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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다음 세 단계로 진행한다.<br/><br/> | 연구는 다음 세 단계로 진행한다.<br/><br/> | ||
| − | + | *'''관계망 만들기''': 무술변법과 관련된 인물, 사건, 세력, 기관, 문헌, 제도, 국가를 '''점'''으로 정한다. 인물에는 황제와 태후, 개혁을 이끈 관리, 원로대신, 군대를 거느린 장군, 외국인이 포함된다. 사건에는 조약, 상소, 개혁 선포, 관리의 파면, 정변 등이 포함된다. 세력에는 황제 편과 태후 편, 변법파가 포함된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선'''으로 잇는다. 선은 자료에서 확인되는 관계만 인정하고, 선마다 어떤 자료에 근거했는지 연구정보의 표에 함께 기록해 그림을 믿을 수 있게 만든다.<br/><br/> | |
| − | + | *'''중요한 점 고르기''': 완성된 그림에서 두 가지를 센다. 하나는 '''한 점에 선이 몇 개 모였는가'''이다. 선이 많이 모인 점은 여러 사람과 사건이 몰리는 '중심'이다. 다른 하나는 '''서로 다른 무리를 잇는 길목에 얼마나 자주 놓이는가'''이다. 이런 점은 무리와 무리 사이를 이어 주는 '다리'이다. 두 기준을 함께 쓰면, 관계가 많이 몰린 인물과 편과 편 사이를 오간 인물을 구별해서 볼 수 있다.<br/><br/> | |
| − | + | *'''깊이 살펴보기''': 고른 점을 자료로 자세히 살펴보고, 그 점이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 풀이한다. | |
| − | + | *인물: 어떤 일을 했는지, 누구와 누구를 이어 주었는지, 개혁의 성공과 실패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 |
| − | + | *사건: 왜 일어났고 어떻게 흘러갔는지, 누가 관련되었는지, 권력의 균형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중요한 인물과 사건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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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가 답하려는 물음은 다음과 같다.<br/><br/> | 이 연구가 답하려는 물음은 다음과 같다.<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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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망은 누가 누구와 이어졌는지를 보여 줄 뿐, 어떤 일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 *관계망은 누가 누구와 이어졌는지를 보여 줄 뿐, 어떤 일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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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6. 선별 근거 자료 '''</big> <br/> | <big>''' 6. 선별 근거 자료 '''</big>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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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제에게서 '''임명하다'''로 뻗어 나간 선이 6개(강유위, 4장경, 원세개)로 가장 많다. 그런데 광서제 자신도 서태후에게서 '''임명하다'''와 '''친족이다'''로 이어져 있고, 마지막에는 무술정변에 '''제거되다'''로 이어진다. | 광서제에게서 '''임명하다'''로 뻗어 나간 선이 6개(강유위, 4장경, 원세개)로 가장 많다. 그런데 광서제 자신도 서태후에게서 '''임명하다'''와 '''친족이다'''로 이어져 있고, 마지막에는 무술정변에 '''제거되다'''로 이어진다. | ||
| − | ''' | + | ''' 의의: ''' |
광서제는 관계망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서태후가 세운 황제였다. 많은 사람을 임명할 수는 있었지만, 그 힘은 서태후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였다. 이는 연구배경에서 살펴본 '''둘로 나뉜 황제의 권력'''을 관계망으로 보여 준다. <br/><br/> | 광서제는 관계망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서태후가 세운 황제였다. 많은 사람을 임명할 수는 있었지만, 그 힘은 서태후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였다. 이는 연구배경에서 살펴본 '''둘로 나뉜 황제의 권력'''을 관계망으로 보여 준다. <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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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망 전체에서 '''알리다''' 선은 모두 5개이다. 그중 3개(군기처, 양숭이, 영록)가 서태후에게 모인다. 서태후는 직접 나서지 않아도 정보가 저절로 모이는 자리에 있었다. 또 서태후는 영록을 '''임명하다'''로, 후당을 '''주도하다'''로 잇고 있어, 군대와 세력도 함께 쥐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 관계망 전체에서 '''알리다''' 선은 모두 5개이다. 그중 3개(군기처, 양숭이, 영록)가 서태후에게 모인다. 서태후는 직접 나서지 않아도 정보가 저절로 모이는 자리에 있었다. 또 서태후는 영록을 '''임명하다'''로, 후당을 '''주도하다'''로 잇고 있어, 군대와 세력도 함께 쥐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 ||
| − | ''' | + | ''' 의의: ''' |
광서제가 '사람'을 많이 거느렸다면, 서태후는 '정보'와 '군대'를 쥐고 있었다. 매일 올라오는 보고로 황제의 움직임을 알았고, 영록을 통해 군대를 움직일 수 있었다. 정변이 단 며칠 만에 끝날 수 있었던 바탕이 여기에 있다. <br/><br/> | 광서제가 '사람'을 많이 거느렸다면, 서태후는 '정보'와 '군대'를 쥐고 있었다. 매일 올라오는 보고로 황제의 움직임을 알았고, 영록을 통해 군대를 움직일 수 있었다. 정변이 단 며칠 만에 끝날 수 있었던 바탕이 여기에 있다. <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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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위의 선은 학교와 학회(만목초당, 강학회, 보국회), 책(신학위경고, 공자개제고, 일본변정고), 황제, 군인(원세개), 외국인(티모시 리처드), 합방 상소까지 뻗어 있다. 서로 다른 무리를 가장 많이 이어 주는 인물이다. | 강유위의 선은 학교와 학회(만목초당, 강학회, 보국회), 책(신학위경고, 공자개제고, 일본변정고), 황제, 군인(원세개), 외국인(티모시 리처드), 합방 상소까지 뻗어 있다. 서로 다른 무리를 가장 많이 이어 주는 인물이다. | ||
| − | ''' | + | ''' 의의: ''' |
