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복헌(錫福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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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의 낙선재와 수강재 가운데 위치한 경빈김씨의 처소.

개설

석복헌(錫福軒)은 낙선재(樂善齋) 동쪽에 있는 건물로 1848년(헌종 14)에 헌종의 후궁이 된 경빈김씨(慶嬪金氏)를 위해 지은 처소이다. 헌종은 왕비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자 정조의 전례에 따라 간택후궁(揀擇後宮)인 경빈을 맞이하였고, 그녀를 위하여 1847년(헌종 13)에 지은 낙선재와 정조 때에 이극문(貳極門) 안쪽에 지은 수강재(壽康齋) 사이에 석복헌을 지었다(『정조실록』 9년 8월 27일)(『헌종실록』 13년 10월 20일). 그러나 경빈김씨는 석복헌에서 얼마 살지도 못하고 1849년(헌종 15)에 헌종이 승하하면서 궁 밖으로 나가 별도로 마련된 순화궁(順和宮)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석복헌은 빈 처소로 남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고종의 친형인 이희공(李熹公)이 죽자, 창덕궁에 머물던 순종은 석복헌 동쪽 뜰에 나가 망곡(望哭)을 행하였다(『순종실록부록』 5년 9월 9일). 1917년 대조전(大造殿)이 화재로 소실되어 복구가 끝나는 1921년까지 순종과 순종비가 낙선재에 머물면서 석복헌을 침전으로 사용하였다.

위치 및 용도

석복헌은 낙선재와 수강재 가운데 있는 건물로 헌종의 후궁인 경빈김씨가 머물던 처소였다.

형태

석복헌은 낙선재 동쪽에 연이어 지어진 건물로 전체적인 배치는 ㅁ자형이다.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큰 온돌방을 들였다. 동쪽 온돌방 뒤쪽으로는 마루방을 만들고 서쪽 온돌방 뒤쪽으로는 2칸의 온돌방을 더 들였다. 서익랑 쪽으로 마루방과 온돌방을 연이어 들였는데, 상궁과 나인들의 처소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석복헌의 서쪽 공간 구성은 낙선재의 동온돌 측과 비교했을 때 평면상으로 대칭된다. 석복헌의 공간은 전체적으로 폐쇄하여 바깥에서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반면에 실내 곳곳은 창호, 난간 등을 정교하게 다듬어 설치하고 담장에는 꽃무늬, 포도문양 등을 새겨 장식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궁궐지(宮闕志)』
  • 『내각일력(內閣日曆)』
  • 『원헌고(元軒稿)』「동궐도(東闕圖)」「동궐도형(東闕圖形)」『동아일보(東亞日報)』
  • 『매일신보(每日申報)』
  • 『국민보(國民報)』
  • 국립문화재연구소 편, 『조선왕실 건축도면』, 국립문화재연구소, 2013.
  • 역사건축기술연구소, 『우리 궁궐을 아는 사전』, 돌베개, 2015.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