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거노비(率居奴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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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집이 거느리는 범위 안에 거주하면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비.

개설

솔거노비(率居奴婢)는 주로 호구식과 관련하여 주인이 거느리고 있는 노비라는 뜻으로 쓰이는 용어이다. 외거노비(外居奴婢)가 주인집과 떨어져 사는 노비를 칭한다는 점에서 서로 반대의 용어로 쓰인다. 그러나 실제 양반가의 호구단자나 준호구에는 솔노비질(率奴婢秩) 등으로 기록되고 있어 의미는 같으나 반드시 솔거라는 용어가 쓰이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내용 및 특징

솔거노비는 외거노비와 함께 거주지를 중심으로 사노비(私奴婢)를 분류할 때 쓰던 노비 종류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거주지와 함께 이들의 노동 형태가 가미되어 분류·정의된 용어이다. 즉 솔거노비는 주인집이 언제든 불러서 사역시킬 수 있는 위치에 거주하면서 주인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비로, 외거노비는 주인집과 분리된 별도의 농업 경영체로서 주인집의 토지를 소작하고 있는 노비로 정의되어 왔다. 이 분류는 김석형(金錫亨)에 의해 솔거노비는 노예로 외거노비는 농노로 규정되고, 또 외거노비가 수적으로 다수였다는 점에 근거하여 조선 봉건제 사회론을 주장하는 기반이 되었고, 이후 많은 경제사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는 노동 형태와 상관없이 벼슬아치나 사대부가 거느리고 있는 노비라는 뜻으로 솔거노비라는 용어가 쓰였다(『세종실록』 6년 4월 5일). 『경국대전』「예전(禮典)」의 호구식(戶口式)에도 주인집의 호에 등재해야 하는 노비를 솔거노비로 칭하고 있으며 이때 부모 중 한 사람도 병기하도록 하고 있다. 부모 중 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어머니를 기재하되 사내종의 양처병산(良妻幷産), 즉 어머니는 양인이나 아버지가 천인이라 천인이 된 경우에는 아버지를 기재하게 되어 있다.

변천

사노비의 규모 면에서 보면 솔거노비보다 외거노비가 다수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17세기부터 사노비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솔거노비보다는 외거노비의 축소 규모가 컸다. 예컨대, 울산호적의 분석에 따르면 울산군 농소면의 경우 1729년(영조 5)에 솔거노비가 555명, 외거노비가 234명이었는데, 1867년(고종 4)에 이르면 솔거노비는 절반 정도의 규모로 축소되었고, 외거노비는 사실상 소멸된 것으로 나타난다. 즉 솔거노비가 규모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까지 사노비의 일반적인 형태로 남아있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김석형, 『조선 봉건 시대 농민의 계급 구성』, 신서원, 1993.
  • 김용만, 『조선시대 사노비 연구』, 집문당, 1997.
  • 이영훈, 「고문서를 통해 본 조선 전기 노비의 경제적 성격」, 『한국사학』9,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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