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와 번역
[1904, Board of Translators of the New Testament: (뒷줄 왼쪽부터) 김정삼, 김명준, 이창직, Reynolds, Underwood, Gale]
소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는 미국 북장로교 소속 선교사로서 파송되어 1885년 내한했다. 이후 제중원 교사로 활동하면서 전도와 교육, 출판에 힘썼고, 기독교 문서사업 측면에서도 많은 행적을 남겼다. 성경 번역 외에도 한글 문법서와 한영/영한사전을 편찬했을 뿐 아니라 삼문활판소가 설립되던 1890년대를 전후로 다수의 중문 기독교 문서를 한글로 번역했다. 헤론과 함께 조선성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의 설립에 기여했고, 남대문과 자신의 집 앞 두 곳에서 서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조선성교서회에서는 두 차례(1892-1901년, 1908-1915년), 총 17여 년간 회장직을 역임한 뒤 1916년에 사망했다. 역대 서회 회장 중 언더우드만큼 오래 회장직을 맡았던 인물은 없었다.[1] 1890-1900년 사이 언더우드가 15종의 서학서를 한글로 번역하고, 한국어사전을 편찬한 점은 선교사업의 일환이었지만 한국어 어휘의 수집·정립에 큰 자극을 준 점에서 한국 문화 발전의 업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2]
언더우드의 중문 기독교 서적 번역 동기
언더우드가 문서사업에 헌신한 동기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천주교와의 경쟁심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언더우드는 내한 초기부터 천주교의 한글 문서를 경쟁상대로 인식하며 한글 책자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1886년 당시 천주교 신부들 10명 중 8명이 한국어에 능통한 점, 이들이 보유한 한글 문서가 당시 외국인이 국내에서 만들어낸 출판물 중 최고 수준이었다는 점[3]이 언더우드가 언어습득과 한글 전도문서 발행에 힘쓰는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한편 한글보다 한문에 익숙한 지식인들에게는 한문 복음서와 소책자를 이용하여 전도했고, 이때 중문 기독교 서적이 한국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수차례 경험하면서 그 유용함을 깨달았다. 1890년대에는 아직 위원회역 성경이 완료되기 이전이었으므로 개신교 교리를 핵심적으로 요약한 중문 기독교 서적은 내용상으로나 유통상으로나 초기 선교사에게 간편하고 유용했다. 조약상의 변화라는 사회정치적 요인도 언더우드가 적극적으로 번역과 출판에 투신하는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개항장 제물포에서 외국인의 서적 소지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언더우드가 전해들은 때가 1890년이었다.
어떤 책을 번역했나?
발행연도 | 제목 | 원제목 | 영문제목 | 원저자 | 발행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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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 | 셩교촬리 | 聖敎撮理 | Salient Doctrines of Christianity | Griffith John | 조선성교서회 |
1891 | 샹뎨진리 | 上帝眞理 | The Nature of God | Griffith John | 삼문출판사 |
1891 | 권즁회개 | 勸衆悔改 | Exhortation to Repentance | Griffith John | 삼문출판사 |
1891 | 예수교문답 | 耶穌敎官話問答 | Christian Catechism | Helen S.C. Nevius | 조선성교서회 |
1893 | 즁ᄉᆡᆼ지도 | 重生之道 | Regeneration | Griffith John | 삼문출판사 |
1893 | 덕혜입문 | 德慧入門 | Gate of Virtue and Wisdom | Griffith John | 조선예수교서회 |
1894 | 삼요록 | 三要錄 | The Three Principles | William A.P.Martin | 정동예수교회당 |
1895 | 진리이지 | 真理易知 | An Easy Introduction to Christianity | D.B.McCartee | 예수셩교회당 |
1896 | 부활쥬일례ᄇᆡ | 復活主日禮拜 | Easter Sunday Worship | 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