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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face="나눔바른고딕 UltraLight"><p style="text-align:right;"><font color="black" size="4">중어중문학과 <b>[[김한솔CNU21|김한솔]]</b></font></p> | <font face="나눔바른고딕 UltraLight"><p style="text-align:right;"><font color="black" size="4">중어중문학과 <b>[[김한솔CNU21|김한솔]]</b></font></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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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파일:ㅇㄹㅎㅇㄹㅎ.jpg|섬네일|가운데]] | + | [[파일:ㅇㄹㅎㅇㄹㅎ.jpg|섬네일|가운데]]<ref>건륭 8년(1743), 청나라 고관인 周绘이 각본하였다.《晚笑堂画传》에 수록됨. 바이두, 온정균</ref> |
==<font color="white">목차</font>== | ==<font color="white">목차</fon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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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본명은 기(岐), 자는 비경(飛卿)이다. 태원 기(祁) 지역(지금의 山西성 祁현)에서 태어났다. 당나라 초엽에 재상을 지낸 | + | 본명은 기(岐), 자는 비경(飛卿)이다. 태원 기(祁) 지역(지금의 山西성 祁현)에서 태어났다. 당나라 초엽에 재상을 지낸 온엄박의 후예지만, 그가 태어날 무렵에는 이미 가세가 몰락한 후였다. |
어려서부터 거문고와 피리를 잘 다루었고, 영민하고 문재가 뛰어났으며 글을 잘 지었다.<ref>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ref> | 어려서부터 거문고와 피리를 잘 다루었고, 영민하고 문재가 뛰어났으며 글을 잘 지었다.<ref>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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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온정균의 생몰연도는 정확하진 않으나 이지운은 온정균이 801년에 태어났다고 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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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균은 시, 사, 소설, 변문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을 창작하였으며 이외에도 학술적인 저작을 남길 정도로 폭넓은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창작했다고 전해지나 대부분 이름만 남은 작품들이 많다. | 온정균은 시, 사, 소설, 변문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을 창작하였으며 이외에도 학술적인 저작을 남길 정도로 폭넓은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창작했다고 전해지나 대부분 이름만 남은 작품들이 많다. | ||
| − | [https:// | + | [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B%8B%B9%EC%84%9C ≪신당서(新唐書)≫ <예문지(藝文志)>]에 따르면, 온정균 생시에 이미≪악란집(握蘭集)≫ 3권, ≪금전집(金荃集)≫ 10권, ≪시집(詩集)≫ 5권, ≪한남진고(漢南眞稿)≫ 10권이 있었고, 또한 단성식(段成式), 여지고(余知古) 등과 함께 엮은 시문합집(詩文合集)으로 ≪한상제금집(漢上題襟集)≫ 10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두 전하지 않는다.<ref>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ref> |
