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위대(親衛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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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중앙군의 역할을 담당하던 부대.

개설

친위대는 1895년(고종 32) 훈련대 폐지 이후 중앙군으로 창설된 부대명이다. 친위대는 1905년(광무 9) 폐지될 때까지 중앙군의 주축 부대로서 역할을 계속했지만 그 위상에는 변화가 있었다. 친위대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중앙군이라도 지방 의병 진압 등에 동원되면서 증강되었다. 그러나 고종이 환궁한 1897년에는 신설된 시위대(侍衛隊)에 정예병을 내주고 친위대는 축소되었다. 그러다가 원수부 체제가 공고화된 1902년에는 다시 시위대와 함께 확대되었다. 그러나 결국 1905년 4월 러일전쟁 승리를 눈앞에 둔 일제에 의해 1차 군대 감축이 이루어지고 이때 친위대는 폐지되며 시위대만 남게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을미사변에 개입되었다는 비난으로 훈련대가 폐지된 후 1895년 9월 11일 「육군편제강령」이 새로 만들어졌다. 이로써 중앙에는 친위대, 지방에는 진위대(鎭衛隊)를 두는 군제가 반포되었다. 친위대는 경성에 주둔하여 왕성 수비를 전담하는 부대였고, 진위대는 부(府) 혹은 군(郡) 가운데 중요한 지방에 주둔하여 지방의 진무(鎭撫)와 변경 수비를 담당하는 부대였다. 이후 대한제국이 성립한 후에도 친위대와 진위대의 이원 체제는 기본적으로 유지되었다. 이후 중앙군은 친위대에 시위대·호위대가 추가·증설되고, 지방군은 지방대가 진위대로 흡수·통합되면서 역시 증설되었다.

조직 및 역할

1895년 9월 중앙군으로 설립된 친위대는 3개 대대로 편제되어 있었다. 1개 대대는 정원 884명이며, 4개 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친위대는 1896년 3월 5개 대대 총 4,400여 명으로 증강·개편되었다. 이 시기 친위대의 증강은 의병 진압과 관련되어 있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안동, 춘천 등지의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친위대 병사들이 직접 파견되었다는 기사들이 보인다. 그런데 친위대는 고종 환궁 이후인 1897년 9월 시위대에 정예병을 내주고 나머지 병력으로 재편되어 3개 대대로 축소·정비되었다. 1898년 7월에는 시위대와 마찬가지로 러시아군 편제가 도입되어 1개 대대는 5개 중대, 1개 중대는 4개 소대로 편성되었다. 1902년 9월에는 시위대와 함께 각각 1개 대대가 증가·편성되었다.

변천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눈앞에 둔 일본은 1905년 4월 대한제국 군대를 1차로 감축시켰다. 지방 진위대는 10개 대대가 감축되고 7개 대대만 남았으며, 중앙군의 양대 주력 가운데 친위대 2개 연대(4개 대대) 4천여 병력은 아예 폐지되었다. 시위대만이 겨우 1개 연대 규모로 축소·편성되었다. 5개 중대를 1개 대대로 하던 러시아식 편제를 버리고, 4개 중대를 1개 대대로 하는 일본군 편제로 다시 개편된 것이다.

참고문헌

  • 『한말근대법령자료집(韓末近代法令資料集)』
  • 서인한, 『대한제국의 군사제도』, 혜안, 2000.
  • 김세은, 「개항이후 군사제도의 개편과정」, 『군사』22, 1991.
  • 조재곤, 「대한제국기 군사정책과 군사기구의 운영」, 『역사와 현실』19,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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