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평부(定平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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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함경도 정평 지방을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정평부(定平府)는 1413년(태종 13) 설치되어, 1895년(고종 32) 관제 개혁에 따라 정평군(定平郡)으로 바뀔 때까지 함경도 정평 지방을 관할하는 행정구역으로 기능하였다. 장관은 도호부사(都護府使)로서 정평부의 행정을 총괄하였고, 조선전기 진관(鎭管) 체제 아래에서는 함흥진관(咸興鎭管)의 병마동첨절제사(兵馬同僉節制使)를 겸임하였다. 함경도 남부 지방의 행정과 군사상의 요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로 파지(巴只) 또는 선위(宣威)라고 불렀다. 고려 983년(고려 성종 2)에 천정만호부(千丁萬戶府)를 두었다. 1041년(고려 정종 7)에 비로소 성보(城堡)를 쌓고 관문을 설치하고는 정주(定州)로 이름을 바꾸고 방어사(防禦使)를 설치하였다. 고종 때 원(元)나라에 편입되었다가, 1356년(고려 공민왕 5)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혁파하면서 수복되어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

조선이 건국한 뒤에도 그대로 정주도호부(定州都護府)의 편제를 따랐다. 1413년(태종 13)에 평안도 정주(定州)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정평(定平)으로 고쳤다(『태종실록』 13년 7월 20일).

조직 및 역할

도호부사 즉 부사(府使)는 조선전기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종3품으로 규정되었으며, 임기는 30개월이었다. 조선후기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을 번갈아 가며 임명하는데, 당상관(堂上官)은 3년, 당하관(堂下官)은 6년이라고 임기를 규정한 것으로 보아, 정3품의 당상관을 임명하는 예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관 체제 아래에서는 함흥진관에 속하여, 병마동첨절제사를 겸임하였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부사에 직속된 이속(吏屬)으로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3명, 군관(軍官) 3명, 아전(衙前) 48명, 지인(知印) 17명, 사령(使令) 23명, 관노(官奴) 28명, 관비(官婢) 38명이 있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정평의 관할 행정구역으로는 관아가 소재한 부내사(府內社)를 위시하여 주이사(朱伊社), 여인사(汝仁社), 장곡사(長谷社), 산지사(山知社), 세류사(細柳社), 파춘사(播春社), 귀림사(歸林社), 문산사(文山社)의 9사(社)가 있었다.

변천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가 대구역주의인 8도제에서 소구역주의인 23부제로 바뀌면서 함흥부(咸興府) 소속의 정평군으로 바뀌었다(『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이듬해 전국을 13도 8부 1목 331군으로 개편할 때 정평군은 다시 함경남도에 소속되었다(『고종실록』 33년 8월 4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손정목, 『한국지방제도·자치사연구(상)』, 일지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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