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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9일 (월) 20:27 판

중국의역사와인물(강의) 페이지로 가기



중계무역항 홍콩의 성장과 번영(1842–1911)

: 유관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중어중문학과 김지성





목차

Contents


연구배경 연구목적 연구질문 연구내용 연구정보 참고자원



연구배경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국에 할양된 홍콩섬은 깊은 빅토리아항과 1841년 선포된 자유항 체제를 바탕으로 중계무역항으로 성장했다.[1][2] 1860년 구룡 할양과 1898년 신계 조차로 영역이 넓어졌고,[3] 무역·해운·금융·이민이 한곳에 모였다. 또한 태평천국, 청불전쟁, 변법운동, 신해혁명 등 중국 본토의 정치 변동과도 끊임없이 맞물렸다.

홍콩을 네트워크로 보는 연구는 이미 있었다. 하마시타 다케시는 홍콩을 '아시아의 네트워크 도시'로,[4] 데이비드 마이어는 중국계·외국계 자본 네트워크가 만나는 결절점으로,[5] 엘리자베스 신은 사람·상품·자금이 오가는 '사이의 장소'로 보았다.[6] 그러나 이 연구들은 네트워크를 서술로 설명했다. 인물과 사건의 관계를 데이터로 구조화하고 시각화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본 연구는 홍콩과 관련된 인물·사건을 노드로, 그 관계를 링크로 삼아 네트워크 그래프를 만든다. 그리고 연결중심성과 매개중심성으로 핵심 노드를 찾아 탐구한다. '누가, 무엇이 중요했는가'를 연구자의 선입견이 아니라 관계 데이터에서 출발해 묻는 것이 이 연구의 특징이다.



연구목적


본 연구의 목적은 1842–1911년 홍콩과 관련된 인물과 사건을 네트워크 그래프로 구조화하고, 중심성 분석으로 고른 핵심 인물·사건을 탐구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홍콩의 성장과 번영이 몇몇 뛰어난 개인이나 하나의 사건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집단의 사람과 사건이 홍콩에서 연결되며 만들어졌음을 밝히고자 한다.

  1. 네트워크 구축: 홍콩과 관련된 인물(총독, 서양·화인 상인, 매판, 지식인, 혁명가)과 사건(조약, 기관 설립, 전쟁, 봉기, 사회운동)을 노드로, 그 관계를 링크로 정리한다. 기관·제도·공간은 인물과 사건을 잇는 보조 노드로 둔다. 링크는 문헌에서 확인되는 관계만 인정하고, 관계마다 근거 자료를 함께 기록해 그래프의 신뢰성을 확보한다.

  2. 핵심 노드 선정: 완성된 그래프에서 연결중심성과 매개중심성을 계산해 상위 노드를 고른다. 연결중심성은 직접 연결된 관계가 많은 '허브'를,[7] 매개중심성은 서로 다른 집단 사이에서 연결을 맡은 '중개자'를 찾는 지표다.[8] 두 지표를 함께 쓰면 관계가 많이 몰린 노드와 집단을 잇는 노드를 구분해 볼 수 있다.

  3. 심층 탐구: 선정된 노드를 문헌으로 탐구하고, 그 노드가 왜 그 위치에 있었는지 해석한다.
    • 인물: 생애와 홍콩에서의 활동, 어떤 집단과 집단을 연결했는지, 중계무역 성장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 사건: 원인과 전개, 관련 인물, 홍콩의 무역과 사회에 남긴 결과
    • 핵심 인물과 핵심 사건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




연구질문


  • 가장 많은 관계가 몰린 인물·사건은 무엇이며, 중계무역 성장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 핵심 인물과 핵심 사건은 서로 어떻게 맞물려 홍콩의 성장과 번영을 이끌었는가?

이 연구는 관계 데이터로 핵심 인물·사건을 찾고(네트워크 분석), 그 인물·사건을 문헌으로 해석하는(노드 탐구)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시간 순서 중심의 역사 서술을 보완하고, 홍콩사를 '사람과 사건의 연결'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읽는 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번 개인 연구에서 만든 그래프와 분석 절차는 이후 조별 연구에서 노드와 관계를 늘려 가는 기반으로 삼는다.


연구정보



[인물]
순위 관계 수 순 관계 수 매개중심성 순위 매개중심성순 매개중심성 관계 수
1 쿨리(집단) 7 0.086 1 쿨리(집단) 0.086 7
2 찰스 엘리엇 6 0,050 2 매슈 네이션 0.078 3
3 존 보링 6 0.028 3 헨리 블레이크 0.074 3
4 화인 상인(집단) 5 0.062 4 화인 상인(집단) 0.062 5
5 폴 채터 5 0.025 5 찰스 앨리엇 0.050 6

두 순위에 모두 든 인물: 쿨리, 화인 상인, 찰스 엘리엇

[사건]
순위 관계 수 순 관계 수 매개중심성 순위 매개중심성 순 매개중심성 관계 수
1 제1차 아편전쟁 6 0.062 1 1894년 홍콩 흑사병 0.092 4
2 제2차 아편전쟁 5 0.027 2 제1차 아편전쟁 0.062 6
3 난징조약 5 0.022 3 신계 접수 0.057 3
4 1894년 홍콩 흑사병 4 0.092 4 신해혁명 0.043 3
5 애로호 사건 4 0.030 5 홍콩 봉쇄 0.034 3

두 순위에 모두 든 사건: 제1차 아편전쟁, 1894년 홍콩 흑사병



연구내용


(여기에 서술하기)


참고자원


평가기준


1. 자료조사(성실도)

- 최소한의 학술적 성격의 자료(논문, 중국 근대사와 관련된 도서)

- 사용한 자료를 보고서에 녹여내기

- 양과 질을 모두 봄


2. 데이터 기반 과제 탐구주제의 데이터 추출 가능성 검토

- 데이터의 규모 일정이상 추정 가능 여부

- 주제와 관련한 사건, 인물, 장소


3. 주제탐구의미

- 주제의 학술적 의미

- 인공지능을 통해 검토 가능



a. 그래프를 작성하면 1, 2를 파악할 수 있다.

- 데이터를 뽑아 볼 수 있기 때문


b. 주제

-인물과 사건으로 본 홍콩의 중계무역항으로써의 성장


주석


  1. ↑ 1841년 1월 26일 영국군이 홍콩섬을 점령했고, 1842년 8월 29일 난징조약 제3조로 홍콩섬이 할양되었다.
  2. ↑ 1841년 6월 엘리엇이 홍콩을 자유항으로 선포해, 모든 상선이 관세 없이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3. ↑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구룡반도 남단이 할양되었고, 1898년 「전척향항계지전조」로 신계가 99년간 조차되었다.
  4. ↑ 하마시타 다케시, 『홍콩: 아시아의 네트워크 도시』. 개항을 서구 자본이 기존 화교 네트워크에 '참입'한 것으로 해석했다.
  5. ↑ Meyer, 2000. 홍콩을 "Chinese and foreign social networks of capital"이 만나는 "pivotal meeting-place"로 규정했다.
  6. ↑ Sinn, 2013. 골드러시를 계기로 홍콩이 사람의 중계항으로 바뀌었다고 보았다.
  7. ↑ Freeman, 1978. 연결중심성은 직접 연결된 관계의 수로 측정한다.
  8. ↑ Freeman, 1977. 다른 노드들 사이의 최단 경로 위에 놓일수록 흐름을 중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