| − | 시사 외에 온정균은 또한 소설 작가이자 학자이기도 했다. ≪신당서(新唐書)≫ <예문지(藝文志) | + | 시사 외에 온정균은 또한 소설 작가이자 학자이기도 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B%8B%B9%EC%84%9C ≪신당서(新唐書)≫ <예문지(藝文志)>]에 따르면, 온정균은 소설 ≪건손자(乾巽子)≫ 3권, ≪채다록(采茶錄)≫ 1권을 지었고 유서(類書)로 ≪학해(學海)≫ 10권을 편찬했다. 애석하게도 거의 전부가 망일되었고, ≪건손자≫의 부분적인 문구가 [https://ko.wikipedia.org/wiki/%ED%83%9C%ED%8F%89%EA%B4%91%EA%B8%B0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인용되어 있을 뿐이다.<ref>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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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현재 | + | 현재 원팅윈의 사는 왕국유가 편집한 ≪금전사(金荃詞)≫에 70수, 임대춘의 회집 《당오대사(唐五代词)》에 70수 수록되어 있다.<ref>바이두, 温庭筠 중 主要作品, 周扬 等·中国大百科全书·中国文学(第Ⅱ卷)·北京:中国大百科全书出版社,1986 재인용</ref> 이외에도 여러 학자가 교정하고 주석을 달았지만, 모두 오래되었기에 2007년 류세카이가 이전까지의 여러 학자들의 자료를 보충, 정리하고 온정균의 시,사, 소설, 기타 다른 작품까지 정리하여 주석을 달았다.<ref>[https://baike.baidu.com/item/%E6%B8%A9%E5%BA%AD%E7%AD%A0%E8%AF%97%E9%9B%86?fromModule=lemma_search-box ≪온정균 시집(溫庭筠詩集)≫]</ref> 이를 저본으로 삼아 온정균의 사를 번역하여 ≪온정균 사선≫을 출판한 이지운은 "이 저본에서는 위작 논의가 있는 것과 시와 중복되어 실린 것을 제외한 59수가 실려 있다. 따라서 번역자는 이 저본을 따라 온정균의 사 59수를 번역했다."라고 말했으니 이에 근거해 온정균의 사는 대략 총 59수라고 볼 수 있다.<ref>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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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pan style="color:#3CB371">온정균의 사</span>'''=== | ||
| + | <div style="float:center; background:#3CB371; width:100%; height:1px; text-align:right; padding:2px 2px 2px;"></div><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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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lass="wikitable" | ||
| + | |+길이가 너무 길어 각 사의 제 1수만 실었다. 온정균의 사는 총 59수가 있고 보살만 15수, 경루사 6수, 귀국요 2수, 주천자 4수, 정서번 3수, 남가자 6수, 하독신 3수, 여관자 2수, 옥호접 1수, 청평락 2수, 하방원 2수, 소충정 1수, 사제향 1수, 몽강남 2수, 하전 3수, 번녀원 2수, 하엽배 3수로 이루어져 있다. | ||
| + | ! 작품명 || 원문 || 번역<ref>번역은 모두 이지운의 번역을 인용했다. 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ref> | ||
| + | |- | ||
| + | | 菩萨蛮<ref>보살만의 1수는 드라마 [https://www.youtube.com/watch?v=KshsfW8WO00 후궁견환전 ost]로도 유명하다.</ref> || 小山重叠金明滅, 鬢雲欲度香腮雪. 懶起畵蛾眉, 弄妝梳洗遲. 照花前後鏡, 花面交相映. 新帖繡羅襦, 雙雙金鷓鴣 || 병풍에 그려진 작은 산에는 금빛 반짝이고, 흐트러진 머리는 눈같이 희고 향기로운 뺨을 덮고 있네. 느지막이 일어나 눈썹을 그리고 화장을 하고 천천히 머리를 빗네. 꽃을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보니 꽃과 얼굴이 서로 잘도 어울리네. 새로 지은 비단 저고리에는 쌍쌍이 금빛 자고새. | ||
| + | |- | ||
| + | | 更漏子 || 柳絲長, 春雨細, 花外漏聲迢遞. 驚寒雁, 起城烏, 畵屏金鷓鴣. 香霧薄, 透簾幕, 惆悵謝家池閣. 紅燭背, 繡簾垂, 夢長君不知. || 버들가지 늘어지고 봄비 흩뿌릴 때 꽃 너머로 멀리서 들리는 물시계 소리. 놀란 변방의 기러기 성안의 까마귀 날아오르고 병풍 속에는 금빛 자고새 있네. 안개같이 엷은 향, 주렴 장막을 지나고 근심 속에 화려한 누각 붉은 초 가리고 수놓은 장막을 드리우니 긴 꿈 그대는 아는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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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归国谣 || 香玉, 翠鳳寶釵垂䍡. 鈿筐交勝金粟,越羅春水淥.畵堂照簾殘燭, 夢餘更漏促. 謝娘無限心曲, 曉屏山斷續. || 향기롭고 매끄러운 볼에 비취봉황 비녀엔 술이 늘어져 있고 화려하게 상감이 된 비녀와 꽃 모양 머리 장식 아름다움 다투며 월 지방 비단옷은 봄물처럼 푸르네. 