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문궤(事大文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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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619년(광해군 11) 찬집청(纂輯廳)에서 1592년(선조 25)부터 1608년(광해군 즉위) 사이 명(明)나라와의 외교문서를 모아 편찬한 외교문서집이다.

개설

이 책에는 조선이 1592년(선조 25)∼1608년(광해군 즉위) 사이에 명나라에 교섭한 사대문서(事大文書)와 명나라의 회답(回答)문서가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명나라에 원조를 청하는 문서, 광해군의 세자책봉 승인을 요청하는 문서, 광해군이 왕위(王位)를 계승하게 된 연유를 해명하는 문서 등의 중요한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승문원등록(承文院謄錄)』을 바탕으로 편찬한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주로 명의 병부·예부 등과 주고받은 자(咨)·회자(回咨) 등과, 그 밖에 주(奏)·표(表)·장(狀)·조(詔)·유지(諭旨) 등으로 되어 있다. 본래 모두 54권 54책이었으나 현재 규장각에 전하는 것은 23권 23책뿐이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1619년(광해군 11)에 찬집청에서 1592년 이후의 중국과의 외교 문서를 엮은 것이다. 이 시기는 국내에서 임진왜란을 겪을 때이며, 밖으로 후금(後金)이 발흥하던 때여서, 외교상 문제들이 특히 중요한 때였다. 또 조선 국내에서는 선조 말 광해군의 세자 책봉 및 왕위 승습(承襲)을 둘러싸고, 미묘한 세력 대립의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명나라는 새로이 발흥하는 후금과 조선과의 내통을 차단하는데 주의를 기울이는 상황이었다.

이 책에는 그러한 당시의 외교 사정들이 상세히 나타나 있는데, 조·명 관계에 관한 사건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원을 포함, 여러 가지 교섭의 내용과 광해군의 분조(分朝)에 관한 사항, 광해군의 왕세자 책봉에 관한 교섭 내용, 위서(僞書) 또는 정응태(丁應泰)의 무고(誣告) 등에 대한 변무(辨誣) 내용, 광해군을 후사로 세워 왕위를 승습한 뒤 그 동의를 얻기 위한 교섭 등이다.

이 책은 임진왜란에서 광해군 즉위에 이르는 기간의 외교사 연구에 있어 1차 자료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1925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해설·목록을 붙여,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7집으로 영인, 간행한 바 있다.

서지 사항

31권 14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훈련도감 목활자본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반엽광곽(半葉匡郭)은 24.5×15.7cm이다. 10행 19자의 주쌍행(注雙行), 상하화문어미(上下花紋魚尾)을 갖추고 있고, 크기는 35×21.5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에는 임진왜란 이후 후금의 발흥에 이르기까지 외교적인 사안에 대해서, 명나라와 조선 사이에 왕래한 계문(咨文), 회자문(回咨文), 주문(奏文), 표문(表文), 장(狀), 소(詔), 유지(諭旨) 등을 수록하였다. 명나라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유구(琉球), 일본, 여진과의 관계도 기재되어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중요한 외교문서와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국왕자병부분사유원(朝鮮國王咨兵部分司劉袁)’, ‘조선국왕자제독이(朝鮮國王咨提督李)’, ‘조선국왕자병부(朝鮮國王咨兵部)’, ‘조선국왕자요동도지휘사사(朝鮮國王咨遼東都指揮使司)’, ‘경략방해어왜군무송자조선국왕(經略防海禦倭軍務宋咨朝鮮國王)’, ‘요동도지휘사사자조선국왕(遼東都指揮使司咨朝鮮國王)’ 등 임진왜란 때의 원병요청과 조선에서 명군(明軍)의 양초(糧草)를 준비할 것을 요구하는 등의 교섭내용, 명나라 사신이 선조를 알현(謁見)한 내용, 광해군의 분조(分朝)와 관련한 내용, 명나라에서 일본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내용, ‘조선국원임의정부영의정이항복등증례부(朝鮮國原任議政府領議政李恒福等呈禮部)’와 같은 광해군의 왕세자책봉에 대한 교섭내용, 역일(曆日)을 청하는 내용, ‘조선국왕자예부(朝鮮國王咨禮部)’와 같이 정응태의 무고를 변무하고, 정응태가 조선에서 발견했다는 위서(僞書)를 변무하는 내용, 선조가 유구에 보낸 자문과 ‘유구국중산왕세자상령자조선국왕(琉球國中山王世子尙寧咨朝鮮國王)’과 같은 유구와의 교섭내용, ‘조선국왕표(朝鮮國王表)’와 같은 명나라의 원군에 사운하는 내용, ‘조선국왕자비왜부총병마(朝鮮國王咨備倭副總兵馬)’와 같은 일본의 정세를 정탐하여, 명나라에 알리는 내용 등이다. 이외에 매년 정기사행에 관련한 주문과 자문이 많이 기재되어 있다. 외교문서로 구성되어 있어 1차 자료로서의 중요한 가치가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부터 광해군의 즉위년에 이르기까지 대명관계의 실상과 임진왜란 당시의 전황 및 정세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1차 사료로서, 임진왜란에서 광해군 즉위 동안의 외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는 데에 그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 구범진, 『조선시대 외교문서-명·청과 주고받은 문서의 구조 분석-』, 한국고전번역원, 2013.
  • 김광린, 「조선 광해군정부의 평화주의 외교정책-21세기 한국외교에 주는 시사점」, 『평화학논총』 제3권 1호, 지구평화연구소, 2013.
  • 나혜영, 「광해군의 평가양상에 대한 기억과 그 의미」, 서강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 조선사편수회,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7, 조선총독부, 1925.
  • 한명기, 「광해군의 對外政策 再論」, 『한국불교사연구』 제2호, 서울한국불교사연구소, 2012.
  • 황시우쯔, 「왜란과 호란 시기 조선 광해군의 서적 외교와 동아시아 질서」, 『석당논총』 제65집,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