강유위는 누구보다 넓게 이어져 있었지만, 벼슬은 낮았다. 오수열은 강유위와 양계초가 청나라에 큰 영향을 미칠 자리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광서제를 움직이는 것뿐이었다고 본다.<ref name="오수열148149">오수열, 「청말(淸末) 변법유신운동의 전개와 성격」, 『한국동북아논총』 제54집, 2010, 148~149쪽.</ref> 다리 역할이 크다는 것은 힘이 크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개혁의 거의 모든 길이 강유위 한 사람을 거쳐야 했다는 약점을 보여 준다. <br/><br/> | 강유위는 누구보다 넓게 이어져 있었지만, 벼슬은 낮았다. 오수열은 강유위와 양계초가 청나라에 큰 영향을 미칠 자리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광서제를 움직이는 것뿐이었다고 본다.<ref name="오수열148149">오수열, 「청말(淸末) 변법유신운동의 전개와 성격」, 『한국동북아논총』 제54집, 2010, 148~149쪽.</ref> 다리 역할이 크다는 것은 힘이 크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개혁의 거의 모든 길이 강유위 한 사람을 거쳐야 했다는 약점을 보여 준다. <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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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개는 강학회('''가입하다''')와 강유위('''지원하다''')를 통해 변법파 쪽과 이어지고, 영록('''알리다''')을 통해 태후 편과도 이어진다. 두 편 모두에 선이 닿아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 원세개는 강학회('''가입하다''')와 강유위('''지원하다''')를 통해 변법파 쪽과 이어지고, 영록('''알리다''')을 통해 태후 편과도 이어진다. 두 편 모두에 선이 닿아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 ||
| − | ''' | + | ''' 의의: ''' |
담사동은 원세개를 찾아가 "지금 천하에 온전한 군대는 그대의 신건육군뿐"이라고 말했다.<ref name="월간조선"/> 변법파가 마지막에 원세개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 선은 결국 영록을 거쳐 태후 편으로 향했다. 다만 이 밀고가 정변의 직접 원인이었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br/><br/> | 담사동은 원세개를 찾아가 "지금 천하에 온전한 군대는 그대의 신건육군뿐"이라고 말했다.<ref name="월간조선"/> 변법파가 마지막에 원세개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 선은 결국 영록을 거쳐 태후 편으로 향했다. 다만 이 밀고가 정변의 직접 원인이었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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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정변에 '''제거되다'''로 이어진 선은 7개로, 광서제와 무술육군자이다. 또 예부 관리 파면과 합방 상소가 '''영향을 주다'''로, 서태후와 영록이 '''주도하다''', '''참여하다'''로 이어져 있다. 관계망은 정변의 원인을 한 줄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보여 준다. | 무술정변에 '''제거되다'''로 이어진 선은 7개로, 광서제와 무술육군자이다. 또 예부 관리 파면과 합방 상소가 '''영향을 주다'''로, 서태후와 영록이 '''주도하다''', '''참여하다'''로 이어져 있다. 관계망은 정변의 원인을 한 줄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보여 준다. | ||
| − | ''' | + | ''' 의의: ''' |
무술정변은 연구배경에서 살펴본 세 가지 해석이 모두 모이는 점이다. 황제 편과 태후 편의 대립, 둘로 나뉜 권력, 그리고 합방 계획이 모두 이 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br/><br/> | 무술정변은 연구배경에서 살펴본 세 가지 해석이 모두 모이는 점이다. 황제 편과 태후 편의 대립, 둘로 나뉜 권력, 그리고 합방 계획이 모두 이 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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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두 사람(이토 히로부미, 티모시 리처드)과 변법파 관리들, 그리고 무술정변을 한데 잇는 사건이다. | 외국인 두 사람(이토 히로부미, 티모시 리처드)과 변법파 관리들, 그리고 무술정변을 한데 잇는 사건이다. | ||
| − | ''' | + | '''의의: ''' |
레이자성은 서태후가 이 합방 계획을 알아채고 나라의 권력이 외국에 넘어갈 위험을 느껴, 그날 바로 정변을 일으켰다고 본다.<ref name="레이자성208">레이자성, 「失落的眞相: 晚淸戊戌變法時期的'合邦'論與戊戌政變的關係」, 『중국사연구』 제61집, 2009, 208쪽.</ref> 다만 영국과 일본 정부가 이 일에 직접 나섰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ref name="레이자성208"/> 오수열도 변법파가 영국, 일본 같은 외국의 도움에 기대려 한 점을 변법운동의 한계로 꼽는다.<ref name="오수열148">오수열, 「청말(淸末) 변법유신운동의 전개와 성격」, 『한국동북아논총』 제54집, 2010, 148쪽.</ref> <br/><br/> | 레이자성은 서태후가 이 합방 계획을 알아채고 나라의 권력이 외국에 넘어갈 위험을 느껴, 그날 바로 정변을 일으켰다고 본다.<ref name="레이자성208">레이자성, 「失落的眞相: 晚淸戊戌變法時期的'合邦'論與戊戌政變的關係」, 『중국사연구』 제61집, 2009, 208쪽.</ref> 다만 영국과 일본 정부가 이 일에 직접 나섰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ref name="레이자성208"/> 오수열도 변법파가 영국, 일본 같은 외국의 도움에 기대려 한 점을 변법운동의 한계로 꼽는다.<ref name="오수열148">오수열, 「청말(淸末) 변법유신운동의 전개와 성격」, 『한국동북아논총』 제54집, 2010, 148쪽.</ref> <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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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인물과 핵심 사건의 연관성 '''</big> <br/> | <big>''' 인물과 핵심 사건의 연관성 '''</big> <br/> | ||
| − | + | * '''서태후 → 광서제 → 강유위''': 서태후가 세운 황제가 강유위를 등용했다. 개혁의 힘은 처음부터 서태후에게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 |
| − | + | * '''강유위 → 원세개 → 영록 → 서태후''': 변법파가 군대를 얻으려고 놓은 다리가 거꾸로 태후 편으로 이어졌다. | |
| − | + | * '''강유위 → 티모시 리처드·이토 히로부미 → 합방 상소 → 무술정변''': 외국인을 끌어들인 계획이 서태후가 움직인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 |
| − | + | * '''군기처·양숭이·영록 → 서태후''': 서로 다른 세 갈래의 정보가 모두 서태후에게 모였다. | |
| − | + | * '''공친왕의 빈자리''': 관계망에서 광서제와 서태후를 '''연결하다'''로 함께 잇는 사람은 공친왕 한 명뿐이다. 1898년 5월 공친왕이 세상을 떠나자 두 사람 사이의 다리가 사라졌고, 상황은 변법파에게 더욱 불리해졌다.<ref name="월간조선"/><ref name="오수열1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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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big>''' 결론 '''</big></big> <br/> | <big><big>''' 결론 '''</big></big> <br/> | ||
| − | + | '''무술변법은 개혁파와 보수파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권력이 둘로 나뉜 구조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외국인이 얽힌 합방 계획이 겹쳐 있었다.''' <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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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무술변법은 개혁파와 보수파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권력이 둘로 나뉜 구조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외국인이 얽힌 합방 계획이 겹쳐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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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관계가 가장 많이 몰린 인물은 광서제(20개)와 강유위(19개)이고, 사건은 무술정변(12개)이다. 광서제는 '''임명'''의 중심, 강유위는 '''연결'''의 중심이었고, 무술정변은 모든 갈래가 끝나는 지점이었다. | |
