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시(會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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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2번째 단계 시험.

개설

문과와 무과에서 회시는 초시(初試)·복시(覆試)·전시(殿試)의 3단계의 절차를 거치는 식년시와 증광시에만 있었다. 복시라고도 하였다. 회시에 합격해야 전시에 응시할 수 있었다. 생원진사시와 잡과는 초시·회시 2단계의 절차만 있어 회시는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는 시험이었다. 문과회시의 정원은 33명이고, 무과회시는 28명이었다. 생원시와 진사시는 각각 100명씩이었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과거 중 회시의 절차는 식년시 문무과와 증광시 문무과, 생원진사시와 잡과에서 시행되었다. 3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식년시와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실시되는 증광시의 시험 절차와 방법은 동일하였다.

식년의 경우 모든 과거 시험이 정월부터 5월 사이에 몰려 있어 농사철에 응시자들이 내왕하는 것이 농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1472년(성종 3) 중국의 예에 따라 초시는 식년 전해인 인(寅)·신(申)·사(巳)·해년(亥年)의 가을에 보고, 회시는 자(子)·오(午)·묘(卯)·유년(酉年)의 봄에 보게 하여(『성종실록』 3년 4월 8일) 회시의 법이 갖추어졌다.

문과초시 합격자가 회시에 응시하려면 응시자로 등록하는 절차인 녹명(錄名)을 해야 했다. 녹명에 앞서 『경국대전』과 『가례』를 강하게 하는 전례강(典禮講)을 통과해야 했다. 전례강을 통과한 사람에게 합격증인 조흘첩(照訖帖)을 주는데 이 첩문이 없으면 녹명할 수 없었다.

시험 장소는 1소와 2소로 나뉘는데 응시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시관 또는 부자관계로 상피(相避) 관계에 있을 경우 다른 시험장에서 응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험장마다 종2품 이상의 관원 3명과 3품 이하의 관원 4명이 시험관으로 파견되었다.

문과회시는 240명의 초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시험 보게 하여 33명을 선발하여 전시에 응시하는 자격을 주었다.

식년문과회시는 초장·중장·종장 세 단계의 시험을 거쳐야 했다. 초장은 강경시험으로 사서삼경을 배송하였다. 『주역』과 『춘추』 2경과 자(子)·사(史)를 강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허락하였고 이 경우 점수를 배로 주었다. 중장은 제술시험으로 부(賦)·송(頌)·명(銘)·잠(箴)·기(記) 가운데 1편, 표(表)·전(箋) 중에 1편을 선택하여 모두 2편을 작성하였다. 종장은 대책(對策) 1편이었다.

증광문과회시는 제술시험으로 초장·종장 2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초장에서는 부 1편, 표와 전 중에서 1편을 선택하여 2편을 작성하였다. 종장에서는 대책(對策) 1편이었다. 사서삼경의 강경시험이 없었다.

무과회시에서는 초시 합격자 190명을 대상으로 시험 보게 하여 28명을 선발하였다. 시험 장소로는 모화관과 훈련원이 주로 사용되었다. 무과의 녹명은 병조에서 훈련원 소속 7품 이하의 관원과 함께 실시하였다.

시험 과목은 목전(木箭)·철전(鐵箭)·편전(片箭)·기사(騎射)·기창(騎槍)·격구(擊毬) 6가지 무예와 강서시험을 보았다. 강서는 사서오경 중 1책, 『무경칠서(武經七書)』 중 1책, 『통감(通鑑)』·『병요(兵要)』·『장감박의(將鑑博議)』·『무경(武經)』·『소학(小學)』 중 1책,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시험 보았다.

생원진사시는 초시 합격자 각 700명을 대상으로 회시에서 각 100명씩 선발하였다. 회시 응시 전에 성균관의 박사 이하의 관원이 예문관·승문원·교서관의 7품 이하 관원 및 감찰과 함께 『소학(小學)』·『가례(家禮)』를 펼쳐 놓고 읽게 하는 학례강(學禮講)을 통과해야 했다. 생원시의 과목은 오경의(五經義)·사서의(四書疑) 각 1편씩 2편이었다. 진사시는 부 1편, 고시(古詩)·명(銘)·잠(箴) 중 1편이었다. 시험 장소는 대체로 1소는 예조, 2소는 성균관인 경우가 많았다.

변천

조선후기에 가면 시험 과목이 축소되어 문과복시의 초장에서 4서만을 시험 보게 하고, 중장에서는 부 1편으로 하였다. 무과복시는 임진왜란 이후에 조총(鳥銃)과 편추(鞭芻)가 추가되고 기사는 기추(騎芻)로 변화되었다. 『속대전』에서는 격구가 폐지되어 목전·철전·편전·기추·기창·조총·편추 7가지와 강서시험을 보았다. 생원시는 사경의 1편, 사서의 1편으로 축소되었고, 진사시는 명과 잠이 폐지되고 부와 시 1편으로 간소화되었다. 19세기 후반에 가면 생원시와 진사시의 합격 인원이 급증하여 정원 100명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이성무, 『한국의 과거제도』, 집문당, 1994.
  • 최진옥, 『조선시대 생원 진사 연구』, 집문당, 1998.
  • 원창애,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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