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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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chansong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6월 7일 (월) 20:19 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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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내용

한국 천주교를 이끌었던 초기 지도자들 조선후기에 한국천주교회 창설을 주도한 3대 인물은 한국천주교회 창설의 선구자 이벽李檗(세례자 요한, 1754~1786)과 한국 최초의 영세자 李承薰(베드로, 1756~1801) 假聖職制度 때 主敎로 임명된 權日身(프란치스코 사베리오, 1751~1792)이다. 그리고 명도회 초기 회장 丁若鍾(아우구스티노, 1760~1801). 崔必恭 토마스 ∼ ・洪敎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1738~1801)・이조정랑을 지낸 루가 洪樂敏( , 1751~1801)・천주교회 총회장 요한 崔昌顯( , 1754~1801) ‘ ’ ( ・ 내포의 사도 존자가 루도비코 李存昌 , 1759~1801)도 천주교회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가운데 이벽 . 은 년 정조 에 1785 ( 9, ) 乙巳 乙巳秋曹摘發事件이 일어난 직후에 권일신은 , 1791 ( 15, ) 년 정조 에 辛亥 珍山事件3)이 일어난 직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승훈 정약종 최필공 홍교만 홍낙민 최창현은 신유옥사가 일어난 직후인 년 순조 월 일 양력 월 일 에 서울 서소문 밖에서 1801 ( 1, ) 2 26 ( 4 8 ) 辛酉 참수되었고 이존창은 년 월 일에 공주로 호송되어 참수되었다 이 , 1801 2 27 . 들 외에 천주교 초창기에 전교에 공헌한 인물로 호남의 사도 아우 ‘ ’ ( 柳恒儉 구스티노, 1756~1801) ( , 1760~1795) ( , ? ・尹有一 바오로 ・池璜 사바 ~1795) 등과 淸陰 金尙憲의 후손으로 당색이 노론이었던 요사팟 金健淳( , 1776~ 1801) ( , ?~1801) 과 세례명미상 도 순교하였다 이들도 모두 다산과 金伯淳 . 교유가 있었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교유의 자취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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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