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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및 위치
케냐의 정식 국가 명칭은 케냐공화국(Republic of Kenya)이다.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하며 동북부로는 소말리아, 서북부로는 에티오피아(Ethiopia) 및 수단(Sudan)과 접하고 서부로는 우간다(Uganda), 남부로는 탄자니아(Tanzania)와 접하고 있다. 면적은 약 57만㎢로 한반도의 약 2.6배이다. 수도는 나이로비(Nairobi)이며 해발 고도는 약 1,700m이다. 2014년을 기준으로 인구는 4,555만 명이고 수도 나이로비의 인구는 450만 명이다(2012년 현재 평균수명 남 69세, 여 77세). 케냐는 적도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나 열대의 해안 지대부터 사바나 초원, 반(半)사막1), 고산 기후 지대에 이르기까지 지역에 따라 다양한 기후를 보인다. 연평균 기온은 해안 지방이 20.5℃~32℃, 내륙 지방이 9.5℃~23.6℃이다. 고원 지방 및 서부는 강우가 풍부하고 북부는 건조하다.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 느리다.
간략역사
케냐는 BC 1,000년경까지만 해도 원주민은 부시먼족(Bushman) 계통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무렵 아라비아 반도 쪽으로부터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를 경유하여 햄족과 셈족의 인종이 남하해왔다. 인도양 연안에는 기원 초까지도 그리스인·이집트인·페르시아인·아랍인·인도인 등이 들어와 거주하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7세기경에는 아랍인이 정착하여 그들의 마을을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1498년 이후 포르투갈인이 해안지대에 진출해왔다. 16세기에는 서쪽으로부터 반투족이 이동해왔고, 해안지대는 아랍인과 포르투갈인의 쟁탈장이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 영국과 독일의 그리스도교 포교활동이 활발해지면서, 1824년부터 몸바사 부근에 세력을 펴게 되었다. 1888년 영국의 동아프리카 회사가 특허회사로서 이 지역의 무역을 독점하였고, 1895년 영국의 동아프리카 보호령이 되었다. 유럽인의 식민이주가 장려되어 이민자들은 내륙 고원에 백인고원(White Highlands)이라고 일컫는 농업지대를 형성하였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후에 많은 백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고, 1920년 6월에는 인도양 연안을 케냐 보호령으로, 그 밖의 지역을 케냐 식민지로 개칭하였다. 그 후 영국은 우간다 및 탕가니카(현재의 탄자니아)와 공통의 통화(通貨)를 사용하게 하고, 그 밖에도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로써 묶어 통치하였으나 1930년대부터 키쿠유족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이 빈번하게 일어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더욱 강화되었다. 1952년 10월에 시작된 ‘마우마우(Mau Mau)의 투쟁’은 1956년경까지 계속되었는데 이는 유럽인에게 빼앗긴 농토를 되찾기 위한 민족운동이기도 하였다. 조모 케냐타(Jomo Kenyatta)가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이윽고 1963년 12월 12일 케냐는 독립을 성취하였으며, 1964년 12월 12일 공화국을 선언하였다. 1964년 케냐타가 1대 대통령을 취임하면서 시작된 케냐의 독립국가로서 역사는 부침이 심한 특징을 보여왔다. 1980년대까지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경제 성장을 보였던 케냐는 부정부패, 종족 갈등, 범죄, 테러리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하여 국가적 잠재력을 만개하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1979년 집권한 KANU당의 모이 대통령(Daniel Arap Moi)은 24년 간에 걸쳐 통치자로 군림했는데, 이 기간 동안 부정부패와 인권탄압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며, 영국, 미국, IMF 등은 이러한 이유로 케냐에 대한 경제 원조와 차관 제공을 중단하기도 하였다. 모이 대통령의 독재 체제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레인보우 연합당(NARC)의 음와이 키바키(Mwai Kibaki)가 승리하면서 끝이 났다.
