref&amp;gt;교정일치론.&amp;lt;/ref&amp;gt; 동학에서의 여러 가지 개혁적인 시도를 감행했으나 실패했고, 도리어 일제에 의해 역이용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걸고 1905년 교명을 '천도교'로 개칭하면서 새로운 교리와 체제를 확립하기 시작하였다.'''&amp;lt;/big&amp;gt;&lt;br /&gt;
&lt;br /&gt;
최시형의 순교가 있고 난 뒤, 손병희는 사태를 수습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 힘썼다. 그러나 관헌의 추적이 심하자 1901년 3월 일본으로 피신했고, 그 해 9월 일시 귀국했다가 ‘세계의 대세’를 깨닫기 위해 1902년 3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려 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일본에 머물게 되었다.&lt;br /&gt;
&lt;br /&gt;
그곳에서 망명중이던 개화파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인식을 갖추게 된 한편, 국내와도 꾸준히 연락하면서 교인들을 규합하고 동학을 재정비하려 노력하였다.&lt;br /&gt;
&lt;br /&gt;
'''&amp;lt;font color=&amp;quot;#ff0000&amp;quot;&amp;gt;그런데 손병희의 일본 체류는 그의 사상적 폭이 넓어지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탄력성을 증대시킨 반면,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동학교도들의 민족적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1904년 8월 말부터 전국에 걸쳐 조직되기 시작한 '진보회'는 원래 동학교도들이 기존 정치체제의 개혁 세력으로서 참여하기 위한 기구였으나, 이용구의 주도하에 송병준의 일진회와 합하고 친일단체화하였다.&lt;br /&gt;
&lt;br /&gt;
이에 손병희는 교정일치론을 철회하고 정치적 관심은 아예 포기하였으며, 종교로서의 동학을 고수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따라서 1905년 12월 1일 '동학'을 '천도교'로 바꾸어 세상에 널리 알렸고, 이듬해 1월에는 귀국하여 교회를 재조직하는 데 착수했으며, ＜천도교대헌＞을 반포하고 새로운 교단조직을 만들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천도교리의 체계화'''&lt;br /&gt;
&lt;br /&gt;
이후 손병희는 천도교단의 중앙과 지방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천도교리의 체계화에도 노력하였다. &lt;br /&gt;
&lt;br /&gt;
각종 교리서들이 천도교중앙총부 명의로 편찬되었다. 특히 1907년 출간된 『대종정의』에서는 '인내천'&amp;lt;ref&amp;gt;천도교의 기본 사상으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amp;lt;/ref&amp;gt;을 천도교의 교의로 공식화하였다. &lt;br /&gt;
&lt;br /&gt;
이후 손병희와 천도교단에서는 서양의 근대사상을 수용하여 인내천 교리에 대한 체계화 작업을 계속했다.&lt;br /&gt;
&lt;br /&gt;
이에 따라 인내천은 한편에서 천도교 종교의식의 원천이 되어 온갖 도법과 교화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천도교 정치사상의 근저가 되어 온갖 이론과 행동을 규정짓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즉 천도교에서는 '보국안민'&amp;lt;ref&amp;gt;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amp;lt;/ref&amp;gt;, '포덕천하'&amp;lt;ref&amp;gt;덕을 천하에 편다는 뜻으로, 세상에 천도교를 널리 보급함을 이르는 말.&amp;lt;/ref&amp;gt;, '광제창생'&amp;lt;ref&amp;gt;널리 백성을 구제함&amp;lt;/ref&amp;gt;을 통한 지상천국 건설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보성전문학교 인수===&lt;br /&gt;
&lt;br /&gt;
보성전문학교의 설립자인 이용익의 서거 이후, 그의 손자 이종호가 잠시 학교의 경영을 맡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보성전문학교는 고종의 퇴위 이후 급속도로 경영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학교의 설립자는 이용익이었으나, 학교의 보호자는 그를 아끼던 고종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1906년 이상설ㆍ이준ㆍ이위종 등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퇴위시키면서 보성학원에 대한 지원 역시 끊긴 것이다. &lt;br /&gt;
&lt;br /&gt;
