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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조춘도早春图》''' || [[파일:조춘도.jpg|400픽셀]] || | | style="text-align:center"| '''《조춘도早春图》''' || [[파일:조춘도.jpg|400픽셀]] || | ||
*추후 조사 | *추후 조사 | ||
| − | ** | + | **《조춘도早春图》는 섬세한 붓놀림으로 이른 봄의 생명력과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 속에는 버드나무에 새순이 돋고, 꽃이 피고,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새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 모든 디테일이 봄의 숨결을 드러내며 자연의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한간의 뛰어난 그림 실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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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소마도相马图》''' || [[파일:소마도.jpg|400픽셀]] || | | style="text-align:center"| '''《소마도相马图》''' || [[파일:소마도.jpg|400픽셀]] || | ||
*추후 조사 | *추후 조사 | ||
| − | ** | + | ** 《소마도相马图》는 한간의 말 그림 예술의 정점이다. 그림 속의 말들은 모양이 다양하고 마치 이웃의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실물과 같다. 한간은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말의 매력과 자세, 근육의 질감을 생생하게 표현해 말의 힘과 민첩성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 작품은 한간의 뛰어난 그림 실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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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목장희마도牧场戏马图》''' || [[파일:목장희마도.jpg|400픽셀]] || | | style="text-align:center"| '''《목장희마도牧场戏马图》''' || [[파일:목장희마도.jpg|400픽셀]] || | ||
*추후 조사 | *추후 조사 | ||
| − | ** | + | **《목장희마도牧场戏马图》는 목초지의 생생한 현장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림 속에서 말들은 초원 위를 자유롭게 질주하며 먹이를 찾거나 놀면서 민첩성을 보여준다. 한간은 말의 표정과 움직임을 절묘한 붓놀림으로 담아내고, 먹의 깊이와 선의 굵기를 통해 말의 피부 질감과 근육선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작품 전체가 생동감 넘치며 마치 광활한 초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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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원마도猿马图》''' || [[파일:원마도.jpg|400픽셀]] || | | style="text-align:center"| '''《원마도猿马图》''' || [[파일:원마도.jpg|400픽셀]] || | ||
*추후 조사 | *추후 조사 | ||
| − | ** | + | **《원마도猿马图》는 길이가 48.58cm, 너비가 136.8cm이다. 이 그림은 대나무와 돌숲을 묘사하고 있으며, 나뭇가지 사이의 바위 위에서 말 세 마리가 놀고 있고, 그 아래에는 흑백 말 한 쌍이 그려져 있습니다. |
| + | **《원마도猿马图》는 현재 타이페이 국립고궁박물원에 위치해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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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사슴도得鹿图》''' || [[파일:사슴도.jpg|400픽셀]] || | | style="text-align:center"| '''《사슴도得鹿图》''' || [[파일:사슴도.jpg|400픽셀]] || | ||
*추후 조사 | *추후 조사 | ||
| − | ** | + | **《사슴도得鹿图》는 사냥꾼이 사슴을 잡는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림을 살펴보면 사냥꾼은 집중력을 갖고 빠르게 움직이는 반면, 사슴은 겁에 질려 몸부림치고 있다. 한간은 색과 선을 능숙하게 활용하여 긴장감 넘치고 역동적인 그림을 그려내며, 해당 작품에서 사냥의 긴장감과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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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백준도百骏图》''' || [[파일:백준도1.jpg|400픽셀]]<br/>[[파일:백준도2.jpg|400픽셀]]<br/>[[파일:백준도3.jpg|400픽셀]]<br/>[[파일:백준도4.jpg|400픽셀]]<br/>[[파일:백준도5.jpg|400픽셀]]<br/>[[파일:백준도6.jpg|400픽셀]] || | | style="text-align:center"| '''《백준도百骏图》''' || [[파일:백준도1.jpg|400픽셀]]<br/>[[파일:백준도2.jpg|400픽셀]]<br/>[[파일:백준도3.jpg|400픽셀]]<br/>[[파일:백준도4.jpg|400픽셀]]<br/>[[파일:백준도5.jpg|400픽셀]]<br/>[[파일:백준도6.jpg|400픽셀]] || | ||
*추후 조사 | *추후 조사 | ||
| − | ** | + | **《백준도百骏图》는 말의 기품을 보여준다. 그림 속 말들은 서로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어떤 말들은 질주하며 뛰고 있고, 어떤 말들은 마치 광활한 초원 위에 있는 것처럼 여유롭게 산책하고 있습니다. 한간은 섬세한 붓놀림과 풍부한 먹색을 사용하여 말의 형태와 근육, 털의 질감을 생생하게 표현하여 해당 작품으로 당나라 회화 예술의 뛰어난 업적을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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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십육신준도권十六神骏图卷》''' || [[파일:십육신준도권.jpg|400픽셀]] || | | style="text-align:center"| '''《십육신준도권十六神骏图卷》''' || [[파일:십육신준도권.jpg|400픽셀]] || | ||
*추후 조사 | *추후 조사 | ||
| − | ** | + | **《십육신준도권十六神骏图卷》는 길이 27cm, 너비 333cm이다. |
| + | **이 그림은 말을 탄 기병을 포함해 16마리의 말이 서로 다른 실제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의 시작 부분에는 두 마리의 말이 나란히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는 역동성이 넘치고 전체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또한 키가 큰 말이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는데, 이는 움직이는 다른 말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전체 장면을 안정시키고 있다. | ||
