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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h_edu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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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2T20:23:5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관등놀이 */&lt;/p&gt;
&lt;hr /&gt;
&lt;div&gt;==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觀燈놀이)는 조선시대 사월초파일(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백성들이 각 가정이나 거리, 사찰 등에서 등을 달고 불빛을 구경하며 즐기던 민속 축제이다. [[고려연등회]]에서 유래하였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의의가 퇴색되고 민속 행사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관등놀이는 사월초파일 밤, 등(燈)을 장대에 매달거나 집 주변에 밝히고 사람들이 이를 감상하며 노닐던 풍속을 말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불교 의례의 일부였으나,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색채보다 민간 축제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도심과 시골을 막론하고 관청, 사찰, 민가에서 등간(燈竿)을 세우고 축제처럼 즐기던 행사였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관등놀이는 고려시대 연등회에서 비롯되었다. 고려 최이가 부처님의 탄생일을 기려 연등의 법도를 확립하였으며, 이후 연등은 불교 행사로써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유교 이념을 국시로 삼으면서 불교는 억제되었고, 연등회는 국가적 행사에서 제외되었다.&lt;br /&gt;
&lt;br /&gt;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등은 민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사월초파일에 관등을 즐기는 풍속은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고종 9년(1872)에는 등간 설치 비용이 지나치다며 폐지 명령이 내려졌으나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았고, 도심 거리에는 여전히 등을 밝히는 모습이 이어졌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amp;lt;ref&amp;gt;이종수. (2012). 조선시대 연등회의 存廢와 불교사적 의미. 불교연구,(37), 113-145.&amp;lt;/ref&amp;gt;&lt;br /&gt;
===장대등과 거리등===&lt;br /&gt;
사월초파일이 되면 각 가정과 상점에서 대나무 장대에 등을 달고, 거리 곳곳에 등이 걸렸다. 이를 '등간'이라고 불렀다.&lt;br /&gt;
&lt;br /&gt;
===야간 유희===&lt;br /&gt;
아이들과 사람들이 밤새 불빛 아래서 놀고 어울리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유교적 절제와는 달리 해방감을 주는 행사였다.&lt;br /&gt;
&lt;br /&gt;
===불교 의례의 축소===&lt;br /&gt;
부처님 목욕의식(욕불의식)이나 염불 등은 점차 사라지고, 등불 자체를 구경하거나 노는 것이 주된 내용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사회문화적 의의==&lt;br /&gt;
===불교의 민중화=== &lt;br /&gt;
고려의 국가 중심 불교와 달리, 조선의 관등놀이는 백성들의 소박한 신앙 표현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불교가 민중 종교로 전환된 모습을 보여준다.&lt;br /&gt;
&lt;br /&gt;
===국가의 종교 방임 정책===&lt;br /&gt;
조선후기에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억제하지 않고, 민속화된 신앙 형태로 용인하였다. 연등회의 지속은 그 대표적 예이다.&lt;br /&gt;
&lt;br /&gt;
===세시풍속으로의 정착===&lt;br /&gt;
관등놀이는 단오, 백중, 추석과 함께 민가의 연중 행사로 인식되었으며, 성리학 사회에서도 크게 배척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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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2T20:23: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관등놀이 */&lt;/p&gt;
&lt;hr /&gt;
&lt;div&gt;==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觀燈놀이)는 조선시대 사월초파일(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백성들이 각 가정이나 거리, 사찰 등에서 등을 달고 불빛을 구경하며 즐기던 민속 축제이다. ''고려연등회''에서 유래하였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의의가 퇴색되고 민속 행사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관등놀이는 사월초파일 밤, 등(燈)을 장대에 매달거나 집 주변에 밝히고 사람들이 이를 감상하며 노닐던 풍속을 말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불교 의례의 일부였으나,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색채보다 민간 축제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도심과 시골을 막론하고 관청, 사찰, 민가에서 등간(燈竿)을 세우고 축제처럼 즐기던 행사였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관등놀이는 고려시대 연등회에서 비롯되었다. 고려 최이가 부처님의 탄생일을 기려 연등의 법도를 확립하였으며, 이후 연등은 불교 행사로써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유교 이념을 국시로 삼으면서 불교는 억제되었고, 연등회는 국가적 행사에서 제외되었다.&lt;br /&gt;
&lt;br /&gt;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등은 민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사월초파일에 관등을 즐기는 풍속은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고종 9년(1872)에는 등간 설치 비용이 지나치다며 폐지 명령이 내려졌으나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았고, 도심 거리에는 여전히 등을 밝히는 모습이 이어졌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amp;lt;ref&amp;gt;이종수. (2012). 조선시대 연등회의 存廢와 불교사적 의미. 불교연구,(37), 113-145.&amp;lt;/ref&amp;gt;&lt;br /&gt;
===장대등과 거리등===&lt;br /&gt;
사월초파일이 되면 각 가정과 상점에서 대나무 장대에 등을 달고, 거리 곳곳에 등이 걸렸다. 이를 '등간'이라고 불렀다.&lt;br /&gt;
&lt;br /&gt;
===야간 유희===&lt;br /&gt;
아이들과 사람들이 밤새 불빛 아래서 놀고 어울리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유교적 절제와는 달리 해방감을 주는 행사였다.&lt;br /&gt;
&lt;br /&gt;
===불교 의례의 축소===&lt;br /&gt;
부처님 목욕의식(욕불의식)이나 염불 등은 점차 사라지고, 등불 자체를 구경하거나 노는 것이 주된 내용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사회문화적 의의==&lt;br /&gt;
===불교의 민중화=== &lt;br /&gt;
고려의 국가 중심 불교와 달리, 조선의 관등놀이는 백성들의 소박한 신앙 표현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불교가 민중 종교로 전환된 모습을 보여준다.&lt;br /&gt;
&lt;br /&gt;
===국가의 종교 방임 정책===&lt;br /&gt;
조선후기에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억제하지 않고, 민속화된 신앙 형태로 용인하였다. 연등회의 지속은 그 대표적 예이다.&lt;br /&gt;
&lt;br /&gt;
===세시풍속으로의 정착===&lt;br /&gt;
관등놀이는 단오, 백중, 추석과 함께 민가의 연중 행사로 인식되었으며, 성리학 사회에서도 크게 배척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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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2T17:38:3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세시풍속으로의 정착 */&lt;/p&gt;
&lt;hr /&gt;
&lt;div&gt;==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觀燈놀이)는 조선시대 사월초파일(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백성들이 각 가정이나 거리, 사찰 등에서 등을 달고 불빛을 구경하며 즐기던 민속 축제이다. 불교의 연등회에서 유래하였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의의가 퇴색되고 민속 행사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관등놀이는 사월초파일 밤, 등(燈)을 장대에 매달거나 집 주변에 밝히고 사람들이 이를 감상하며 노닐던 풍속을 말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불교 의례의 일부였으나,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색채보다 민간 축제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도심과 시골을 막론하고 관청, 사찰, 민가에서 등간(燈竿)을 세우고 축제처럼 즐기던 행사였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관등놀이는 고려시대 연등회에서 비롯되었다. 고려 최이가 부처님의 탄생일을 기려 연등의 법도를 확립하였으며, 이후 연등은 불교 행사로써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유교 이념을 국시로 삼으면서 불교는 억제되었고, 연등회는 국가적 행사에서 제외되었다.&lt;br /&gt;
&lt;br /&gt;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등은 민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사월초파일에 관등을 즐기는 풍속은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고종 9년(1872)에는 등간 설치 비용이 지나치다며 폐지 명령이 내려졌으나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았고, 도심 거리에는 여전히 등을 밝히는 모습이 이어졌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amp;lt;ref&amp;gt;이종수. (2012). 조선시대 연등회의 存廢와 불교사적 의미. 불교연구,(37), 113-145.&amp;lt;/ref&amp;gt;&lt;br /&gt;
===장대등과 거리등===&lt;br /&gt;
사월초파일이 되면 각 가정과 상점에서 대나무 장대에 등을 달고, 거리 곳곳에 등이 걸렸다. 이를 '등간'이라고 불렀다.&lt;br /&gt;
&lt;br /&gt;
===야간 유희===&lt;br /&gt;
아이들과 사람들이 밤새 불빛 아래서 놀고 어울리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유교적 절제와는 달리 해방감을 주는 행사였다.&lt;br /&gt;
&lt;br /&gt;
===불교 의례의 축소===&lt;br /&gt;
부처님 목욕의식(욕불의식)이나 염불 등은 점차 사라지고, 등불 자체를 구경하거나 노는 것이 주된 내용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사회문화적 의의==&lt;br /&gt;
===불교의 민중화=== &lt;br /&gt;
고려의 국가 중심 불교와 달리, 조선의 관등놀이는 백성들의 소박한 신앙 표현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불교가 민중 종교로 전환된 모습을 보여준다.&lt;br /&gt;
&lt;br /&gt;
===국가의 종교 방임 정책===&lt;br /&gt;
조선후기에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억제하지 않고, 민속화된 신앙 형태로 용인하였다. 연등회의 지속은 그 대표적 예이다.&lt;br /&gt;
&lt;br /&gt;
===세시풍속으로의 정착===&lt;br /&gt;
관등놀이는 단오, 백중, 추석과 함께 민가의 연중 행사로 인식되었으며, 성리학 사회에서도 크게 배척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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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2T17:38:2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특징 */&lt;/p&gt;
&lt;hr /&gt;
&lt;div&gt;==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觀燈놀이)는 조선시대 사월초파일(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백성들이 각 가정이나 거리, 사찰 등에서 등을 달고 불빛을 구경하며 즐기던 민속 축제이다. 불교의 연등회에서 유래하였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의의가 퇴색되고 민속 행사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관등놀이는 사월초파일 밤, 등(燈)을 장대에 매달거나 집 주변에 밝히고 사람들이 이를 감상하며 노닐던 풍속을 말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불교 의례의 일부였으나,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색채보다 민간 축제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도심과 시골을 막론하고 관청, 사찰, 민가에서 등간(燈竿)을 세우고 축제처럼 즐기던 행사였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관등놀이는 고려시대 연등회에서 비롯되었다. 고려 최이가 부처님의 탄생일을 기려 연등의 법도를 확립하였으며, 이후 연등은 불교 행사로써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유교 이념을 국시로 삼으면서 불교는 억제되었고, 연등회는 국가적 행사에서 제외되었다.&lt;br /&gt;
&lt;br /&gt;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등은 민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사월초파일에 관등을 즐기는 풍속은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고종 9년(1872)에는 등간 설치 비용이 지나치다며 폐지 명령이 내려졌으나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았고, 도심 거리에는 여전히 등을 밝히는 모습이 이어졌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amp;lt;ref&amp;gt;이종수. (2012). 조선시대 연등회의 存廢와 불교사적 의미. 불교연구,(37), 113-145.&amp;lt;/ref&amp;gt;&lt;br /&gt;
===장대등과 거리등===&lt;br /&gt;