화려한 누각에 잦아드는 촛불은 주렴 비추고 있고 꿈에서 어렴풋이 깨니 물시계는 재촉하네. 아리따운 여인의 그리움 끝없는 심사 아침 햇살 비춘 병풍은 산처럼 끊어졌다 이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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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酒泉子 || 花映柳條, 閑向綠萍池上. 凭欄干, 窺細浪, 兩蕭蕭. 近來音信兩疏索, 洞房空寂寞. 掩銀屏, 垂翠箔, 度春宵. || 꽃이 버들가지에 어리고 한가로이 푸른 부평초 뜬 못 위를 향하네. 난간에 기대어 작은 파문을 보는데, 보슬비가 보슬보슬. 근래 소식은 서로 뜸하여 여인의 방은 텅 빈 채 적막하기만 하네. 은 병풍 드리웠고, 비취 발 내려둔 채로 봄밤 지내고 있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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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定西番 || 漢使昔年離別, 攀弱柳, 折寒梅, 上高臺. 千里玉關春雪, 雁來人不來. 羌笛一聲愁絶, 月徘徊. || 한나라 사신과 옛날 이별할 때 나는 버들가지 쥐고 매화가지 꺾어 주고는 높은 누대에 올랐지. 천 리 밖 옥문관엔 봄눈이 내리고 기러기는 오는데 사람은 오지 않네. 오랑캐 피리 소리에 애간장 끊어지고 달만 배회하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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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南歌子 || 手裏金鸚鵡, 胸前繡鳳皇. 偸眼暗形相. 不如從嫁與, 作鴛鴦. || 팔에는 황금 앵무새 문양 가슴에는 수놓은 봉황. 살짝 몰래 살펴보니 그대에게 시집가서 원앙이 되는 게 나으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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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河渎神 || 河上望叢祠, 廟前春雨來時. 楚山無限鳥飛遲, 蘭棹空傷別離. 何處杜鵑啼不歇, 豔紅開盡如血. 蟬鬢美人愁絶. 百花芳草佳節. || 강가 수풀 속 사당을 바라보는데 사당 앞으로는 봄비가 내리는 때. 초 땅의 산은 끝없고 새들도 더디 나는데 배 위에서 부질없이 이별에 가슴 아파하고 있네. 그 어딘들 두견의 울음 그치지 않을까. 선염한 두견화 피어 모두가 피같이 붉고 매미 같은 귀밑머리 한 미인은 수심에 애끓는데 때는 온갖 꽃 만발한 좋은 시절이라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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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女冠子 || 含嬌含笑, 宿翠殘紅窈窕. 鬢如蟬. 寒玉簪秋水, 輕紗捲碧煙. 雪胸鸞鏡裏, 琪樹鳳樓前. 寄語靑娥伴, 早求仙. || 응석을 부리며 웃음을 머금고 어제의 화장 그대로도 아름다운데 귀밑머리는 매미와 같네. 찬 옥비녀는 가을 물 같고 가벼이 말아 올린 비단 옷자락은 푸른 안개 같구나. 눈 같은 하얀 가슴 난새 거울 속에 있고 옥나무처럼 봉황루 앞에 섰네. 아름다운 소녀 짝에게 말을 건네며 일찍이 신선을 구하라 하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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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玉胡蝶 || 秋風凄切傷離, 行客未歸時. 寒外草先衰, 江南雁到遲. 芙蓉凋嫩臉, 楊柳墮新眉. 搖落使人悲, 腸斷誰得知? || 가을바람 처량해 이별에 아파하는 듯 나그네 돌아오지 않았는데 변방 풀들은 먼저 시들고 강남 기러기는 더디 오네. 연꽃은 곱던 얼굴처럼 시들고 버들잎은 새로 그린 눈썹처럼 떨어지네. 뚝뚝 떨어져 슬프게 하는데 애간장이 끊김을 누군들 알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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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清平乐 || 上陽春晚, 宮女愁蛾淺. 新歲淸平思同輦, 爭奈長安路遠. 鳳帳鴛被徒燻, 寂寞花鎖千門. 競把黃金買賦, 爲妾將上明君.|| 상양궁에 늦은 봄 궁녀 근심 섞인 옅은 눈썹. 태평스런 새해 임금님과 같이하기 바랐지. 어찌하랴 장안의 길은 멀고 먼 것을. 