| − | + | * 황제 편과 태후 편을 이어 준 사람은 공친왕과 원세개였다. 공친왕이 세상을 떠나 다리가 하나 사라졌고, 남은 다리였던 원세개는 결국 영록 쪽을 택했다. 강유위는 다리 역할 1위였지만, 그가 이은 것은 변법파 안쪽과 외국인이었지 태후 편이 아니었다. | |
| − | + | * 관계망은 세 해석을 모두 뒷받침한다. 다만 무게는 다르다. 서태후에게서 광서제와 영록으로 이어지는 '''임명하다''', 그리고 서태후에게 모이는 '''알리다''' 선은 '''둘로 나뉜 황제의 권력'''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 준다. '''합방 상소'''가 사건 순위 2위에 오른 것은 레이자성의 해석에도 무게를 실어 준다. 그러나 관계망은 누가 누구와 이어졌는지를 보여 줄 뿐, 무엇이 원인이었는지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영록이 서태후에게 알린 시점처럼 자료끼리 엇갈리는 문제는 자료를 더 비교해 판단해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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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1일 (수) 12:11 기준 최신판
: 무술변법(1898)을 중심으로
중어중문학과 김태현
목차
Contents
연구배경
1894년, 청나라는 일본과 벌인 전쟁인 청일전쟁에서 크게 졌다. 이듬해 맺은 시모노세키조약에 따라 청나라는 랴오둥반도와 타이완 등을 일본에 넘겨주고, 은 2억 냥이라는 큰돈을 물어 주어야 했다. 30년 넘게 서양의 무기와 기술을 들여왔는데도, 작은 섬나라로 여기던 일본에 진 것이다. 이 충격 속에서 기술만 배워서는 안 되고, 나라의 법과 제도까지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렇게 법과 제도를 바꾸자는 개혁을 변법이라고 한다.[1]
변법을 앞장서 주장한 사람은 강유위였다. 그는 과거 시험을 보러 베이징에 모인 수험생 1,200여 명과 함께, 조약을 거부하고 나라를 개혁하자는 글을 황제에게 올렸다.[2] 그리고 1898년 6월 11일, 젊은 황제 광서제가 마침내 변법을 나라의 기본 방침으로 삼겠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개혁은 오래가지 못했다. 같은 해 9월 21일, 광서제의 이모인 서태후가 다시 나라 일을 직접 맡겠다고 선언했다. 광서제는 궁궐 안 호수에 있는 작은 섬 '영대'에 갇혔고, 개혁에 앞장선 여섯 사람은 처형되었다. 개혁이 103일 만에 끝났기 때문에 이 개혁을 백일유신이라고도 부른다.[3]
그렇다면 개혁은 왜 이렇게 빨리 무너졌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학자들의 생각은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
- 개혁파와 보수파의 대립: 오수열은 광서제를 따르는 '황제 편'과 서태후를 따르는 '태후 편'이 맞서 싸운 것을 큰 원인으로 본다. 또 개혁을 이끈 사람들이 청나라를 지키는 것을 전제로 삼은 탓에, 백성의 힘을 모으지 못한 한계도 함께 지적한다.[4]
- 둘로 나뉜 황제의 권력: 김형종은 광서제가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뒤에도, 서태후가 황제가 처리한 일을 빠짐없이 보고받으며 실제 권력을 쥐고 있었다고 본다. 이름으로는 광서제가 황제였지만 실제 힘은 서태후에게 있는, 권력이 둘로 나뉜 구조였다는 것이다.[5]
- 정변을 부른 진짜 계기: 흔히 원세개가 개혁파의 계획을 서태후 쪽에 알린 것이 정변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원세개가 계획을 알린 때와 정변이 일어난 때가 너무 가까워서, 이 설명을 의심하는 학자도 있다. 레이자성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와 영국 선교사 티모시 리처드가 관련된 합방(나라를 합치자는) 계획이 서태후를 움직였다고 주장한다.[6]
이렇게 생각이 갈리는 까닭은 무술변법이 한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황제와 태후, 황제를 돕는 젊은 관리와 나이 든 대신, 군대를 거느린 장군, 그리고 외국인까지 많은 사람이 얽혀 있었다. 위의 연구들은 저마다 다른 인물과 관계에 무게를 두고, 그 관계를 글로 풀어 설명한다. 그래서 누가 누구와 어떻게 이어져 있었는지, 그 전체 모습을 한눈에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본 연구는 무술변법에 관련된 사람과 사건, 기관을 점으로, 그 사이의 관계를 선으로 정리하여 관계망 그림을 만든다. 누가 누구를 추천하고, 돕고, 배신하고, 벌했는지를 선으로 이어 보면, 글로만 읽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권력의 구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연구목적
본 연구의 목적은 1889년 광서제가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때부터 1898년 무술정변까지, 무술변법에 관련된 사람과 사건을 관계망 그림으로 정리하고, 그 안에서 중요한 인물과 사건을 찾아 깊이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무술변법이 '개혁파와 보수파의 싸움'이라는 한 줄로만 설명되는 사건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서로 추천하고, 돕고, 견제하고, 배신하며 만들어 낸 권력의 그물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연구는 다음 세 단계로 진행한다.
- 관계망 만들기: 무술변법과 관련된 인물, 사건, 세력, 기관, 문헌, 제도, 국가를 점으로 정한다. 인물에는 황제와 태후, 개혁을 이끈 관리, 원로대신, 군대를 거느린 장군, 외국인이 포함된다. 사건에는 조약, 상소, 개혁 선포, 관리의 파면, 정변 등이 포함된다. 세력에는 황제 편과 태후 편, 변법파가 포함된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선으로 잇는다. 선은 자료에서 확인되는 관계만 인정하고, 선마다 어떤 자료에 근거했는지 연구정보의 표에 함께 기록해 그림을 믿을 수 있게 만든다.
- 중요한 점 고르기: 완성된 그림에서 두 가지를 센다. 하나는 한 점에 선이 몇 개 모였는가이다. 선이 많이 모인 점은 여러 사람과 사건이 몰리는 '중심'이다. 다른 하나는 서로 다른 무리를 잇는 길목에 얼마나 자주 놓이는가이다. 이런 점은 무리와 무리 사이를 이어 주는 '다리'이다. 두 기준을 함께 쓰면, 관계가 많이 몰린 인물과 편과 편 사이를 오간 인물을 구별해서 볼 수 있다.
- 깊이 살펴보기: 고른 점을 자료로 자세히 살펴보고, 그 점이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 풀이한다.
- 인물: 어떤 일을 했는지, 누구와 누구를 이어 주었는지, 개혁의 성공과 실패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 사건: 왜 일어났고 어떻게 흘러갔는지, 누가 관련되었는지, 권력의 균형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중요한 인물과 사건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
이 연구가 답하려는 물음은 다음과 같다.
- 무술변법을 둘러싼 관계망에서 가장 많은 관계가 몰린 인물과 사건은 무엇이며, 개혁의 흐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 황제 편과 태후 편은 누구를 통해 이어지고, 또 누구 때문에 갈라졌는가? 예를 들어 광서제와 서태후 사이를 이어 주던 공친왕이 세상을 떠난 뒤,[7] 두 편을 오가던 원세개는 결국 태후 편을 택했다.[2] 관계망에서 이런 '다리' 역할을 한 인물은 누구였는가?
- 관계망 그림은 연구배경에서 살펴본 세 가지 해석, 곧 개혁파와 보수파의 대립, 둘로 나뉜 황제의 권력, 합방 계획을 각각 얼마나 뒷받침하는가?