사월초파일이 되면 각 가정과 상점에서 대나무 장대에 등을 달고, 거리 곳곳에 등이 걸렸다. 이를 '등간'이라고 불렀다.&lt;br /&gt;
&lt;br /&gt;
===야간 유희===&lt;br /&gt;
아이들과 사람들이 밤새 불빛 아래서 놀고 어울리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유교적 절제와는 달리 해방감을 주는 행사였다.&lt;br /&gt;
&lt;br /&gt;
===불교 의례의 축소===&lt;br /&gt;
부처님 목욕의식(욕불의식)이나 염불 등은 점차 사라지고, 등불 자체를 구경하거나 노는 것이 주된 내용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사회문화적 의의==&lt;br /&gt;
===불교의 민중화=== &lt;br /&gt;
고려의 국가 중심 불교와 달리, 조선의 관등놀이는 백성들의 소박한 신앙 표현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불교가 민중 종교로 전환된 모습을 보여준다.&lt;br /&gt;
&lt;br /&gt;
===국가의 종교 방임 정책===&lt;br /&gt;
조선후기에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억제하지 않고, 민속화된 신앙 형태로 용인하였다. 연등회의 지속은 그 대표적 예이다.&lt;br /&gt;
&lt;br /&gt;
===세시풍속으로의 정착===&lt;br /&gt;
관등놀이는 단오, 백중, 추석과 함께 민가의 연중 행사로 인식되었으며, 성리학 사회에서도 크게 배척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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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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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2T17:33: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 &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소회(小會)=== &lt;br /&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lt;br /&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휴식일===&lt;br /&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9926</id>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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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2T17:32:5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고려의 제도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소회(小會)=== &lt;br /&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lt;br /&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휴식일===&lt;br /&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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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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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2T17:32: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br /&gt;
===소회(小會)=== &lt;br /&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lt;br /&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휴식일===&lt;br /&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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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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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2T17:32: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상원연등회 절차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br /&gt;
===소회(小會)=== &lt;br /&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lt;br /&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휴식일===&lt;br /&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9923</id>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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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2T17:31:5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휴식일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lt;br /&gt;
===소회(小會)=== &lt;br /&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lt;br /&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휴식일===&lt;br /&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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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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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2T17:31:4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각주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lt;br /&gt;
===소회(小會)=== &lt;br /&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lt;br /&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휴식일===&lt;br /&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9921</id>
		<title>고려연등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9921"/>
		<updated>2025-06-22T17:31: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lt;br /&gt;
===소회(小會)=== &lt;br /&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lt;br /&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휴식일===&lt;br /&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각주==&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5%9C%EA%B5%AD_%EB%B6%88%EA%B5%90_%EC%B6%95%EC%A0%9C&amp;diff=59298</id>
		<title>한국 불교 축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5%9C%EA%B5%AD_%EB%B6%88%EA%B5%90_%EC%B6%95%EC%A0%9C&amp;diff=59298"/>
		<updated>2025-06-17T13:12:4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기획의도 */&lt;/p&gt;
&lt;hr /&gt;
&lt;div&gt;==기획의도==&lt;br /&gt;
&lt;br /&gt;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국교로 기능하며 정치, 사회, 경제 등 전반적인 생활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불교 축제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 모든 계층이 참여할 수 있는 민족 축제로 발전하여 한국 문화의 중요한 축을 형성해왔다. 이에 시대별로 축제의 주체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중심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축제의 전개 과정을 국가가 주도했던 ‘국가주도기’, 불교가 억압받던 시기에 민간을 중심으로 계승된 ‘민간이행기’, 불교계와 시민사회가 함께 축제를 이끄는 ‘민간주도기’로 구분하여 시대별 특징을 분석할 것이다. 이때, 주요 연구 대상은 삼국시대부터 명맥을 이어온 연등회, 팔관회와 더불어 12년째 이어가고 있는 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이다. 각 축제별로 역사적 기원과 발전 과정, 관련 사찰과 승려들의 역할, 당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현재까지의 전승 양상과 변화를 심층 분석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한국 불교 축제의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의미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불교와 축제의 결합의 의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지속적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lt;br /&gt;
&lt;br /&gt;
==팀원 및 기여==&lt;br /&gt;
&lt;br /&gt;
'''김태현'''&lt;br /&gt;
&lt;br /&gt;
제작 - 간등, 고려연등회, 호기놀이, 관등놀이&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 관계성 정리&lt;br /&gt;
&lt;br /&gt;
'''소정희'''&lt;br /&gt;
&lt;br /&gt;
제작 - 황룡사, 조계사, 봉은사, 법왕사&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 마인드맵 작성&lt;br /&gt;
&lt;br /&gt;
'''이현정'''&lt;br /&gt;
&lt;br /&gt;
제작 - 신라 팔관회, 고려 팔관회, 부산 팔관회, 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 혜량&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 컨텐츠 구조 정리, 기획의도 작성&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lt;br /&gt;
{{NetworkGraph|title=한국불교축제.lst}}&lt;br /&gt;
===마인드맵===&lt;br /&gt;
[[파일:한국불교축제마인드맵.jpeg|400픽셀]]&lt;br /&gt;
&lt;br /&gt;
===컨텐츠 구조===&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축제||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에서 열렸던 주요 불교 축제들을 정리하였다. || 고려연등회, 간등, 서울연등회, 신라팔관회, 고려팔관회, 부산팔관회, 서울국제불교박람회&lt;br /&gt;
|-&lt;br /&gt;
|행사|| 주요 축제와 더불어 행해진 불교 행사들을 정리하였다. || 관등놀이, 연등행렬, 연등놀이&lt;br /&gt;
|-&lt;br /&gt;
|사찰|| 축제 및 행사가 열리거나 관계가 깊은 사찰들을 정리하였다. || 황룡사, 봉은사, 조계사, 법왕사&lt;br /&gt;
|-&lt;br /&gt;
|승려|| 축제 및 행사를 주도했거나 사찰과 관련이 있는 승려들을 정리하였다. || 자장, 원명스님, 우운, 담화원명스님, 혜량&lt;br /&gt;
|-&lt;br /&gt;
|시기|| 축제 및 행사가 행해진 역사와 관련된 시기를 크게 4부분으로 나누었다. || 신라, 고려, 조선, 현대&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성===&lt;br /&gt;
* ~가주도했다&lt;br /&gt;
** 사찰 및 승려와 주도한 축제 및 행사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황룡사 ➜ 간등&lt;br /&gt;
**#봉은사 ➜ 고려연등회&lt;br /&gt;
**#조계사 ➜ 서울연등회&lt;br /&gt;
**#조계사 ➜ 연등행렬&lt;br /&gt;
**#조계사 ➜ 연등놀이&lt;br /&gt;
**#황룡사 ➜ 신라팔관회&lt;br /&gt;
**#법왕사 ➜ 고려팔관회&lt;br /&gt;
&lt;br /&gt;
* ~시기에열렸다&lt;br /&gt;
** 축제 및 행사와 열린 시기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고려연등회 ➜ 고려&lt;br /&gt;
**#간등 ➜ 신라&lt;br /&gt;
**#관등놀이 ➜ 조선&lt;br /&gt;
**#서울연등회 ➜ 현대&lt;br /&gt;
**#연등행렬 ➜ 현대&lt;br /&gt;
**#연등놀이 ➜ 현대&lt;br /&gt;
**#신라팔관회 ➜ 신라&lt;br /&gt;
**#고려팔관회 ➜ 고려&lt;br /&gt;
**#부산팔관회 ➜ 현대&lt;br /&gt;
**#서울국제불교박람회 ➜ 현대&lt;br /&gt;
&lt;br /&gt;
* ~시기에지어졌다&lt;br /&gt;
** 사찰과 지어진 시기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봉은사 ➜ 신라&lt;br /&gt;
**#황룡사 ➜ 신라&lt;br /&gt;
**#조계사 ➜ 조선&lt;br /&gt;
**#법왕사 ➜ 고려&lt;br /&gt;
&lt;br /&gt;
* ~소속이다&lt;br /&gt;
** 승려와 소속된 사찰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자장 ➜ 황룡사&lt;br /&gt;
**#원명스님 ➜ 봉은사&lt;br /&gt;
**#담화원명스님 ➜ 조계사&lt;br /&gt;
**#우운 ➜ 법왕사&lt;br /&gt;
**#혜량 ➜ 황룡사&lt;br /&gt;
&lt;br /&gt;
* ~로이어진다&lt;br /&gt;
** 시대 별로 이어지는 축제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간등 ➜ 고려연등회&lt;br /&gt;
**#고려연등회 ➜ 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 ➜ 서울연등회&lt;br /&gt;
&lt;br /&gt;
==스토리텔링==&lt;br /&gt;
&lt;br /&gt;
===국가주도기===&lt;br /&gt;
&lt;br /&gt;
'''''신라'''''&lt;br /&gt;
&lt;br /&gt;
[[간등]]: 한국 전통 등불 행사의 기원으로, 신라 왕실이 불교 의례와 정치적 통합을 결합한 국가적 행사이다.&lt;br /&gt;
&lt;br /&gt;
[[신라 팔관회]] : 불교의 계율인 팔계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불사의식이자 전사자를 위령하고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등의 제의적 의식이다.&lt;br /&gt;
&lt;br /&gt;
[[황룡사]]: 정월 보름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푼 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 진흥왕 때 황룡사에서 팔관회를 주관했다. 자장이 황룡사 9층탑을 세운 다음 팔관회를 지냈으니라 추정된다.&lt;br /&gt;
&lt;br /&gt;
[[혜량]] : 팔관회를 최초로 개최하였다.&lt;br /&gt;
&lt;br /&gt;
