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유씨(昭儀劉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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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07년(숙종 33) = ?]. 조선의 19대 왕인 숙종(肅宗)의 후궁.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숙종의 후궁

유소의(劉昭儀)는 궁인(宮人)이었으나 1698년(숙종 24) 숙원(淑媛)의 첩지를 받으며 숙종의 후궁에 올랐다.(『숙종실록』 24년 8월 2일) 숙종은 유소의를 숙원에 봉하며 호부에 명령하여 전장(田莊)을 살 값으로 은(銀) 4천 냥(兩), 용도(用度)에 첨가하여 보낼 콩 1백 석(石), 궁방(宮房)의 값으로 쓸 은 2천 냥을 지급하게 하였는데, 이에 대해 사관들은 당시 나라의 저축이 고갈되고 민생이 계속 곤궁했음에도 후궁의 전택 매입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다며 근심하고 한탄하였다. 이듬해인 1699년(숙종 25) 숙안공주(淑安公主) 궁방의 차인(差人)과 유소의 궁방의 도장(導掌)이 백성들에게 세금을 마구잡이로 걷어 들여 문제가 되었는데, 대신들이 이를 비판하자 숙종은 이들을 비호해 주었다.(『숙종실록』 25년 3월 16일) 또 1707년(숙종 33)에는 유소의방에서 삼각산 북쪽 산기슭을 시장(柴場)으로 절수(折受)하여 산을 훼손하는 바람에 사헌부(司憲府)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숙종실록』 33년 8월 29일)

1699년(숙종 25) 단종(端宗) 복위를 기념하며 숙의(淑儀)로 승급되었다.[『숙종실록』 10월 23일 2번째기사] 이어 1702년(숙종 28) 소의(昭儀)에 봉해졌으며,(『숙종실록』 28년 10월 18일),[『승정원일기』숙종 28년 10월 19일] 그로부터 5년 후인 1707년(숙종 33) 세상을 떠났다.[『승정원일기』숙종 33년 4월 8일] 유소의가 세상을 떠나자 숙종은 그녀의 장례를 의빈(儀賓)·종친(宗親) 등 종2품 이상에게만 허가된 예장으로 치루라 명하였다.[『승정원일기』숙종 28년 4월 8일] 유소의는 자식 없이 사망했기 때문에 궁 밖에 신주를 두고 노비의 봉공을 받았다가 정조(正祖) 즉위 직후 왕실의 근검절약방책의 일환으로 모든 것이 국고로 이속되었고 신주는 수진궁(壽進宮)으로 옮겨졌다.(『정조실록』 즉위년 4월 10일),[『승정원일기』정조 즉위년 4월 10일]

묘소와 후손

유소의의 무덤은 본래 경기도 양주(楊州) 진관(津寬)(현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해있었으나[『승정원일기』숙종 33년 6월 9일],[『정조실록』정조 22년 9월 7일 2번째기사] 일제강점기 왕실관련묘 이전 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37-1 서삼릉 경내로 이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0년 서삼릉이 사적 제200호로 지정될 때 함께 지정되었다.

유소의는 숙종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두지 못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숙종보궐정오(肅宗補闕正誤)』
  • 『경종실록(景宗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 지두환, 『숙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