정리하면, 이 연구는 관계를 정리해 중요한 인물과 사건을 찾고(관계망 분석), 그 인물과 사건을 자료로 풀이하는(깊이 살펴보기)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늘어놓는 설명을 보완하고, 청나라 말기의 개혁을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라는 눈으로 새롭게 읽는 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연구정보
1. 그래프 읽는 법
위 그래프는 무술변법에 관련된 사람과 사건 등을 점으로, 그 사이의 관계를 선으로 이은 관계망이다. 점 58개와 선 115개로 이루어져 있다. 점의 색은 그 점의 종류를 나타낸다.
| 종류 | 색 | 개수 | 예시 |
|---|---|---|---|
| 인물 | 파란색 | 23 | 광서제, 서태후, 강유위, 원세개, 이토 히로부미 |
| 사건 | 회색 | 11 | 청일전쟁, 공거상서, 합방 상소, 무술정변 |
| 세력 | 빨간색 | 3 | 제당(황제 편), 후당(태후 편), 변법파 |
| 기관 | 주황색 | 10 | 군기처, 총리아문, 강학회, 신건육군 |
| 문헌 | 노란색 | 7 | 신학위경고, 명정국시조, 밀조, 무술일기 |
| 제도 | 분홍색 | 2 | 사후보고제도, 훈정 |
| 국가 | 초록색 | 2 | 일본, 영국 |
선에는 방향이 있다. 예를 들어 '서태후 → 광서제'에 임명하다가 붙어 있으면 "서태후가 광서제를 임명했다"는 뜻이다. 선 위의 글자는 두 점이 어떤 관계인지를 알려 준다.
2. 관계망을 만든 방법
- 자료 정하기: 직접 찾아서 조사한 논문 3편, 잡지와 신문 기사 3편, 인물 사전 1건, 책 1권, 모두 8건의 자료만 사용했다. 자료의 정확한 명칭은 참고자원에 있다.
- 점 정하기: 자료에 여러 번 나오거나, 무술변법의 흐름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과 사건, 기관 등을 점으로 정했다. 시기는 1889년 광서제가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때부터 1898년 무술정변까지로 잡았다.
- 선 정하기: 두 점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자료에서 찾아 선으로 이었다.
- 근거 확인: 선 하나하나를 자료의 원문과 다시 맞추어 보았다. 처음 만든 관계망에 있던 선 가운데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모두 뺐고, 자료에서 새로 확인된 관계는 더했다. 자료끼리 내용이 엇갈리는 선은 아래 근거 표에 '다른 견해'로 함께 적었다.
- 순위 계산: 완성된 관계망에서 점마다 두 가지 값을 계산하여 순위를 매겼다.
- 관계 수(연결 중심성): 한 점에 이어진 선의 개수이다. 많을수록 여러 사람과 사건이 몰린 '중심'이다.
- 다리 역할(매개 중심성): 관계망 안의 모든 두 점 사이에서 가장 짧은 길을 찾고, 그 길 위에 이 점이 얼마나 자주 놓이는지를 0과 1 사이의 수로 나타낸 값이다. 클수록 서로 다른 무리를 이어 주는 '다리'이다.
3. 관계의 종류
관계는 모두 24가지이며, 성격에 따라 여섯 묶음으로 나눌 수 있다.
| 묶음 | 관계 이름 (선의 개수) | 합계 |
|---|---|---|
| 권력과 인사 | 임명하다(8), 제거되다(8), 직을 맡다(5), 중단시키다(2), 승인하다(1) | 24 |
| 편과 소속 | 소속되다(13), 주도하다(11), 설립하다(5), 가입하다(3), 경쟁하다(1) | 33 |
| 돕고 잇기 | 지원하다(5), 친족이다(4), 연결하다(2) | 11 |
| 정보와 영향 | 영향을 주다(6), 알리다(5), 기록하다(1) | 12 |
| 행동과 참여 | 참여하다(12), 발행하다(7), 추진하다(6), 체결하다(2), 활용하다(2), 관여하다(1), 대응하다(1) | 31 |
| 원인과 결과 | 초래하다(4) | 4 |
| 전체 | 24가지 | 115 |
4. 이 관계망의 한계
- 관계망은 위의 자료 8건에 기대어 만들었기 때문에, 자료에 나오지 않는 관계는 들어 있지 않다.
- 순위를 계산할 때에는 선의 방향을 따지지 않고, 두 점이 이어져 있는지만 보았다.
- 관계망은 누가 누구와 이어졌는지를 보여 줄 뿐, 어떤 일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6. 선별 근거 자료
선마다 근거로 삼은 자료는 아래 표와 같다. 표의 자료 이름은 줄여 적었으며, 정확한 명칭은 참고자원에 있다.
| 출발 점 | 관계 | 도착 점 | 근거 자료 |
|---|---|---|---|
| 서태후 | 임명하다 | 광서제 | 아틀라스뉴스, 옌총니엔 |
| 서태후 | 친족이다 | 광서제 | 김형종 48쪽 |
| 순친왕 혁현 | 친족이다 | 광서제 | 아틀라스뉴스, 지식백과 「광서제」 |
| 공친왕 혁흔 | 친족이다 | 순친왕 혁현 | 김형종 46쪽 |
| 강광인 | 친족이다 | 강유위 | 월간조선, 레이자성 196쪽 |
| 공친왕 혁흔 | 연결하다 | 광서제 | 오수열 149쪽 |
| 공친왕 혁흔 | 연결하다 | 서태후 | 오수열 149쪽, 월간조선 |
| 서태후 | 활용하다 | 사후보고제도 | 김형종 50쪽 |
| 서태후 | 임명하다 | 영록 | 오수열 146쪽 |
| 군기처 | 알리다 | 서태후 | 레이자성 206쪽 |
| 서태후 | 주도하다 | 후당 | 오수열 143쪽 |
| 이홍장 | 소속되다 | 후당 | 오수열 143쪽 |
| 영록 | 소속되다 | 후당 | 오수열 149쪽 |
| 광서제 | 소속되다 | 제당 | 오수열 143쪽 |
| 옹동화 | 주도하다 | 제당 | 오수열 143쪽 |
| 제당 | 경쟁하다 | 후당 | 오수열 143쪽, 옌총니엔 |
| 옹동화 | 지원하다 | 광서제 | 김형종 50쪽 |
| 옹동화 | 지원하다 | 강유위 | 월간조선, 지식백과 「옹동화」 |
| 제당 | 지원하다 | 강학회 | 오수열 145쪽 |
| 강유위 | 주도하다 | 변법파 | 오수열 148쪽 |
| 양계초 | 소속되다 | 변법파 | 오수열 148쪽 |
| 담사동 | 소속되다 | 변법파 | 오수열 150쪽 |
| 양예 | 소속되다 | 변법파 | 레이자성 178쪽 |
| 임욱 | 소속되다 | 변법파 | 레이자성 178쪽 |
| 유광제 | 소속되다 | 변법파 | 레이자성 178쪽 |
| 강광인 | 소속되다 | 변법파 | 레이자성 178쪽 |
| 양심수 | 소속되다 | 변법파 | 레이자성 178쪽 |
| 송백로 | 소속되다 | 변법파 | 레이자성 194쪽 |
| 청일전쟁 | 초래하다 | 시모노세키조약 | 오수열 137쪽 |
| 광서제 | 관여하다 | 청일전쟁 | 김형종 48쪽 |
