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굴사(演窟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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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대비가 창건한 왕실원당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한산에 있던 절.

개설

연굴사(演窟寺)는 조선전기에 인수대비(仁粹大妃)가 궁궐과 가까운 북한산 중턱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불당(內佛堂)·복세암(福世菴) 등과 함께 선왕의 명복을 기원하고 복을 비는 원찰(願刹)로서 국가와 왕실의 지원을 받았다. 절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는 신하들의 반대가 자주 있었지만 연산군이 모두 거부하였다. 절의 위치가 궁궐을 내려다보는 곳이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지만 왕실의 지원은 계속되었다. 16세기 초 인수대비의 사망 이후 쇠락하였다.

내용 및 특징

(1) 창건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성종(成宗)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원찰로 창건한 듯하다. 인수대비는 조선전기의 문신 한확(韓確)의 딸로, 1455년(세조 1) 세자빈에 간택되어 수빈(粹嬪)에 책봉되었다. 1470년(성종 1) 둘째아들 잘산군이 성종에 즉위하자 소헌왕후(昭惠王后)로 책봉되고, 이어 인수대비가 되었다. 불교 신앙이 돈독하여 여러 경전을 언해하고 간행하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몽산화상법어략록(蒙山和尙法語略錄)』 언해본(보물 제1012호)의 발문에는 1472년(성종 3) 대비가 선조들의 명복을 빌고 대왕대비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29종의 경전을 간행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간행한 경전 중에 『묘법연화경 권7 언해』(보물 제1225호), 『지장보살본원경』(보물 제1104호), 『진실주집(眞實珠集)』(보물 제1775호) 등이 현존한다.

(2) 조선시대

절이 기록에 등장하는 첫 시기는 1484년(성종 15)이다(『성종실록』 15년 3월 6일). 당시 절의 승려 해운(海雲) 등이 유생들의 학사(學舍)에 난입하여 난동을 피운 일이 있었다. 이에 주범인 학탄(學坦)은 변방의 군사로 보내고, 해운은 연로하므로 연굴사를 떠나도록 하였다.

1492년(성종 23) 도첩제(度牒制)를 개선하라는 상소문에 연굴사가 등장한다. 곧 내불당·복세암·연굴사 등의 승려에게 반승(飯僧)하는 비용과 도첩을 지급하여 운용하는 폐해가 적지 않다는 내용이다(『성종실록』 23년 1월 29일). 이 절들은 공통적으로 왕실의 원찰이다. 궁궐 안 또는 궁궐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왕실의 직접적인 지원과 보호를 받았다. 조선은 숭유억불 시책을 단행하였으나 왕실의 신앙은 이와 같이 변함없었다. 이에 유학자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는데 1500년(연산군 6) 유생(儒生) 6명이 절에 난입하여 불상을 부수는 일이 있었다. 유생들은 모두 형장(刑杖) 100대씩의 처벌을 받았다(『연산군일기』 6년 4월 19일).

1503년(연산군 9)에는 절이 궁궐을 내려다보는 위치라는 신하들의 의견을 따라 복세암과 함께 철거하도록 하였다(『연산군일기』 9년 11월 10일). 그러나 절에 바치는 각종 물품은 예전대로 하도록 하였다. 신하들이 반대하였지만 할머니 인수대비의 원찰이라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연산군일기』 9년 11월 28일). 그런데 이해 12월 철거한 절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도록 하였다(『연산군일기』 9년 12월 1일). 다시 신하들의 반대가 이어졌지만 왕은 인수대비가 내수사(內需司)에 명하여 하는 일이라며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연산군은 승려들의 도성 출입을 금하는 등 억불의 입장이었지만 인수대비의 호불 활동에 대해서는 맞서지 않았다. 오히려 절의 이전 건립을 집요하게 반대하던 신하들을 징계하였고, 1504년에는 대비의 뜻에 따라 도첩을 발급하기도 하였다. 절은 16세기 중엽의 문신 송인(宋寅)의 시 「주과화산군별서응호운작(舟過花山君別墅應呼韻作)」에 등장하지만 이후의 사정은 알 수 없다. 인수대비의 사망 이후 급격히 쇠락한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 『이암집(頤庵集)』
  • 한우근, 『유교정치와 불교: 여말선초 대불교시책』, 일조각, 1993.
  • 이봉춘, 「조선초기 배불사 연구: 왕조실록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 탁효정, 「조선시대 왕실원당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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