자장 : 황룡사 9층 목탑 건축&lt;br /&gt;
&lt;br /&gt;
&lt;br /&gt;
'''''고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 고려시대 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lt;br /&gt;
&lt;br /&gt;
[[고려 팔관회]] : 신앙과 제사, 놀이 등이 융합된 국가적인 축제이다. '부처를 공양하고 귀신을 즐겁게 하는 모임’이라 하였고, 또 ‘천령과 오악, 명산, 산천, 용신을 섬기는 것’이라 표현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법왕사]] : 국왕이 법왕사에 행차하여 팔관회를 주관했다.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연등회에서 중요한 것이었다.&lt;br /&gt;
&lt;br /&gt;
===민간이행기===&lt;br /&gt;
&lt;br /&gt;
'''''조선'''''&lt;br /&gt;
&lt;br /&gt;
[[관등놀이]]: 부처님오신날 밤에 사람들이 거리와 사찰에 나가 연등을 구경하고, 다양한 민속놀이와 오락을 즐기는 풍습이다.&lt;br /&gt;
&lt;br /&gt;
고려 팔관회는 고려 왕조에 대한 충성과 고려라는 국가에 대한 일체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중적인 축제였기 때문에,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년)에 폐지되었다. 조선의 건국 주체들은 건국 직후 팔관회를 사치스러운 불교 행사로 지목해 단번에 폐지시켰는데, 이는 고려의 대표적인 불교 의식을 유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민간주도기===&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lt;br /&gt;
[[서울 연등회]]: 신라·고려·조선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확장한 시민참여형 축제로,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서울 도심을 무대로 세계인과 시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규모 축제이다.&lt;br /&gt;
&lt;br /&gt;
[http://www.llf.or.kr// 사이트]&lt;br /&gt;
&lt;br /&gt;
[[조계사]]: [[조계사]]는 서울 도심에서 펼쳐지는 연등 행렬의 주요 출발점 또는 도착점 역할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부산 팔관회]] : 2000년부터 부산 불교계를 중심으로 팔관회를 복원·재현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목적과 특징에 있어 조금씩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으나 전통문화의 보전이 주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http://www.palgwanhoe.or.kr/ 사이트]&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 국내 유일한 전통문화산업 박람회로, 불교의 자원을 종교를 넘어 산업적·문화적으로 많은 자산으로 활용하여 취약한 전통문화시장을 활성화하도록 한다.&lt;br /&gt;
&lt;br /&gt;
[https://www.bexpo.kr/ 사이트]&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D%95%9C%EA%B5%AD_%EB%B6%88%EA%B5%90_%EC%B6%95%EC%A0%9C&amp;diff=59297</id>
		<title>한국 불교 축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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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3:12: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기획의도 */&lt;/p&gt;
&lt;hr /&gt;
&lt;div&gt;==기획의도==&lt;br /&gt;
&lt;br /&gt;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국교로 기능하며 정치, 사회, 경제 등 전반적인 생활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불교 축제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 모든 계층이 참여할 수 있는 민족 축제로 발전하여 한국 문화의 중요한 축을 형성해왔다. 이에 시대별로 축제의 주체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하였습니다. 축제의 전개 과정을 국가가 주도했던 ‘국가주도기’, 불교가 억압받던 시기에 민간을 중심으로 계승된 ‘민간이행기’, 불교계와 시민사회가 함께 축제를 이끄는 ‘민간주도기’로 구분하여 시대별 특징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때, 주요 연구 대상은 삼국시대부터 명맥을 이어온 연등회, 팔관회와 더불어 12년째 이어가고 있는 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이다. 각 축제별로 역사적 기원과 발전 과정, 관련 사찰과 승려들의 역할, 당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현재까지의 전승 양상과 변화를 심층 분석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한국 불교 축제의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의미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불교와 축제의 결합의 의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지속적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lt;br /&gt;
&lt;br /&gt;
==팀원 및 기여==&lt;br /&gt;
&lt;br /&gt;
'''김태현'''&lt;br /&gt;
&lt;br /&gt;
제작 - 간등, 고려연등회, 호기놀이, 관등놀이&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 관계성 정리&lt;br /&gt;
&lt;br /&gt;
'''소정희'''&lt;br /&gt;
&lt;br /&gt;
제작 - 황룡사, 조계사, 봉은사, 법왕사&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 마인드맵 작성&lt;br /&gt;
&lt;br /&gt;
'''이현정'''&lt;br /&gt;
&lt;br /&gt;
제작 - 신라 팔관회, 고려 팔관회, 부산 팔관회, 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 혜량&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 컨텐츠 구조 정리, 기획의도 작성&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lt;br /&gt;
{{NetworkGraph|title=한국불교축제.lst}}&lt;br /&gt;
===마인드맵===&lt;br /&gt;
[[파일:한국불교축제마인드맵.jpeg|400픽셀]]&lt;br /&gt;
&lt;br /&gt;
===컨텐츠 구조===&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축제||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에서 열렸던 주요 불교 축제들을 정리하였다. || 고려연등회, 간등, 서울연등회, 신라팔관회, 고려팔관회, 부산팔관회, 서울국제불교박람회&lt;br /&gt;
|-&lt;br /&gt;
|행사|| 주요 축제와 더불어 행해진 불교 행사들을 정리하였다. || 관등놀이, 연등행렬, 연등놀이&lt;br /&gt;
|-&lt;br /&gt;
|사찰|| 축제 및 행사가 열리거나 관계가 깊은 사찰들을 정리하였다. || 황룡사, 봉은사, 조계사, 법왕사&lt;br /&gt;
|-&lt;br /&gt;
|승려|| 축제 및 행사를 주도했거나 사찰과 관련이 있는 승려들을 정리하였다. || 자장, 원명스님, 우운, 담화원명스님, 혜량&lt;br /&gt;
|-&lt;br /&gt;
|시기|| 축제 및 행사가 행해진 역사와 관련된 시기를 크게 4부분으로 나누었다. || 신라, 고려, 조선, 현대&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성===&lt;br /&gt;
* ~가주도했다&lt;br /&gt;
** 사찰 및 승려와 주도한 축제 및 행사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황룡사 ➜ 간등&lt;br /&gt;
**#봉은사 ➜ 고려연등회&lt;br /&gt;
**#조계사 ➜ 서울연등회&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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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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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연등회 ➜ 고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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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등회 ➜ 현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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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놀이 ➜ 현대&lt;br /&gt;
**#신라팔관회 ➜ 신라&lt;br /&gt;
**#고려팔관회 ➜ 고려&lt;br /&gt;
**#부산팔관회 ➜ 현대&lt;br /&gt;
**#서울국제불교박람회 ➜ 현대&lt;br /&gt;
&lt;br /&gt;
* ~시기에지어졌다&lt;br /&gt;
** 사찰과 지어진 시기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봉은사 ➜ 신라&lt;br /&gt;
**#황룡사 ➜ 신라&lt;br /&gt;
**#조계사 ➜ 조선&lt;br /&gt;
**#법왕사 ➜ 고려&lt;br /&gt;
&lt;br /&gt;
* ~소속이다&lt;br /&gt;
** 승려와 소속된 사찰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자장 ➜ 황룡사&lt;br /&gt;
**#원명스님 ➜ 봉은사&lt;br /&gt;
**#담화원명스님 ➜ 조계사&lt;br /&gt;
**#우운 ➜ 법왕사&lt;br /&gt;
**#혜량 ➜ 황룡사&lt;br /&gt;
&lt;br /&gt;
* ~로이어진다&lt;br /&gt;
** 시대 별로 이어지는 축제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간등 ➜ 고려연등회&lt;br /&gt;
**#고려연등회 ➜ 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 ➜ 서울연등회&lt;br /&gt;
&lt;br /&gt;
==스토리텔링==&lt;br /&gt;
&lt;br /&gt;
===국가주도기===&lt;br /&gt;
&lt;br /&gt;
'''''신라'''''&lt;br /&gt;
&lt;br /&gt;
[[간등]]: 한국 전통 등불 행사의 기원으로, 신라 왕실이 불교 의례와 정치적 통합을 결합한 국가적 행사이다.&lt;br /&gt;
&lt;br /&gt;
[[신라 팔관회]] : 불교의 계율인 팔계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불사의식이자 전사자를 위령하고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등의 제의적 의식이다.&lt;br /&gt;
&lt;br /&gt;
[[황룡사]]: 정월 보름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푼 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 진흥왕 때 황룡사에서 팔관회를 주관했다. 자장이 황룡사 9층탑을 세운 다음 팔관회를 지냈으니라 추정된다.&lt;br /&gt;
&lt;br /&gt;
[[혜량]] : 팔관회를 최초로 개최하였다.&lt;br /&gt;
&lt;br /&gt;
자장 : 황룡사 9층 목탑 건축&lt;br /&gt;
&lt;br /&gt;
&lt;br /&gt;
'''''고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 고려시대 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lt;br /&gt;
&lt;br /&gt;
[[고려 팔관회]] : 신앙과 제사, 놀이 등이 융합된 국가적인 축제이다. '부처를 공양하고 귀신을 즐겁게 하는 모임’이라 하였고, 또 ‘천령과 오악, 명산, 산천, 용신을 섬기는 것’이라 표현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법왕사]] : 국왕이 법왕사에 행차하여 팔관회를 주관했다.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연등회에서 중요한 것이었다.&lt;br /&gt;
&lt;br /&gt;
===민간이행기===&lt;br /&gt;
&lt;br /&gt;
'''''조선'''''&lt;br /&gt;
&lt;br /&gt;
[[관등놀이]]: 부처님오신날 밤에 사람들이 거리와 사찰에 나가 연등을 구경하고, 다양한 민속놀이와 오락을 즐기는 풍습이다.&lt;br /&gt;
&lt;br /&gt;
고려 팔관회는 고려 왕조에 대한 충성과 고려라는 국가에 대한 일체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중적인 축제였기 때문에,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년)에 폐지되었다. 조선의 건국 주체들은 건국 직후 팔관회를 사치스러운 불교 행사로 지목해 단번에 폐지시켰는데, 이는 고려의 대표적인 불교 의식을 유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민간주도기===&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lt;br /&gt;
[[서울 연등회]]: 신라·고려·조선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확장한 시민참여형 축제로,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서울 도심을 무대로 세계인과 시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규모 축제이다.&lt;br /&gt;
&lt;br /&gt;
[http://www.llf.or.kr// 사이트]&lt;br /&gt;
&lt;br /&gt;
[[조계사]]: [[조계사]]는 서울 도심에서 펼쳐지는 연등 행렬의 주요 출발점 또는 도착점 역할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부산 팔관회]] : 2000년부터 부산 불교계를 중심으로 팔관회를 복원·재현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목적과 특징에 있어 조금씩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으나 전통문화의 보전이 주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http://www.palgwanhoe.or.kr/ 사이트]&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 국내 유일한 전통문화산업 박람회로, 불교의 자원을 종교를 넘어 산업적·문화적으로 많은 자산으로 활용하여 취약한 전통문화시장을 활성화하도록 한다.&lt;br /&gt;
&lt;br /&gt;
[https://www.bexpo.kr/ 사이트]&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4%9C%EC%9A%B8_%EC%97%B0%EB%93%B1%ED%9A%8C&amp;diff=59296</id>
		<title>서울 연등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C%84%9C%EC%9A%B8_%EC%97%B0%EB%93%B1%ED%9A%8C&amp;diff=59296"/>