| 이홍장 | 체결하다 | 시모노세키조약 | 월간조선, 레이자성 177쪽 |
| 이토 히로부미 | 체결하다 | 시모노세키조약 | 월간조선 |
| 이토 히로부미 | 소속되다 | 일본 | 레이자성 203쪽 |
| 시모노세키조약 | 초래하다 | 공거상서 | 레이자성 177쪽 |
| 강유위 | 주도하다 | 공거상서 | 월간조선, 레이자성 177쪽 |
| 양계초 | 참여하다 | 공거상서 | 오수열 142쪽, 지식백과 「양계초」 |
| 강유위 | 설립하다 | 만목초당 | 월간조선, 오수열 142쪽 |
| 강유위 | 발행하다 | 신학위경고 | 월간조선, 오수열 142쪽 |
| 강유위 | 발행하다 | 공자개제고 | 월간조선 |
| 강유위 | 발행하다 | 일본변정고 | 월간조선, 오수열 147쪽 |
| 강유위 | 설립하다 | 강학회 | 오수열 145쪽 |
| 원세개 | 가입하다 | 강학회 | 오수열 145쪽 |
| 장지동 | 가입하다 | 강학회 | 오수열 145쪽 |
| 양예 | 가입하다 | 강학회 | 오수열 145쪽 |
| 강유위 | 설립하다 | 보국회 | 오수열 145쪽, 월간조선 |
| 양계초 | 발행하다 | 시무보 | 지식백과 「양계초」, 오수열 142쪽 |
| 진보잠 | 설립하다 | 시무학당 | 오수열 144쪽 |
| 담사동 | 참여하다 | 시무학당 | 오수열 144쪽 |
| 양계초 | 참여하다 | 시무학당 | 오수열 144쪽, 지식백과 「양계초」 |
| 담사동 | 설립하다 | 남학회 | 오수열 144쪽 |
| 진보잠 | 지원하다 | 남학회 | 오수열 144쪽 |
| 광서제 | 발행하다 | 명정국시조 | 김형종 52쪽 |
| 서태후 | 승인하다 | 명정국시조 | 김형종 52쪽, 월간조선 |
| 옹동화 | 참여하다 | 명정국시조 | 지식백과 「옹동화」 |
| 양심수 | 참여하다 | 명정국시조 | 월간조선 |
| 명정국시조 | 초래하다 | 무술변법 | 김형종 52쪽, 월간조선 |
| 광서제 | 주도하다 | 무술변법 | 김형종 52쪽 |
| 강유위 | 추진하다 | 무술변법 | 레이자성 205쪽 |
| 양계초 | 추진하다 | 무술변법 | 뉴스1 |
| 광서제 | 임명하다 | 강유위 | 지식백과 「강유위」, 오수열 149쪽 |
| 강유위 | 직을 맡다 | 총리아문 | 오수열 149쪽 |
| 광서제 | 임명하다 | 양예 | 월간조선, 오수열 144쪽 |
| 광서제 | 임명하다 | 임욱 | 월간조선, 오수열 144쪽 |
| 광서제 | 임명하다 | 유광제 | 월간조선, 오수열 144쪽 |
| 광서제 | 임명하다 | 담사동 | 월간조선, 오수열 144쪽 |
| 양예 | 직을 맡다 | 군기처 | 월간조선, 레이자성 187쪽 |
| 임욱 | 직을 맡다 | 군기처 | 월간조선, 레이자성 187쪽 |
| 유광제 | 직을 맡다 | 군기처 | 월간조선, 레이자성 187쪽 |
| 담사동 | 직을 맡다 | 군기처 | 월간조선, 레이자성 187쪽 |
| 서태후 | 주도하다 | 옹동화 파면 | 오수열 146쪽 |
| 옹동화 | 제거되다 | 옹동화 파면 | 오수열 146쪽 |
| 광서제 | 주도하다 | 예부 6당관 파면 | 월간조선, 김형종 55쪽 |
| 예부 6당관 파면 | 영향을 주다 | 무술정변 | 월간조선 |
| 강유위 | 추진하다 | 제도국 | 월간조선, 김형종 54쪽 |
| 총리아문 | 중단시키다 | 제도국 | 김형종 54쪽 |
| 광서제 | 추진하다 | 무근전 | 레이자성 206쪽 |
| 강유위 | 추진하다 | 무근전 | 월간조선 |
| 광서제 | 임명하다 | 원세개 | 월간조선 |
| 강유위 | 지원하다 | 원세개 | 월간조선 |
| 원세개 | 주도하다 | 신건육군 | 월간조선, 지식백과 「원세개」 |
| 광서제 | 발행하다 | 밀조 | 월간조선, 레이자성 188쪽 |
| 밀조 | 알리다 | 양예 | 월간조선, 레이자성 188쪽 |
| 이토 히로부미 | 참여하다 | 이토 히로부미 방문 | 레이자성 205쪽 |
| 광서제 | 참여하다 | 이토 히로부미 방문 | 레이자성 207쪽 |
| 티모시 리처드 | 소속되다 | 영국 | 레이자성 178쪽 |
| 티모시 리처드 | 영향을 주다 | 강유위 | 레이자성 205쪽 |
| 홍여충 | 영향을 주다 | 합방 상소 | 레이자성 205쪽 |
| 강유위 | 주도하다 | 합방 상소 | 레이자성 207쪽 |
| 양심수 | 참여하다 | 합방 상소 | 레이자성 207쪽 |
| 송백로 | 참여하다 | 합방 상소 | 레이자성 207~208쪽 |
| 티모시 리처드 | 영향을 주다 | 합방 상소 | 레이자성 208쪽 |
| 이토 히로부미 | 영향을 주다 | 합방 상소 | 레이자성 208쪽 |
| 양숭이 | 알리다 | 서태후 | 레이자성 206쪽, 월간조선 |
| 합방 상소 | 영향을 주다 | 무술정변 | 레이자성 208쪽 |
| 영국 | 참여하다 | 영국 군함 출몰 | 레이자성 207쪽 |
| 영록 | 대응하다 | 영국 군함 출몰 | 레이자성 191쪽 |
| 강유위 | 추진하다 | 담사동의 원세개 방문 | 월간조선, 레이자성 189쪽 |
| 담사동 | 주도하다 | 담사동의 원세개 방문 | 레이자성 203쪽 |
| 원세개 | 참여하다 | 담사동의 원세개 방문 | 레이자성 203쪽 |
| 원세개 | 발행하다 | 무술일기 | 월간조선, 레이자성 189쪽 |
| 무술일기 | 기록하다 | 담사동의 원세개 방문 | 월간조선 |
| 원세개 | 알리다 | 영록 | 레이자성 203쪽, 월간조선 |
| 영록 | 알리다 | 서태후 | 지식백과 「영록」, 아틀라스뉴스, 다른 견해: 레이자성 178쪽 |
| 서태후 | 주도하다 | 무술정변 | 김형종 55쪽, 뉴스1 |
| 영록 | 참여하다 | 무술정변 | 월간조선, 지식백과 「영록」 |
| 서태후 | 중단시키다 | 무술변법 | 뉴스1, 옌총니엔 |
| 무술정변 | 초래하다 | 훈정 | 김형종 55쪽, 월간조선 |
| 서태후 | 활용하다 | 훈정 | 김형종 55쪽 |
| 광서제 | 제거되다 | 무술정변 | 김형종 55쪽, 뉴스1 |
| 담사동 | 제거되다 | 무술정변 | 월간조선, 레이자성 178쪽 |
| 양예 | 제거되다 | 무술정변 | 월간조선, 레이자성 178쪽 |
| 임욱 | 제거되다 | 무술정변 | 월간조선, 레이자성 178쪽 |
| 유광제 | 제거되다 | 무술정변 | 월간조선, 레이자성 178쪽 |
| 강광인 | 제거되다 | 무술정변 | 월간조선, 레이자성 178쪽 |
| 양심수 | 제거되다 | 무술정변 | 월간조선, 레이자성 178쪽 |
연구내용
연구정보의 관계망에서 관계 수와 다리 역할 두 순위에 모두 높게 오른 인물 4명과 사건 2개를 골라 자세히 살펴본다. 인물은 광서제, 서태후, 강유위, 원세개이고, 사건은 무술정변과 합방 상소이다. 담사동도 두 순위에 들었지만, 그의 활동은 원세개와 무술정변을 다루며 함께 살펴본다.
