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덕(至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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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당(唐)나라 숙종(肅宗) 대에 사용한 연호(756년~758년: 숙종1~숙종3).

그 외에

중국 진(陳)나라 후주(後主) 대에 사용한 연호(583년~587년: 후주2~후주6).

개설

지덕(至德) 연호는 중국 역사에서 두 번 사용되었다. 우선 중국 당나라 제 7대 황제인 숙종이 사용한 3개의 연호 가운데 첫 번째 연호로(756년~758년), 756년 7월부터 758년 1월까지 사용한 지덕 연호를 들 수 있다. 756년 <안사의 난(安史之亂)>이 발생하자, 현종(玄宗)은 신하들의 권의를 받아들여 황제의 지위를 아들에게 넘겼는데, 그 황제가 바로 숙종이었다. 숙종은 즉위 후, <안사의 난> 가운데 <안록산(安祿山)의 난(亂)>을 진압하며 국가 재건을 위하여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미 국가의 상황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종종 등장하는 ‘지덕(至德) 초년의 어려운 상황’은 바로 이러한 당나라의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 신라(新羅)에서는 경덕왕(景德王)15년부터 경덕왕17년까지 이 연호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중국 진나라 제 5대이자 마지막 황제인 후주가 사용한 2개의 연호 가운데 첫 번째 연호가 있다(583년~587년).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이때의 지덕 연호는 등장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구당서(舊唐書)』
  • 『신당서(新唐書)』
  • 『남사(南史)』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