봉황 휘장 원앙 이불 부질없이 향에 쬐고 적막 속에 꽃은 천 겹 문 속에 잠겨 진황후처럼 황금을 팔아 부를 사서 첩도 임금께 헌상했으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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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遐方怨 || 憑繡檻, 解羅帷. 未得君書, 斷腸瀟湘春雁飛. 不知征馬幾時歸, 海棠花謝也, 雨霏霏.|| 화려한 난간에 기대어 비단 휘장 풀어보네. 임의 소식 받지 못했는데 소상 땅에 봄 기러기 날아드니 애간장 끊어지네. 원정 간 임은 언제 돌아올지 알지 못하는데 해당화도 지고 비만 부슬부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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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诉衷情 || 鶯語, 花舞. 春晝午. 雨霏微. 金帶枕, 宮錦, 鳳凰帷. 柳弱蝶交飛, 依依. 遼陽音信稀, 夢中歸. || 꾀꼬리 소리, 꽃들은 춤추고 봄날의 정오, 비는 부슬부슬. 금테 두른 베개, 궁전 비단, 봉황 장막. 가는 버들 사이로 나비 어울려 날며 서로 하늘하늘 요양의 소식 뜸하니 임은 꿈속에서 돌아오시려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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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思帝乡 || 花花, 滿枝紅似霞. 羅袖畵簾腸斷, 卓香车. 迴面共人閑語, 戰篦金鳳斜. 惟有阮郎春盡, 不歸家. || 꽃들은 가지에 가득 피어 노을처럼 붉은데 비단 소매 화려한 주렴 속에서 애간장이 끊겨 꽃수레 멈추어 얼굴을 돌려 사람들과 한담할 때 작은 빗 떨리고 봉황비녀 비스듬히 꽂혀 있었지. 오직 원랑의 봄만 저무는지 임은 돌아올 줄 모르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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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夢江南 || 千萬恨, 恨極在天涯. 山月不知心裏事, 水風空落眼前花. 摇曳碧雲斜. || 천 갈래 만 갈래의 한 한은 하늘 끝까지 닿았네. 산에 뜬 달은 내 마음 모르고 강바람 부질없이 눈앞의 꽃만 떨어뜨리고 흰 구름 밀어젖혀 비스듬히 기우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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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河传 || 江畔, 相喚, 曉妝鮮. 仙景箇女採蓮. 請君莫向那岸邊. 少年, 好花新滿舡. 紅袖摇曳逐風暖, 垂玉腕, 腸向柳絲斷. 浦南歸, 浦北歸. 莫知. 晚來人已稀. || 강가에서 서로를 부르는데, 아침 화장이 선연하네. 마치 선경에서인 듯 연밥 따는 아가씨. 그대여 그 언덕에 가지 마오. 젊은이, 좋은 꽃이 배에 가득하구려. 붉은 옷소매 하늘하늘 바람은 훈훈한데 옥 같은 팔 드리우네. 임 계시는 버들가지 때문에 애간장 끊기고 포구 남쪽으로 돌아갔는지, 포구 북쪽으로 돌아갔는지 모르겠는데 날은 저물고 인적은 벌써 드무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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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蕃女怨 || 萬枝香雪開已遍, 細雨雙燕. 鈿蟬箏, 金雀扇, 畵梁相見. 雁門消息不歸來, 又飛迴. || 온 가지마다 눈 같은 살구꽃 활짝 폈을 때 가는 비 사이로 쌍쌍이 제비 날아 매미 날개 나전으로 장식한 쟁, 금작 그려진 부채 화려한 기둥에서 제비와 서로 마주했네. 안문산 밖 소식은 들리지 않고 너만 날아왔구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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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荷叶杯 || 一點露珠凝冷, 波影. 滿池塘. 綠莖紅豔兩相亂, 腸斷. 水風涼. || 한 방울 진주 이슬 맺힌 것 싸늘한데 파문에 어리어 연못에 가득. 푸른 줄기 붉은 꽃 어지러이 어우러져 애간장을 끊는다. 물가 바람은 차가운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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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6일 (월) 15:58 기준 최신판
: 화간파의 비조
중어중문학과 김한솔
[1]
목차
개요
생애
탄생과 어린시절
본명은 기(岐), 자는 비경(飛卿)이다. 태원 기(祁) 지역(지금의 山西성 祁현)에서 태어났다. 당나라 초엽에 재상을 지낸 온엄박의 후예지만, 그가 태어날 무렵에는 이미 가세가 몰락한 후였다.
