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궐(北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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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공식 처소를 가리키는 말로, 조선시대 도성의 북쪽에 자리 잡았던 경복궁.

개설

북궐(北闕)은 본래 왕이 머무는 곳, 나아가 중국의 황제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논어(論語)』「위정」편에 “북극성은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뭇별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공전한다[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 하였는데, 이는 군왕의 덕치(德治)를 비유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북쪽의 방위는 왕의 거처와 동일시되었다. 왕은 항상 북쪽에 앉아 남면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신하의 입장에서 왕이 있는 곳은 언제나 북쪽이 된다. 따라서 왕의 거처가 비록 북쪽이 아니더라도 왕의 처소는 북궐로 통용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시대 상황에 따라 여러 곳의 궁궐이 운영되었기 때문에 북궐로 칭해지는 궁궐이 여럿 있었다. 중국의 궁궐을 가리키기도 하고, 경복궁을 가리키기도 하며 때로 창덕궁을 가리키기도 해서 문맥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고종대에 경복궁이 재건되면서 창덕궁·창경궁을 동궐(東闕), 경희궁을 서궐(西闕)로 지칭하는 용례와 함께 경복궁을 북궐로 지칭하는 용례가 고정되었다.

위치 및 용도

북궐은 경복궁을 말하나, 경복궁이 도성 전체에서 북쪽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북서쪽에 편향되어 북악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경복궁 앞으로는 시가지가 넓게 펼쳐지고, 그 앞으로 안산(案山)인 목멱산(木覓山: 현 남산)이 자리 잡고 있다. 궁궐의 왼쪽인 동쪽으로는 좌청룡 낙산(駱山)이, 오른쪽으로는 우백호 인왕산(仁旺山)이 자리 잡고 있고, 그 가운데로 서에서 동으로 청계천이 흐른다. 도성의 동쪽에는 종묘와 함께 창덕궁과 창경궁이 자리 잡았고, 서쪽에는 경희궁과 경운궁이 지어졌다. 조선후기에 창경궁을 동궐이라고 칭하고 경희궁을 서궐이라 하면서, 새로 중건된 경복궁을 북궐로 칭하는 용례가 크게 늘어났다.

변천 및 현황

북궐의 원래 뜻은 왕의 거처를 의미하기 때문에 문헌 사료에 등장하는 북궐 중에는 경북궁을 지칭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북궐’이란 단어의 용례를 조사해 보면 왕이 있는 곳, 나아가 중국의 황제가 있는 곳을 지칭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세종실록』 10년 1월 20일). 따라서 북궐은 조선의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가리키기도 했지만, 원·명·청의 베이징[北京] 황궁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때로는 경복궁이 아닌 다른 궁을 지칭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중건되기 이전인 1866년(고종 3)에는 창덕궁을 북궐로 지칭하였다. 이로 미루어 경복궁이 중건되고 나서야 비로소 북궐이 곧 경복궁이라는 등식이 명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용례는 「북궐도형(北闕圖形)」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 국립문화재연구소 편, 『북궐도형』,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 이강근, 『한국의 궁궐』, 대원사, 1991.
  • 이상해, 『궁궐·유교건축』, 솔출판사, 2004.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 홍순민, 「조선왕조 궁궐 경영과 “양궐체제”의 변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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