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법석(轉經法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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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을 전독하며 호국안민을 기원하는 불교 법회.

개설

전경도량[轉經道場]은 장경도량[藏經道場]의 다른 표현이며, 호국안민을 위해 도량을 설치하여 경전을 전경하는 의식이다. 고려시대 때 경전을 새로 조성하여 개최하기 시작한 이래 봄과 가을 6,7일 동안 전경도량을 열어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고 이름 있는 승려들을 청해 재를 베풀고 경전을 전독하게 하였다. 조선초기에는 법석의 형태로 존속되기도 했지만 공식적인 전경도량의 설행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연원 및 변천

전경은 경전을 독송(讀誦)하는 것을 말하는데, 『고승전』에는 경전을 읊는 것을 전독(轉讀)이라고 하고, 노래로 찬탄하는 것을 범음(梵音)이라고 하고 있다. 고려시대 때는 전경 의식을 장경도량이라고 하였다. 전경도량 때 『대반야경』과 같이 긴 경전은 경전의 전부를 읽지 않고 경전의 처음과 중간과 끝의 몇 행만을 읽거나, 아니면 몇 쪽의 독경장을 별도로 읽는데, 이를 전경이라고 한다. 축으로 만든 경전을 펼치는 것을 전경이라고도 한다. 호국안민을 위해 국가적으로 설행된 고려시대 전경의식은 봄과 가을 정기적으로 1회에 6~7일에 걸쳐 낮과 밤에 진행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선왕(先王)·선후(先后)의 추후 천도를 위한 법석이 전경의 형태로 치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적인 전경법석의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도 전경법석은 성행하였을 것이다. 1446년(세종 28) 왕비를 위한 불경 편찬을 반대하는 집현전의 상소는 경전이 조성(造成)되면 반드시 전경법석이 마련될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세종실록』 28년 3월 28일). 국가의 상례와 제례 등에서 불교가 배제되기 시작한 16세기 초반 이후에는 국가적인 전경 의식은 행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전경 의식은 경전 독경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신앙 형태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단지 현재는 공식적으로 도량을 설치하는 형태를 갖추지 않은 채 법당 안에서 집단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신앙과 수행의 차원으로 행해지고 있다.

절차 및 내용

전경도량이 도량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고 내전에서 주로 행해졌으므로 상단에 불상을 안치하는 설단 의식이 행해지고, 불보살을 청하여 공양을 올리며, 청한 승려들에게 재를 베푸는 순서로 시행되었다. 서역 지방이나 중국 등에서 행해진 것으로 보이는 전경 의식과 한국의 그것이 동일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때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초기 법석의 의식 절차를 기록한 『작법절차(作法節次)』에 따르면 경전의 염송, 예참, 다라니 염송 등이 조선시대 전경도량에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전경도량은 6~7일간 주야로 진행되었는데, 도량에서는 다음과 같은 축원이 행해졌다.

"재앙은 햇살 앞에 눈 녹듯 사라지고 복은 오직 천가지 만가지로 이르러서 하늘의 아들이 된 자는 크게 장수의 경사를 누리게 하시고, 끝없이 백성을 보존하여 임금의 덕을 칭찬하고 그리워하는 경사를 앉아서 받게 하소서. 비오고 볕 나고 덮고 춥고 바람 부는 것은 그 절기의 차례를 따라서 움직이고, 아름다운 왕의 교화가 이루어져서 사바(현실세계)의 이웃 나라들이 업신여김이 없게 하소서. 근본은 만년을 지탱하고, 기강은 온 천하를 규율하게 하소서. 우러러 부처님의 원만한 깨달음을 대하오니, 간절히 기도하는 지성이 견딜 수 없습니다."

또한 전경의 경전으로는 하나의 경전만이 채택된 것이 아니었다. 『법화경』·『열반경』·『금광명경』·『무량수경』 등을 전독한 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전독의 대상은 호국안민을 위한 경전이나 왕의 치세가 오래되기를 기원하는 다양한 경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동문선(東文選)』
  • 「고승전(高僧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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