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훈 과제2 소호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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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소호헌 (安東 蘇湖軒, 보물 제47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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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으로 《함재집》이 있다. | 문집으로 《함재집》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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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tp://dh.aks.ac.kr/~classics/wiki/index.php/고성이씨_이야기 |
2021년 4월 29일 (목) 11:01 판
안동 소호헌 (安東 蘇湖軒, 보물 제475호)
개요
조선 중종 때의 선비인 서해(徐嶰, 1537-1559)가 거처한 집이라고 한다.
건물이 지어진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이명이 다섯째 아들 이고(李股)를 분가시키면서 지은 집인데,
이것을 다시 이고가 사위인 서해에게 물려주었다고 전해진다.
동쪽의 건물은 서성(徐渻:1558∼1631)의 태실이다.
건축과 장식의 세부 양식은 조선시대 민가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민가에는 잘 쓰이지 않는 두 마리 용 문양이 기와에 들어간 것이 특이하다.
집의 주인이었던 서해에 관하여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며, 류성룡·김성일 등과 동문수학하였다.
9세 때 어머니, 1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게 살았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20세가 되어서는 문장과 학문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20세를 넘어 청풍군수를 지낸 바 있는 세도가 이고(李股)의 사위가 되었다.
부인 이씨는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이고는 사위와 딸을 위하여 소호헌을 물려 주었다고 한다.
(이고의 생몰년은 미상이나, 딸을 혼인시킨 후 일찍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서해는 사림의 신망을 받았으나 2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문집으로 《함재집》이 있다.
- 참고 : 서해와 부인 고성 이씨에 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