		<updated>2025-06-17T11:51:3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행사 의의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서울 연등회는 신라·고려·조선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확장한 시민참여형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서울 도심을 무대로 세계인과 시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규모 문화유산 축제로 발전되었다.&lt;br /&gt;
&lt;br /&gt;
==연혁==&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1955년''' 제등행렬: 현대 연등회의 시발점&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1975년''' 초파일 국가 공휴일로 지정: 참여 인원 증가&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1976년'''  여의도광장-조계사에 이르는 연등행렬&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1996년''' 동대문운동장-조계사에 이르는 연등행렬을 비롯하여 전통문화마당, 어울림마당(연등법회), 회향한마당(대동한마당) 등으로 진행됨.&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 &amp;lt;font color=&amp;quot;#670033&amp;quot;&amp;gt;'''2012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내부 행사==&lt;br /&gt;
===1. 연등행렬===&lt;br /&gt;
====일정 및 경로====&lt;br /&gt;
부처님오신날(음력 4월 8일) 전후 주말 저녁, 서울 흥인지문~종로~조계사 구간에서 진행된다. 2025년 기준, 5월 16일(토) 오후 7시부터 9시 30분까지 약 2시간 반 동안 펼쳐진다.&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 src=&amp;quot;https://www.google.com/maps/d/u/0/embed?mid=1zF-Pyp25c6ysQjncWP1FBzDo8KPVVEU&amp;amp;ehbc=2E312F&amp;quot; width=&amp;quot;64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구성과 풍경====&lt;br /&gt;
[[파일:연등행렬.png|400픽셀]]&lt;br /&gt;
&lt;br /&gt;
수만여 개의 형형색색 연등이 시민과 불자, 외국인 참가자들의 손에 들려 서울의 밤거리를 밝힌다. 연꽃등, 동물등, 캐릭터등, 대형 장엄등 등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다양한 연등이 등장한다.&lt;br /&gt;
&lt;br /&gt;
행렬은 동국대에서 시작해 흥인지문, 종로, 조계사까지 이어지며, 거리 곳곳에 관람석이 설치되고, 시민과 관광객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행사 의의====&lt;br /&gt;
연등행렬은 단순한 퍼레이드를 넘어,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빛의 행진'이다.&lt;br /&gt;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 코끼리, 사자 등 대형 장엄등과 함께, 참가자 각자가 소망을 담은 연등을 들고 행진함으로써 공동체적 연대와 소망을 나눈다.&lt;br /&gt;
최근에는 만화 캐릭터 등 현대적 요소도 가미되어, 남녀노소·국적 불문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2. 연등놀이===&lt;br /&gt;
====행사 개요====&lt;br /&gt;
연등행렬이 끝난 뒤 종각사거리, 조계사 일대에서 '연등놀이'가 이어진다.&lt;br /&gt;
전통적으로는 연등을 들고 모여 율동, 노래, 놀이를 즐기는 시민참여형 놀이마당이었으며, 현대에는 공연, 퍼포먼스, 디제잉 파티 등 다양한 문화행사로 확장되었다.&lt;br /&gt;
&lt;br /&gt;
====주요 프로그램====&lt;br /&gt;
&lt;br /&gt;
연등놀이 무대:&lt;br /&gt;
조계사, 봉은사, 한마음선원 등에서 준비한 전통 연희, 합창, 퍼포먼스 공연이 펼쳐진다.&lt;br /&gt;
&lt;br /&gt;
디제잉 파티:&lt;br /&gt;
종로 거리 한복판에서는 DJ와 함께하는 파티가 열려, 젊은이, 가족, 외국인 등 다양한 세대와 문화권의 사람들이 함께 춤추고 어우러진다.&lt;br /&gt;
&lt;br /&gt;
====행사 의의====&lt;br /&gt;
연등놀이는 단순히 관람하는 축제가 아니라, 시민 모두가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lt;br /&gt;
고려시대 연등회가 지녔던 공동체 정신, 계층 통합, 세대 전승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계승한다.&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4%80%EB%93%B1%EB%86%80%EC%9D%B4&amp;diff=59295</id>
		<title>관등놀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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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1:50: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세시풍속으로의 정착 */&lt;/p&gt;
&lt;hr /&gt;
&lt;div&gt;==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觀燈놀이)는 조선시대 사월초파일(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백성들이 각 가정이나 거리, 사찰 등에서 등을 달고 불빛을 구경하며 즐기던 민속 축제이다. 불교의 연등회에서 유래하였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의의가 퇴색되고 민속 행사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관등놀이는 사월초파일 밤, 등(燈)을 장대에 매달거나 집 주변에 밝히고 사람들이 이를 감상하며 노닐던 풍속을 말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불교 의례의 일부였으나,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색채보다 민간 축제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도심과 시골을 막론하고 관청, 사찰, 민가에서 등간(燈竿)을 세우고 축제처럼 즐기던 행사였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관등놀이는 고려시대 연등회에서 비롯되었다. 고려 최이가 부처님의 탄생일을 기려 연등의 법도를 확립하였으며, 이후 연등은 불교 행사로써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유교 이념을 국시로 삼으면서 불교는 억제되었고, 연등회는 국가적 행사에서 제외되었다.&lt;br /&gt;
&lt;br /&gt;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등은 민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사월초파일에 관등을 즐기는 풍속은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고종 9년(1872)에는 등간 설치 비용이 지나치다며 폐지 명령이 내려졌으나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았고, 도심 거리에는 여전히 등을 밝히는 모습이 이어졌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장대등과 거리등===&lt;br /&gt;
사월초파일이 되면 각 가정과 상점에서 대나무 장대에 등을 달고, 거리 곳곳에 등이 걸렸다. 이를 '등간'이라고 불렀다.&lt;br /&gt;
&lt;br /&gt;
===야간 유희===&lt;br /&gt;
아이들과 사람들이 밤새 불빛 아래서 놀고 어울리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유교적 절제와는 달리 해방감을 주는 행사였다.&lt;br /&gt;
&lt;br /&gt;
===불교 의례의 축소===&lt;br /&gt;
부처님 목욕의식(욕불의식)이나 염불 등은 점차 사라지고, 등불 자체를 구경하거나 노는 것이 주된 내용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사회문화적 의의==&lt;br /&gt;
===불교의 민중화=== &lt;br /&gt;
고려의 국가 중심 불교와 달리, 조선의 관등놀이는 백성들의 소박한 신앙 표현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불교가 민중 종교로 전환된 모습을 보여준다.&lt;br /&gt;
&lt;br /&gt;
===국가의 종교 방임 정책===&lt;br /&gt;
조선후기에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억제하지 않고, 민속화된 신앙 형태로 용인하였다. 연등회의 지속은 그 대표적 예이다.&lt;br /&gt;
&lt;br /&gt;
===세시풍속으로의 정착===&lt;br /&gt;
관등놀이는 단오, 백중, 추석과 함께 민가의 연중 행사로 인식되었으며, 성리학 사회에서도 크게 배척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9294</id>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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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1:50:2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휴식일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lt;br /&gt;
===소회(小會)=== &lt;br /&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lt;br /&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휴식일===&lt;br /&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6%84%EB%A5%98:Tiaehyun&amp;diff=59293</id>
		<title>분류:Tiaehyu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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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1:42:5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문서를 비움&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6%84%EB%A5%98:Tiaehyun&amp;diff=59292</id>
		<title>분류:Tiaehyun</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B%B6%84%EB%A5%98:Tiaehyun&amp;diff=59292"/>
		<updated>2025-06-17T11:42: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새 문서: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84%EB%93%B1&amp;diff=59288</id>
		<title>간등</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84%EB%93%B1&amp;diff=59288"/>
		<updated>2025-06-17T11:41: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lt;/p&gt;
&lt;hr /&gt;
&lt;div&gt;==유래==&lt;br /&gt;
간등은 한국 전통 등불 행사의 기원으로, 신라 왕실이 불교 의례와 정치적 통합을 결합한 국가적 행사이다. 527년 신라 법흥왕 대에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시작되었으며, 553년 창건된 황룡사를 중심으로 국가 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간등은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의 등공양 전통과 신라의 토속 신앙(풍년 기원, 농경 주기)이 융합된 행사로, 왕실의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통합을 상징한다.&lt;br /&gt;
황룡사는 신라의 종합의례장으로, 팔관회와 함께 국가 행사의 핵심 공간이었다.&lt;br /&gt;
&lt;br /&gt;
==연혁==&lt;br /&gt;
{|class=&amp;quot;sortable 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시기	||내용	||출처&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년)	||정월 15일 황룡사에서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	||《삼국사기》&lt;br /&gt;
|-&lt;br /&gt;
|890년(진성여왕 4년)	||정월 보름 황룡사 간등 행사로 왕권 회복 시도.	||《삼국사기》&lt;br /&gt;
|}&lt;br /&gt;
&lt;br /&gt;
==행사==&lt;br /&gt;
시기: 매년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lt;br /&gt;
&lt;br /&gt;
1. 제례 준비: 승려들이 등불 제작 및 법당 장식.&lt;br /&gt;
&lt;br /&gt;
2. 왕의 행차: 왕이 황룡사로 행차, 백관·백성 호위.&lt;br /&gt;
&lt;br /&gt;
3. 등불 점등: 법당과 회랑에 등불 밝힘, 불교 경전 독송.&lt;br /&gt;
&lt;br /&gt;
4. 연회 개최: 왕이 백관에게 잔치 베풀며 국가 안녕 기원.&lt;br /&gt;
&lt;br /&gt;
===사용된 도구===&lt;br /&gt;
등기(燈器): 종이, 비단, 나무틀, 밀랍으로 만든 연꽃·거북·용 형상 등 불교 상징물 형태의 등불이다.&lt;br /&gt;
&lt;br /&gt;
초: 참기름, 들기름, 오동나무기름 등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촛불로, 어둠을 밝히는 지혜 상징이다.&lt;br /&gt;
&lt;br /&gt;
===행사 장소===&lt;br /&gt;
황룡사: 경주 월성 동쪽에 위치한 2만 5,000평 규모의 대규모 사찰이었다.&lt;br /&gt;
&lt;br /&gt;
==중요성==&lt;br /&gt;
간등은 신라 왕실의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통합을 상징하는 국가 의례로서, 이후 고려 연등회와 조선 관등놀이, 현대 연등회로 이어지는 한국 전통 등불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lt;br /&gt;
간등에서 연등회로 이어지는 전통은 한국 문화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불교와 토속 신앙의 융합, 왕실과 민간의 소통, 공동체적 나눔과 축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lt;br /&gt;
&lt;br /&gt;
[[분류: 한국 불교 축제]]&lt;br /&gt;
[[분류: Tiaehyun]]&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4%80%EB%93%B1%EB%86%80%EC%9D%B4&amp;diff=59276</id>
		<title>관등놀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4%80%EB%93%B1%EB%86%80%EC%9D%B4&amp;diff=59276"/>
		<updated>2025-06-17T11:01:4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lt;/p&gt;
&lt;hr /&gt;
