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죽사(松竹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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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에 있던 티베트불교의 사찰.

개설

송죽사(松竹寺)는 ‘숭축사(嵩祝寺)’의 잘못된 표기이다. 이 사찰은 중국 북경 황성근유지공원에 위치해 있다. 원래 황실에서 사용하는 도장을 새기고 문서와 경전을 보관하는 번경창(番經厂)과 한경창(漢經厂)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는데, 1733년에 송축사로 개명하였다. 1786년 티베트불교의 활불(活佛)이었던 장가(章嘉)의 생일에 황제가 방문했을 때 조선 사신들이 신무문(神武門) 밖에서 맞이하였다.

내용 및 특징

(1) 송죽사의 역사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송죽사는 숭축사(嵩祝寺)를 말한다. 두 사찰의 중국 발음이 같아서 『조선왕조실록』에서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사찰이 세워지기 전에 황실에서 사용하는 도장을 새기고 문서와 경전을 보관하는 번경창과 한경창으로 사용되었다.

번경창에서는 주로 티베트불교의 경전을 가르쳤으며, 티베트승려가 사용하는 몽골어와 티베트어 경전을 전문적으로 인쇄했다. 또한 명대에 인쇄된 『티베트대장경』이 보관되어 있었다. 한경창에서는 주로 전통적인 불교 한문 경전을 가르치고 인쇄하였다. 이곳에는 명나라 때 판각한 『영락북장(永樂北藏)』을 보관했다.

1733년에 전면적으로 중수하여 번경창과 한경창을 숭축사로 개명하였다. 이후 『건륭대장경(乾隆大藏經)』이 만들어져 그 경판이 숭축사에 보관되었다. 이 대장경은 1733년에 새기기 시작하여 약 6년의 세월이 걸려서 완성되었다. 이 때문에 이 대장경판본을 숭축사판(嵩祝寺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장가와의 관계

1723년에 청해(靑海)에서 라복장단진(羅卜藏丹津)의 반란이 일어났다. 당시 청나라 옹정제(雍正帝)는 통사(統師) 연갱요(年羹堯)를 특별 임명하여 나이어린 제3대 장가(章嘉) 약패다걸(若貝多杰)을 찾아내어 북경으로 호송하라 명하였다. 이듬해 장가는 숭축사로 거처를 옮기고 좌상(坐床) 의식을 치르고 입궁하여 황제의 아들인 홍력(弘歷)과 함께 공부하였다. 장가는 일생 동안 여러 차례 대활불(大活佛)과 조정의 특사 신분으로 고비사막의 남북 및 티베트의 눈덮인 고원까지 분주히 오가면서 중대한 민족 종교 분쟁의 해결에 참여하였다. 1786년에 장가의 생일에 황제가 숭축사에 갈 때, 조선 사신들이 신무문(神武門) 밖에서 황제를 맞이하였다(『정조실록』 10년 2월 28일).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장가(張家)’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것은 ‘송죽사(松竹寺)’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장가(章嘉)’와 중국 발음이 같아서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百化文; 張智 主編, 『中國佛寺誌叢刊』, 揚州: 江蘇廣陵古籍刻印社, 1996.
  • 陳楠, 「法淵寺與明代番經廠雜考」, 『中國藏學』, 2006.
  • 張帆, 「嵩祝寺測繪及始建年代研究」, 『古建園林技術』, 2008.
  • 中國佛敎寺廟誌數位典藏, http://buddhistinformatics.ddbc.edu.tw/fosiz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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