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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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년(광해군 9) 유교적 가치관을 회복하고자 광해군(光海君)의 명에 따라 이성(李惺) 등이 편찬한 책.

개설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는 1617년(광해군 9)에 왕명으로 편찬되었는데, 효자도 8책, 열녀도 9책, 충신도 1책 등 1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문으로 기록한 다음 언해한 것으로 그 내용에 어울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행실이 모범적인 실제 인물을 선택하되 계급과 성별의 차별 없이 행실이 뛰어난 자는 모두 망라하였고, 도덕책처럼 진부한 설명 없이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의 행동에 대한 간결한 소개와 그림만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각계각층의 일반인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였는데, 이는 국가 통치 이념인 유교적 도덕을 불러일으키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즉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구체적 사건의 제시를 통해 추상적 교훈 전달이 아닌 자발적 깨우침을 유도하였다고 할 수 있다.

편찬/발간 경위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사회가 피폐해지면서 유교적 가치관도 혼란스러워져 나라를 통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때에 백성들의 도의를 다시 회복하고, 혼란스러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광해군은 온 국력을 기울여 『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간행하여 국민을 교화하고자 하였다.

편찬이 완성된 것은 1615년(광해군 7)이었으나, 간행에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기 때문에 각 도의 경제력에 비례하여 전라도 6책, 경상도 4책, 공홍도(公洪道 : 충청도) 4책, 황해도 3책, 평안도 1책씩 분담하여 1617년(광해군 9)에 그 간행을 완료하였다. 이때 조정에서는 판본이 각 도에 흩어져 있다가 유실될 것을 염려하여 모두 서울로 가져오게 하였다.(『광해군일기』 9년 3월 19일)

서지 사항

18권 18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판본이다. 종이의 지질은 한지이다.

현재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구성/내용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편찬은 특히 임진왜란을 통하여 체득한 귀중한 자아의식 및 도의정신의 토대 위에서 출발된 것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의 효자·충신·열녀 등의 사실을 수록, 반포하여 민심을 안정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제목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그 소재나 내용이 동국, 즉 우리나라에 국한되면서 그 권질(卷帙)이 방대하다는 특징을 가질 뿐 아니라, 계급과 성별의 차별 없이 천인계급의 인물이라 하더라도, 행실이 뛰어난 자는 모두 망라하였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새로 편찬된 17권 17책의 「신속삼강행실도(新續三綱行實圖)」에 조선 초기에 간행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에서 우리나라 사적만 뽑아 다시 수록한 「원속(元續)」 1책을 더해 총 18권 1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정표(旌表)를 받은 충신·효자·열녀 및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의 고전 및 각 지방의 보고자료 중에서 취사·선택하여 1,000여 명의 간략한 전기(傳記)를 만든 뒤에 선대의 예에 따라서 각 한 사람마다 1장의 도화(圖畫)를 붙이고, 한문 다음에 한글로 언해를 붙였다. 권1∼8은 효자, 권9는 충신, 권10∼17은 열녀에 대하여 다루고 있으며, 권18은 「원속」이다.

이 책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임진왜란 중에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비롯하여 신라, 고려, 조선 시대의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수록하고 그 덕행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둘째, 구체적 행적을 사실적으로 간략하게 기술할 뿐, 집필 의도는 겉에 드러나 있지 않다. 셋째, 인물의 행적을 그림으로 표현한 후, 한문으로 적고 한글로 풀이하였다. 넷째, 그림의 구도는 산, 구름, 정문 등을 주변에 배치한 후, 인물의 행적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한 화면에 그려 넣었다. 다섯째, 세종(世宗) 때 간행한 『삼강행실도』와 중종(中宗) 때 간행된 『속삼강행실도』는 중국 인물에 치중되어 내용을 구성하였지만,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그 실례를 찾았다. 여섯째, 17세기 국어 특질을 많이 갖추고 있어서 그 당시의 언어 현상뿐만 아니라, 15~16세기의 국어와 비교, 연구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보이는 국어사적인 특징으로는 ‘’, ‘’, ‘아’에서처럼 표기상 ‘ㅿ’자의 쓰임이 잦고, ‘뎌’, ‘디다’, ‘디니라’, ‘려’, ‘려’, ‘리오고’에서와 같이 합용병서(合用並書)의 ‘ㅄ계’, ‘ㅂ계’, ‘ㅅ계’가 공존함을 보여준다. 또한 ‘’와 같은 표기가 나타난다. 각자병서(各自並書)의 표기로는 ‘빠뎌’, ‘써’에서처럼 ‘ㅃ’, ‘ㅆ’ 등이 있다. 음절의 받침으로 ‘ㆁ’의 표기가 ‘이’, ‘애’, ‘무덤이이다’에서처럼 쓰이고, 상대높임법의 ‘-다’의 경우 ‘이다’, ‘일워징이다’, ‘가지링다’처럼 주로 ‘ㅇ’으로 표기되었다.

