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암(寂滅庵)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선 정조대 승려 벽규가 거주하던 계룡산 갑사의 산내 암자로, 현재는 폐사됨.

개설

적멸암(寂滅庵)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화엄10찰(華嚴十刹)의 하나인 갑사의 말사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는 갑사의 기허영규(騎虛靈圭)를 비롯한 승병 500명과 의병장 조헌(趙憲)이 함께 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금산(錦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모두 전사하였다.

내용 및 특징

적멸암의 창건 내력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현재는 폐사되어 그 흔적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적멸암의 본사인 갑사는 420년(신라 눌지왕 4)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556년(신라 진흥왕 17)에 혜명(惠明)이 창건하였다는 설, 아도가 창건하고 혜명이 중창했다는 설 등이 있지만 문헌으로 고증하기 어렵다. 신라시대에는 화엄10찰 중 하나였으며 고려·조선시대에도 대찰로 유명하였다. 특히 임진왜란 때 500명의 승병을 모아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를 수복하고 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금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700의사(義士)와 함께 순국한 승병장 기허영규를 배출한 호국 사찰이다.

적멸암과 관련해서는 정조대에 홍복영(洪福榮) 역모 사건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계룡산 갑사(岬寺) 적멸암(寂滅庵) 후이방(後珥房)에 거주하던 승려 벽규(碧奎)가 서찰을 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정조실록』 9년 3월 8일). 1785년(정조 9) 홍복영은 벼슬길이 막힌 것에 불만을 품고 헛소문을 만들어 민심을 동요시키고 임금을 시해하려고 했다는 죄목으로 하동부(河東府)에서 사형당하였다.

참고문헌

  • 고성훈, 「정조조 홍복영 옥사와 산인세력」, 『동국사학』26,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