어려서부터 거문고와 피리를 잘 다루었고, 영민하고 문재가 뛰어났으며 글을 잘 지었다.[4]
여러 번의 과거 낙방과 관직 생활
그는 온팔차, 온팔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온정균이 과거시험장에서 8번 팔짱을 끼었다 풀자 팔운시가 완성되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재주가 뛰어났지만, 과거시험에는 누차 낙방했다.
문종 개성 4년(839)에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과거에 응시하기 시작했으나 급제하지 못했고, 성시에도 참가할 수 없었다.
선종 대중 9년(855)에 다시 과거에 응시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 부를 지어주어 과거시험장을 어지럽혔기 때문에 낙방했고, 수주 수현위라는 말단 관리로 폄적되었다.
대중 11년(857)에 서상이 양양을 다스리고 있을 때 온정균을 순관으로 임명했는데, 이때 그의 나이 56세였다.
함통 6년(865)에 온정균은 국자조교에 임명되어 국자감시를 관장했다. 그는 문장으로 사람을 판단하겠다는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권세가와 귀족의 불만을 샀다. 또한 그가 시정을 비판하고 부패한 자를 폭로한 시문을 지은 것이 재상 등의 분노를 사서 결국 방성위로 폄관되었다.[5]
우울한 죽음
함통 7년(866) 우울함 속에서 죽고 말았다.[6]
교류하던 사람들
서상이 양양을 다스리고 있을 때 온정균이 순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그는 단성식, 주요 등과 교유하며 수창했다.
양양에서 몇 년을 보내다 함통 2년(861) 서상이 궐로 들어가자 온정균도 양양을 떠나 강동으로 갔고 다음해 겨울 회남으로 돌아왔다. 이때 분명하진 않으나 귀족 자제인 배성, 영호호 등과 어울렸던 것 같다. [7]
연보
온정균의 생몰연도는 정확하진 않으나 이지운은 온정균이 801년에 태어났다고 보고 있다.
801(추정)
태원 기 지역에서 태어났다.
839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과거에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급제하지는 못했다.
855
다시 과거에 응시했지만,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부를 지어주다 낙방하였다. 수주 수현위라는 말단 관리로 폄적되었다.
857
순관으로 임명되었다.
863
당시 회남에 기거하였다. 취해서 밤에 돌아다니다가 순라군에게 따귀를 맞아 이가 부러지나 회남을 다스리던 영호도는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고 오히려 순라군은 온정균의 행적을 사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과장해 떠들었다. 온정균에 대한 구설은 수도까지 알려지게 되어 온정균은 스스로 장안에 가서 설욕을 해야만 했다.
865
국자조교에 임명되어 국자감시를 관장했다. 그러나 재상 등의 분노를 사서 결국 방성위로 폄관되었다.
866
이미 고령이기도 했었던 그는 우울함 속에 죽게 되었다.
작품
온정균의 작품
온정균은 시, 사, 소설, 변문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을 창작하였으며 이외에도 학술적인 저작을 남길 정도로 폭넓은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창작했다고 전해지나 대부분 이름만 남은 작품들이 많다.