음절의 받침은 ‘ㅅ’과 ‘ㄷ’의 표기가 매우 혼란되어 쓰이며, 음절의 받침의 중복 표기가 ‘약글’, ‘집비’, ‘남마다’, ‘눈니라도’처럼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강세를 나타내는 접미사가 ‘후에사’, 말아사’처럼 쓰이고, ‘프서리’, 손소’와 같은 용례도 보인다.

어두음절(語頭音節)에서 ‘흙덩이, 흘글’처럼 ‘·’의 동요도 찾을 수 있다. 16세기부터 나타나는 모음사이의 격음이나 경음으로는 ‘겯’, ‘읍프되’, ‘받’, ‘잇니’, ‘잇’ 등이 있으며, 어두경음화 현상의 용례는 ‘짇고’, ‘싸라’, ‘어’, ‘쓷고(洗)’ 등이 있다. ‘일즙 우디 아닐 제기 업더라’에서처럼 ‘ㅣ모음 역행동화’ 현상도 보이며, 자음동화작용도 간혹 표기상에 반영되어 있는데, ‘괄로(官奴)’, ‘틍명(特命)’과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어두격음화현상로는 ‘칼’, ‘흘’, ‘코’ 등이 있는데, 이들은 이미 16세기에 나타난 것들이며, 어간 내에서 보인 ‘치며’, ‘속켜’, ‘언턱’ 등은 방언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방언 어휘로서는 ‘가차이’, ‘게얼리’, ‘아젹에’, ‘애래셔(下)’, ‘크기(크게)’, ‘초개집’, ‘지애비’, ‘외히려’, ‘제혀(저히어)’ 등이 있다. 또한 사람 이름에 붙는 접미사 계열로 ‘-가히’, ‘-개’, ‘-동’, ‘-동이’, ‘-셰’, ‘-진’, ‘-합’ 등이 쓰였는데, 남자이름에는 특히 ‘-쇠’, ‘-산’을 썼고, 여자이름에는 ‘-덕이’, ‘-비’, ‘-금’, ‘-무’, ‘-종’ 등을 썼다. 희귀한 어휘로는 ‘구리틴대(倒之)’, ‘맛갓나게(具甘旨)’, ‘덥두드려(撲之)’, ‘비졉나고(避)’, ‘초어을메(初昏)’, ‘와이(酣)’, ‘칼그치(劒痕)’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지적 수준이 높지 않은 평민의 교화를 추구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글에서는 추상적인 내용보다 관련된 사례를 제시하되 그림이 같이 계시하여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내용에 대한 구체성을 높였다.

이외에 문법적인 특징도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의미의 변화를 보여주는 어휘도 상당수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근대국어연구에 매우 귀중하며, 동시에 중세국어와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문헌이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김영신, 「동국신속삼강행실의 국어학적 연구」, 『부산여자대학논문집』 9, 부산여자대학교, 1980.
  • 이병도, 『『동국신속삼강행실』 - 해제』, 국립중앙도서관, 1958.
  • 이숭녕, 「동국신속삼강행실에 대한 어휘론적 고찰」, 『국어국문학』55·57, 국어국문학회, 1972.
  • 이영경,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언해의 성격에 대하여」, 『진단학보』112, 진단학회, 2011.
  • 전재호, 「동국신속삼강행실도색인」, 『동양문화연구』2, 경북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1975.
  • 정복순, 「동국신속삼강행실도(건)의 조어법」, 『수련어문논집』, 부산여자대학교, 1976.
  • 정일영,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재고촬 - 시대적 배경과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국어사연구』17, 국어사학회,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