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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7월에 시작되어 1895년 4월에 끝난 청일전쟁은 동아시아 질서를 바꾼 전쟁이다. 수백 년간 이어진 중국 중심의 조공책봉체제 <ref>조공책봉체제: 중국 황제가 주변국 군주를 책봉하고 조공을 받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국제 질서.</ref>가 무너졌고, 일본은 아시아의 새로운 강국으로 떠올랐다. 전쟁터는 조선에서 시작해 황해와 랴오둥반도로 번졌고, 결과는 조선, 청, 일본뿐 아니라 러시아까지 얽힌 국제 문제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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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전쟁은 흔히 "'''일본이 청을 이긴 전쟁'''"이라는 한 문장으로만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1885년 톈진조약 <ref>톈진조약(1885): 갑신정변 이후 청과 일본이 맺은 조약. 양국 군대의 조선 철수와, 앞으로 파병할 때 사전에 알린다는 내용이 핵심이다.</ref>,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전주화약 <ref>전주화약: 동학농민군과 조선 정부가 전주에서 맺은 휴전 약속.</ref>, 청과 일본의 파병이 차례로 쌓이며 개전에 이르렀다. 전쟁이 시작된 뒤에는 풍도, 평양, 황해, 뤼순에서 전투가 이어졌고, 결말도 시모노세키 조약, 삼국간섭 <ref>삼국간섭: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일본에 랴오둥반도를 청에 돌려주라고 권고한 사건. 이 데이터에서는 러시아만 노드로 두었다.</ref>, 요동환부조약 <ref>요동환부조약: 일본이 랴오둥반도를 청에 돌려주기로 한 조약. 청은 반환 대가를 일본에 지불했다.</ref>으로 여러 단계를 거쳤다. 이 흐름에는 이홍장, 이토 히로부미 등 여러 인물이 얽혀 있어서, 서술을 읽는 것만으로는 사건의 선후와 인과를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이에 데이터화하여 시각적으로 이해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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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청일전쟁을 발단, 전개, 결말 세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의 사건을 '''인물, 시간, 공간'''의 세 축으로 정리해 네트워크 그래프 데이터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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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건에 누가 어떤 역할로 참여했는지 정리한다. 조약을 체결한 인물(이홍장, 이토 히로부미, 무쓰 무네미쓰), 전투를 이끈 인물(이토 스케유키, 오시마 요시마사, 정여창), 피해를 입은 인물(고종, 이홍장)을 구분해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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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사건의 날짜를 데이터로 붙여 사건의 순서와 인과 관계를 확인한다. 특히 1894년 6월 파병에서 7월 23일 경복궁 점령, 7월 25일 풍도 해전까지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사건이 빠르게 이어지는 과정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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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지역 노드로 만들어, 전쟁터가 한성에서 평양, 황해, 뤼순을 거쳐 일본 시모노세키까지 옮겨 가는 흐름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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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위 세 축을 노드와 링크로 연결해서, 하나의 사건에 어떤 인물과 날짜와 장소가 묶여 있는지를 그래프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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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1884년 12월~189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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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은 조선을 속방으로 보고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고,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내세우며 영향력을 넓히려 했다. 두 나라의 대립은 조선 안의 사건을 계기로 군사 충돌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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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1. 배경 (1884년~1894년)'''</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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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span style="background:Lavender">1-1. 갑신정변과 톈진조약</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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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둘러싼 청과 일본의 대립은 1884년 12월 4일의 갑신정변에서 군사 충돌 직전까지 번졌다.정변은 일본의 지원을 기대한 개화파가 일으켰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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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스카이가 이끈 청군이 개입해 사흘 만에 진압되었다. 이 충돌 이후 두 나라는 협상에 나섰고, 1885년 4월 18일 톈진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이홍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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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진조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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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진조약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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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은 4개월 안에 조선에 주둔한 군대를 철수하고, 청군은 마산포에서, 일본군은 인천에서 승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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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군은 조선에 군사 교관을 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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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조선에 중대한 변란이 일어나 어느 한쪽이라도 파병해야 할 때는 상대에게 미리 서면으로 알리고, 사태가 수습되면 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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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항은 1894년 양국이 함께 파병하는 근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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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span style="background:Lavender">1-2. 동학농민운동과 전주화약</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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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초 고부에서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은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면서 커졌다. 농민군이 전주까지 점령하자 조선 정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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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으로 진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청의 위안스카이에게 원병을 요청했다. 일본은 이 요청을 파병의 기회로 삼아 6월 초 참모본부 안에 대본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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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하고, 공사관과 거류민 보호를 구실로 오시마 요시마사 소장이 이끄는 혼성여단을 조선에 보냈다. 선발대는 6월9일 인천에 상륙했고, 6월 하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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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천여 명이 경성과 인천 사이에 집결했으며 청군 또한 아산 부근에 집결했다. 그런데 1894년 6월 11일 농민군과 조선 정부 사이에 전주화약이 맺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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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군이 자진 해산하면서 외국군이 조선에 머물 명분이 사라졌고, 조정과 농민군은 청일 양국에 철군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의 내정 개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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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으로 내세우며 군대를 철수하지 않았다. 동학농민운동이라는 내부 사건이 청일 양국의 군사 대치로 바뀐 것이 이 단계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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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span style="background:Lavender">1-3.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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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화약 42일 뒤인 7월 23일, 일본군이 한성의 경복궁을 점령했다. 오시마 요시마사가 한밤에 출동 명령을 내리자 서울과 의주, 서울과 인천 사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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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이 끊겼고, 새벽에 일본군 보병이 경복궁 서쪽 영추문에 도착해 조선군과 교전한 끝에 궁에 들어갔다. 궁 안으로 진입한 일본군은 고종과 왕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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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곳까지 수색해 들어갔다. 점령 뒤 조선 정부는 흥선대원군을 앞세운 친일 성격의 정부로 재편되었고, 이어서 갑오개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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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의 사건은 대부분 조선 안에서, 특히 한성에서 벌어졌다.  조선은 두 나라의 싸움터였지만 전쟁의 주체는 청과 일본이었다는 점이 이 단계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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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2. 전개(1894년 7월~1895년 2월)'''</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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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span style="background:Lavender">2-1. 