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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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문이나 시호를 청할 때 자료로 제공하기 위해 고인의 일생 사적을 상세하게 적은 글.

개설

행장(行狀)은 본래 한 사람의 일생 동안의 행적을 기록하는 전기체(傳記體)에 속한다. 다만, 묘비문(墓碑文)이나 시호(諡號)를 청할 때 이용된다는 점에서 실용성이 강하고, 또 서사와 기술이 극히 상세하다는 특징이 있다.

내용 및 특징

‘장(狀)’은 전(傳)과 비슷하지만, 그 기능은 다르다. 명나라 오눌(吳訥)의 『문장변체(文章辨體)』와 서사증(徐師曾)의 『문체명변(文體明辯)』에서 전과 장에 대해 논한 것을 종합하면, 전은 덕행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거나 혹은 천한 사람일지라도 본받을 만한 점이 있을 때 그들을 드러내어 본받고 경계하도록 사대부들이 지은 것이다. 그에 비해 장은 문생이나 오랜 친구가 그의 행업(行業)을 조목조목 적어 사관에게 올리거나, 혹은 명(銘)·지(誌)를 구하려고 지은 것이다.

변천

가장 이른 시기의 행장으로는 한나라 때에 호간(胡干)이 지은 「양지백행장(楊之伯行狀)」이 있다. 또 행장 중의 명편으로는 당나라 유종원의 「단태위일사장(段太尉逸事狀」을 들 수 있다. 일사장은 행장의 변체로, 일사 즉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사(正史)에 제한되지 않고 도리어 재료 선택과 가공이 자유롭다. 행장은 또 인술(引述)이나 행략(行略)이라 칭하기도 한다.

행장의 변화 가운데 특이한 점으로는 송나라 때 이후부터 돌아가신 어머니의 행장을 기록하는 풍조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 즉 선비(先妣)의 행장이 하나의 문체로 성립되었다. 선비행장은 묘지명을 의뢰하기 위해 만든 경우도 있지만, 묘지명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자식으로서의 감정과 추억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 뒤 원나라와 명나라 때는 선비행장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명나라 말기의 문학가 귀유광의 「선비사략」은 그러한 풍조 속에서 나온 작품인데, 다른 어떤 선비행장보다도 문학성이 풍부하다. 그런 까닭에 청나라의 문학가 요내(姚鼐)는 『고문사류찬』의 전장류에 이 작품을 특별히 선별해 넣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행장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사대부 가문에서는 집안 여성의 삶을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내의(內儀)를 작성하기도 하였다(『성종실록』 15년 1월 4일). 조선시대 후기에는 여성을 위한 행장이 차츰 늘어났다. 1762년(영조 38) 신대우(申大羽)는, 다섯째 고모가 남편 이익준(李翼俊)이 을해사옥으로 유배되자 자결하게 되는 과정을 「이오고술(李五姑述)」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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