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덕정(尊德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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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창덕궁 후원에 조성한 겹지붕 형태의 육각 정자.

개설

존덕정(尊德亭)은 조선후기 인조대에 창덕궁 후원의 반월지(半月池) 가에 조성한 육각형 정자이다. 지붕 처마가 겹지붕 형태로 독특하여 조선시대 건축의 이채로운 구상과 재주를 보여 주는 중요한 건물이다.

위치 및 용도

애련정(愛蓮亭)을 나와 북쪽으로 구릉 밑을 돌아가면 좌측에 자연곡선형의 반도지(半島池)가 있고, 연못의 동쪽 지안에는 물속에 뜬 것 같은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이 있다. 지당은 한반도 모양과 같다고 하여 반도지라 불렀다. 「동궐도(東闕圖)」에는 크고 작은 원형의 연못 3개가 한곳에 모여든 호리병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에 의도적으로 변형하여 반도지라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지 북쪽 한 단 높은 곳에는 반월지가 있고 이 반월지와 반도지 사이 계간에는 단아한 형태의 홍예석교(虹蜺石橋)가 있다. 이 석교를 건너 들어가면 1644년(인조 22)에 건립한 육각형의 존덕정이 있는데, 존덕정의 지붕은 난간주를 덧대어 얹어 이층 지붕처럼 보인다.

후원의 숲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반월지와 홍예석교가 보이는 존덕정에 대해 조영자인 인조와 후대 왕인 숙종, 정조가 시를 읊었다. 인조는 어필로 ‘숲 바람이 번잡한 마음 씻어주네’라는 뜻의 「임풍척번(林風滌煩)」을 써서 걸었다. 숙종은 「존덕정우음(尊德亭偊吟)」이라는 시에서 봄이 와서 존덕정의 지당에 얼음이 풀리는 한가로운 경관에 대해 노래했고, 정조는 자신의 호(號)를 쓴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편액을 걸었다.

변천 및 현황

존덕정은 1644년(인조 22)에 건립되었다. 『궁궐지(宮闕志)』에는 심추정(深秋亭) 서북쪽에 있다고 기록되었다. 처음에는 육면정(六面亭)이라 부르다가 뒤에 ‘덕성을 높인다.’는 뜻의 존덕정으로 고쳤다. 다리 남쪽에는 일영대(日影臺)를 두어 시각을 쟀다. 「동궐도」에는 존덕정이 그려져 있고 연못은 반달형과 네모형의 2개 못으로 표현되었다. 네모형의 못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 근거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 두 못을 하나로 만들었다.

형태

존덕정은 육각 정자 형태이며 겹지붕으로 특이한 구성을 보여 준다. 육모지붕의 주심포집에 본 정자 외곽에 지붕을 따로 만든 퇴칸을 설치하였다. 이 정자의 난간이나 교창과 낙양각 등은 뛰어난 소목의 정교한 공예 솜씨를 보여 준다. 보개천장(寶蓋天障)에 그려진 용의 단청 그림이 힘차게 생동한다. 규모는 약 30㎡, 약 9.3평에 지나지 않는다. 존덕정의 내부는 매우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되었다. 육모정의 가운데는 여의주를 사이에 두고 황룡과 청룡이 희롱하는 모습이 그려져 이 정자의 격식이 상당히 높았음을 보여 준다.

존덕정으로 가는 홍예석교 밑의 계간은 석지처럼 만들어 판석으로 물막이를 해 계류가 고였다 넘쳐서 반도지로 흘러 들어가도록 했으며, 산록에 흘러드는 물은 폭포가 되어 떨어질 수 있도록 석구(石口)를 설치했다. 존덕정 주변에는 일영대뿐 아니라 괴석과 괴석분, 대석 등의 점경물(點景物)이 있다.

관련사건 및 일화

헌종 연간의 존덕정 현판은 헌종의 어필이었다고 하는데, 현재 현판은 걸려 있지 않다. 순조는 창덕궁 후원의 정자에서 신하들과 학문을 논하였는데, 존덕정에서도 태학 유생의 응강(應講)을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순조실록』 11년 8월 5일).

참고문헌

  • 『궁궐지(宮闕志)』「동궐도(東闕圖)」
  • 이광호,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수류산방, 2007.
  • 최종덕, 『조선의 참 궁궐 창덕궁』, 눌와, 2006.
  • 한국전통조경학회, 『동양조경문화사』, 대가, 2011.
  • 한영우,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열화당,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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