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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Bulgaria) | |
인구 | 7,037,935명(20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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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110,879㎢ |
언어 | 불가리아어 |
통화 | 레바(Leva, Lv) |
국명 및 개관
정식명칭은 불가리아 공화국이다. 동부 유럽 발칸반도의 남동부에 있는 나라로서 터키와 접경한다. 터키의 동유럽 진출 통로에 입지하고 있기 때문에 1396년부터 500년간 오스만투르크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다. 1878년 러시아· 투르크 전쟁 결과 자치공국이 되었고 1908년 불가리아 왕국으로 독립하였다. 1945년 공산당이 집권하고 1946년 왕정제를 폐지하여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이 되었다가 1989년 동유럽 민주화의 영향으로 공산정권이 붕괴된 후 1991년 신헌법을 채택하여 불가리아 공화국이 되었다.
한국과의 관계
불가리아는 북한과 전통적으로 우방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우리나라와는 1980년대 후반부터 구소련의 개방· 개혁 추진에 따른 불가리아의 대(對) 한국관계 개선 의지와 한국의 북방정책으로 급속히 관계가 개선되었다.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며, 북한과는 1948년, 한국과는 1990년 3월 23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1988년 11월 대한무역진흥공사와 불가리아 상공회의소는 상호무역사무소 개설에 합의하였으며, 1989년 4월에는 소피아에, 7월에는 서울에 양국 무역사무소가 설치되었다. 1990년 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 1994년 문화협정, 1995년 항공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 1996년 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1991년 5월 불가리아 외무장관 볼코프와 재무장관 코스토프가 방한한 후 1995년 4월 젤레프 대통령이 방한하는 등 불가리아 인사의 방한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은 1990년 2월 홍순영 대사(수교 교섭차)가 불가리아를 방문한 이후 1999년 5월 김용준 헌법재판소장, 2002년 11월 박관용 국회의장, 2006년 6월 한명숙 국무총리등의 여러 주요 인사가 불가리아를 방문하였다.
1992년 3월에는 소피아 대학 동양학 센타에 한국학 연구 지원을 위한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었고 9월에는 소피아에서 ‘한국문화의 날’ 행사가 열려 음악· 미술· 무용· 영화전시회가 거행되었으며, 11월에는 불가리아 체임버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이 있었다. 2003년 6월 소피아대 한국학과 건물 증축 사업이 완료되었으며, 2000년 10월부터 정부파견 태권도 사범이 활동 중이다.
우리나라는 불가리아와의 교역에서 1992년부터 지속적인 무역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수출액이 5000만 달러에 이르렀으나 1996년 이후 불가리아의 경제 불안, 우리나라의 금융위기 등으로 인해 급격히 감소하여 1999년도에는 1900만 달러로 감소하였다. 2000년도 이후 교역규모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4년도에는 수출 2억 7900만 달러, 수입 1억 9백만달러의 실적을 기록하였다. 2006년 대 불가리아 수출은 전년 대비 6.3% 감소한 1억 8120만 달러, 수입은 135.4%가 증가한 5660만 달러로 무역수지는 1억 246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였다. 불가리아의 주요 대한(對韓) 수출품목은 가성소다, 화학원료, 인조필라멘트, 담배, 알루미늄 제품 등이며 수입품목은 자동차, 어류, 전자제품, 기계제품 등이다. 한국의 대불가리아 직접투자는 2006년말 기준으로 총 8200만 달러로 집계되고 있다. 불가리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물산, LG전자, 대우, 현대중공업, (주)아이피에스 등이 있다.
출처 및 참고문헌
연계 정보
관계 | 대상 문서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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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s | 교육제도:불가리아 | 불가리아 교육과정, 2016년 조사 보고 |
uses | 교과서목록:불가리아 | 불가리아 사회과 교과서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