광서제: 이름뿐인 황제, 개혁의 한가운데에 서다 (1871~1908)
광서제는 순친왕의 아들이다. 네 살 때 이모인 서태후가 그를 골라 황제로 세웠다. 어린 황제를 앉혀야 자신이 오랫동안 나라 일을 대신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8] 1889년부터 광서제가 직접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지만, 중요한 일은 먼저 서태후에게 알리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신하들이 올린 글과 황제가 내린 지시는 다음 날까지 모두 서태후에게 보고되었다.[9]
무술변법에서 한 일:
- 권력 요구(1898년 봄): "망할 나라의 임금이 될 수는 없으니, 권력을 주지 않으려면 차라리 황제 자리를 넘기겠다"고 서태후에게 말했다. 서태후는 "황제에게 한번 시켜 보자"며 제한된 권한만 주었다.[10]
- 명정국시조 선포(6월 11일): 서태후의 승인을 얻어 변법을 나라의 기본 방침으로 선포했다.[11]
- 강유위 등용(6월 16일): 강유위를 만나 외교를 맡은 관청인 총리아문에 자리를 주고, 언제든 황제에게 직접 글을 올릴 수 있게 했다.[12] 그러나 영록 등 보수파가 반대하여 높은 벼슬은 주지 못했다.[7]
- 예부 관리 파면과 '4장경' 임명(9월 초): 개혁을 가로막은 예부의 높은 관리 6명을 한꺼번에 파면했다. 바로 다음 날 양예, 유광제, 임욱, 담사동을 나라의 중요한 일을 다루는 군기처에 앉혔다. 이 네 사람을 '4장경'이라고 부른다.[2]
- 비밀 명령과 원세개 면담(9월 14~17일): 양예에게 비밀 명령을 내리고, 군대를 거느린 원세개를 두 번 따로 만나 벼슬을 크게 올려 주었다.[2]
관계망에서의 위치:
관계 수 1위(20개), 다리 역할 2위.
광서제에게서 임명하다로 뻗어 나간 선이 6개(강유위, 4장경, 원세개)로 가장 많다. 그런데 광서제 자신도 서태후에게서 임명하다와 친족이다로 이어져 있고, 마지막에는 무술정변에 제거되다로 이어진다.
의의:
광서제는 관계망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서태후가 세운 황제였다. 많은 사람을 임명할 수는 있었지만, 그 힘은 서태후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였다. 이는 연구배경에서 살펴본 둘로 나뉜 황제의 권력을 관계망으로 보여 준다.
서태후: 물러난 듯 물러나지 않은 실권자 (1835~1908)
1889년 광서제가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하자, 서태후는 새로 지은 이화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겉으로는 권력을 넘겨준 것처럼 보였지만, 옥새를 쥐고 자기 사람을 군기대신에 앉혀 실제 권력을 계속 휘둘렀다.[8] 광서제는 며칠마다 서태후를 찾아가 문안을 드려야 했다. 1898년 1월 1일부터 7월 28일까지 광서제가 서태후에게 문안을 간 횟수는 150번에 이른다.[9]
무술변법에서 한 일:
- 명정국시조 동의(6월): 개혁을 바라는 여론 때문에 동의했지만, 이는 한 걸음 물러선 것에 지나지 않았다.[2]
- 옹동화 파면과 영록 임명(6월 15일): 변법파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옹동화를 파면했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영록을 직예총독 대리로 앉혀 북양의 군대를 맡겼다.[13]
- 정변(9월 19~21일): 이화원에서 자금성으로 돌아와 광서제를 가두고, 다시 나라 일을 직접 맡겠다는 '훈정'을 선포했다.[14]
관계망에서의 위치:
관계 수 3위(14개), 다리 역할 3위.
관계망 전체에서 알리다 선은 모두 5개이다. 그중 3개(군기처, 양숭이, 영록)가 서태후에게 모인다. 서태후는 직접 나서지 않아도 정보가 저절로 모이는 자리에 있었다. 또 서태후는 영록을 임명하다로, 후당을 주도하다로 잇고 있어, 군대와 세력도 함께 쥐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의의:
광서제가 '사람'을 많이 거느렸다면, 서태후는 '정보'와 '군대'를 쥐고 있었다. 매일 올라오는 보고로 황제의 움직임을 알았고, 영록을 통해 군대를 움직일 수 있었다. 정변이 단 며칠 만에 끝날 수 있었던 바탕이 여기에 있다.
강유위: 학회와 책, 외국인까지 이은 다리 (1858~1927)
강유위는 광둥성 난하이현에서 태어났다.[12] 1891년 광저우에 '만목초당'이라는 학교를 열고, 같은 해 『신학위경고』를 펴냈다. 뒤이어 펴낸 『공자개제고』에서는 공자를 옛것을 지킨 사람이 아니라 제도를 고친 개혁가로 그려, 변법이 꼭 필요하다는 근거로 삼았다.[2] 1895년에는 과거 시험을 보러 온 거인 1,2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황제에게 글을 올렸다(공거상서).[2] 같은 해 강학회를, 1898년에는 보국회를 만들어 개혁에 뜻을 둔 사람들을 모았다.[15] 옹동화의 추천으로 총리아문에서 대신들 앞에 섰을 때, 영록은 "조상의 법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며 그에게 맞섰다.[2]
무술변법에서 한 일:
- 제도국 설치 요청: 개혁을 총괄할 기관인 제도국을 만들자고 거듭 요청했다. 그러나 총리아문이 심의를 미루고 사실상 반대하여 끝내 만들어지지 못했다.[16]
- 무근전 개설과 원세개 추천: 제도국 대신 '무근전'을 열려고 힘썼고, 황제를 지킬 새 군대의 책임자로 원세개를 추천했다.[2]
- 외국인 초청: 이토 히로부미가 중국에 오자, 영국 선교사 티모시 리처드를 베이징으로 불렀다.[17]
- 마지막 계획: 담사동을 원세개에게 보내 군대를 움직여 달라고 부탁하게 했다.[2]
관계망에서의 위치:
관계 수 2위(19개), 다리 역할 1위.