≪신당서(新唐書)≫ <예문지(藝文志)>에 따르면, 온정균 생시에 이미≪악란집(握蘭集)≫ 3권, ≪금전집(金荃集)≫ 10권, ≪시집(詩集)≫ 5권, ≪한남진고(漢南眞稿)≫ 10권이 있었고, 또한 단성식(段成式), 여지고(余知古) 등과 함께 엮은 시문합집(詩文合集)으로 ≪한상제금집(漢上題襟集)≫ 10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두 전하지 않는다.[8]
시사 외에 온정균은 또한 소설 작가이자 학자이기도 했다. ≪신당서(新唐書)≫ <예문지(藝文志)>에 따르면, 온정균은 소설 ≪건손자(乾巽子)≫ 3권, ≪채다록(采茶錄)≫ 1권을 지었고 유서(類書)로 ≪학해(學海)≫ 10권을 편찬했다. 애석하게도 거의 전부가 망일되었고, ≪건손자≫의 부분적인 문구가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인용되어 있을 뿐이다.[9]
온정균의 작품이 담긴 자료
현재 원팅윈의 사는 왕국유가 편집한 ≪금전사(金荃詞)≫에 70수, 임대춘의 회집 《당오대사(唐五代词)》에 70수 수록되어 있다.[10] 이외에도 여러 학자가 교정하고 주석을 달았지만, 모두 오래되었기에 2007년 류세카이가 이전까지의 여러 학자들의 자료를 보충, 정리하고 온정균의 시,사, 소설, 기타 다른 작품까지 정리하여 주석을 달았다.[11] 이를 저본으로 삼아 온정균의 사를 번역하여 ≪온정균 사선≫을 출판한 이지운은 "이 저본에서는 위작 논의가 있는 것과 시와 중복되어 실린 것을 제외한 59수가 실려 있다. 따라서 번역자는 이 저본을 따라 온정균의 사 59수를 번역했다."라고 말했으니 이에 근거해 온정균의 사는 대략 총 59수라고 볼 수 있다.[12]
온정균의 사
| 작품명 | 원문 | 번역[13] |
|---|---|---|
| 菩萨蛮[14] | 小山重叠金明滅, 鬢雲欲度香腮雪. 懶起畵蛾眉, 弄妝梳洗遲. 照花前後鏡, 花面交相映. 新帖繡羅襦, 雙雙金鷓鴣 | 병풍에 그려진 작은 산에는 금빛 반짝이고, 흐트러진 머리는 눈같이 희고 향기로운 뺨을 덮고 있네. 느지막이 일어나 눈썹을 그리고 화장을 하고 천천히 머리를 빗네. 꽃을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보니 꽃과 얼굴이 서로 잘도 어울리네. 새로 지은 비단 저고리에는 쌍쌍이 금빛 자고새. |
| 更漏子 | 柳絲長, 春雨細, 花外漏聲迢遞. 驚寒雁, 起城烏, 畵屏金鷓鴣. 香霧薄, 透簾幕, 惆悵謝家池閣. 紅燭背, 繡簾垂, 夢長君不知. | 버들가지 늘어지고 봄비 흩뿌릴 때 꽃 너머로 멀리서 들리는 물시계 소리. 놀란 변방의 기러기 성안의 까마귀 날아오르고 병풍 속에는 금빛 자고새 있네. 안개같이 엷은 향, 주렴 장막을 지나고 근심 속에 화려한 누각 붉은 초 가리고 수놓은 장막을 드리우니 긴 꿈 그대는 아는지. |
| 归国谣 | 香玉, 翠鳳寶釵垂䍡. 鈿筐交勝金粟,越羅春水淥.畵堂照簾殘燭, 夢餘更漏促. 謝娘無限心曲, 曉屏山斷續. | 향기롭고 매끄러운 볼에 비취봉황 비녀엔 술이 늘어져 있고 화려하게 상감이 된 비녀와 꽃 모양 머리 장식 아름다움 다투며 월 지방 비단옷은 봄물처럼 푸르네. 화려한 누각에 잦아드는 촛불은 주렴 비추고 있고 꿈에서 어렴풋이 깨니 물시계는 재촉하네. 아리따운 여인의 그리움 끝없는 심사 아침 햇살 비춘 병풍은 산처럼 끊어졌다 이어졌다. |
| 酒泉子 | 花映柳條, 閑向綠萍池上. 凭欄干, 窺細浪, 兩蕭蕭. 近來音信兩疏索, 洞房空寂寞. 掩銀屏, 垂翠箔, 度春宵. | 꽃이 버들가지에 어리고 한가로이 푸른 부평초 뜬 못 위를 향하네. 난간에 기대어 작은 파문을 보는데, 보슬비가 보슬보슬. 근래 소식은 서로 뜸하여 여인의 방은 텅 빈 채 적막하기만 하네. 은 병풍 드리웠고, 비취 발 내려둔 채로 봄밤 지내고 있네. |