&lt;div&gt;==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觀燈놀이)는 조선시대 사월초파일(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백성들이 각 가정이나 거리, 사찰 등에서 등을 달고 불빛을 구경하며 즐기던 민속 축제이다. 불교의 연등회에서 유래하였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의의가 퇴색되고 민속 행사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관등놀이는 사월초파일 밤, 등(燈)을 장대에 매달거나 집 주변에 밝히고 사람들이 이를 감상하며 노닐던 풍속을 말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불교 의례의 일부였으나,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색채보다 민간 축제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도심과 시골을 막론하고 관청, 사찰, 민가에서 등간(燈竿)을 세우고 축제처럼 즐기던 행사였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관등놀이는 고려시대 연등회에서 비롯되었다. 고려 최이가 부처님의 탄생일을 기려 연등의 법도를 확립하였으며, 이후 연등은 불교 행사로써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유교 이념을 국시로 삼으면서 불교는 억제되었고, 연등회는 국가적 행사에서 제외되었다.&lt;br /&gt;
&lt;br /&gt;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등은 민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사월초파일에 관등을 즐기는 풍속은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고종 9년(1872)에는 등간 설치 비용이 지나치다며 폐지 명령이 내려졌으나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았고, 도심 거리에는 여전히 등을 밝히는 모습이 이어졌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장대등과 거리등===&lt;br /&gt;
사월초파일이 되면 각 가정과 상점에서 대나무 장대에 등을 달고, 거리 곳곳에 등이 걸렸다. 이를 '등간'이라고 불렀다.&lt;br /&gt;
&lt;br /&gt;
===야간 유희===&lt;br /&gt;
아이들과 사람들이 밤새 불빛 아래서 놀고 어울리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유교적 절제와는 달리 해방감을 주는 행사였다.&lt;br /&gt;
&lt;br /&gt;
===불교 의례의 축소===&lt;br /&gt;
부처님 목욕의식(욕불의식)이나 염불 등은 점차 사라지고, 등불 자체를 구경하거나 노는 것이 주된 내용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사회문화적 의의==&lt;br /&gt;
===불교의 민중화=== &lt;br /&gt;
고려의 국가 중심 불교와 달리, 조선의 관등놀이는 백성들의 소박한 신앙 표현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불교가 민중 종교로 전환된 모습을 보여준다.&lt;br /&gt;
&lt;br /&gt;
===국가의 종교 방임 정책===&lt;br /&gt;
조선후기에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억제하지 않고, 민속화된 신앙 형태로 용인하였다. 연등회의 지속은 그 대표적 예이다.&lt;br /&gt;
&lt;br /&gt;
===세시풍속으로의 정착===&lt;br /&gt;
관등놀이는 단오, 백중, 추석과 함께 민가의 연중 행사로 인식되었으며, 성리학 사회에서도 크게 배척되지 않았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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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관등놀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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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1:00:1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lt;/p&gt;
&lt;hr /&gt;
&lt;div&gt;==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觀燈놀이)는 조선시대 사월초파일(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백성들이 각 가정이나 거리, 사찰 등에서 등을 달고 불빛을 구경하며 즐기던 민속 축제이다. 불교의 연등회에서 유래하였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의의가 퇴색되고 민속 행사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관등놀이는 사월초파일 밤, 등(燈)을 장대에 매달거나 집 주변에 밝히고 사람들이 이를 감상하며 노닐던 풍속을 말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불교 의례의 일부였으나,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색채보다 민간 축제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도심과 시골을 막론하고 관청, 사찰, 민가에서 등간(燈竿)을 세우고 축제처럼 즐기던 행사였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관등놀이는 고려시대 연등회에서 비롯되었다. 고려 최이가 부처님의 탄생일을 기려 연등의 법도를 확립하였으며, 이후 연등은 불교 행사로써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유교 이념을 국시로 삼으면서 불교는 억제되었고, 연등회는 국가적 행사에서 제외되었다.&lt;br /&gt;
&lt;br /&gt;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등은 민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사월초파일에 관등을 즐기는 풍속은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고종 9년(1872)에는 등간 설치 비용이 지나치다며 폐지 명령이 내려졌으나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았고, 도심 거리에는 여전히 등을 밝히는 모습이 이어졌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장대등과 거리등: 사월초파일이 되면 각 가정과 상점에서 대나무 장대에 등을 달고, 거리 곳곳에 등이 걸렸다. 이를 '등간'이라고 불렀다.&lt;br /&gt;
&lt;br /&gt;
야간 유희: 아이들과 사람들이 밤새 불빛 아래서 놀고 어울리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유교적 절제와는 달리 해방감을 주는 행사였다.&lt;br /&gt;
&lt;br /&gt;
불교 의례의 축소: 부처님 목욕의식(욕불의식)이나 염불 등은 점차 사라지고, 등불 자체를 구경하거나 노는 것이 주된 내용이 되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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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관등놀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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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0:59: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문화적 의미 */&lt;/p&gt;
&lt;hr /&gt;
&lt;div&gt;==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觀燈놀이)는 조선시대 사월초파일(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백성들이 각 가정이나 거리, 사찰 등에서 등을 달고 불빛을 구경하며 즐기던 민속 축제이다. 불교의 연등회에서 유래하였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의의가 퇴색되고 민속 행사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관등놀이는 사월초파일 밤, 등(燈)을 장대에 매달거나 집 주변에 밝히고 사람들이 이를 감상하며 노닐던 풍속을 말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불교 의례의 일부였으나,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색채보다 민간 축제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도심과 시골을 막론하고 관청, 사찰, 민가에서 등간(燈竿)을 세우고 축제처럼 즐기던 행사였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관등놀이는 고려시대 연등회에서 비롯되었다. 고려 최이가 부처님의 탄생일을 기려 연등의 법도를 확립하였으며, 이후 연등은 불교 행사로써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유교 이념을 국시로 삼으면서 불교는 억제되었고, 연등회는 국가적 행사에서 제외되었다.&lt;br /&gt;
&lt;br /&gt;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등은 민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사월초파일에 관등을 즐기는 풍속은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고종 9년(1872)에는 등간 설치 비용이 지나치다며 폐지 명령이 내려졌으나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았고, 도심 거리에는 여전히 등을 밝히는 모습이 이어졌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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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관등놀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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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0:59: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행사 모습 */&lt;/p&gt;
&lt;hr /&gt;
&lt;div&gt;==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觀燈놀이)는 조선시대 사월초파일(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백성들이 각 가정이나 거리, 사찰 등에서 등을 달고 불빛을 구경하며 즐기던 민속 축제이다. 불교의 연등회에서 유래하였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의의가 퇴색되고 민속 행사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관등놀이는 사월초파일 밤, 등(燈)을 장대에 매달거나 집 주변에 밝히고 사람들이 이를 감상하며 노닐던 풍속을 말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불교 의례의 일부였으나,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색채보다 민간 축제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도심과 시골을 막론하고 관청, 사찰, 민가에서 등간(燈竿)을 세우고 축제처럼 즐기던 행사였다.&lt;br /&gt;
&lt;br /&gt;
==문화적 의미==&lt;br /&gt;
관등놀이는 불교의 신성함과 세시풍속적 오락이 결합된 행사로, 공동체가 함께 모여 밤을 밝히고 복을 기원하는 사회적·문화적 축제였다. 등불의 화려함과 민속놀이, 불꽃놀이가 어우러져 조선시대 밤거리를 밝히는 대표적 봄철 풍속이었으며, 오늘날 연등축제의 원형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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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관등놀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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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0:58:5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개요 */&lt;/p&gt;
&lt;hr /&gt;
&lt;div&gt;==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觀燈놀이)는 조선시대 사월초파일(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백성들이 각 가정이나 거리, 사찰 등에서 등을 달고 불빛을 구경하며 즐기던 민속 축제이다. 불교의 연등회에서 유래하였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종교적 의의가 퇴색되고 민속 행사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행사 모습==&lt;br /&gt;
1. 거리와 사찰에 화려한 연등이 걸림.&lt;br /&gt;
&lt;br /&gt;
2. 각 가정은 마당에 등간(燈竿)을 세우고, 식구 수대로 연등을 달아 복을 기원. &lt;br /&gt;
&lt;br /&gt;
등간 꼭대기에는 꿩의 꼬리털이나 오색 비단 깃발을 장식.&lt;br /&gt;
&lt;br /&gt;
3. 관등놀이와 함께 꼭두각시놀이, 줄불놀이(불꽃놀이), 그림자놀이 등 각종 민속놀이의 성행.&lt;br /&gt;
&lt;br /&gt;
==문화적 의미==&lt;br /&gt;
관등놀이는 불교의 신성함과 세시풍속적 오락이 결합된 행사로, 공동체가 함께 모여 밤을 밝히고 복을 기원하는 사회적·문화적 축제였다. 등불의 화려함과 민속놀이, 불꽃놀이가 어우러져 조선시대 밤거리를 밝히는 대표적 봄철 풍속이었으며, 오늘날 연등축제의 원형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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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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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0:47:4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대회(大會)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lt;br /&gt;
===소회(小會)=== &lt;br /&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lt;br /&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휴식일===&lt;br /&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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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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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0:47: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상원연등회 절차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lt;br /&gt;
===소회(小會)=== &lt;br /&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lt;br /&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휴식일: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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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9269</id>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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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0:47: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상원연등회 절차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lt;br /&gt;
