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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려정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4월 29일 (목) 15:3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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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임청각

관련 내용

임청각의 소개

보물 제 182호,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별당 건물

구분 내용
이 름 안동 임청각 정침 군자정[安東臨淸閣正枕君子亭]
지정번호 보물 제182호
지정연도 1963년 1월21일
설립연도 1519년 기묘년
소재지 경북 안동시 임청각길 63
시대 조선 중기
분류 누정

찾아가는 길

임청각의 특징

1. 임청각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된 집이다.


2. 임청각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이씨의 종택이다.


3.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이황(李滉)의 친필이다.


4. 대청인 군자정에는 퇴계 이황의 친필인 임청각 현판을 비롯하여 농암 이현보, 제봉 고경명, 백사 윤훤, 송강 조사수의 현판이 걸려 있다.


임청각의 역사

건립 1519년 조선중종 때(조선중기) 이명이 임청각 건립

계승 18세기 11대 종손 허주 이종악(1726년~1773년)이 집주인이 됨

독립운동의 산실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하여, 선생의 아들, 손자 등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하는 등 3대에 걸쳐서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전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여 만주 망명길에 올라 독립운동기지인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세웠으며, 1925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맡아 독립운동계 분파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다 망명 직전에는 "공자와 맹자는 시렁 위에 얹어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며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였다. 또한 선생은 망명 직전 임청각에 있는 사당으로 올라가 신주와 조상 위패를 땅에 묻고 나라가 독립되기 전에는 절대 귀국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도 하였다. 만주 망명길에 오른 2년 뒤인 1913년에는 아들 이준형에게 “조선으로(국내로) 들어가 임청각을 처분하라”고 하였으며, 그 후 국내로 들어온 아들 이준형이 “임청각을 팔겠다”고 하자, 문중에서 이를 말리면서 독립운동 자금 500원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종가이씨 종가 관련 인물

  1.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하고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임시정부 2차 개헌 때, 국가수반)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하여 독립운동가 9명이 임청각에서 출생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애국시인 이육사는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와 내외종(고종사촌, 외사촌 ) 관계로, 어려서부터 종고모 집인 읍내의 임청각에 드나들며 함께 지내기도 하였다.

네트워크 그래프


건물

  1. 고성이씨 종택 임청각의 역사는 제1대 주인이 되는 이명이 1519년에 '임청각'이라 이름을 지어 건립하였다.
  2. 1500년대 중반 무렵에 사당과 더불어 지금과 같은 구조와 규모의 살림채까지 갖추었을것으로 짐작한다.

의의

  1. 임청각은 조선전기에 건축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양반주택으로 매우 드물다.
  2. 임진왜란 때에 대부분의 지역이 전화를 입었지만, 이 지역에는 일본군이 침범하지 않아 기존의 주택들이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고택 전통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