| + | **말은 강하고 뼈대가 많으며 갈기가 길고, 품행이 편안하며, 팔다리가 강해 비범한 기질을 보여준다. 그림에는 조맹복(趙孟富)과 항원변(鄭境質)의 인장을 포함해 13개의 인장이 그려져 있다. 선이 둥글게 처리되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뛰어난 화법을 보여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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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4일 (월) 16:42 판
: 살아 숨쉬는 그림들, 한간의 회화繪畫에 대하여
중어중문학과 전태현
목차
Contents
개요
한간(韩干, 706-783)은 시안에서 태어나 술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다가 왕유의 눈에 띄었다. 시인 왕유는 한간의 뛰어난 그림 실력에 놀랐고, 한간이 전문적으로 그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십수년에 걸쳐 그에게 자금을 지원했다. 독자적인 화법을 사용하는 것을 본 현종은 그에게 남다른 재주가 있음을 인정했다. 한간은 궁정에서 현종이나 여러 왕들이 소유하고 있던 명마를 맡아 그리면서 ‘고금독보古今独歩[1]’라는 평을 받았다. 또한 그는 말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물화나 안마화(鞍馬画)도 그렸다. 그 중 말을 그리는 화법으로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2]
한간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말을 그린 화가로서 유명해졌는지, 한간이 그린 작품들은 무엇이고 각각 어떤 특징이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생애
일생
[3]
한간은 중국 당나라 현종 시대를 살았던 화가이다.
한간은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태어나 장안에서 거주했다. 한간은 원래 술집에서 고용살이를 했다. 어느 날 왕유, 왕진 형제의 술값을 받으러 갔다가 기다리는 사이 땅바닥에 사람과 말을 그린 것을 왕유가 보게 되었다. 시인 왕유는 한간의 뛰어난 그림 실력에 놀랐고, 한간이 전문적으로 그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십수년에 걸쳐 그에게 자금을 지원했다. 한간은 조패에게 그림을 배우다가 이후 현종에 의해 궁정으로 불려가서 황명으로 진굉에게 그림을 배워 말을 그리기 시작했다. 독자적인 화법을 사용하는 것을 본 현종은 그에게 “그대는 조패와 진굉의 제자인데, 어찌 그들의 그림을 닮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현종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조패와 진굉은 당연히 저의 스승들이시나, 제겐 40만 분의 스승들이 더 계십니다. 폐하의 내구마[4] 40만 마리가 모두 저의 스승입니다.” 이로 인해 현종은 그에게 남다른 재주가 있음을 인정했다. 또한 그는 말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물화나 안마화(鞍馬画)도 그렸다. 그 중 말을 그리는 화법으로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5]
작품
| 작품명 | 작품 | 설명 |
|---|---|---|
| 《조야백도照夜白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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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마도牧馬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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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준도神骏图》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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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인정마도圉人呈马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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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춘도早春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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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마도相马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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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장희마도牧场戏马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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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마도猿马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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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슴도得鹿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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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준도百骏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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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육신준도권十六神骏图卷》 |
|
연보
706년
출생[7]
742년-755년
현종의 부름을 받아 공봉供奉[8]으로 임명되었다.[9]
783년
사망[10]
데이터
Data Table
Network Graph
Timeline
(추후 임베딩)
Digital Atlas
(추후 임베딩)
참고문헌
오프라인 자료
(서술)
온라인 리소스
(서술)
주석
- ↑ 고금독보古今独歩: 고금을 통틀어도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을 만큼 뛰어남. 『표준국어대사전』-"고금독보"
- ↑ 한간은…영향을 미쳤다.: 百度, "韩干", (2024.10.28)
- ↑ 百度, "韩干", (2024.10.28)
- ↑ 내구마: 궁궐 안의 마굿간에 속한 말, 임금의 하사품으로도 자주 쓰인다. 『한국고전용어사전』-"내구마"
- ↑ 한간은…영향을 미쳤다.: 위키백과, "한간(화가)", (2024.10.28)
- ↑ 스님
- ↑ 百度, "韩干", (2024.10.28)
- ↑ 공봉供奉: 황제의 좌우에서 일하는 관리에 대한 칭호. 『우리말샘』-"공봉"
- ↑ 徐銀淑. (2021). 시인이 말하는 화가 (Ⅲ) ― 蘇軾의 ‘韓幹’론. 중국어문학논집,(127), 257-272, 10.25021/JCLL.2021.4.127.257
- ↑ 百度, "韩干", (2024.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