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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9univ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4월 28일 (수) 04:39 판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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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소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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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 소호헌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서해(徐嶰,1537~1559)가 서재로 쓰던 별당이다.
  2. 소호헌의 왼쪽 건물은 서해의 아들인 약봉 서성(藥峯 徐渻,1558~1631)의 태실이다.

인물

  1. 서해는 이황(李滉,1502~1570)의 제자이다.
  2. 원래 소호헌은 임청각을 지은 이명(李洺)이 다섯째 아들 이고(李股)가 분가할 때 지어준 집이었는데, 이고의 앞 못 보는 외동딸과 서해가 결혼하면서 이고가 서해에게 선물로 주었다.
  3. 서해는 학문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지만 23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서해의 아내는 아들 서성(徐渻,1558~1631)을 데리고 서울 약현(지금의 중림동)으로 떠나 약주와 약밥, 약과[1]를 만들어 팔며 아들을 공부시켰고, 서성은 1586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였다.

건물

  1. 소호헌은 앞쪽에 넓은 대청이 있고, 대청 뒤로는 온돌방이 붙어 있다. 대청 오른쪽에는 누마루가 있다.
  2. 지붕 모서리를 장식한 기와에는 용과 봉황 문양이 있는데, 이는 궁궐 등에 사용되는 것으로 민가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문양이다.
  3. 지붕 안쪽의 지붕과 기둥을 연결하는 종보와 지붕 바로 아래 나무인 종도리 사이에 있는 대공을 보면, 파련대공(연꽃이나 불로초, 구름 등을 입체적으로 조각한 것)으로 했다. 이는 대공을 만드는 가장 고급스러운 방법으로 궁궐에서도 중요한 건물이나 사찰의 대웅전 등에서 사용한 것이다.
  4. 소슬합장(종도리 아래의 人자 형태의 것)을 하였는데, 이는 조선 초까지 많이 사용했으나 후대에 들어서 완전히 사라졌다. 건축연도가 정확히 밝혀진 조선시대 건물 중 소슬합장을 사용한 가장 늦게 건축된 것은 1473년(성종 4)에 지은 도갑사 해탈문이다. 따라서 소호헌은 소슬합장을 사용한 마지막 건물이다.

의의

  1. 소호헌은 드물게 남아있는 임진왜란 전에 지어진 민가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장식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따라서 1968년 일찍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2. 고려시대에는 건물을 화려하게 지었으나 조선시대의 건축물은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실용적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소호헌의 화려함을 고려하면 고려시대 건축의 특징이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서성은 이이의 제자이나 부친은 이황의 제자인 점을 고려하였을 때, 부자가 서로 다른 학설을 지닌 성리학의 대가에게 사사받은 보기 드문 가문이다. 또한 안동은 퇴계학파의 본향인데, 소호헌과 서성의 태실인 약봉 태실이 있는 것으로 추측컨데 조선 후기의 탕평(蕩平)이 안동에서도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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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임청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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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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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성의 호가 약봉이라 이를 땄다고도 하며, 약현에서 만들어서 지명을 본땄다고도 하며, 조정의 대신들에게도 소문이 나서 도승지가 임금에게 진상을 하자 임금이 약주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