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생도(雜學生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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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서울의 잡학 관청 및 지방 관서에서 역학, 의학, 음양학, 율학 등의 잡학을 공부하는 학생.

개설

조선시대에 잡학생도(雜學生徒) 교육은 중앙에서는 사역원, 전의감과 혜민서, 관상감, 형조 율학청 등 잡학관청에서 실시하였으며, 지방에서는 8도 군현, 즉 부(府)·대도호부(大都護府)·목(牧), 도호부(都護府), 군(郡), 현(縣)의 관아에서 실시하였다. 잡학생도는 잡학 취재와 잡과 시험을 통해 기술직에 진출하였다.

담당 직무

조선시대의 잡학 교육은 중앙은 물론 지방에서도 이루어졌다. 중앙에서 잡학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는 그 분야를 총괄하는 중앙 관서로서 역학은 사역원, 의학은 전의감과 혜민서, 음양학은 관상감, 율학은 형조 율학청에서 생도 교육을 실시하였다. 지방의 경우는 부·대도호부·목, 도호부, 군, 현 등의 관아에서 잡학생도 교육을 담당하였다. 중앙과 지방 관서에서 역학(한학·왜학·여진학)과 의학·율학 분야의 잡학생도를 교육시켰는데, 몽학과 음양학은 중앙 관서에서만 교육을 실시하였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잡학생도는 전체 6,605명에 이른다. 전공별로 보면, 역학 236명, 의학 3,182명, 음양학 45명, 율학 3,142명이다. 의학과 율학의 비중이 높다. 중앙과 지방의 비율을 보면, 음양학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지방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다. 지방에서의 잡학 교육은 지방에서 실질적인 활용이 가능한 분야 위주로 기술학 육성이 이루어져 생명을 다루는 의학과 법률을 적용하는 율학이 역학을 크게 앞선다.

몽고학·왜학·여진학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그 세공 생도에게는 호내(戶內)의 인정(人丁) 2명을 지급하거나, 호내에 인정이 없는 자에게는 호(戶)별로 봉족 1명을 주어 학문에 전념하도록 하였다(『성종실록』 9년 11월 21일).

변천

『경국대전』의 잡학생도 규정은 『속대전』에 이르러 변화 양상을 보여 준다. 시대의 흐름과 수요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지방 역학생도의 변화를 보면, 제주에 한학생도 15명, 왜학생도 15명, 거제에 왜학생도 15명을 새롭게 추가하였다. 반면에 10명의 왜학생도가 있던 제포와 염포는 폐지하여 전체 지방 역학생도는 181명이 되었다.

중앙의 분야별 잡학생도 정원이 크게 늘어났다. 사역원의 경우 한학생도 40명이 늘어 75명, 몽학생도 25명이 늘어 35명, 왜학생도 25명이 늘어 40명, 청학생도 34명이 늘어 54명으로 되었다. 모두 124명이 늘어나 전체 80명에서 204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의학생도의 숫자도 늘어났다. 전의감의 경우 6명이 늘어 56명, 혜민서는 2배가 넘는 32명이 늘어 62명이 되었다. 모두 80명이 118명으로 증가하였다. 관상감에서만 잡학 교육이 이루어졌던 음양학생도 숫자도 늘어났다. 천문학은 20명 늘고, 지리학은 5명 줄었다. 모두 15명이 늘어 45명에서 60명으로 증가하였다. 율학의 경우는 40명이 늘어 80명이 되었다.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법률을 적용하는 율학의 수요가 급증했음을 보여 준다. 전체적으로 잡학생도 숫자가 늘어났지만, 증가는 중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뿐 지방 생도 숫자는 일부 역학을 제외하고는 달리 변화가 없었다. 잡학생도 교육에서 중앙 집중도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이존희, 『조선시대지방행정제도연구』, 일지사, 1990.
  • 이남희, 「조선전기 기술교육에 관한 일연구」, 『국사관논총』100, 2002.
  • 이남희, 「조선후기 잡과교육의 변화와 특성」,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13-1, 2014.
  • 이동기, 「조선후기 중인교육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8.
  • 이성무, 「조선초기의 기술관과 그 지위」, 『혜암유홍열박사 화갑기념논총』,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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