풍도 해전과 선전포고</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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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 아산만 앞 풍도 앞바다에서 일본 함대가 청 함선을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이 청 함대의 고승호를 격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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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의 정식 선전포고는 8월1일에 있었으며 전투가 먼저 시작되고 선전포고가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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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에서 풍도해전은 경복궁 점령과 "bring about:초래하다" 관계로 이어진다. 경복궁 점령 이틀 뒤에 풍도해전이 일어났다는 시간 간격이 두 사건의 연결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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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span style="background:Lavender">2-2. 평양 전투와 황해 해전</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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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평양 전투에서 일본군은 평양에 주둔한 청군을 격파했다. 청군은 압록강 북쪽으로 물러났고, 이로써 한반도에 청의 군사력은 사실상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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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인 9월 17일에는 압록강 하구 앞 황해에서 황해 해전이 벌어졌다. 일본 연합함대는 이토 스케유키가, 청의 북양함대는 정여창이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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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는 청일전쟁 최대의 해전이었고, 북양함대는 주력 함성 10척 가운데 5척을 잃었다. 살아남은 함선은 뤼순과 웨이하이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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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계 이후 전쟁은 한반도를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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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span style="background:Lavender">2-3. 뤼순 점령</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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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 일본 제 1군이 압록강을 건너 청의 영토로 돌아갔고, 제 2군은 랴오둥반도에 상륙해 뤼순으로 진격했다. 11월 21일 일본군은 뤼순을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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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청의 민간인이 다수 희생된 뤼순 학살이 일어났다. 이후 북양함대의 남은 함선들은 웨이하이에서 일본의 육해군 합동 공격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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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으로 무너졌고, 정여창도 이 때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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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에서는 황해 해전과 뤼순 점령을 "affect on"으로 연결했다. 제해권 확보가 랴오둥반도 상륙을 가능하게 했다는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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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계의 공간은 풍도(바다), 평양, 황해 해양도 부근(바다), 뤼순이다. 서해안에서 한반도 북부로, 다시 황해야 랴오둥반도로 전장이 옮겨가는 방향이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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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3. 결말 (1895년 3월~11월)'''</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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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span style="background:Lavender">3-1. 시모노세키 회담과 이홍장 피격</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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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기울었고, 청은 이홍장을 혐상 대표로 보냈다. 이홍장은 3월 19일 시모노세키에 도착했고, 3월 20일 슌판로에서 회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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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표는 이토 히로부미와 무쓰 무네미쓰였다. 회담이 시작된 지 며칠 뒤인 3월 24일 이홍장은 길에서 고야마 도요타로의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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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장은 치료를 위해 회담에서 잠시 빠졌고, 협상은 일시 중단되었다. 이후 다시 이어져 4월 17일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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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span style="background:Lavender">3-2. '''시모노세키 조약'''</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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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피격으로부터 24일 뒤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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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은 조선의 완전한 독립과 자주를 이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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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은 랴오둥반도 남부, 타이완과 그 부속 도서, 펑후 제도를 일본에 할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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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은 일본에 배상금으로 2억 냥을 지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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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은 사시, 충칭, 쑤저우, 항저우를 일본에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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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 제 1조는 조선의 조공 의례를 완전히 멈추도록 명시하며 청과 조선의 조공 관계를 조약으로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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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span style="background:Lavender">3-3. 삼국간섭과 요동환부조약</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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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이 체결된 지 며칠 뒤인 4월 23일, 러시아·독일·프랑스가 일본에 랴오둥반도를 차지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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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권고는 군함을 일본 근해에 배치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일본은 이를 받아들였고, 11월 8일 요동환부조약으로 랴오둥반도를 청에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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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청은 3천만 냥을 추가로 지불했다. 삼국간섭은 일본 외교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일본은 유럽 열강이 다시 연합해 자국에 맞서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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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려고 외교를 조정했다. 또한 러시아는 이후 뤼순의 조치권을 얻어 랴오둥반도에서 일본을 대신하는 위치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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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span style="background:Lavender">3-4. 결과와 영향</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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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조약은 청 안에서 국가적 굴욕으로 받아들여졌고 왕조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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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조약상으로는 독립이 인정되었으나, 전쟁 내내 전장이었고 일본군이 궁궐까지 점령한 상태에서 맞은 독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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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배상금을 받고 타이완을 확보했으나, 삼국간섭으로 랴오둥반도는 돌려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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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4. 인물·시간·공간·데이터로 본 종합'''</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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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 전쟁의 인물은 역할에 따라 네 분류로 나눌 수 있다. 협상과 조약을 이끈 인물(이홍장, 이토 히로부미, 무쓰 무네미쓰, 이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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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를 지휘한 인물(오시마 요시마사, 이토 스케유키, 정여창), 조선 내부의 인물(전봉준,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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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던 인물(이홍장과 고야마 도요타로)이다. 이홍장은 1885년 톈진조약과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에 모두 서명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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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대편에도 이토 히로부미라는 같은 인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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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전쟁이 일어난 기간 자체는 풍도해전(1894년 7월25일)부터 조약 체결(1895년 4월17일)까지 8개월 남짓으로 짧다.
 