강유위의 선은 학교와 학회(만목초당, 강학회, 보국회), 책(신학위경고, 공자개제고, 일본변정고), 황제, 군인(원세개), 외국인(티모시 리처드), 합방 상소까지 뻗어 있다. 서로 다른 무리를 가장 많이 이어 주는 인물이다.
의의:
강유위는 누구보다 넓게 이어져 있었지만, 벼슬은 낮았다. 오수열은 강유위와 양계초가 청나라에 큰 영향을 미칠 자리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광서제를 움직이는 것뿐이었다고 본다.[18] 다리 역할이 크다는 것은 힘이 크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개혁의 거의 모든 길이 강유위 한 사람을 거쳐야 했다는 약점을 보여 준다.
원세개: 두 편 사이에서 저울질한 군인 (1859~1916)
원세개는 이홍장의 군대에서 경력을 쌓았고, 조선에 머물며 이름을 알렸다. 그 뒤 톈진 근처에서 서양식 새 군대를 훈련시켰다.[19] 이 군대를 새로 정비하도록 원세개를 추천한 사람은 영록이었다.[20] 그런데 원세개는 강유위가 만든 강학회의 회원이기도 했다.[15]
무술변법에서 한 일:
- 추천과 탐색: 강유위는 원세개를 새 군대의 책임자로 추천하면서도, 그가 영록과 가깝다는 점을 걱정해 사람을 보내 속마음을 떠보았다. 원세개는 강유위를 '천하의 인재'라고 추켜세웠다.[2]
- 황제와의 면담(9월 16~17일): 광서제를 두 번 따로 만난 뒤 벼슬이 크게 올랐다.[2]
- 담사동의 방문(9월 18일 밤): 담사동이 찾아와 영록을 죽이고 군대로 이화원을 에워싸 달라고 부탁했다.[21]
- 밀고(9월 20일): 톈진으로 돌아가 이 계획을 영록에게 알렸다.[21]
밀고 시점을 둘러싼 논쟁:
정변은 9월 21일에 일어났다. 원세개가 영록에게 알린 때가 빨라야 9월 20일 저녁이라면, 서태후가 하루 만에 톈진의 소식을 듣고 정변을 일으킨 셈이 된다. 그래서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는 의문이 나왔다.[21] 영록이 이 내용을 서태후 쪽에 알린 것은 정변 다음 날이었다는 연구도 있다.[22]
관계망에서의 위치:
관계 수 공동 4위(7개), 다리 역할 5위.
원세개는 강학회(가입하다)와 강유위(지원하다)를 통해 변법파 쪽과 이어지고, 영록(알리다)을 통해 태후 편과도 이어진다. 두 편 모두에 선이 닿아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의의:
담사동은 원세개를 찾아가 "지금 천하에 온전한 군대는 그대의 신건육군뿐"이라고 말했다.[2] 변법파가 마지막에 원세개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 선은 결국 영록을 거쳐 태후 편으로 향했다. 다만 이 밀고가 정변의 직접 원인이었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무술정변: 103일의 끝 (1898년 9월 21일)
전개:
- 9월 18일(음력 8월 3일): 관리 양숭이가 "광서제가 이토 히로부미를 쓰면 나라가 위험해진다"는 글을 서태후에게 올렸다.[23] 같은 날 밤, 담사동이 원세개를 찾아갔다.[24]
- 9월 19일(음력 8월 4일): 서태후가 이화원에서 자금성으로 돌아왔다.[14]
- 9월 20일(음력 8월 5일): 이토 히로부미가 광서제를 만났다. 같은 날 원세개는 톈진에서 영록에게 계획을 알렸다.[24]
- 9월 21일(음력 8월 6일): 서태후가 훈정을 선포하며 정변을 일으켰다.[14]
결과:
광서제는 궁궐 안 호수의 작은 섬인 영대에 갇혔다.[2] 담사동, 양예, 유광제, 임욱, 강광인, 양심수 여섯 사람은 붙잡혀 처형되었다. 이들을 '무술육군자'라고 부른다.[2] 강유위와 양계초는 외국으로 달아났다.[25] 개혁으로 없앤 관청은 다시 생겼고, 옛 과거 시험 방식도 되살아나 개혁의 핵심은 거의 모두 없던 일이 되었다.[26] 광서제는 그 뒤 10년 동안 갇혀 지내다 1908년에 세상을 떠났다.[26]
관계망에서의 위치:
사건 가운데 관계 수 1위(12개), 다리 역할 1위.
무술정변에 제거되다로 이어진 선은 7개로, 광서제와 무술육군자이다. 또 예부 관리 파면과 합방 상소가 영향을 주다로, 서태후와 영록이 주도하다, 참여하다로 이어져 있다. 관계망은 정변의 원인을 한 줄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보여 준다.
의의:
무술정변은 연구배경에서 살펴본 세 가지 해석이 모두 모이는 점이다. 황제 편과 태후 편의 대립, 둘로 나뉜 권력, 그리고 합방 계획이 모두 이 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합방 상소: 정변을 부른 또 하나의 불씨 (1898년 9월)
'합방'은 여러 나라를 하나로 합친다는 뜻으로, 원래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다.[27]
전개:
- 시작: 관리 홍여충이 외국의 이름난 사람을 데려와 실제 권한을 주자고 하면서, 그 적임자로 이토 히로부미를 들었다. 나아가 중국과 일본을 하나로 합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17]
- 외국인의 등장: 영국 선교사 티모시 리처드는 일찍이 중국의 외교, 철도, 교육 등을 서양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글을 썼다. 그는 강유위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황제의 고문으로 삼으라고 권했다.[17] 베이징에 온 뒤에는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여관에 머물렀다.[23]
- 9월 18일 밤: 강유위가 양심수, 송백로 등에게 티모시 리처드가 준 '나라 나누기 지도'를 보여 주며 "사람을 많이 모아 글을 올리라"고 했다.[24]
- 9월 20일: 양심수가 "영국, 미국, 일본과 굳게 손잡고, '합방'이라는 이름이 듣기 좋지 않아도 신경 쓰지 말라"는 글을 올렸다.[24]
- 9월 21일: 송백로가 "중국, 미국, 영국, 일본 네 나라에서 100명을 뽑아 군대, 정치, 세금, 외교를 모두 맡기자"는 글을 올렸다.[28]
관련 인물: 강유위, 양심수, 송백로, 홍여충, 이토 히로부미, 티모시 리처드
관계망에서의 위치:
사건 가운데 관계 수 2위(7개), 다리 역할 2위.
