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FC(2025)Report01
CNUDH
중어중문학과 이재갑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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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배경
"만약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만약 유통기한을 꼭 정해야 한다면, 만 년으로 해야겠다."
이 문장은 영국령 홍콩 시기의 끝자락이었던 1994년, 낭만의 시대에 개봉한 홍콩 영화 ‘중경삼림’의 한 대사이다. 이후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되며 ‘일국양제(一國兩制)’ 체제 아래 50년간의 특별행정구 지위를 부여받았고, 그 결과 오늘날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통기한이 존재하는 도시’로 남게 되었다. 홍콩은 아편전쟁의 결과로 영국 식민지를 거쳤고,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활용된 영국과 중국의 합작으로 발명된 구조적 모순을 안고있는 도시이다. 동시에 신냉전 구도 속에서 대만과 함께 미-중 갈등의 핵심 무대이자, 중국 사회의 모순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흥분과 고요가 공존하는 도시,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남은 유통기한을 보내고있는 홍콩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순의 도시’ 홍콩을 형성시킨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189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의 홍콩은 어떤 사회,경제적 과정을 통해 발전했으며, 그 속에서 중국인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민족주의적 역사관은 한국 사회의 발전을 견인하는가,아니면 자폐적 종족주의를 정당화하는가?”
마지막으로, 이러한 무거운 질문들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 경험을, 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통해 근대적 제도와 사회적 인프라를 수용하였다. 이제 감정적 평가를 넘어, 역사를 건조한 흐름의 눈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주류사회가 고민해야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홍콩시민들이 식민지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인식과 대비함으로써 무엇이 진정한 역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연구목적
본 연구는 189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영국령 홍콩의 사회,경제적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중국인들의 삶과 역할을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홍콩이 식민지적 근대화 과정에서 상업, 노동, 지식인 활동을 통해 어떻게 제국적 질서에 적응하거나 저항했는지를 탐구한다.
또한, 홍콩의 경험을 한국의 일본 식민지 경험과 비교함으로써, 동아시아 식민지 근대화의 공통적 특징과 차이를 조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감정적 민족주의를 넘어, 역사를 구조적 흐름 속에서 성찰하는 시각을 제시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한다.
연구정보
연구내용
1.교통수단 건설
식민 당국은 빅토리아 항구 횡단 페리 및 홍콩섬 트램 등 주요 대중교통 시스템을 확립하여 인구 이동 및 상업 활동을 용이하게 하였다.
1910년 중국 본토와의 연결을 위한 광저우-구룡 철도가 개통되었으며, 이는 홍콩이 남중국 무역의 중계 거점으로서 기능하는 데 핵심적 기반이 되었다.
2. 사회적 인프라 건설(보건,교육)
1894년 페스트 이후 공중 위생법이 제정되고 근대적인 하수 및 배수 시설이 구축되었으며, 이는 전염병 통제와 도시 보건 환경 개선을 위한 주요 동인이 되었다
영국식 교육기관이 설립되어 영어 능통자를 포함한 중국인 중간 관리층이 양성되었으며, 이는 식민지 행정의 효율성 증대에 기여하였다.
3. 중국인, 영국인 차별
1894년 페스트 이후 공중 위생법이 제정되고 근대적인 하수 및 배수 시설이 구축되었으며, 이는 전염병 통제와 도시 보건 환경 개선을 위한 주요 동인이 되었다
대중교통의 좌석 등급제와 빅토리아 피크 거주 제한 조례 등의 정책이 시행되어, 주거 및 공공 시설 접근에서 인종적 차별과 공간적 분리가 제도화되었다.
<경찰 조직 등 식민 통치 기구 내에서도 인종별 계층 구조가 확연하였으며, 중국인들은 일상적 차별과 불평등한 법 집행에 노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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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중국인들의 저항
참고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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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