−
 
 
−
이에 비해 원인은 갑신정변(1894년)부터 쌓였다.
 
−
 
 
−
사건 간격도 짧아서, 전주화약 42일 뒤에 경복궁 점령, 그 이틀 뒤에 풍도 해전이 일어났고, 평양 전투와 황해 해전도 이틀 간격이었다.
 
−
 
 
−
반면 요동환부조약은 삼국간섭으로부터 6개월 이상 지난 뒤였다. 이는 전쟁의 군사 단계는 빠르게, 외교적 마무리는 느리게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
 
 
−
 
 
−
-공간: 발단은 조선 안(고부, 전주, 아산, 인천, 한성), 전개는 서해와 한반도 북부와 황해와 랴오둥반도(풍도, 평양, 황해 해양도, 뤼순),
 
−
 
 
−
결말은 일본 시모노세키와 랴오둥반도, 타이완이다. 전쟁터가 조선에서 청의 영토로, 이어서 협상 공간이 일본으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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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 '''현재 데이터에서 연결이 가장 많은 노드는 청일전쟁(18)이고, 그 다음이 시모노세키 조약(10),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8)이다.
 
−
 
 
−
시모노세키 조약이 연결을 많이 가진 이유는 이 조약에 서명자, 장소, 날짜, 할양지, 이후의 삼국간섭이 한꺼번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
 
 
−
이는 이 조약이 결말에서 사건과 인물과 공간을 모으는 지점이라는 것을 그래프가 보여준다는 뜻이다. 일본이 청보다 연결이 많은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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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가 승리한 일본의 행위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한계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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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톈진조약 원문(The World and Japan Datab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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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모노세키 조약 원문(The World and Japan Database), 브리태니커 백과, JACAR(일본 아시아역사자료센터)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청일전쟁」
 
−
 
−
•주간경향 「분통 터질 역사 소재, 여기 또 있소이다」, 한국일보 박일근 「중국인은 기억하는 아산 앞바다와 평양」, 경향신문 조운찬 「풍도에서의 하룻밤」
 
−
 
−
•JACAR(일본 아시아역사자료센터), 「17 Apr 1895 Peace treaty concluded between Japan and China」, jacar.go.jp/english/jacarbl-fsjwar-e/main/18950417/index.html
 
−
 
−
•「청일전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Article/E0056610
 
  
−
•박일근, 「중국인은 기억하는 아산 앞바다와 평양」, journalist.or.kr/ezview/article_main.html?no=34136 (2014.07.30)
 
 
</big>
 
</big>
 
</font>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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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references/>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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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6일 (월) 12:55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