주인이 없는 보성전문학교를 이끌고 있던 윤익선&amp;lt;ref&amp;gt;보성전문학교 5대 교장.&amp;lt;/ref&amp;gt;은 손병희를 찾아가 지원을 간청했다. 손병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명문 보성전문학교의 문을 닫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고, 1907년 12월 21일 보성전문학교를 천도교에서 인수하였다. &lt;br /&gt;
&lt;br /&gt;
막대한 부채를 안고 인수한 것이었지만 보성전문학생 중에는 특정 종교재단에서 학교를 인수하는 것을 반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손병희는 학교에서 일체의 종교적 색채를 강요하지 말 것을 담당자들에게 각별히 당부하였다. &lt;br /&gt;
&lt;br /&gt;
이 때 손병희가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고려대학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해방 후 고려대학교는 교정 한 구석에 손병희의 동상을 세웠다.&lt;br /&gt;
&lt;br /&gt;
[[파일:손병희_선생_흉상.jpg|height:&amp;quot;100&amp;quot;|center|손병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3.1운동===&lt;br /&gt;
&lt;br /&gt;
&lt;br /&gt;
손병희와 천도교단은 3·1운동을 준비하고 전국적인 조직을 이용해 시위를 조직하거나 운동자금을 제공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lt;br /&gt;
&lt;br /&gt;
각 기관이나 연원을 대표한 핵심지도자였던 손병희, 권병덕, 최린, 이종일, 권동진, 오세창, 양한묵, 임예환, 홍기조, 나용환, 나인협, 김완규, 박준승, 이종훈, 홍병기로 구성된 15명이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기도 하였다. 1919년 2월 27일 밤 천도교 직영의 보성사에서 독립선언문 2만 1000매를 인쇄, 이튿날 가회동 자신의 집에 민족대표 23명이 모여 다음날 거사를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파고다공원&amp;lt;ref&amp;gt;현 탑골공원.&amp;lt;/ref&amp;gt;에서 독립선언식을 할 경우의 불상사를 염려해 파고다공원 부근 '태화관'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기로 하였다.&lt;br /&gt;
&lt;br /&gt;
이처럼 손병희와 천도교단이 3․1운동의 준비와 확산에 조직적으로 관여한 것은 ‘교정일치’라는 천도교리와도 무관치 않은 것이었다. &lt;br /&gt;
&lt;br /&gt;
손병희는 3·1운동 관련 재판과정에서 “종교가 만족스럽게 행해지지 못하는 동안은 아무래도 종교가가 정치에 관계하게 된다. 국가가 종교를 도와주면 정치에 관계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는 한에는 종교는 정치에 붙어 가서 그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정치와 종교의 유기적인 관계를 분명하게 밝혔다. 그리고 강제병합 후 한국인을 항상 압박만 하고 관리로 채용하지 않는 등, 정치적 차별이 심각함을 문제 삼았다. &lt;br /&gt;
&lt;br /&gt;
한편 3월 1일 기념식 거행 후 일본경찰에 자진 검거되어 1920년 10월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손병희는, 1년 8개월만에 병보석으로 출옥 후 상춘원에서 요양하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22년 5월 19일 향년 6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평가===&lt;br /&gt;
&lt;br /&gt;
&lt;br /&gt;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국가 수립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자나 국가의 기초를 다지는 데 뚜렷한 공적이 있다고 평가되는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lt;br /&gt;
&lt;br /&gt;
*일제강점기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손병희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민족의 영웅', '조선 독립의 거인' 등으로 굉장히 높았다. 해방을 맞아 귀국한 김구를 비롯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간부들은 손병희 선생을 '독립운동의 근원지'라고 평가하였다.&lt;br /&gt;
&lt;br /&gt;
*1992년 3월 및 2019년 3월에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amp;lt;ref&amp;gt;국가보훈처가 선정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Younsu0506</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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