| 定西番 | 漢使昔年離別, 攀弱柳, 折寒梅, 上高臺. 千里玉關春雪, 雁來人不來. 羌笛一聲愁絶, 月徘徊. | 한나라 사신과 옛날 이별할 때 나는 버들가지 쥐고 매화가지 꺾어 주고는 높은 누대에 올랐지. 천 리 밖 옥문관엔 봄눈이 내리고 기러기는 오는데 사람은 오지 않네. 오랑캐 피리 소리에 애간장 끊어지고 달만 배회하네. |
| 南歌子 | 手裏金鸚鵡, 胸前繡鳳皇. 偸眼暗形相. 不如從嫁與, 作鴛鴦. | 팔에는 황금 앵무새 문양 가슴에는 수놓은 봉황. 살짝 몰래 살펴보니 그대에게 시집가서 원앙이 되는 게 나으리라. |
| 河渎神 | 河上望叢祠, 廟前春雨來時. 楚山無限鳥飛遲, 蘭棹空傷別離. 何處杜鵑啼不歇, 豔紅開盡如血. 蟬鬢美人愁絶. 百花芳草佳節. | 강가 수풀 속 사당을 바라보는데 사당 앞으로는 봄비가 내리는 때. 초 땅의 산은 끝없고 새들도 더디 나는데 배 위에서 부질없이 이별에 가슴 아파하고 있네. 그 어딘들 두견의 울음 그치지 않을까. 선염한 두견화 피어 모두가 피같이 붉고 매미 같은 귀밑머리 한 미인은 수심에 애끓는데 때는 온갖 꽃 만발한 좋은 시절이라네. |
| 女冠子 | 含嬌含笑, 宿翠殘紅窈窕. 鬢如蟬. 寒玉簪秋水, 輕紗捲碧煙. 雪胸鸞鏡裏, 琪樹鳳樓前. 寄語靑娥伴, 早求仙. | 응석을 부리며 웃음을 머금고 어제의 화장 그대로도 아름다운데 귀밑머리는 매미와 같네. 찬 옥비녀는 가을 물 같고 가벼이 말아 올린 비단 옷자락은 푸른 안개 같구나. 눈 같은 하얀 가슴 난새 거울 속에 있고 옥나무처럼 봉황루 앞에 섰네. 아름다운 소녀 짝에게 말을 건네며 일찍이 신선을 구하라 하네. |
| 玉胡蝶 | 秋風凄切傷離, 行客未歸時. 寒外草先衰, 江南雁到遲. 芙蓉凋嫩臉, 楊柳墮新眉. 搖落使人悲, 腸斷誰得知? | 가을바람 처량해 이별에 아파하는 듯 나그네 돌아오지 않았는데 변방 풀들은 먼저 시들고 강남 기러기는 더디 오네. 연꽃은 곱던 얼굴처럼 시들고 버들잎은 새로 그린 눈썹처럼 떨어지네. 뚝뚝 떨어져 슬프게 하는데 애간장이 끊김을 누군들 알까? |
| 清平乐 | 上陽春晚, 宮女愁蛾淺. 新歲淸平思同輦, 爭奈長安路遠. 鳳帳鴛被徒燻, 寂寞花鎖千門. 競把黃金買賦, 爲妾將上明君. | 상양궁에 늦은 봄 궁녀 근심 섞인 옅은 눈썹. 태평스런 새해 임금님과 같이하기 바랐지. 어찌하랴 장안의 길은 멀고 먼 것을. 봉황 휘장 원앙 이불 부질없이 향에 쬐고 적막 속에 꽃은 천 겹 문 속에 잠겨 진황후처럼 황금을 팔아 부를 사서 첩도 임금께 헌상했으면. |
| 遐方怨 | 憑繡檻, 解羅帷. 未得君書, 斷腸瀟湘春雁飛. 不知征馬幾時歸, 海棠花謝也, 雨霏霏. | 화려한 난간에 기대어 비단 휘장 풀어보네. 임의 소식 받지 못했는데 소상 땅에 봄 기러기 날아드니 애간장 끊어지네. 원정 간 임은 언제 돌아올지 알지 못하는데 해당화도 지고 비만 부슬부슬. |
| 诉衷情 | 鶯語, 花舞. 春晝午. 雨霏微. 金帶枕, 宮錦, 鳳凰帷. 柳弱蝶交飛, 依依. 遼陽音信稀, 夢中歸. | 꾀꼬리 소리, 꽃들은 춤추고 봄날의 정오, 비는 부슬부슬. 금테 두른 베개, 궁전 비단, 봉황 장막. 가는 버들 사이로 나비 어울려 날며 서로 하늘하늘 요양의 소식 뜸하니 임은 꿈속에서 돌아오시려나. |
| 思帝乡 | 花花, 滿枝紅似霞. 羅袖畵簾腸斷, 卓香车. 迴面共人閑語, 戰篦金鳳斜. 惟有阮郎春盡, 不歸家. | 꽃들은 가지에 가득 피어 노을처럼 붉은데 비단 소매 화려한 주렴 속에서 애간장이 끊겨 꽃수레 멈추어 얼굴을 돌려 사람들과 한담할 때 작은 빗 떨리고 봉황비녀 비스듬히 꽂혀 있었지. 오직 원랑의 봄만 저무는지 임은 돌아올 줄 모르네. |