외국인 두 사람(이토 히로부미, 티모시 리처드)과 변법파 관리들, 그리고 무술정변을 한데 잇는 사건이다.
의의:
레이자성은 서태후가 이 합방 계획을 알아채고 나라의 권력이 외국에 넘어갈 위험을 느껴, 그날 바로 정변을 일으켰다고 본다.[29] 다만 영국과 일본 정부가 이 일에 직접 나섰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29] 오수열도 변법파가 영국, 일본 같은 외국의 도움에 기대려 한 점을 변법운동의 한계로 꼽는다.[30]
인물과 핵심 사건의 연관성
- 서태후 → 광서제 → 강유위: 서태후가 세운 황제가 강유위를 등용했다. 개혁의 힘은 처음부터 서태후에게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 강유위 → 원세개 → 영록 → 서태후: 변법파가 군대를 얻으려고 놓은 다리가 거꾸로 태후 편으로 이어졌다.
- 강유위 → 티모시 리처드·이토 히로부미 → 합방 상소 → 무술정변: 외국인을 끌어들인 계획이 서태후가 움직인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 군기처·양숭이·영록 → 서태후: 서로 다른 세 갈래의 정보가 모두 서태후에게 모였다.
- 공친왕의 빈자리: 관계망에서 광서제와 서태후를 연결하다로 함께 잇는 사람은 공친왕 한 명뿐이다. 1898년 5월 공친왕이 세상을 떠나자 두 사람 사이의 다리가 사라졌고, 상황은 변법파에게 더욱 불리해졌다.[2][7]
결론
무술변법은 개혁파와 보수파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권력이 둘로 나뉜 구조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외국인이 얽힌 합방 계획이 겹쳐 있었다.
- 관계가 가장 많이 몰린 인물은 광서제(20개)와 강유위(19개)이고, 사건은 무술정변(12개)이다. 광서제는 임명의 중심, 강유위는 연결의 중심이었고, 무술정변은 모든 갈래가 끝나는 지점이었다.
- 황제 편과 태후 편을 이어 준 사람은 공친왕과 원세개였다. 공친왕이 세상을 떠나 다리가 하나 사라졌고, 남은 다리였던 원세개는 결국 영록 쪽을 택했다. 강유위는 다리 역할 1위였지만, 그가 이은 것은 변법파 안쪽과 외국인이었지 태후 편이 아니었다.
- 관계망은 세 해석을 모두 뒷받침한다. 다만 무게는 다르다. 서태후에게서 광서제와 영록으로 이어지는 임명하다, 그리고 서태후에게 모이는 알리다 선은 둘로 나뉜 황제의 권력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 준다. 합방 상소가 사건 순위 2위에 오른 것은 레이자성의 해석에도 무게를 실어 준다. 그러나 관계망은 누가 누구와 이어졌는지를 보여 줄 뿐, 무엇이 원인이었는지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영록이 서태후에게 알린 시점처럼 자료끼리 엇갈리는 문제는 자료를 더 비교해 판단해야 한다.
아쉬운 점과 추후 연구하고 싶은 점
1. 아쉬운 점
- 자료의 범위: 이 연구는 자료 8건만을 근거로 삼았다. 그래서 자료에 나오지 않는 관계는 관계망에 들어가지 못했다. 특히 원세개의 『무술일기』나 강유위가 직접 쓴 연보 같은 당시의 기록은 논문에 인용된 부분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 풀리지 않은 논쟁: 원세개가 영록에게 알린 내용이 언제 서태후에게 전해졌는지는 자료마다 다르다. 이 연구는 두 견해를 함께 적는 데 그쳤고, 어느 쪽이 옳은지는 판단하지 못했다.
- 외국 정부의 역할: 합방 계획에 영국과 일본 정부가 직접 관여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29] 그래서 관계망에서도 영국과 일본은 몇 개의 선으로만 이어져 있다.
- 지방의 개혁: 후난성에서는 순무 진보잠의 지원 아래 시무학당과 남학회가 세워지는 등 개혁이 활발했다.[31] 그러나 이 연구는 베이징의 궁정을 중심으로 관계망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방의 움직임은 충분히 담지 못했다.
2. 추후 연구하고 싶은 점
- 정변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관계망을 따로 그려서, 누가 사라지고 어떤 관계가 끊겼는지 비교해 보고 싶다.
- 이번에 충분히 다루지 못한 후난성 같은 지방의 개혁도 관계망으로 그려 보고 싶다.
- 서태후는 개혁을 멈추었지만, 3년 뒤인 1901년에는 비슷한 개혁(광서신정)을 다시 시작했다.[32] 왜 생각을 바꾸었는지 알아보고 싶다.
참고자원
1. 논문
- 김형종, 「近代中國의 皇帝權力: 光緖帝와 西太后」, 『역사학보』 제208집, 2010, 35~70쪽.
- 오수열, 「청말(淸末) 변법유신운동의 전개와 성격」, 『한국동북아논총』 제54집, 2010, 135~153쪽.
- 레이자성, 「失落的眞相: 晚淸戊戌變法時期的'合邦'論與戊戌政變的關係」, 『중국사연구』 제61집, 2009, 177~210쪽.
2. 기사
- 「[동양의 근대를 만든 사람들 캉유웨이(康有爲) 戊戌變法으로 입헌군주정 꿈꾼 실패한 개혁가」], 『월간조선』.
- 김정한, 「청나라 서태후의 광서제 유폐 [김정한의 역사&오늘」], 『뉴스1』.
- 「무술 개혁 좌절시킨 서태후…기로에 선 淸 운명」, 『아틀라스뉴스』.
3. 인물 사전
- 네이버 지식백과, 「강유위」, 「양계초」, 「광서제」, 「옹동화」, 「영록」, 「원세개」.
4. 책
- 옌총니엔,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광서황제 재첨」.
주석
- ↑ 오수열, 「청말(淸末) 변법유신운동의 전개와 성격」, 『한국동북아논총』 제54집, 2010, 137·141·146쪽.
- ↑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2.10 2.11 2.12 2.13 2.14 2.15 「[동양의 근대를 만든 사람들] 캉유웨이(康有爲) 戊戌變法으로 입헌군주정 꿈꾼 실패한 개혁가」, 『월간조선』, 월간조선 누리집.
- ↑ 김형종, 「近代中國의 皇帝權力: 光緖帝와 西太后」, 『역사학보』 제208집, 2010, 48·52·55~56쪽.
- ↑ 오수열, 「청말(淸末) 변법유신운동의 전개와 성격」, 『한국동북아논총』 제54집, 2010, 143·151쪽.
- ↑ 김형종, 「近代中國의 皇帝權力: 光緖帝와 西太后」, 『역사학보』 제208집, 2010, 48·50쪽.
- ↑ 레이자성, 「失落的眞相: 晚淸戊戌變法時期的'合邦'論與戊戌政變的關係」, 『중국사연구』 제61집, 2009, 178~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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