지리
케냐의 국토는 크게 네 지역으로 분류되는데, 빅토리아호 부근의 서부 지역은 완만한 고원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중부 고원지대는 동아프리카지구대가 통과하는 지역이다. 북부 지역은 건조 지역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며, 동부해안 지역은 반건조 평원지대이다. 특히 동아프리카지구대(Great Rift Valley)가 통과하는 중서부 지역은 지질적으로 불안정하며 높은 산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산만도 20개(최고봉은 Mt. Kirinyaga로 5,199m)에 이른다. 케냐의 기후 지역은 크게 북부의 건조기후대와 남부의 사바나기후대로 나누어지는데, 북동부 지역에서는 사하라 사막에서 이어지는 건조기후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반면 수도인 나이로비를 포함한 남부 지역은 건기와 우기가 교차하는 열대 사바나 기후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지적으로는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는데, 빅토리아호 부근의 서부 지역은 비교적 강수량이 풍부한 특색을 나타내며, 인도양과 접하고 있는 해안지역에서는 고온 다습한 전형적인 열대기후의 특색이 나타난다. 또한 동아프리카지구대가 통과하는 고원지대에는 고산 기후적인 특성도 나타나고 있다. 해안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20.5°~31°C 정도이지만, 내륙지방의 연평균 기온은 7°C~27°C 정도로 내륙으로 갈수록 열대 기후의 특색이 감소한다.
사회
주민
케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8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인구의 집중지는 서부의 빅토리아호 부근, 나이로비를 중심으로 한 지역, 그리고 동부 해안 지역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수도인 나이로비로 약 280만 명(2005년)의 인구 수를 기록하고 있고, 2위는 몸바사로 82만 명 정도이다. 인구 증가율은 약 2.8%(2007년 추계)로 매우 높은 편으로, 인구 추계에 따르면 케냐의 전체 인구는 2025년 경 약 5,000만 명에 이르고, 2050년 경에는 6,500만 명에 도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평균수명은 55.3세(남자 55.2세, 여자 55.4세)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다. 인구의 42.1%가 15세 미만이고 단지 2.6%만이 65세 이상으로 인구 구조 상 전형적인 피라미드 형을 보여주고 있다. 케냐에는 43개 부족이 있는데, 최대 부족은 반투어 그룹인 키쿠유족(704만)이다. 그외에 루야족(448만), 루오족(416만), 칼렌지족(384만), 캄바족(352만), 키시족(192만), 메루족(192만), 기타 종족(480만), 비아프리카계(32만) 등이 있다. 공용어는 영어이고 스와힐리어가 통용된다. 종교는 개신교가 45%, 가톨릭이 33%, 이슬람교가 10%, 토착 신앙이 10%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
케냐의 음식문화는 각 지역의 자연환경적 특색에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해 왔다. 케냐 고원 지역에 살고 있는 키쿠유족의 주식은 콩과 옥수수이다. 옥수수 가루를 물에 개어 만든 것을 '우갈리(Ugali)'라고 부르는데 동아프리카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음식이다. 해안에 거주하는 스와힐리인들은 코코넛 열매를 이용해 지은 밥인 '왈리(Wali)'를 튀긴 생선과 쇠고기 수프인 '카랑가(Karanga)'등과 함께 먹는다. 사바나 지역에 거주하면서 유목생활을 하는 마사이족 등은 우유와 소의 피를 섞어 마시기도 하고, 소피를 응고시킨 것을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케냐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 중의 하나는 성년식이다. 케냐의 마사이 족은 이 성년식을 어린 전사의 지위에서 성년의 삶으로 넘어가는 통과의례로 간주한다. 전쟁의 상징인 붉은 황토색이 평화의 상징인 하얀 줄무늬로 대체된다. 여성 할례의식 또한 뿌리깊은 전통과 함께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케냐는 1990년 일부 형태의 할례를 금지했지만, 매년 약 6,000명 이상의 케냐 여성이 할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케냐에서 스포츠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 육상경기의 장거리 종목은 아주 뛰어나 올림픽, 육상선수권 대회, 마라톤 대회에서 수 많은 메달을 획득했다. 크리켓은 1996년 월드컵 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축구도 월드컵축구대회에 진출할 만큼 실력이 좋다. 럭비 역시 인기 있는 스포츠 중의 하나이다. 매년 파라다카르 랠리를 여는 곳이기도 하다. 시골에서는 구멍이 뚫리고 반으로 나누어진 나무판자로 바오(Bao)라는 게임을 한다.