| 夢江南 | 千萬恨, 恨極在天涯. 山月不知心裏事, 水風空落眼前花. 摇曳碧雲斜. | 천 갈래 만 갈래의 한 한은 하늘 끝까지 닿았네. 산에 뜬 달은 내 마음 모르고 강바람 부질없이 눈앞의 꽃만 떨어뜨리고 흰 구름 밀어젖혀 비스듬히 기우네. |
| 河传 | 江畔, 相喚, 曉妝鮮. 仙景箇女採蓮. 請君莫向那岸邊. 少年, 好花新滿舡. 紅袖摇曳逐風暖, 垂玉腕, 腸向柳絲斷. 浦南歸, 浦北歸. 莫知. 晚來人已稀. | 강가에서 서로를 부르는데, 아침 화장이 선연하네. 마치 선경에서인 듯 연밥 따는 아가씨. 그대여 그 언덕에 가지 마오. 젊은이, 좋은 꽃이 배에 가득하구려. 붉은 옷소매 하늘하늘 바람은 훈훈한데 옥 같은 팔 드리우네. 임 계시는 버들가지 때문에 애간장 끊기고 포구 남쪽으로 돌아갔는지, 포구 북쪽으로 돌아갔는지 모르겠는데 날은 저물고 인적은 벌써 드무네. |
| 蕃女怨 | 萬枝香雪開已遍, 細雨雙燕. 鈿蟬箏, 金雀扇, 畵梁相見. 雁門消息不歸來, 又飛迴. | 온 가지마다 눈 같은 살구꽃 활짝 폈을 때 가는 비 사이로 쌍쌍이 제비 날아 매미 날개 나전으로 장식한 쟁, 금작 그려진 부채 화려한 기둥에서 제비와 서로 마주했네. 안문산 밖 소식은 들리지 않고 너만 날아왔구나. |
| 荷叶杯 | 一點露珠凝冷, 波影. 滿池塘. 綠莖紅豔兩相亂, 腸斷. 水風涼. | 한 방울 진주 이슬 맺힌 것 싸늘한데 파문에 어리어 연못에 가득. 푸른 줄기 붉은 꽃 어지러이 어우러져 애간장을 끊는다. 물가 바람은 차가운데. |
데이터
Data Table
Network Graph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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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오프라인 자료
이지운. (2009). 온정균 사선. 서울: 지식을 만드는 지식.
온라인 리소스
https://baike.baidu.com/item/%E6%B8%A9%E5%BA%AD%E7%AD%A0/1125?fr=ge_ala
주석
- ↑ 건륭 8년(1743), 청나라 고관인 周绘이 각본하였다.《晚笑堂画传》에 수록됨. 바이두, 온정균
- ↑ 온정균 사선 해설 부분을 재구성하였다.
- ↑ 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
- ↑ 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
- ↑ 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
- ↑ 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
- ↑ 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
- ↑ 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
- ↑ 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
- ↑ 바이두, 温庭筠 중 主要作品, 周扬 等·中国大百科全书·中国文学(第Ⅱ卷)·北京:中国大百科全书出版社,1986 재인용
- ↑ ≪온정균 시집(溫庭筠詩集)≫
- ↑ 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
- ↑ 번역은 모두 이지운의 번역을 인용했다. 온정균 사선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온정균 저/이지운 역
- ↑ 보살만의 1수는 드라마 후궁견환전 ost로도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