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사전(別賜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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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특별한 공을 세운 신하나 총애하는 측근들에게 나누어 주던 토지.

개설

조선시대에 왕이 개인적으로 신하들에게 나누어 준 토지를 사전(賜田)이라 불렀다. 사전은 공신전(功臣田)과 별사전(別賜田)이 주를 이루었다. 별사전은 수조권(收租權)을 분급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소유권 자체를 내려 주기도 하였다. 수조권을 분급한 별사전은 공신전과 달리 상속이 불가능한 토지였다. 다만 별사전 분급 때 함께 발급하는 별사전사패(別賜田賜牌)의 내용에 따라 상속이 가능하기도 하였다(『태종실록』 11년 9월 27일).

제정 경위 및 목적

별사전은 공이 있으나 공신에 선정되지 못한 신하, 왕이 개인적으로 총애하는 신하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기 위하여 마련되었다. 때로는 공신전을 지급받은 신하들에게 더 많은 토지를 하사하기 위하여 별사전을 지급하기도 하였다. 최초의 별사전 지급은 개국 공신들에게 공신전 이외에 사전을 더 내려 준 것이었다. 별사전은 조선초기에 많이 지급되었으며 15세기 이후에는 거의 지급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내용

별사전은 해당 토지의 수조권을 분급하는 형태가 주를 이루었으나, 경우에 따라 토지의 소유권을 주기도 하였다. 태종대 별사전은 상속이 불가능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런데 『경국대전주해』에 따르면 토지 그 자체를 내려 줄 경우에는 이러한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어 소유권을 지급하는 별사전이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수조권을 분급받는 별사전이라도 사패(賜牌)를 함께 받아 그 안에 상속이 가능한 토지임을 명기한 경우에는 공신전과 마찬가지로 상속이 가능하였다.(『태종실록』 13년 9월 3일). 별사전을 분급받은 사람은 과전(科田)·직전(職田)과 마찬가지로 수조권을 행사하더라도 1결당 2두(斗)에 해당하는 세금을 국가에 납부해야 할 부담이 있었다. 또 별사전은 경기도에만 설정되는 과전과는 달리 경기도 이외 지역의 토지도 분급이 가능하였다.

변천

조선은 고려말의 문란한 전제를 개혁하고 개창된 왕조였기에 개인에게 토지를 분급하는 문제에 매우 민감하였다. 따라서 별사전의 분급은 당시에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이미 분급된 별사전의 경우도 규모가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규제 장치가 마련되었다. 왕 개인의 의사에 따른 수조권 분급이 중단되었다는 것은 고려 때부터 뿌리 깊게 내려오던 수조권에 의한 토지 지배가 사실상 사라졌음을 뜻하였다.

별사전의 분급은 주로 조선 초에 이루어졌고, 15세기 이후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후로는 주로 별사전의 상속 규정 문제, 범죄로 처벌된 관원이 이전에 지급받았던 별사전을 처리하는 문제 등이 주로 논의되었다. 명종대를 마지막으로 별사전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나타나지 않았다(『명종실록』 14년 12월 17일). 아마도 16세기 중엽을 기점으로 별사전은 대부분 소멸된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경국대전주해(經國大典註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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