경제
케냐는 독립(1963) 후 4년 간의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7.4%로, 동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제조공업이 발달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심한 가뭄 및 1997년 말부터 1998년까지 발생한 엘니뇨현상으로 농작물이나 기간시설에 심각한 피해가 생기고 치안이 악화되어 2000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3%에 머물렀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경제 정책들이 성과를 거두면서 전반적인 경제회복이 이루어졌는데, 2006년에는 GDP 237억달러에 실질 GDP 성장률 6.1%를 기록하였다. 분야별 GDP 구성을 보면, 농업이 24.2%, 정부서비스가 14.4%, 무역·호텔·요식업이 12.2%, 운수·저장·통신업이 10.9%, 제조업이 10.5%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은 케냐의 최대 수입 산업이자 최대 고용산업인데, 차와 원예가 가장 큰 외화벌이의 원천이다. 제조업 분야는 2004년 이후 서서히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데, 설탕과 소다회가 주요 생산품이다. 관광업 분야는 2004년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2006년 수출은 35억 3400만 달러, 수입은 67억 5500만 달러로 무역수지 적자가 32억 21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주로 수출에 비해 수입제품에 대한 국내수요의 빠른 증가세에 기인한다. 원예, 차, 철강, 커피, 소다회가 총수출의 60%를 차지하며, 천연석유, 석유제품, 산업기계, 자동차 등이 총 수입의 50%를 차지한다. 주요 수출대상국은 우간다, 영국, 미국, 네덜란드이며, 주요 수입대상국은 UAE,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이다. 2006년 기준으로 총연장 약 2,778km의 철도가 부설되어 있고, 대부분이 우간다와 탄자니아로 연결되어 있다. 도로의 총연장은 6만 3,265km인데(도시간 도로만 포함), 이 중 8,933km만이 포장되어 있다. 인도양 연안의 몸바사 항구, 빅토리아호의 키수무 항구 등의 항만시설과 선박은 모두 동아프리카 철도항만청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우간다와 탄자니아와의 공동경영에 의한 동아프리카항공(EAA)도 운항하고 있다. 연평균 80만 명 정도의 여객이 나이로비와 몸바사 국제공항을 이용한다.
한국과의 관계
케냐는 한국과 1964년 2월 7일에 수교하여 2007년 7월 서울에 대사관을 설립하였다. 의료협정(1973), 무역협정·경제기술협력협정(1977), 문화협정(1980), 항공협정(1981) 등이 체결되었다. 1973년 한국의 의사가 파견되었으며 한국 상사(商社)들도 진출해 있다. 대통령 전두환(1982), 대통령특사 한완상(1994), 국회의장 박준규(1991), 환경처장관 권이혁(1992)이 케냐를 방문했고, 케냐 대통령 모이(1990), 외무장관 무쇼카(1994), 과학기술장관 코네스(1999), 통상산업장관 비요트(2001)가 방한하였다. 2006년 기준으로 교민 및 체류자는 약 550명으로 이 중 나이로비 지역에 약 480명, 몸바사 지역에 약 40명, 기타 지역에 약 30명이 거주하고 있다. 2006년 우리나라의 대케냐 수출액은 2억 480만 달러이고 수입액은 512만 달러로 무역 흑자 1억 9,968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은 열연강판, 합성수지, 타이어, 석유화학제품, 폴리에스테르직물, 재봉기, 축전기 등이며, 케냐의 수출품은 마사, 커피, 어류의 필레트 등이다. 1968~2006년까지 우리나라의 대 케냐 투자는 11건에 347만 달러이며, 케냐의 대한 투자 건수는 전무하다.
※ 위의 내용은 주케냐 대한민국대사관, 두산백과, 위키백과 등에서 얻은 정보에 기반함
바깥고리
연계 정보
관계 | 대상 문서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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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s | 교육제도:케냐 | 케냐 교육과정, 2014년 조사 보고 |
uses | 교과서목록:케냐 | 케냐 사회과 교과서 총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