===소회(小會)=== :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휴식일: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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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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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0:47: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상원연등회 절차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lt;br /&gt;
===소회(小會)===: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휴식일: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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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0:46: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상원연등회 절차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9264</id>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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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10:46: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상원연등회 구성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절차==&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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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간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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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6T02:35:4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lt;/p&gt;
&lt;hr /&gt;
&lt;div&gt;==유래==&lt;br /&gt;
간등은 한국 전통 등불 행사의 기원으로, 신라 왕실이 불교 의례와 정치적 통합을 결합한 국가적 행사이다. 527년 신라 법흥왕 대에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시작되었으며, 553년 창건된 황룡사를 중심으로 국가 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간등은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의 등공양 전통과 신라의 토속 신앙(풍년 기원, 농경 주기)이 융합된 행사로, 왕실의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통합을 상징한다.&lt;br /&gt;
황룡사는 신라의 종합의례장으로, 팔관회와 함께 국가 행사의 핵심 공간이었다.&lt;br /&gt;
&lt;br /&gt;
==연혁==&lt;br /&gt;
{|class=&amp;quot;sortable 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시기	||내용	||출처&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년)	||정월 15일 황룡사에서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	||《삼국사기》&lt;br /&gt;
|-&lt;br /&gt;
|890년(진성여왕 4년)	||정월 보름 황룡사 간등 행사로 왕권 회복 시도.	||《삼국사기》&lt;br /&gt;
|}&lt;br /&gt;
&lt;br /&gt;
==행사==&lt;br /&gt;
시기: 매년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lt;br /&gt;
&lt;br /&gt;
1. 제례 준비: 승려들이 등불 제작 및 법당 장식.&lt;br /&gt;
&lt;br /&gt;
2. 왕의 행차: 왕이 황룡사로 행차, 백관·백성 호위.&lt;br /&gt;
&lt;br /&gt;
3. 등불 점등: 법당과 회랑에 등불 밝힘, 불교 경전 독송.&lt;br /&gt;
&lt;br /&gt;
4. 연회 개최: 왕이 백관에게 잔치 베풀며 국가 안녕 기원.&lt;br /&gt;
&lt;br /&gt;
===사용된 도구===&lt;br /&gt;
등기(燈器): 종이, 비단, 나무틀, 밀랍으로 만든 연꽃·거북·용 형상 등 불교 상징물 형태의 등불이다.&lt;br /&gt;
&lt;br /&gt;
초: 참기름, 들기름, 오동나무기름 등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촛불로, 어둠을 밝히는 지혜 상징이다.&lt;br /&gt;
&lt;br /&gt;
===행사 장소===&lt;br /&gt;
황룡사: 경주 월성 동쪽에 위치한 2만 5,000평 규모의 대규모 사찰이었다.&lt;br /&gt;
&lt;br /&gt;
==중요성==&lt;br /&gt;
간등은 신라 왕실의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통합을 상징하는 국가 의례로서, 이후 고려 연등회와 조선 관등놀이, 현대 연등회로 이어지는 한국 전통 등불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lt;br /&gt;
간등에서 연등회로 이어지는 전통은 한국 문화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불교와 토속 신앙의 융합, 왕실과 민간의 소통, 공동체적 나눔과 축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0%84%EB%93%B1&amp;diff=59203</id>
		<title>간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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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6T02:30: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lt;/p&gt;
&lt;hr /&gt;
&lt;div&gt;==유래==&lt;br /&gt;
간등은 한국 전통 등불 행사의 기원으로, 신라 왕실이 불교 의례와 정치적 통합을 결합한 국가적 행사이다. 527년 신라 법흥왕 대에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시작되었으며, 553년 창건된 황룡사를 중심으로 국가 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간등은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의 등공양 전통과 신라의 토속 신앙(풍년 기원, 농경 주기)이 융합된 행사로, 왕실의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통합을 상징한다.&lt;br /&gt;
황룡사는 신라의 종합의례장으로, 팔관회와 함께 국가 행사의 핵심 공간이었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간등은 정월 보름에 등불을 밝히는 불교적 의례로, 신라 왕실이 백성의 지지와 왕권 강화를 위해 주도했다. &lt;br /&gt;
&lt;br /&gt;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참여하며 백관과 백성의 구경이 허용되었다. &lt;br /&gt;
&lt;br /&gt;
고려 시대 국가 행사인 연등회로 계승되었으며, 현대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연등회의 역사적 토대가 되었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불교 전래와 왕실 수용===&lt;br /&gt;
6세기 중반 불교 공인: 진흥왕 대 불교를 국교로 삼아 왕권 강화에 활용.&lt;br /&gt;
&lt;br /&gt;
황룡사 중심 의례: 553년 창건된 황룡사는 신라 종합의례장으로, 팔관회·간등 등 국가 행사의 핵심 공간.&lt;br /&gt;
&lt;br /&gt;
{|class=&amp;quot;sortable 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lt;br /&gt;
|시기	||내용	||출처&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년)	||정월 15일 황룡사에서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	||《삼국사기》&lt;br /&gt;
|-&lt;br /&gt;
|890년(진성여왕 4년)	||정월 보름 황룡사 간등 행사로 왕권 회복 시도.	||《삼국사기》&lt;br /&gt;
|}&lt;br /&gt;
&lt;br /&gt;
==주요 내용==&lt;br /&gt;
===행사 시기와 순서===&lt;br /&gt;
시기: 매년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lt;br /&gt;
&lt;br /&gt;
순서:&lt;br /&gt;
&lt;br /&gt;
1. 제례 준비: 승려들이 등불 제작 및 법당 장식.&lt;br /&gt;
&lt;br /&gt;
2. 왕의 행차: 왕이 황룡사로 행차, 백관·백성 호위.&lt;br /&gt;
&lt;br /&gt;
3. 등불 점등: 법당과 회랑에 등불 밝힘, 불교 경전 독송.&lt;br /&gt;
&lt;br /&gt;
4. 연회 개최: 왕이 백관에게 잔치 베풀며 국가 안녕 기원.&lt;br /&gt;
&lt;br /&gt;
===사용된 도구===&lt;br /&gt;
등기(燈器):&lt;br /&gt;
&lt;br /&gt;
재료: 종이, 비단, 나무틀, 밀랍.&lt;br /&gt;
&lt;br /&gt;
형태: 연꽃·거북·용 형상 등 불교 상징물 도안.&lt;br /&gt;
&lt;br /&gt;
초:&lt;br /&gt;
&lt;br /&gt;
재료: 식물성 기름(참기름, 들기름, 오동나무기름).&lt;br /&gt;
&lt;br /&gt;
기능: 어둠을 밝히는 지혜 상징.&lt;br /&gt;
&lt;br /&gt;
===행사 장소===&lt;br /&gt;
황룡사: 경주 월성 동쪽, 2만 5,000평 규모의 대규모 사찰.&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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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 불교 축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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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6T01:38:3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컨텐츠 구조 */&lt;/p&gt;
&lt;hr /&gt;
&lt;div&gt;==기획의도==&lt;br /&gt;
&lt;br /&gt;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국교로 기능하며 정치, 사회, 경제 등 전반적인 생활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불교 축제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 모든 계층이 참여할 수 있는 민족 축제로 발전하여 한국 문화의 중요한 축을 형성해왔다. 이에 한국 불교 축제의 역사적 전개 과정과 문화적 의미를 정리하여 불교 축제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과 그 가치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때, 주요 연구 대상은 삼국시대부터 명맥을 이어온 연등회, 팔관회와 더불어 12년째 이어가고 있는 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이다. 각 축제별로 역사적 기원과 발전 과정, 관련 사찰과 승려들의 역할, 당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현재까지의 전승 양상과 변화를 심층 분석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한국 불교 축제의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의미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불교와 축제의 결합의 의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지속적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lt;br /&gt;
&lt;br /&gt;
==팀원 및 기여==&lt;br /&gt;
&lt;br /&gt;
'''김태현'''&lt;br /&gt;
&lt;br /&gt;
제작 - 간등, 고려연등회, 호기놀이, 관등놀이&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 관계성 정리&lt;br /&gt;
&lt;br /&gt;
'''소정희'''&lt;br /&gt;
&lt;br /&gt;
제작 - 황룡사, 조계사, 봉은사, 법왕사&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 마인드맵 작성&lt;br /&gt;
&lt;br /&gt;
'''이현정'''&lt;br /&gt;
&lt;br /&gt;
제작 - 신라 팔관회, 고려 팔관회, 부산 팔관회, 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 혜량&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 컨텐츠 구조 정리, 기획의도 작성&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lt;br /&gt;
{{NetworkGraph|title=한국불교축제.lst}}&lt;br /&gt;
===마인드맵===&lt;br /&gt;
[[파일:한국불교축제마인드맵.jpeg|400픽셀]]&lt;br /&gt;
&lt;br /&gt;
===컨텐츠 구조===&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white&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amp;quot; | 클래스 !! style=&amp;quot;width:30%&amp;quot; | 설명 !! style=&amp;quot;45%&amp;quot; | 노드&lt;br /&gt;
|-&lt;br /&gt;
|축제||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에서 열렸던 주요 불교 축제들을 정리하였다. || 고려연등회, 간등, 서울연등회, 신라팔관회, 고려팔관회, 부산팔관회, 서울국제불교박람회&lt;br /&gt;
|-&lt;br /&gt;
|행사|| 주요 축제와 더불어 행해진 불교 행사들을 정리하였다. || 관등놀이, 연등행렬, 연등놀이&lt;br /&gt;
|-&lt;br /&gt;
|사찰|| 축제 및 행사가 열리거나 관계가 깊은 사찰들을 정리하였다. || 황룡사, 봉은사, 조계사, 법왕사&lt;br /&gt;
|-&lt;br /&gt;
|승려|| 축제 및 행사를 주도했거나 사찰과 관련이 있는 승려들을 정리하였다. || 자장, 원명스님, 우운, 담화원명스님, 혜량&lt;br /&gt;
|-&lt;br /&gt;
|시기|| 축제 및 행사가 행해진 역사와 관련된 시기를 크게 4부분으로 나누었다. || 신라, 고려, 조선, 현대&lt;br /&gt;
|}&lt;br /&gt;
&lt;br /&gt;
===관계성===&lt;br /&gt;
* ~가주도했다&lt;br /&gt;
