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림 문화유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lassics
이동: 둘러보기, 검색
(관련 내용)
(의의)
18번째 줄: 18번째 줄:
 
====의의====
 
====의의====
 
#소호헌은 드물게 남아있는 임진왜란 전에 지어진 민가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장식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소호헌은 드물게 남아있는 임진왜란 전에 지어진 민가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장식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건물을 화려하게 지었으나 조선시대의 건축물은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실용적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소호헌의 화려함을 고려하면 고려시대 건축의 특징이 조선 초기<ref>조선 후기 정조(正祖,1752~1800)때까지도 건물에 치장을 많이 해서 문제라는 내용을 조선왕조실록에서 볼 수 있다.</ref>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고려시대에는 건물을 화려하게 지었으나 조선시대의 건축물은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실용적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소호헌의 화려함을 고려하면 고려시대 건축의 특징이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성은 이이의 제자이나 부친은 이황의 제자인 점을 고려하였을 때, 부자가 서로 다른 학설을 지닌 성리학의 대가에게 사사받은 보기 드문 가문이다. 또한 안동은 퇴계학파의 본향인데, 소호헌과 서성의 태실인 약봉 태실이 있는 것으로 추측컨데 조선 후기의 탕평(蕩平)이 안동에서도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있다.
 
#서성은 이이의 제자이나 부친은 이황의 제자인 점을 고려하였을 때, 부자가 서로 다른 학설을 지닌 성리학의 대가에게 사사받은 보기 드문 가문이다. 또한 안동은 퇴계학파의 본향인데, 소호헌과 서성의 태실인 약봉 태실이 있는 것으로 추측컨데 조선 후기의 탕평(蕩平)이 안동에서도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있다.
  

2021년 4월 28일 (수) 04:14 판

안동 소호헌

관련 내용

정의

인물

건물

의의

  1. 소호헌은 드물게 남아있는 임진왜란 전에 지어진 민가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장식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 고려시대에는 건물을 화려하게 지었으나 조선시대의 건축물은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실용적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소호헌의 화려함을 고려하면 고려시대 건축의 특징이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서성은 이이의 제자이나 부친은 이황의 제자인 점을 고려하였을 때, 부자가 서로 다른 학설을 지닌 성리학의 대가에게 사사받은 보기 드문 가문이다. 또한 안동은 퇴계학파의 본향인데, 소호헌과 서성의 태실인 약봉 태실이 있는 것으로 추측컨데 조선 후기의 탕평(蕩平)이 안동에서도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있다.

네트워크 그래프

안동 임청각

관련 내용

정의

인물

건물

의의

네트워크 그래프

서성선생 묘

관련 내용

정의

인물

건물

의의

네트워크 그래프

관계성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