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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신라 9세기 불교조각== | + | =='''통일신라 9세기 불교조각'''== |
인도의 불교와 미술은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렇기에 한국 고대불교조각(삼국~통일신라)에서 중국 남북조시대~당대(唐代) 불교조각의 영향이 나타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고대 중국 불교조각은 인도 불상의 전입기를 거쳐 점차 중국적인 특징이 불상에 표현되기 시작된다. 한국 고대불교조각에서 통일신라 9세기는 중국 당나라 불교조각 양식의 영향이 받아 신체의 양감과 비만함이 강조되는 시점이다. 중국 당나라 불교조각은 외래 불교조각의 수용과 융합의 시기를 거친 고대 중국불교 조각의 '''전성기'''로 정의된다. 안동 안정사 석조여래좌상, 안동 안기동 석조여래좌상,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은 당나라 불교조각의 풍만함과 유연한 신체표현의 영향을 받은 통일신라 9세기 불상이다. | 인도의 불교와 미술은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렇기에 한국 고대불교조각(삼국~통일신라)에서 중국 남북조시대~당대(唐代) 불교조각의 영향이 나타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고대 중국 불교조각은 인도 불상의 전입기를 거쳐 점차 중국적인 특징이 불상에 표현되기 시작된다. 한국 고대불교조각에서 통일신라 9세기는 중국 당나라 불교조각 양식의 영향이 받아 신체의 양감과 비만함이 강조되는 시점이다. 중국 당나라 불교조각은 외래 불교조각의 수용과 융합의 시기를 거친 고대 중국불교 조각의 '''전성기'''로 정의된다. 안동 안정사 석조여래좌상, 안동 안기동 석조여래좌상,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은 당나라 불교조각의 풍만함과 유연한 신체표현의 영향을 받은 통일신라 9세기 불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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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le:금동미륵보살입상.jpg|중국 | + | File:금동미륵보살입상.jpg|금동미륵불입상, 3세기 말-4세기 초, 중국 산서성 삼원현 출토, 藤井斉成会有鄰館 소장. |
File:중국_여래좌상_4세기.JPG|금동여래좌상, 오호십육국 4세기, 국립도쿄박물관 소장 (직접촬영) | File:중국_여래좌상_4세기.JPG|금동여래좌상, 오호십육국 4세기, 국립도쿄박물관 소장 (직접촬영) | ||
− | File:.jpg| | + | File:용문석굴_봉선사동.jpg|용문석굴 봉선사동 본존불, 당 675년 (출처: https://heritage.unesco.or.kr/) |
File:아미타삼존불감.jpeg|아미타삼존불감,당 장안3년(703년), 중국 산서성 서안 보경사, 국립도쿄박물관 소장 (직접촬영) | File:아미타삼존불감.jpeg|아미타삼존불감,당 장안3년(703년), 중국 산서성 서안 보경사, 국립도쿄박물관 소장 (직접촬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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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 + | =='''고려 전기 불교조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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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세기 후반에서 9세기에 걸쳐 나타나는 중국 당나라 양식의 영향을 받아 양감과 비만함이 강조된 불상 양식은 경상북도 지역에서 고려 초까지 지속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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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제켈 저, 이주형 옮김, 『불교미술』, 예경, 2007.<br> | 디트리히 제켈 저, 이주형 옮김, 『불교미술』, 예경, 2007.<br> | ||
배재호(배진달), 『중국의 불상』, 일지사, 2005. <br> | 배재호(배진달), 『중국의 불상』, 일지사, 2005. <br> | ||
+ | 최성은, 『고려시대 불교조각 연구』, 일조각, 2013.<br> | ||
문화재청 <br> | 문화재청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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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2일 (화) 23:14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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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통일신라 9세기 불교조각
인도의 불교와 미술은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렇기에 한국 고대불교조각(삼국~통일신라)에서 중국 남북조시대~당대(唐代) 불교조각의 영향이 나타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고대 중국 불교조각은 인도 불상의 전입기를 거쳐 점차 중국적인 특징이 불상에 표현되기 시작된다. 한국 고대불교조각에서 통일신라 9세기는 중국 당나라 불교조각 양식의 영향이 받아 신체의 양감과 비만함이 강조되는 시점이다. 중국 당나라 불교조각은 외래 불교조각의 수용과 융합의 시기를 거친 고대 중국불교 조각의 전성기로 정의된다. 안동 안정사 석조여래좌상, 안동 안기동 석조여래좌상,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은 당나라 불교조각의 풍만함과 유연한 신체표현의 영향을 받은 통일신라 9세기 불상이다.
용문석굴 봉선사동 본존불, 당 675년 (출처: https://heritage.unesco.or.kr/)
안동 안기동 석조여래좌상
안동 안정사 석조여래좌상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
고려 전기 불교조각
고려 전기의 불교조각은 신라하대의 조각 전통과 이를 이은 후삼국 조각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왕조의 출현과 함께 새로운 조각적 양식도 확인된다. 8세기 후반에서 9세기에 걸쳐 나타나는 중국 당나라 양식의 영향을 받아 양감과 비만함이 강조된 불상 양식은 경상북도 지역에서 고려 초까지 지속된다.
옥산사 마애약사여래좌상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참고문헌 및 사이트
디트리히 제켈 저, 이주형 옮김, 『불교미술』, 예경, 2007.
배재호(배진달), 『중국의 불상』, 일지사, 2005.
최성은, 『고려시대 불교조각 연구』, 일조각, 2013.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