** 사찰 및 승려와 주도한 축제 및 행사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황룡사 ➜ 간등&lt;br /&gt;
**#봉은사 ➜ 고려연등회&lt;br /&gt;
**#조계사 ➜ 서울연등회&lt;br /&gt;
**#조계사 ➜ 연등행렬&lt;br /&gt;
**#조계사 ➜ 연등놀이&lt;br /&gt;
**#황룡사 ➜ 신라팔관회&lt;br /&gt;
**#법왕사 ➜ 고려팔관회&lt;br /&gt;
&lt;br /&gt;
* ~시기에열렸다&lt;br /&gt;
** 축제 및 행사와 열린 시기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고려연등회 ➜ 고려&lt;br /&gt;
**#간등 ➜ 신라&lt;br /&gt;
**#관등놀이 ➜ 조선&lt;br /&gt;
**#서울연등회 ➜ 현대&lt;br /&gt;
**#연등행렬 ➜ 현대&lt;br /&gt;
**#연등놀이 ➜ 현대&lt;br /&gt;
**#신라팔관회 ➜ 신라&lt;br /&gt;
**#고려팔관회 ➜ 고려&lt;br /&gt;
**#부산팔관회 ➜ 현대&lt;br /&gt;
**#서울국제불교박람회 ➜ 현대&lt;br /&gt;
&lt;br /&gt;
* ~시기에지어졌다&lt;br /&gt;
** 사찰과 지어진 시기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봉은사 ➜ 신라&lt;br /&gt;
**#황룡사 ➜ 신라&lt;br /&gt;
**#조계사 ➜ 조선&lt;br /&gt;
**#법왕사 ➜ 고려&lt;br /&gt;
&lt;br /&gt;
* ~소속이다&lt;br /&gt;
** 승려와 소속된 사찰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자장 ➜ 황룡사&lt;br /&gt;
**#원명스님 ➜ 봉은사&lt;br /&gt;
**#담화원명스님 ➜ 조계사&lt;br /&gt;
**#우운 ➜ 법왕사&lt;br /&gt;
**#혜량 ➜ 황룡사&lt;br /&gt;
&lt;br /&gt;
* ~로이어진다&lt;br /&gt;
** 시대 별로 이어지는 축제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lt;br /&gt;
**#간등 ➜ 고려연등회&lt;br /&gt;
**#고려연등회 ➜ 관등놀이&lt;br /&gt;
**#관등놀이 ➜ 서울연등회&lt;br /&gt;
&lt;br /&gt;
==스토리텔링==&lt;br /&gt;
&lt;br /&gt;
===국가주도기===&lt;br /&gt;
&lt;br /&gt;
'''''신라'''''&lt;br /&gt;
&lt;br /&gt;
[[간등]]: 한국 전통 등불 행사의 기원으로, 신라 왕실이 불교 의례와 정치적 통합을 결합한 국가적 행사이다.&lt;br /&gt;
&lt;br /&gt;
[[신라 팔관회]] : 불교의 계율인 팔계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불사의식이자 전사자를 위령하고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등의 제의적 의식이다.&lt;br /&gt;
&lt;br /&gt;
[[황룡사]]: 정월 보름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등불들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푼 것이 연등회의 시작으로 알려진다. 진흥왕 때 황룡사에서 팔관회를 주관했다. 자장이 황룡사 9층탑을 세운 다음 팔관회를 지냈으니라 추정된다.&lt;br /&gt;
&lt;br /&gt;
[[혜량]] : 팔관회를 최초로 개최하였다.&lt;br /&gt;
&lt;br /&gt;
[[자장]] : 황룡사 9층 목탑 건축&lt;br /&gt;
&lt;br /&gt;
&lt;br /&gt;
'''''고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 고려시대 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lt;br /&gt;
&lt;br /&gt;
[[봉은사]]: 봉은사에 왕이 직접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고려 상원연등회의 특징이었다.&lt;br /&gt;
&lt;br /&gt;
[[고려 팔관회]] : 신앙과 제사, 놀이 등이 융합된 국가적인 축제이다. '부처를 공양하고 귀신을 즐겁게 하는 모임’이라 하였고, 또 ‘천령과 오악, 명산, 산천, 용신을 섬기는 것’이라 표현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법왕사]] : 국왕이 법왕사에 행차하여 팔관회를 주관했다. 태조의 영정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연등회에서 중요한 것이었다.&lt;br /&gt;
&lt;br /&gt;
===민간이행기===&lt;br /&gt;
&lt;br /&gt;
'''''조선'''''&lt;br /&gt;
&lt;br /&gt;
[[관등놀이]]: 부처님오신날 밤에 사람들이 거리와 사찰에 나가 연등을 구경하고, 다양한 민속놀이와 오락을 즐기는 풍습이다.&lt;br /&gt;
&lt;br /&gt;
고려 팔관회는 고려 왕조에 대한 충성과 고려라는 국가에 대한 일체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중적인 축제였기 때문에,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년)에 폐지되었다. 조선의 건국 주체들은 건국 직후 팔관회를 사치스러운 불교 행사로 지목해 단번에 폐지시켰는데, 이는 고려의 대표적인 불교 의식을 유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민간주도기===&lt;br /&gt;
&lt;br /&gt;
'''''현대'''''&lt;br /&gt;
&lt;br /&gt;
[[서울 연등회]]: 신라·고려·조선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확장한 시민참여형 축제로,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서울 도심을 무대로 세계인과 시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규모 축제이다.&lt;br /&gt;
&lt;br /&gt;
[http://www.llf.or.kr// 사이트]&lt;br /&gt;
&lt;br /&gt;
[[조계사]]: [[조계사]]는 서울 도심에서 펼쳐지는 연등 행렬의 주요 출발점 또는 도착점 역할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부산 팔관회]] : 2000년부터 부산 불교계를 중심으로 팔관회를 복원·재현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목적과 특징에 있어 조금씩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으나 전통문화의 보전이 주를 이루고 있다.&lt;br /&gt;
&lt;br /&gt;
[http://www.palgwanhoe.or.kr/ 사이트]&lt;br /&gt;
&lt;br /&gt;
&lt;br /&gt;
[[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 국내 유일한 전통문화산업 박람회로, 불교의 자원을 종교를 넘어 산업적·문화적으로 많은 자산으로 활용하여 취약한 전통문화시장을 활성화하도록 한다.&lt;br /&gt;
&lt;br /&gt;
[https://www.bexpo.kr/ 사이트]&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9037</id>
		<title>고려연등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9037"/>
		<updated>2025-06-12T12:33:0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신라 간등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amp;lt;삼국사기&amp;gt;신라본기&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구성==&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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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라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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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2T08:11:4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문서를 비움&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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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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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2T08:10: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신라연등회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구성==&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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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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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2T08:09: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상원연등회 구성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연등회]]===&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구성==&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amp;lt;ref&amp;gt;유용재. (2022). 한국 연등회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 의례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6036152&amp;lt;/ref&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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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8978</id>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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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2T08:08: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연등회]]===&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54), 103-130. 10.15299/jk.2015.2.54.103&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구성==&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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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라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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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1T04:35: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새 문서: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삼국사기󰡕󰡕󰡕신라본...&lt;/p&gt;
&lt;hr /&gt;
&lt;div&gt;(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삼국사기󰡕󰡕󰡕신라본기&lt;br /&gt;
&lt;br /&gt;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삼국사기󰡕󰡕󰡕신라본기&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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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신라 간등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연등회]]===&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구성==&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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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구성==&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8919</id>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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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1T04:32: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신라 간등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구성==&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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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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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1T04:31:5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중국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 연등회===&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lt;br /&gt;
