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훈 과제1 임청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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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집은 철도가 나기 전까지는 풍수지리적으로 아주 길지였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안채 동북쪽 모퉁이의 방은 세 명의 정승을 낳는 방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로도 2명의 정승이 나왔는데, 특이한 것은 이 집안의 며느리가 낳은 아들이 아닌 딸들이 친정에 출산하러 와서 낳은 아이들만 정승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 + | 이 집은 철도가 나기 전까지는 풍수지리적으로 아주 길지였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안채 동북쪽 모퉁이의 방은 세 명의 정승을 낳는 방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로도 2명의 정승이 나왔는데, 특이한 것은 이 집안의 며느리가 낳은 아들이 아닌 딸들이 친정에 출산하러 와서 낳은 아이들만 정승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 명은 류심춘(柳尋春, 1762-1834, 류성룡의 후손), 나머지 한 명은 불명. |
2021년 4월 29일 (목) 14:28 판
안동 임청각(安東 臨淸閣, 보물 제182호)
개요
이 건물은 1519년 조선 중종 때 문신인 이명(李洺)이 지었다.
안채와 별채, 안행랑체와 바깥행랑체가 用자를 누인 듯한 형태로 연결된 독특한 구조의 대저택이다.
노비들이 사는 바깥행랑체와 주인이 사는 안채는 2.5m의 높이 차이가 있어 신분에 따른 위계질서를 반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이 집에서 배출되었다.
이 사실을 안 일본 관리들이 약 50여칸의 행랑채와 부속채를 철거하고 중앙선 철로를 내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2016년부터 옛 모습 그대로를 복원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2025년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들
이 터에는 원래 법흥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집 앞에 7층 전탑(국보16호, 통일신라시대)이 그 증거로 우뚝 서있다.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이황이 스무 살에 쓴 것이라고 한다.
이 집은 철도가 나기 전까지는 풍수지리적으로 아주 길지였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안채 동북쪽 모퉁이의 방은 세 명의 정승을 낳는 방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로도 2명의 정승이 나왔는데, 특이한 것은 이 집안의 며느리가 낳은 아들이 아닌 딸들이 친정에 출산하러 와서 낳은 아이들만 정승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 명은 류심춘(柳尋春, 1762-1834, 류성룡의 후손), 나머지 한 명은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