===신라 간등===&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구성==&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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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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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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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1T04:31:3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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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신라 간등===&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구성==&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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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1T04:30:4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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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신라의 기원===&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구성==&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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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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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1T04:30: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고려의 제도화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신라의 기원===&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국가 차원의 중대한 행사인 연등회 준비를 전담하는 기구이다.&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구성==&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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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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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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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1T04:12: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상원연등회 구성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신라의 기원===&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설치: 행사 준비를 전담하는 임시 기구 운영.&lt;br /&gt;
&lt;br /&gt;
의례적 정비: 현종 대(1011년) 2월 보름으로 정기화, 정종 대(1034~1046) 소회·대회 이원화.&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구성==&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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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1T04:11:5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행사 순서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신라의 기원===&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설치: 행사 준비를 전담하는 임시 기구 운영.&lt;br /&gt;
&lt;br /&gt;
의례적 정비: 현종 대(1011년) 2월 보름으로 정기화, 정종 대(1034~1046) 소회·대회 이원화.&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원연등회 구성==&lt;br /&gt;
&amp;lt;소회(小會)&amp;gt;: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 그리고 약 2,000명의 수행원이 뒤따른다. 수행원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있고 좌우로는 군사들이 도열한다. 장엄한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 좌우로 백성들이 길게 늘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밤이 되면 궁중에서는 등석연이 베풀어져 연등 아래에서 악기가 연주되고 신하들은 시를 지어 임금에게 바친다. 궁궐 밖 성안에서는 곳곳에 달린 등이 점등되고 백성들은 연등 구경하며 즐거운 관등놀이를 한다. 그날 밤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밤새 축제를 벌였다.&lt;br /&gt;
&lt;br /&gt;
&amp;lt;대회(大會)&amp;gt;: 15일, 3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1부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는 예식이다. 제2부는 임금과 신하들 자리 앞에 과실 상이 차려지는데 먼저 임금이 자리에 앉고 뒤이어 태자를 비롯하여 신하들이 차례로 들어선다. 그리고 태자가 임금 앞에 나아가 축사하고 나면 임금은 태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고 이에 따라 신하들도 각자 자리에 앉는다. 제3부는 본격적인 연회로서, 임금은 신하들에게 차와 술을 권하고 신하들은 차례를 지켜 임금에게 나아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과 음식을 올린다. 이때 음악과 무용이 실행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예식이 끝나면 임금은 교지를 내려 신하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써 모든 대회일의 행사가 끝난다.&lt;br /&gt;
&lt;br /&gt;
&amp;lt;휴식일&amp;gt;: 16일, 휴식하였다.&lt;br /&gt;
3. 등불 점등:&lt;br /&gt;
&lt;br /&gt;
등산(燈山)·등수(燈樹): 나무 틀에 오색비단·등불 장식.&lt;br /&gt;
&lt;br /&gt;
등석연(燈夕宴): 밤늦게까지 등불 아래 연회·백희(百戲) 진행.&lt;br /&gt;
&lt;br /&gt;
4. 민간 참여: 호기놀이(呼旗놀이)로 어린이들이 쌀·베 모아 등불 제작.&lt;br /&gt;
&lt;br /&gt;
===사용 도구===&lt;br /&gt;
등기(燈器):&lt;br /&gt;
&lt;br /&gt;
재료: 종이·비단(등갓), 나무틀·밀랍(초).&lt;br /&gt;
&lt;br /&gt;
형태: 연꽃·거북·용 등 불교 상징물 도안.&lt;br /&gt;
&lt;br /&gt;
법구(法具): 향로·공양물·불상.&lt;br /&gt;
&lt;br /&gt;
===행사 장소===&lt;br /&gt;
궁중: 강안전(康安殿)·중광전(重光殿)에서 대규모 연회.&lt;br /&gt;
&lt;br /&gt;
사찰:&lt;br /&gt;
&lt;br /&gt;
봉은사(奉恩寺): 태조 진전(眞殿) 제례.&lt;br /&gt;
&lt;br /&gt;
흥왕사(興王寺): 대각국사 의천 주관, 5일간 연등회 개최.&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8911</id>
		<title>고려연등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8911"/>
		<updated>2025-06-11T02:44: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행사 순서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신라의 기원===&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설치: 행사 준비를 전담하는 임시 기구 운영.&lt;br /&gt;
&lt;br /&gt;
의례적 정비: 현종 대(1011년) 2월 보름으로 정기화, 정종 대(1034~1046) 소회·대회 이원화.&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행사 순서===&lt;br /&gt;
1. 제례 준비: 승려들이 종이·비단 등으로 등불 제작, 법당 장식.&lt;br /&gt;
&lt;br /&gt;
2. 왕의 행차:&lt;br /&gt;
&lt;br /&gt;
소회(小會): 14일, 임금은 오전에 궁중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태조 왕건의 명복을 기원하는 원찰인 봉은사에 행차한다. 음악공연에는 15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이 동원되며 왕족과 귀족들이 함께 관람한다. 개경의 남쪽에 있는 봉은사까지 임금을 필두로 하여 태자와 신하들,&lt;br /&gt;
&lt;br /&gt;
대회(大會): 15일, 궁중 대연회 개최.&lt;br /&gt;
&lt;br /&gt;
3. 등불 점등:&lt;br /&gt;
&lt;br /&gt;
등산(燈山)·등수(燈樹): 나무 틀에 오색비단·등불 장식.&lt;br /&gt;
&lt;br /&gt;
등석연(燈夕宴): 밤늦게까지 등불 아래 연회·백희(百戲) 진행.&lt;br /&gt;
&lt;br /&gt;
4. 민간 참여: 호기놀이(呼旗놀이)로 어린이들이 쌀·베 모아 등불 제작.&lt;br /&gt;
&lt;br /&gt;
===사용 도구===&lt;br /&gt;
등기(燈器):&lt;br /&gt;
&lt;br /&gt;
재료: 종이·비단(등갓), 나무틀·밀랍(초).&lt;br /&gt;
&lt;br /&gt;
형태: 연꽃·거북·용 등 불교 상징물 도안.&lt;br /&gt;
&lt;br /&gt;
법구(法具): 향로·공양물·불상.&lt;br /&gt;
&lt;br /&gt;
===행사 장소===&lt;br /&gt;
궁중: 강안전(康安殿)·중광전(重光殿)에서 대규모 연회.&lt;br /&gt;
&lt;br /&gt;
사찰:&lt;br /&gt;
&lt;br /&gt;
봉은사(奉恩寺): 태조 진전(眞殿) 제례.&lt;br /&gt;
&lt;br /&gt;
흥왕사(興王寺): 대각국사 의천 주관, 5일간 연등회 개최.&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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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dh_edu/wiki/index.php?title=%EA%B3%A0%EB%A0%A4%EC%97%B0%EB%93%B1%ED%9A%8C&amp;diff=58907</id>
		<title>고려연등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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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1T02:42:4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Tiaehyun: /*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 */&lt;/p&gt;
&lt;hr /&gt;
&lt;div&gt;==개요==&lt;br /&gt;
고려연등회는 불교문화와 왕실 의례가 결합된 국가적 행사로, 등불을 밝히며 부처의 지혜를 찬양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축제이다. &lt;br /&gt;
&lt;br /&gt;
태조 왕건의「훈요십조」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대표적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lt;br /&gt;
&lt;br /&gt;
또한, 계층을 초월하여 왕실·귀족·평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중국===&lt;br /&gt;
180년 후한(25~220)의 황제는 관리를 불탑사에 파견하여 승려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후, 연등을 하였다고 한다. 연등이 중국의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불교 의식으로 정착한 것은 남북조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연등 행사가 정규 행사로서 1월 15일에 열린 것은 당(618~907)대였다.&lt;br /&gt;
===신라의 기원===&lt;br /&gt;
551년(진흥왕 12): 팔관회와 함께 최초 기록(《삼국사기》).&lt;br /&gt;
&lt;br /&gt;
866년(경문왕 6): 황룡사에서 왕이 직접 등불 관람 후 백관에게 잔치 제공.&lt;br /&gt;
&lt;br /&gt;
===고려의 제도화===&lt;br /&gt;
 '''''훈요6조''''': 나의 소원은 연등[燃燈會]과 팔관[八關會]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岳)·명산·대천·용신(龍神)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의 간신이 신위(神位)와 의식절차의 가감(加減)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國忌: 황실의 祭日)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lt;br /&gt;
&lt;br /&gt;
연등도감 설치: 행사 준비를 전담하는 임시 기구 운영.&lt;br /&gt;
&lt;br /&gt;
의례적 정비: 현종 대(1011년) 2월 보름으로 정기화, 정종 대(1034~1046) 소회·대회 이원화.&lt;br /&gt;
&lt;br /&gt;
==고려연등회의 유형과 모습==&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lt;br /&gt;
! 종류 || 날짜 || 상세 내용&lt;br /&gt;
|-&lt;br /&gt;
| 정기연등회(상원연등회)|| 매년 정월15일, 2월 15일 || 고려 초, 매년 정월 15일에 열리며 상원연등회라 불림. 성종 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 중 13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폐지됨. 현종 대, 재개되어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2월 15일에 열림. 고려 말, 서서히 퇴조하고 불탄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 &lt;br /&gt;
|-&lt;br /&gt;
| 특설연등회 || 비정기적, 1~2월 || 11세기 초 ~ 12세기 초 문종 대와 예종 대에 걸쳐 7회 개최됨.&lt;br /&gt;
|-&lt;br /&gt;
| 불탄일 연등회 || 매년 4월 8일 || 왕실에서 주도한 정기연등회와 달리, 민간에서 열린 토속적 행사의 성격이 강함. 공민왕 대, 민간 중심 연중행사를 넘어 궁중에서도 공적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함. 불탄일 연등회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려 초 이래의 상원연등회는 점차 위축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행사 순서===&lt;br /&gt;
1. 제례 준비: 승려들이 종이·비단 등으로 등불 제작, 법당 장식.&lt;br /&gt;
&lt;br /&gt;
2. 왕의 행차:&lt;br /&gt;
&lt;br /&gt;
소회(小會): 14일, 궁중에서 가무 공연 후 봉은사 행향(行香).&lt;br /&gt;
&lt;br /&gt;
대회(大會): 15일, 궁중 대연회 개최.&lt;br /&gt;
&lt;br /&gt;
3. 등불 점등:&lt;br /&gt;
&lt;br /&gt;
등산(燈山)·등수(燈樹): 나무 틀에 오색비단·등불 장식.&lt;br /&gt;
&lt;br /&gt;
등석연(燈夕宴): 밤늦게까지 등불 아래 연회·백희(百戲) 진행.&lt;br /&gt;
&lt;br /&gt;
4. 민간 참여: 호기놀이(呼旗놀이)로 어린이들이 쌀·베 모아 등불 제작.&lt;br /&gt;
&lt;br /&gt;
===사용 도구===&lt;br /&gt;
등기(燈器):&lt;br /&gt;
&lt;br /&gt;
재료: 종이·비단(등갓), 나무틀·밀랍(초).&lt;br /&gt;
&lt;br /&gt;
형태: 연꽃·거북·용 등 불교 상징물 도안.&lt;br /&gt;
&lt;br /&gt;
법구(法具): 향로·공양물·불상.&lt;br /&gt;
&lt;br /&gt;
===행사 장소===&lt;br /&gt;
궁중: 강안전(康安殿)·중광전(重光殿)에서 대규모 연회.&lt;br /&gt;
&lt;br /&gt;
사찰:&lt;br /&gt;
&lt;br /&gt;
봉은사(奉恩寺): 태조 진전(眞殿) 제례.&lt;br /&gt;
&lt;br /&gt;
흥왕사(興王寺): 대각국사 의천 주관, 5일간 연등회 개최.&lt;/div&gt;</summary>
		<author><name>Tiaehyu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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